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내가 부르자마자 네드 님의 손이 멈추었다.
“그대로 그거 만지면 박살 나요!”
내 외침에 네드 님이 말했다.
“부수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막 부수시는 분 아니었잖아요??
물론 유네리아에서 대부분의 경우 때려 부수는 게 답이긴 한데 그걸 이렇게 일찍 알아차릴 필요가 있을까요?
하필이면 알라반 왕성 지하에서??
“어차피 꺼내 줄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닙니다.”
네드 님이 침착한 얼굴로 말했다.
“그거 매우 이성적인 판단인데 가만히 있어 보세요.”
난 그를 일단 뜯어말렸다. 이대로면 감옥에서 못 나오는 건 맞았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알라반 왕실 부수면 알라반 다시 못 들어와요.”
바로 이거!
내 말에 네드 님은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 같긴 하지만……,”
네드 님은 유네리아 개발팀에 대한 신뢰가 묻은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게임인 이상, 어떻게든 다시 알라반에 진입하는 방법이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게임 진행이 안 될 테니까요.”
아직도 유네리아 개발팀을 믿으세요??
난 손을 내저었다.
놀랍게도 이 동네에서는 상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유네리아는 아닙니다.”
난 단호하게 말했다.
“유니 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곳에서 나가려면 왕이나 왕비의 처결을 기다려야 하는데, 언제 그 처결이 내려질지, 무슨 처결이 내려질지 모르는 상황이 아닙니까?”
네드 님은 참 맞는 소리만 하는 사람이었다.
문제는 유네리아가 그렇게 갓겜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게 상식이긴 한데 유네리아에선 안 돼요.”
“?”
네드 님은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직 유네리아에 대한 믿음이 남아 있으셨군요?
난 네리아 GM의 웃는 얼굴을 생각하면서 무서운 이야기를 해 주었다.
“전에 실제로 알라반 왕실 부쉈던 유저가 있었거든요?”
보통 건물을 부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이곳에 들어오는 게 레벨 30대의 유저들이니까.
그 레벨 대의 파워로 부서지면 그게 왕성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10년쯤 지난 게임이면 온갖 버그와 기괴한 짓에 맛 들리는 법.
원래 못 들어가는 맵에 억지로 낑겨서 들어간 다음 그곳을 탐험하는 건 기본.
유네리아의 지나친 자유도를 이용해 퀘스트를 망쳐 보려는 사람도 있었다.
[제목 : 야 알라반 왕성 박살내도 퀘스트 진행되냐?
글쓴이 : 파개한다
박살내본 사람 있음? 그럼 폐허에서 왕이랑 대화하는 거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 꼭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면 심심한 유네리아의 유저들은 곧바로 반응했다.
[(댓글)니맘대로하세요 : 부숴보든가
└파개한다 : ㅇㅋ 난 참지않아요]
그리고 그건 대참사의 시작이었다.
당시 레벨 497의 고레벨 유저였던 ‘파개한다’는 시나리오 퀘스트를 깨지 않은 사람이었다.
시나리오 안 깨도 레벨업도 가능하고 할 짓 다 할 수 있었으니 시나리오 진행을 안 하는 거야 문제는 없었다.
이제 레벨업이 질렸는지 시나리오에 손댄 게 문제였다.
그 게시글이 뜬 지 수십 분 후 게시판에 다시 글이 올라왔다.
[제목 : 알라반 왕성 박살낸 후기.jpg
글쓴이 : 파개한다
(박살난알라반왕성.jpg)
퀘스트 진행 안됨 왕성에서 크리스탈 얻어야 하는데 들어가면 병사들 쫓아옴ㅋㅋㅋㅋㅋㅋ]
[(댓글)ㅇㅇ : 병사 다죽이면?
└파개한다 : 레벨 더 높은 병사 나옴 지금 380짜리 잡는중]
그때쯤 되자 유네리아의 유저들은 파개한다의 게시글 2탄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꼴랑 30레벨대 퀘스트 지역인 알라반 왕성에서 380짜리 몬스터가 나온다고?
대체 얼마나 센 몬스터까지 나올까?
[제목 : 알라반 박살낸애 봐라
글쓴이 : 경손실못참음
병사 경험치 얼마줌? 드랍템 쓸만함?]
거길 사냥터로 쓸 생각을 하는 놈도 나타났다.
하지만 파개한다는 한참 동안 게시글이 없다가 두 시간 후에 글을 올렸다.
[제목 : 니들은 알라반 박살내지마라……
글쓴이 : 파개한다
진심이다……]
당연히 기다리고 있던 유저들의 댓글은 폭주했다.
[(댓글)경손실못참음 : 레벨몇짜리나오는데
└파개한다 : 520인가 잡다가 뒈짐
└경손실못참음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네리아서버지? 도와줘?
└파개한다 : 지인한테 도와달라고 해봤는데 알라반 왕성 안부수면 여기 못들어옴
└경손실못참음 : 그래서 경험치 얼마주는데
└파개한다 : 0]
그 후 ‘경손실못참음’은 닉네임답게 이 사건에 관심을 껐다.
그러는 중에 파개한다의 이전 글을 못 본 사람이 튀어나와서 댓글을 달기도 했다.
[(댓글)트림이즈컴트루 : 왜 부수지마?
└파개한다 : 그냥하지마 XXXX야]
그 뒤로 파개한다가 한참 글이 없는 동안, 파개한다의 ‘니들은 알라반 부수지 마라’는 명대사가 되어 유네리아 게시판을 떠돌고 있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파개한다가 다시 나타나 글을 올렸다.
[제목 : 니들은 진짜 알라반 부수지 마라 나 X됐다지금
글쓴이 : 파개한다
알라반 왕성에서 귀환스킬 써도 안나가지고 뭔 X랄을 해도 안나가져서 문의했더니 이렇게옴]
아직도 ‘유네리아’하면 전설의 짤로 돌아다니는 그 질문과 답변 내용은 가관이었다.
[유네리아>>문의하기
문의사항 : 게임>게임 플레이>버그
유저 서버/닉네임 : 네리아/파개한다
문의 제목 : 알라반 왕성 퀘스트에서 진행이 안 됩니다
내용 : 알라반 왕성 박살나길래 박살내봤는데 뒤로 퀘스트 진행은 안되고 병사들만 나오네요 이거 버근가요]
[유네리아 >> 문의하기 >> 답변완료
답변 GM : 네리아GM
답변내용 :
안녕하세요, 환상의 나라 유네리아의 관리자 네리아GM입니다.
보내주신 문의는 유심히 읽어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한마디로 문의 내용 읽지도 않았다는 소리였다.
그 사이 호기심을 못 참은 수많은 유저들이 유네리아의 온갖 퀘스트 장소를 박살 내기 시작했다.
[네리아교 성전 박살냄]
[메디카 황성 박살내면 지하에 금괴있다던 새X 누구냐 나와라]
[중앙호수에 메테오 떨어뜨리면 유네리아도 갓겜되냐?]
그리고 부순 유저들은 대부분 퀘스트 진행이 막혀 버리거나, 해당 장소의 주요 NPC를 만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당연히 문의는 폭주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게시판에 유네리아 전설의 답변이 올라오면서 유네리아 게시판은 활활 불탔다.
[제목 : 네리아 성전 박살내고 문의넣었는데 이거 뭐냐?.jpg
글쓴이 : 돌솔3년차
(문의내용.jpg)]
그리고 문의내용 스크린샷에 있는 내용은 가관이었다.
[문의내용 : 네리아 성전이 박살났는데 성전에서 축복 못받게돼서 문의드립니다 성전 재건축에 얼마나 걸리나요?
답변내용 : ㅍ]
‘ㅍ’.
그 한 단어가 준 파동은 엄청났다.
유네리아 게시판은 새로고침이 버거울 정도로 불타기 시작했다.
[아니 비슷한 문의가 많이 들어간 건 이해하겠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trl+‘ㅍ’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매크로답변 네 감사하고요]
[그래서 박살낸애들 어떻게되는거임]
게시판은 그 뒤로도 몇 시간을 불탔지만 해결되었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내 이야기를 다 들은 네드 님은 아주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담당자의 대응은 잘못되었지만, 혹시 피치 못한 사정이 있었던 것은 아닐지.”
그 말에 난 아련한 얼굴로 뉴비의 환상을 깨 주었다.
“그런데 그 후로도 문의 넣으면 무시했대요.”
“……해결해 주지 않고 말입니까?”
네드 님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래, 저게 정상 반응이었지만 유네리아는 안타깝게도 정상 게임이 아니었다.
“네. 그래서 결국 비기를 썼죠.”
[제목 : 자꾸 문의 씹길래 가불기써서 문의넣었음
글쓴이 : 파개한다
(문의사진.jpg)
망겜 접는다 ㅂ]
당시 파개한다의 마지막 게시글은 이거였다.
[유네리아>>문의하기
문의사항 : 결제>캐시사용>버그
유저 서버/닉네임 : 네리아/파개한다
문의 제목 : 캐시템을 샀는데 캐시가 안 줄어듭니다
내용 : 구라고 알라반 왕성 박살낸 거 복구할 방법 없나요?]
[유네리아>>문의하기>>답변완료
답변 GM : 네리아GM
답변내용 :
안녕하세요, 환상의 나라 유네리아의 관리자 네리아GM입니다.
그 부분은 저희가 당장 도움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관련부서에 전달하여 조속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