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화 (26/112)

<26화>

연구원들이 그의 말에 멈칫하는 사이 난 재빨리 말을 얹어 주었다.

“최근 알라반 왕성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들었거든요.”

내가 흙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원인이 진흙하고 관련이 있는 것 같아서, 연구소에서 당연히 조사하고 계실 줄 알았는데…….”

난 슬그머니 연구원에게 물었다.

“바깥 분위기가 이상하더라고요. 어떻게 된 일이죠?”

내 말에 네드 님이 소리 없이 감탄하면서 날 돌아보았다.

자유도 높은 유네리아인 만큼, 어떻게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퀘스트 진행도가 달라지게 된다.

이렇게 NPC들에게 의심을 사지 않으면서 퀘스트 정보를 얻는 것도 다 기술이라는 말이었다.

“아.”

내 말에 연구소 사람들의 얼굴이 좀 폈다. 물론 그것엔 우리의 신뢰도도 작용하고 있을 터였다.

[알라반 왕성 신뢰도 : 30%]

켄이 준 20%에 왕비가 준 10%라면 연구소 사람들 마음을 여는 데엔 충분하다.

“혹시 어디에서 나오셨습니까?”

연구원들은 연구하던 것을 내려놓고 슬며시 우리에게로 모여들었다.

얼굴에는 화색이 도는 채였다.

여기서는 유네리아 유저 전용 답변을 할 차례였다.

“모험가입니다.”

대체 길바닥 쏘다니는 모험가가 뭐가 그렇게 신뢰가 가는지는 몰라도 NPC들의 마음을 빼앗는 마법의 대사! 모험가!

“아, 모험가님들이시군요!”

우리의 정체(?)를 듣자마자 연구원들이 반색했다.

“혹시 저희를 도와주실 수 없겠습니까?”

유네리아를 할 때마다 의문인 게, 대체 소속도 불분명한 모험가만 보면 도와달라는 게 뭐 그리 많은지 모를 노릇이었다.

보통 소속 없는 사람이 더 수상하지 않아?

하지만 그걸 따지기엔 퀘스트 클리어가 급했다.

빨리 이거 끝내고 크리스탈 따서 알라반 뜬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눈앞에 선택지가 떴다.

[① 무슨 일인데요?

② 저희가 바쁜 일이 있어서 이만.]

당연히 선택한 건 1번이었다.

“무슨 일인데요?”

같은 것을 선택한 네드 님과 내 시선이 마주쳤다.

연구원이 우리의 말에 활짝 웃으며 의자로 우리를 이끌었다.

그리고 뜻밖의 정보를 주었다.

* * *

“네?”

네드 님이야 원래 메인 퀘스트 내용을 몰랐으니 놀라는 기색은 아니었다.

하지만 난 달랐다.

“진흙 연구한다고 하니까 중앙에서 압박을 줬다고요?”

“예!”

연구원은 억울하다는 얼굴이었다.

“이대로면 왕성은 물론이고 근처의 다른 땅도 모두 진흙으로 물러터지게 될 겁니다! 그럼 그 위에 있는 건물들이 죄다 어떻게 될지……!”

당연히 와르르 무너지겠지! 답답해할 만도 했다.

“대체 왜 압박을 주는 겁니까?”

네드 님도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이었다.

그러게, 왜 압박을 준대? 사실 자다가 전신 머드팩하는 게 꿈이래?

“모르겠습니다. 연구를 시작한 날부터 점점 근처에 감시 인력이 많아지더니, 나중에는 연구소의 예산도 삭감되어 버렸습니다!”

“엥?”

그럼 밖에서 연구하던 사람들은 뭔데?

내가 흘끗 밖을 쳐다보자 연구원들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밖에 있는 연구원들은 흙에 대해 연구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자들입니다. 그들이 연구비를 독식하고 있지요.”

그 말에 네드 님이 살짝 인상을 썼다.

“연구비가 상상 이상으로 많이 들 텐데…….”

혹시 연구직이세요? 난 네드 님을 돌아보았지만 내가 뭐라고 말할 틈은 없었다.

“바아아로 그겁니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무릎까지 치다가 공감해주는 네드 님을 만나 속이 뻥 뚫린 연구원이 가슴을 쾅쾅 쳤기 때문이었다.

“예산 부족으로 아르바이트까지 뛰면서 연구비를 간간이 채우는 실정입니다.”

“오…….”

이 세계관에 아르바이트가 있느냐는 둘째치고 투잡은 원래 어려운 법이었다.

게다가 왕성 소속인 연구소의 마법사들이 외부의 일을 맡기가 쉬울 리가 없었다.

내가 짧게 감탄하는 사이 연구원이 은밀하게 속삭였다.

“게다가, 이 일을 하다가 암살당한 연구원도 있습니다.”

“……!”

그 말에 네드 님과 내 시선이 마주쳤다.

“돈 문제와 안전 문제. 이 두 가지를 해결하지 않으면 저희는 연구를 할 수가 없는데…….”

연구원은 그런 우리를 은근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난 저 눈빛을 알았다. 초보 마을의 촌장이 그랬고 수많은 유네리아 NPC들이 그랬다.

도와줄 거지? 도와줄 거지?? 도와줄 거지??

그렇게 묻는 것 같은, 안광까지 느껴지는 시선이었다.

“모험가님, 제발 도와주십시오! 알라반의 명운이 걸려 있습니다!”

연구원이 네드 님과 내 손을 꽉 붙들고 말했다.

네드 님은 심지어 메디카 국적인데요?

[① 물론입니다. 저희가 돕겠습니다.

② 귀찮아요]

선택지가 떴다. 2번 선택지 너무 인성 터진 거 아니냐?

내가 눈썹을 치켜올릴 때였다.

“물론입니다. 저희가 돕겠습니다.”

네드 님이 가볍게 1번을 선택했다.

어차피 나도 1번 선택할 거였으니 나도 같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런데 네드 님의 답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금전 문제도 걱정 마십시오.”

여기서 갑자기? 난 움찔해서 네드 님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네드 님에게 연구원들의 안광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물주 쳐다보는 눈빛이잖아!

얘들 상상 이상으로 뜯어간다고요!

난 네드 님의 입을 막고 싶었지만, 그의 말은 이미 나간 후였다.

“무리가 가지 않는 한도 내에서 도와드리겠습니다.”

잠깐, 토르의 검 주인의 무리가 가지 않는 한도?

그게 얼만데요?

내가 움찔할 때 연구원들이 통 크게 액수를 불렀다.

“그럼…….”

* * *

유네리아 초반 퀘스트 진행을 책임지는 음유시인 NPC를 기억하는가?

이놈은 1골드 말고도 욕을 엄청나게 먹었다.

오죽하면 랜덤 아이템 박스를 파는 캐릭터보다 이놈 돈이 더 많을 거라는 둥, 저기서 거지꼴로 악기만 들고 서 있어도 음유시인 연금이 가능하다는 등의 이야기가 오갈 정도였다.

그런데 그 음유시인에 대해서 알 리가 없는 눈앞의 연구원은 통 크게도 그것의 10만 배를 불렀다.

“그럼 10만 골드만 주시겠습니까?”

주겠냐!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사람들의 시선은 이미 네드 님에게 향해 있었다.

설마?

―짤랑.

그의 인벤토리에서는 이미 10만 골드가 나오고 있었다.

“저기, 그거…….”

누가 시나리오 퀘스트 깨는 데에 10만 골드를 줘요!?

유네리아에서 최상위 던전을 클리어해서 가장 좋은 보상을 받는다고 해도 그게 10만 골드가 될까 말까였다.

그걸 수십 개 조합해서 만드는 검을 몇 번 강화한 다음 몇 번의 인챈트를 거쳐야 나오는 아이템들이 네드 님의 아이템창에 줄지어 있다고 해도, 아무튼!

아무튼 10만 골드면 무지막지하게 비싼 돈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척척 줘 버리면 어떡해요!

NPC들이 얼마나 도둑놈들인데!

저러다가 나중에 ‘20만 골드만 더 주시게.’ ‘밥 먹을 돈이 없는데 30만 골드만 더 주시게.’ 할 놈들이 저놈들이라고요!

내 목에 병목현상이 일어나 말문이 막혔을 때였다.

네드 님이 NPC에게 돈주머니를 주려다 말고 멈칫했다.

“아.”

“그쵸? 뭔가 잘못된 것 같죠?”

내가 재빨리 물었다. 네드 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인벤토리에 있는 돈이 유니 님의 돈이란 걸 잊고 있었습니다.”

그거 아니거든요?

“제 금고에 약간의 돈이 있는데 그곳에서 나중에 빼 드리는 것으로…….”

700만 골드가 약간이었습니까?

대체 어디에 얼마를 더 숨기고 계신 거예요?

“그그그그럼 이건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때 연구원 NPC가 네드 님의 손에서 엄청난 속도로 돈주머니를 채갔다.

저놈 봐라?

그놈을 꼬나보는 내 시선과 10만 골드 앞에서 뻔뻔해진 연구원의 시선이 마주쳤다.

“…….”

“…….”

하지만 결국 난 자리에 앉아 버렸다.

이미 넘어간 돈 어쩌겠는가?

[알라반 왕실 신뢰도 +20%]

그때 알림창이 떴다. 이건 또 뭐야?

설마 10만 골드 줬다고 신뢰도 폭풍 상승한 거?

난 입을 떠억 벌렸다. 하지만 네드 님은 의외로 놀라지 않은 듯했다.

이럴 줄 알고 계셨던 건가?

아니, 알라반 왕성 신뢰도 컨텐츠가 얼마나 X 같은지 몰라서 감동이 적으신 건가?

아니 근데, 지금까지 알라반 때려 부순 놈들은 있는데 왜 10만 골드 줘 본 놈들은 없었던 거냐?

하긴, NPC에게 현금으로 수십만 원에 달하는 10만 골드를 줘 본 놈이 있을 리가…… 없…… 지…….

아무래도 유네리아 게시판에 상주하는 자칭 고인물들은 날 포함해서 유네리아를 헛으로 한 게 분명했다.

“그럼 이번 사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그 일을 해낸 놀라운 뉴비는 내 옆에서 연구원을 갖고 놀고 있었다.

연구원들은 그의 10만 골드를 받자마자 우리의 등 뒤를 받치고 있던 쿠션부터 앞에 놓인 다과와 차까지 최고급으로 내어 오고 있었다.

―호롭.

그리고 그 차를 받아 마시는 그의 모습은 아주…… 능숙해 보였다.

당신 대체 뭐 하는 사람이에요?

이제 직업을, 아니 정체를 묻기가 두려워지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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