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화 (25/112)

<25화>

“이상하다는 말씀은……?”

네드 님이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내가 어깨를 으쓱했다.

“얘들이 우릴 쳐다보는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어요.”

막 꼬나보던데?

내가 팔짱을 끼는데 네드 님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너무 설명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난 슬며시 말을 얹었다.

“그니까 약간 적개심을 가지고 쳐다보더라고요. 이게 원래 그냥 NPC면 저희가 지나가도 그냥 흘끗 보고 말아야 하는데, 뭘 자꾸 숨기는 것 같았거든요.”

아마 PC버전이었으면 머리 위에 작은 느낌표라도 떴을 것이다.

내 말에 네드 님이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아…….”

“제가 그래서 슬쩍 가까이 가 봤는데, 연구자료를 숨기는 것 같진 않고 그냥 외부인을 의심하는 것 같더라고요?”

난 턱을 매만지며 연구원의 안내 당시를 회상했다.

“게다가 연구원도 탑 전체를 돌아보게 하진 않았고요. 물론 비밀 구역이 있긴 하지만, 그 연구원이 친절하게 우리를 안내했다기보단 우리가 ‘본인이 안내하는 구역’만 보길 원했던 것 같단 말이에요.”

네드 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느낌은 네드 님도 받은 모양이었다.

난 그런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무엇보다 여기 NPC 숫자가 팍 줄어 있었어요.”

“?”

이건 유네리아에서 헛짓을 많이 해 본 사람…… 아니, 오래 한 사람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여기 NPC가 원래 30명이 넘거든요? 근데 17명밖에 없었어요.”

난 팔짱을 끼었다.

“그럼 나머지 십수 명은……?”

네드 님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이곳이 아닌 다른 어딘가에 있다는 거죠.”

문제는 걔네가 어디 있느냐는 거지.

그렇게 말할 때 눈앞에 퀘스트 창이 다시 떴다. 그리고 퀘스트 내용이 한 줄 추가되어 있는 게 보였다.

[수상한 진흙

- 수상한 진흙에 대해 알아보세요. (완료)

- 연구소 내의 분위기 파악(NEW!)]

네드 님은 같은 퀘스트창을 보다가 불쑥 물었다.

“혹시 연구실이 숨겨져 있을 가능성을 생각하시는 겁니까?”

“네.”

난 대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거죠!

여러모로 게임 적응이 빠르신 분이었다.

“그니까 층마다 수상한 데가 있는지 뒤져보면 나올 거예요.”

난 몸을 풀며 말했다. 자고로 이런 건 대충 다 두드려 보면 나오는 법 아니겠는가?

내가 허리 운동을 하고 있을 때였다. 턱을 매만지던 네드 님이 불쑥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먼저 가 봤으면 하는 곳이 있습니다.”

“?”

뭐 켕기는 곳이라도 있었어요?

네드 님이 눈을 깜빡이는 나를 데려간 건 3층의 웬 벽 앞이었다.

그니까 요컨대 그냥 멀쩡한 벽 앞.

튼튼한 벽.

“이 너머에 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네드 님이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난 벽을 둘러보았다.

“으음.”

보통 부숴도 되는 거면 다른 색의 벽돌로 지어져 있거나, 얼기설기 지어져 있거나 그래야 하는데.

하지만 눈앞의 벽은 너무나도 멀쩡했다.

“이거 잘못 부수면 알라반 지하 감옥 엔딩인데요.”

우리 선택 잘해야 돼요, 이거.

물론 나도 게임 할 땐 대충 느낌 오는 데를 두드리고 다니곤 했다.

대충 길가다 박스나 테이블 몇 개 박살 낸 것 가지고는 신뢰도가 떨어지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벽 부수는 건 좀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가까워지는 지하 감옥의 기운에 내가 네드 님을 돌아봤을 때였다.

“이건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이 사람이 돌연 종이와 펜을 꺼내 들었다.

“?”

그러더니 선 몇 개를 그어 순식간에 탑의 구조도를 만들어냈다.

내가 입을 떠억 벌릴 때였다.

우리가 있는 3층을 중심으로 2층과 4층의 지도를 그려낸 그가, 다시 우리가 있는 위치를 가리켰다.

“위아래층 구조상 이곳에는 방이 있어야 합니다. 이곳을 기둥으로만 메워 두기에는 너무 넓어요.”

“오…….”

난 감탄한 얼굴로 네드 님을 쳐다보았다.

대체 이런 사람이 왜 길치인지 모르겠다.

유네리아 10년 차, 망겜을 이성적으로 풀이하려는 뉴비를 만났습니다.

* * *

대체 이런 사람이 어떻게 길치일 수가 있지?

내 질문에 네드 님은 부드러운 미소로 답했다.

‘건물 내부는 구조를 짐작할 수 있지만, 바깥은 그게 불가능한지라…….’

맞는 말이긴 한데 참 신기한 사람이었다.

“혹시 건축 쪽 일하세요?”

그럼 커피 좀 마시는 것도 이해가 가는데? 하지만 네드 님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럼 뭐지? 하지만 네드 님은 자신에 대해서 더 밝힐 생각은 없는 듯했다.

원래 자신에 대해 잘 밝히지 않는 유저들도 많았으니 딱히 캐물을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궁금하긴 했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이길래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억 소리 나는 돈을 부어서 붉은 구슬 이벤트에 당첨된 거지?

그것도 모자라서 그림은 기깔나게 잘 그리고 건물 구조도 파악하고?

점점 네드 님의 정체가 궁금해졌지만 그의 얼굴만 쳐다본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아마 벽 뒤에 공간이 있을 것 같은데, 이걸 부수면 안 되겠죠?”

내가 멍 때리는 사이 네드 님이 조심스럽게 벽돌을 건드려 보고 있었다.

손끝에는 푸른 공격력 증가 버프가 감도는 채였다.

난 기겁해서 그의 팔을 붙들었다.

“되겠습니까?”

내가 만류하자 네드 님은 곰곰이 생각에 잠긴 얼굴로 버프를 풀었다.

이 사람, 조용히 사고 칠 성격이야!

난 그를 좀 더 주의 깊게 살펴보기로 결정했다.

보통 뉴비가 게임에서 사고 치는 건 가면 안 될 곳 가서 죽거나, 길을 잃거나 둘 중 하나인데 이쪽은 좀 달랐다.

길을 잃는 건 둘째치고 이 사람이 뭘 다 때려 부수진 않는지부터 걱정해야 했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뉴(타입)비(스트)?

“흐음.”

여튼 우린 3층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 주변을 돌아다니다 보면 무언가 잡힐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스르륵.

우리는 별안간 벽 안으로 스며들 듯 사라지는 연구원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오.”

네드 님이 눈을 크게 떴다.

“저쪽 벽의 구조는 다른 곳과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그가 가리킨, 연구원이 통과한 벽은 겉보기엔 똑같은 벽이었다.

네드 님의 손끝에는 벌써 푸른 공격력 증가 버프가 감돌고 있었다.

유네리아가 갓겜이라면 네드 님의 말이 맞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유네리아는 대충 만든 게임이었다.

난 손을 내저었다.

“저건 통찰 스킬 써서 제대로 된 모양을 본 다음에 부숴야 돼요.”

저 상태로 부쉈다간 알라반 지하 감옥 엔딩이다.

통찰. 레벨 450 이상만 익히는 스킬.

대충 설정은 유네리아를 너무 돌아다녔더니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되어서 물건의 본모습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설정…….

잠깐만.

……이놈들은 30레벨 퀘스트를 450짜리 스킬을 써서 클리어하게 만들어놨단 말인가?

“정말 테스트 서버 없는 게임답다…….”

난 감탄했다.

유네리아에는 엄연히 테스트 서버가 존재했다.

그리고 원래 대규모 패치를 할 때에는 테스트 서버에서 먼저 패치해 보고 문제를 고치고 가져오는 게 일반적인 게임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유네리아가 어떤 게임인가?

테스트 서버가 무색하게 본 서버에 닥치고 패치!

패치한 후 1시간 내로 치명적인 오류 발견!

그 후 긴급점검!

거기에 연장점검!

지치지 않고 임시점검!

4대 명검 뽑아서 패치 이후 하루 동안은 제대로 게임도 못 하게 하는 갓겜이 아닌가?

“음, 일단.”

난 네드 님을 돌아보았다.

일단 이 게임 스킬창 UI는 욕을 한 바가지 부어도 부족할 만큼 불친절하기 때문에, 스킬이 어디 있는지부터 설명해야 했다.

“제 스킬창에 보조 탭에 보면―”

[파티원 ‘네드’님이 통찰 스킬을 사용하였습니다.]

―지이잉!

근데 이미 네드 님은 스킬을 쓰고 계셨다.

“?”

뭐야, 엄청 잘 찾으시네?

“이전에 스킬창을 한 번 본 적이 있습니다.”

네드 님은 내가 당황한 이유를 알았는지 바로 답했다.

아니, 근데 한 번 봤다고 그걸 안다고? 나도 가끔 스킬이 어딨는지 몰라서 헤매는데?

뉴비답지 않은 순발력이었다.

이야, 공대 뛰는 빌런들이 반만 이래도 한 놈 뒈진다고 싹 다 뒈질 일은 없겠다.

저번에 북쪽 군도에서부터 느꼈지만 참 탐나는 뉴비였다.

혹시 저랑 공대하실 생각 없으십니까?

난 이 게임 속으로 이동될 때까지 입씨름을 했던 공대원을 떠올렸다.

그래, 혼자 공략 다니다가 모처럼 공대 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빌런이나 만나고…….

내가 아련해질 때였다.

―쏴아아……

바람 부는 것 같은 유네리아 특유의 통찰 스킬 효과음과 함께, 눈앞의 벽의 모습이 서서히 모습이 변했다.

“……!”

네드 님이 살짝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벽이 열린 문의 모습으로 바뀌면서, 그 너머에 있던 놀란 얼굴의 연구원들과 눈이 마주쳤다.

하긴, 30레벨대 퀘스트 지역에서 450 이상이 쓰는 스킬로 벽을 꿰뚫어 봐 버렸으니 놀랄 법도 했다.

난 그런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안녕하세요?”

자연스럽게 일단 인사!

아무리 봐도 숨어 있는 걸로 보이는 이 연구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면, 일단 문 안으로 들어가는 게 우선이었다.

“잠시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네드 님은 그들에게 아주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검지를 제 입에 댄 채.

시끄럽게 할 생각이 없다는 것처럼.

그의 모습에 연구원들은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탁.

우리가 연구실에 들어오자마자 연구원들은 다시 문을 꽁꽁 걸어 잠갔다.

그리고 우리에게 물어 왔다.

“누구십니까?”

“어떻게 입구를 발견한 거지?”

연구실 사람들은 당연히 당황했다.

그러면서 눈에 띄게 우리를 경계했다.

하지만 우리가 찾던 사람들은 맞는 듯했다.

그 증거로 그들의 하얀 가운은 진흙투성이였다. 그들이 연구하고 있던 것도 분명 진흙이었고.

“진흙에 대해 조사하러 왔습니다.”

네드 님은 그런 그들에게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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