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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24/112)
  • <24화>

    “제가 퀘스트 깨 봐서 어딘지 다 알거든요. 좀 메인 퀘스트 내용이 바뀌긴 했는데, 유네리아가 이런 디테일한 것까지 바꿀 것 같진 않고.”

    난 네드 님을 데리고 왕비의 후원을 벗어나면서 말을 이었다.

    왕비의 후원을 벗어나 얼마 안 가면 나타나는 곳.

    [‘알라반 왕성 : 마법사 연구소’에 진입합니다.]

    바로 여기다!

    “보나 마나 여기서 연구하고 있을 거거든요?”

    “그럼 여기서 퀘스트 NPC만 찾으면 흙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겁니까?”

    네드 님이 물었다. 그는 아직도 손에서 흙을 털어내지 못한 채였다.

    그…… 직접 연구하겠다는 미련을 내려놔요……★

    “네, 찾기만 하면 돼요.”

    자, 이제 흙 연구하던 놈 찾기만 하면 됩니다!

    그럼 그놈들이 흙에 대해서 연구도 다 해 놨을 거예요! 우리는 연구성과만 냠냠하면 돼!

    내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그럼 저는 이쪽부터 찾아보겠습니다.”

    쓸데없이 높고 원형으로 만들어진 탑 같은 이 건물은 여기저기 뒤져보기가 매우 불편한 건물 중 하나였다.

    심지어 계단 난간도 낮아서 게임 하다 보면 실수로 밑으로 떨어져서 낙사 하는 경우도 많은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욕 좀 먹은 곳이지만? 우린 실제로 왔으니 낙사 할 일은…….

    ―삐걱.

    이건 네드 님이 올라가던 계단 난간이 삐걱대는 소리였다. 난 기겁했다.

    “그, 계단 조심해서 올라가셔야 돼요!”

    “예.”

    네드 님도 생명의 위기를 느꼈는지 벽 쪽으로 붙어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설마 가운데가 뻥 뚫려서 위아래층이 다 보이는 건물에서 길을 잃지는 않으시겠지?

    난 흘끗 그를 보면서 주변을 살폈다.

    “흐음.”

    내 기억상 알라반 왕실 시나리오 퀘스트 내용은 이러했다.

    물 속성 크리스탈이 박혀 있는 알라반 왕성 지하.

    언제 누가 박아 놨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거기에 크리스탈이 있었고, 원래 그 크리스탈은 잘 잠들어 있었다.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는데.

    그러던 어느 날 알라반 남쪽에서 본체가 커다란, 천 살에 가까운 드래곤이 하늘다리에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근처에 지진을 내는 바람에……

    ……잠깐만.

    본체가 커다란, 천 살에 가까운 드래곤?

    “너 혹시 하늘다리 근처에서 기지개 켠 적 있었어?”

    난 주머니에서 엘데(993세, 용가리)를 꺼내서 물었다.

    ―나 말인가?

    그럼 너 말고 누구겠니?

    내가 뚫어져라 쳐다보자 엘데가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더니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몇 년 전에 그랬던 것 같군.

    알다시피 우리 종족은 한 번 잠들면 수년간 잠에 들어 어쩌고저쩌고하는 별로 궁금하지 않은 정보가 귓가를 스쳤다.

    난 그걸 대충 흘려들으며 엘데를 붙들고 말했다.

    “너 여기서 옛날에 기지개 켰다는 소리 하지 마라.”

    ―?

    알라반 지반을 흐물흐물하게 만든 원흉 중 하나가 내 어깨에서 의아한 얼굴로 날개를 퍼덕이기 시작했다.

    설마 이거 걸리면 귀찮아지진 않겠지?

    왜 벌써 신뢰도가 바닥 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나와 알라반 왕실 사이에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없었다.

    엘데는 좀 억울하다는 얼굴이었다. 설마 얘 말고 다른 드래곤이 기지개를 켰나?

    내가 알기로 이 세계관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용이 바로 이 엘데였다.

    얘보다 더 큰 애가 새로 추가됐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난 그에게 확인차 물었다.

    “진청색 본체 모습으로 기지개 켠 거 아니야? 하늘다리 입구 근처에서.”

    내 말에 엘데가 고개를 쳐들더니 말했다.

    ―나에 대해 잘 알고 있군. 역시 내 명성이 인간들 사이에도 알려져 있는 건가.

    그게 아니고, 네가 진짜 빌런이었잖아!

    이걸 알라반 사람들이 알면 엘데를 통째로 구워 먹으려고 할 게 분명했다.

    하필 알라반 왕성 지하에 잠들어 있는 게 물 속성 크리스탈이고, 그 봉인을 엘데가 지진을 내서 박살 내는 바람에 땅이 물러진 거야 엘데 탓이라고만 할 순 없었다.

    하지만 왕성 지하의 강력한 봉인까지 깨부술 정도의 지진이라면 알라반 사람들에게는 천재지변이 닥치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그때 엘데가 나오는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가 나올 때, 이벤트도 했었다.

    [알라반 보수 작업 도와주기]

    [유네리아에 이런 이벤트는 없었다! 역대급 강력한 보상이 ‘보수 작업이 끝난 후’ 공개됩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강력한 지진에 무너져 내린 알라반의 성과 건물들.

    그걸 살려달라면서 유저들에게 온갖 물자를 가져다 달라고 했던 전설의 이벤트.

    이벤트 보상은 ‘재건된 알라반 거리에 집을 살 수 있는 추첨권 200개’였다.

    요컨대 추첨에 당첨된 사람 아니면 보상도 못 받았다는 소리였다.

    이놈의 망겜은 파도 파도 괴담만 나오는군.

    난 머리를 흔들며 다시 한번 엘데에게 말했다.

    “아무튼 이 비밀은 우리 사이에 묻어두자.”

    알라반 사람들이 알면 너를 통구이로 만들려고 할 테니까.

    물론 엘데는 구워지는 대신 여길 밟아버리는 편을 택할 거고, 그럼 알라반도 박살 나고 잘하면 크리스탈도 박살 나고 그럼 우리 미래도 박살 나는 거야! 알았어?

    물론 내 마음을 알 리가 없는 엘데는 불편하다는 얼굴이었다.

    ―내가 왜 인간의 말을 들어야…….

    이렇게 말할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난 바로 말했다.

    “예누스 정제육 맛있냐? 나도 먹어 볼까?”

    내 말에 잠시 멈칫한 엘데가 날개를 접으며 몸을 늘어뜨렸다.

    ―때로는 인간의 말도 들을 가치가 있지.

    993살 주제에 먹을 것에 잘 홀리는 엘데는 그렇게 조용해졌다.

    그때 네드 님이 다가왔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무래도 가만히 서 있으니 걱정되셨던 모양이다. 난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네드 님한테 슬쩍 속삭였다.

    “원래―”

    [귓속말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 귓속말(유니) : ―세계관상 엘데가,]

    말하던 난 움찔했다. 네드 님도 멈칫한 채 듣고 있었다.

    귓속말을 정말 ‘귓속말’로 만들어 놓으면 어떡해!

    “아아아아니 귓속말 기능이.”

    나는 재빨리 네드 님에게서 떨어졌다.

    네드 님은 갑작스레 내가 가까워져서 그런가, 멈칫하신 것 같았다.

    그, 너무 가까웠죠? 넵.

    난 귓속말 기능이 활성화되지 않을 만큼만 가까이 가서 속삭였다.

    “엘데가 기지개 켠 것 때문에 지진 와서 알라반에 피해가 있었거든요. 크리스탈 봉인도 그거 때문에 깨진 거고.”

    “……아.”

    네드 님은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내가 손부채질을 할 때였다.

    “결론적으로 진흙의 비밀은 여기서 연구한다는 말씀이시군요?”

    네드 님이 재빨리 본론을 꺼냈다.

    “그렇죠. 관련 부서가 아마 있을 건데,”

    분명 내가 알기론 오래 돌아다니지 않고 바로 진흙 연구하는 NPC를 만날 수 있었는데…….

    “어?”

    난 탑을 새삼 둘러보고 눈썹을 치켜올렸다.

    내가 기억하던 것과 탑의 구조가 좀 달랐다.

    설……마……?

    “관련 부서는 없는 것 같습니다. 마법 연구실뿐입니다.”

    그때 네드 님이 말했다.

    내 캐릭터 능력치이자 네드 님의 시력으로는 맨 위층의 팻말까지 보일 터였다.

    “없다고요?”

    그럴 리가 없는데?

    알라반은 왕성 지반이 흐물흐물해지기 시작하자 비상 연구 인력까지 소집해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한다.

    그런데 연구실이 없다고?

    내가 의아한 얼굴로 네드 님을 볼 때였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웬 NPC가 하나 다가와 물었다. 그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난 눈썹을 다시 치켜올렸다.

    여긴 전에 에이리 님이 NPC 호감도작을 한다고 나를 용에 태운 채 이곳저곳 쑤시고 다녔던 곳이라, 길은 몰라도 NPC들은 분명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친구는 기억에 없는 NPC였다.

    뭔가 바뀌었다.

    “아, 다름이 아니라―”

    난 말하려는 네드 님을 제지한 다음, 재빨리 연구원에게 말했다.

    “저희는 네리아교의 사제입니다. 왕비 전하께서 왕성으로 초대해 주셔서요. 이곳도 돌아보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내 말에 연구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 그러셨군요. 하나가 둘이 되어 나오는 축복이 함께하기를!”

    쪽팔리는 인사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 연구원이 우리에게 제안했다.

    “그럼 제가 좀 안내해 드릴까요?”

    네드 님과 내 시선이 마주쳤다.

    마침 내부가 바뀌었겠다, 안내해 준다면 환영이었다.

    “그래 주시겠습니까?”

    네드 님이 온화한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이 사람은 저 쪽팔리는 인사말에도 전혀 타격이 없는 듯했다.

    대단한 멘탈이었다.

    “그러죠. 이쪽부터…….”

    연구원은 다행히 우리의 신앙심(?)에서 의문을 거두고는 돌아섰다.

    그리고 그의 안내 끝에, 우리는 의외의 사실과 마주쳐야 했다.

    * * *

    “없네요?”

    연구원이 기쁜 얼굴로 안내를 마친 후.

    복도 한가운데에 네드 님과 남자마자 내가 한 말이었다.

    내가 고개를 기울이자 네드 님이 진지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유니 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달라진 시나리오 퀘스트 내용 중에, 이 내용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아니, 이렇게 시나리오를 바꾼다고? 난 눈썹을 꿈틀거렸다.

    크리스탈 위치는 안 바꿨는데 크리스탈을 구하는 방법을 바꿨다?

    니네 이렇게 디테일하게 패치할 줄도 아는 애들이었어?

    “물론 그런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죠.”

    다행히 알라반 설정이 크게 바뀐 것 같진 않으니까……. 난 턱을 매만졌다.

    NPC까지 새로 다 만들기는 귀찮았는지 NPC들의 얼굴은 대체로 그대로였다.

    게다가 탑의 규모가 크게 바뀌지도 않았고.

    그럼 연구원 숫자도 보나 마나 비슷할 가능성이 높다는 건데.

    “무엇보다 얘들이 좀 느낌이 이상했거든요?”

    난 연구원의 안내를 받는 사이 봤던 다른 연구원들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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