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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27/112)
  • <27화>

    “그, 그게 진짜 주실 줄 모르고 말씀드린 건데…….”

    10만 골드를 뜯어간 연구원은 나중에야 양심선언을 했다.

    하지만 네드 님은 그 앞에서,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라는 명대사를 함으로써 흙을 연구하는 연구원들의 물주로 등극해 버렸다.

    정말 무서운 건 이 사람에겐 10만 골드 따위가 정말 부담되지 않는 돈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 연구원들에겐 엄청나게 큰 돈이었고.

    네드 님의 적절한 그 ‘소비’ 덕분에 일은 쉬워졌다.

    연구원들은 받아먹은 10만 골드 값을 톡톡히 해냈던 것이다.

    원래 우리가 왕성 이곳저곳을 들쑤시면서 흙에 대한 정보를 채집해 와야 했지만, 그런 사사로운(?) 절차는 모조리 패스되고 주요 퀘스트 내용이 곧바로 우리 앞에 떠올랐다.

    [수상한 진흙 클리어!]

    [Level up!]

    [Level up!]

    ……

    메인 퀘스트는 레벨 비례로 경험치를 줬기 때문에 레벨업은 쏠쏠했다.

    [유니 / Lv. 314]

    레벨업해서 오른 능력치를 보는 사이 새로운 퀘스트가 그 위로 떠올랐다.

    [퀘스트 ‘연구소 직원 보호’를 입수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연구원이 말했다.

    “저희는 이미 이 진흙을 만들어내는 물의 힘이 어디에서 흘러나오는지 알아내는 기계를 만들어낸 상태입니다.”

    내가 분명 저 기계 재료를 모은다고 온 대륙을 쏘다녔던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응?

    10만 골드 주면 바로 튀어나오는 거였어? 아니면 시나리오 바뀌면서 너희들 연구실에 새로 생긴 거니?

    후자겠지? 응? 난 점점 인자해지는 표정으로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가동을 해 보려고 했는데, 이곳은 진흙이 있는 지면과는 거리가 있는 데다 연구소 건물 자체가 마법 연구를 위해 지어진 곳이라…….”

    연구원이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물의 힘이 어디에서 들어오는지 알아내기가 힘듭니다.”

    보나 마나 지하일 텐데 뭐.

    문제는 그 지하 위치가 유저마다 다르게 뜬다는 점이었다.

    결국 이 퀘스트는 하긴 해야 했다. 이 기계를 사용해서 크리스탈 위치를 특정해야 하니까.

    하지만 이 기계가 이렇게 쉽게 튀어나오는 것일 줄은…… 몰랐지…….

    새삼스러운 배신감에 자꾸 살심이 들었다.

    “밖에 나가서 기계를 가동해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내가 빡쳐 있는 사이 네드 님이 연구원의 말을 정리했다.

    역시 이해가 빠르신 편이었다.

    연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해가 빠른 네드 님도 이건 몰랐을 것이다.

    “그럼 부탁합니다!”

    밑도 끝도 없이 이 말만 남기고 연구원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갈 거라는 사실은.

    “가자!”

    “오늘이야말로 진흙의 비밀을!”

    “와아아아!”

    사람들이 쓸고 나가는 사이, 네드 님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들을 돌아보았다.

    그래요, 갑자기 NPC들이 이렇게 급발진할 줄은 모르셨겠죠.

    많이들 당황합니다, 예.

    [10분 동안 연구원들을 지키세요!]

    [00:09:59……]

    그러면서 타임어택까지 등장하니 뉴비들이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난 그런 네드 님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어차피 적 오는 건 8분대부터니까 천천히 움직여도 돼요.”

    “?”

    네드 님은 아직도 이해가 안 됐는지 살짝 고개를 기울인 채였다.

    그의 비상한 머리로 이 상황을 이해해 보려고 하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도 이 게임이 상식적인 게임이어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난 그에게 손짓했다.

    “원래 유네리아가 이래요. 설명 안 해 줘요.”

    그러니 따라오시면 됩니다, 넵.

    내가 그를 이끌자 네드 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무래도.”

    “아무래도?”

    그를 돌아보니 그의 표정은 아예 심각하다 못해 심해로 잠겨 들어가고 있었다.

    “혼자 했으면 못 했을 것 같습니다.”

    네드 님은 당연한 말을 아주 조심스럽게 하고 있었다.

    그 말에 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

    게……요……? 잠깐만.

    버그 안 걸리고 네드 님이 혼자 붉은 구슬 당첨됐으면?

    오…….

    순간 팔에 소름이 돋았다.

    이 삭막한 망겜의 세계에 돈만 들고 떨어졌을 네드 님의 모습이 떠올라서.

    네드 님 돈이 먼저 떨어질까, 유네리아의 막장 퀘스트가 먼저 끝날까?

    “…….”

    팔에서 소름이 사라졌다.

    돈보단 퀘스트가 먼저 끝나지 않았을까?

    난 표정을 폈다. 물론 더 상상할 필요 없는 일이었다.

    “걱정 마요, 우린 둘이니까.”

    난 네드 님에게 자신 있게 눈을 찡긋해 주었다.

    유네리아 10년 차를 믿으십쇼!

    난 그를 이끌면서 시간을 확인했다.

    [00:08:44……]

    “빨리 갑시다.”

    연구원들 뚜까 맞겠어!

    두 번의 기회는 안 주는 망겜 유네리아이니 퀘스트를 실패하면 어떤 재앙이 터질지 알 수 없었다.

    ―타타타탁!

    그리고 우린 빠르게 연구소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개판 오 분 전, 아니,

    [00:08:06……]

    개판 6초 전인 연구소 앞의 상황과 마주했다.

    * * *

    [남은 시간 동안 적의 침입을 막으십시오!]

    [연구원들의 체력 : 100%]

    [마법 기구 발동 준비도 : 0%]

    [남은 시간 : 00:07:58……]

    위에 알림창이 주르륵 올라왔다.

    익숙한 타임어택 퀘스트였다.

    “8분만 막으면 되네요. 근데 여기 왕성이니까…….”

    타임어택 퀘스트를 처음 볼 네드 님을 위해 내가 설명해 주려는 때였다.

    네드 님은 기이한 표정으로 연구원들을 보고 있었다.

    “네드 님?”

    그의 시선은 연구원들에게 가 있었다.

    쟤들이 뭐 어때서?

    연구원들은 지금도 기계를 가동시키기 위해 기를 쓰는 중이었다.

    저게 뭐 어때서?

    “……아.”

    곧 나는 내 뇌가 망겜에 절여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연구원들은 기계를 가운데에 놓고 뜬금없이 허공에 헛손질을 하고 있었다.

    뭐 허공에 마법 같은 게 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허공에 대고 심각한 표정을 짓거나, 무슨 물건을 들고 옮기는 것처럼 이상한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기이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혹시.”

    네드 님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기우제라도…… 지내는 겁니까?”

    기우제가 여기서 왜 나와……?

    하지만 잘 보니 무슨 의식 같기는 했다. 난 손을 내저었다.

    “아뇨, 저거 그냥 아까 말했던 마법 기구 설치하는 거예요.”

    “그런데 왜 기계는 만지지 않고 허공에……?”

    정말 이해가 안 된다는 네드 님의 표정을 보면서 난 아련하게 말했다.

    “그게…… 어른의 사정이죠.”

    “?”

    Q. 매출 1위 게임이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NPC 모션에 돈을 아낀다는 게 사실입니까?

    A. 네, 사실입니다.

    “이 퀘스트의 한 장면만을 위해서 연구 장치를 설치하는 모션을 만드는 건 돈 낭비잖아요.”

    내 말에 네드 님은 눈썹을 치켜올렸다가 한 대 얻어맞은 표정을 지었다.

    “유네리아는 몰입감을 중요시하는 게임이라고 하던데요.”

    “대체 누가요?”

    누가??

    누가 망겜 유네리아에서 몰입감 소리를 내었어?

    버그 나서 망치를 내리치는 모션으로도 양젖을 짤 수 있는 이 망겜에서 몰입감을??

    “공식 홈페이지, 게임 소개에 쓰여 있었습니다.”

    네드 님의 말에 난 얼굴을 구겼다. 자화자찬으로 뉴비 낚지 마!

    “저기서 몰입감이 느껴지세요?”

    내 말에 네드 님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난 그런 그에게 아련하게 말해 주었다.

    “말로는 뭘 못 하겠습니까?”

    “……그랬군요. 그런데 돈이 없는 게임사도 아닌데 왜…….”

    네드 님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디테일한 부분을 조금만 살린다면 ‘판타지 세계에서 즐기는 제2의 인생’이라는 유네리아의 모토에도 맞을 텐데요.”

    그가 손을 펼쳐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게 유저 유입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던 그가 혀를 찼다.

    “매출의 일부라도 더 게임 개발에 쓴다면 좋았을 텐데요. 안타깝습니다.”

    네드 님이 게임 운영 희망 편을 늘어놓는 사이 먼 곳에서 병사들이 몰려오는 게 보였다.

    슬슬 싸울 준비를 하면서 난 씁쓸한 현실을 알려 주었다.

    “그랬으면 유네리아가 망겜 소리를 들을 리가요.”

    “오.”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고르고 있는데 옆에서 짧은 탄식이 들렸다.

    아무리 봐도 인벤토리에 쓸 만한 게 없는데.

    쓰레기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휘황찬란한 아이템창이라서 문제다.

    저 병사들을 죽일 순 없는데!

    그렇다고 30레벨대 병사들을 레벨 314의 매운 손으로 때찌해 주었다간 대참사가 날 것이 분명했다.

    내가 머리를 싸맬 때였다.

    “그런데…… 매일 망겜이라고 하면서 왜 유네리아를 하셨습니까?”

    뉴비의 악의 없는 순수한 질문이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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