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이 퀘스트는 깨기 전엔 감옥에서 나갈 수도 없다는 전설의 퀘스트였다.
그냥 쉽게 말해서 허락받지 못한 곳에 가면 감옥행이라는 소리다.
그것도 장소마다 다른데 가령 왕족의 공간 같은, 누가 봐도 마음대로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 곳에 허락 없이 침입해 버리면 경비병들이 미친 듯이 쫓아온다.
이게 참 웃긴데 경비병들은 유저를 공격하지만 유저는 경비병을 공격해서는 곤란했다.
잘못해서 경비병의 HP를 30% 이하로 깎았다간 왕의 신뢰도가 3%씩 내려가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경비병을 죽일 경우 신뢰도가 0이 됨은 물론이고, 지하 감옥 퀘스트와 더불어 심문이라는, 절대 하고 싶지 않은 퀘스트까지 발생한다.
“음…….”
그래서 문제였다.
이분이 과연 왕성을 잘 돌아다닐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네드 님의 전적을 생각해 보면, 이 사람이 혼자 왕성 퀘스트를 할 수 있을지가 의심스러웠다.
근데 방법이 없었다.
유네리아에는 국적변경 시스템이 없었으니까.
결국 난 입을 열었다.
“네드 님. 제가 지금부터 드리는 말 잘 들으셔야 돼요.”
네드 님은 내가 심각하게 얘기를 꺼내자 아이템창을 열었다.
뭘 하시나 했더니 꺼내는 건 노트와 펜이었다.
참…… 착실하신 분이다…….
“알라반 왕성 지역은 입장 제한 구역이 많아요. 이게 퀘스트를 진행하시다 보면 왕까지 만나게 되거든요? 그 전에도 아마 오른쪽 아래에 ‘왕의 신뢰도’라는 게이지가 뜰 거예요. 그 신뢰도가 올라가면 점차 입장 제한 구역이 풀리는 구조예요.”
네드 님은 침착하게 내 말을 필기했다.
“입장 제한이 안 풀려도 제한 구역에 들어갈 수는 있어요. 근데 이러면 운 좋으면 감옥에 갇히는 거고 운 나쁘면 경비병한테 쫓기게 되거든요?”
네드 님이 미간을 좁혔다.
“혹시 입장 제한 구역을 뜻하는 지표가 있습니까?”
그거 아주 좋은 질문이다.
하지만 유네리아에선 별로 안 좋은 질문이었다.
나는 엿 같은 유네리아에 지친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답했다.
“없어요.”
“……예?”
“진짜 눈치 보고 들어가야 해요. PC버전에서도 날씨 따라 신뢰도 기준이 바뀌기도 하고 복잡해서……. 실수로 감옥 가시는 것까지는 좀 귀찮더라도 괜찮은데 경비병 나오면 조심하셔야 돼요.”
네드 님의 표정이 더 심각해졌다.
“경비병이 강합니까?”
“아뇨, 부스러기들이에요.”
난 나도 모르게 툭 말해 버렸다.
“부스러기…….”
네드 님은 내 표현에 당황하셨지만 이미 뱉은 말은 주울 수 없었다.
볼을 긁적인 난 설명을 덧붙였다.
“진짜 약해서 네드 님이 한 대 툭 치면 죽을걸요.”
“그럼 문제가 됩니까?”
“그게 문제예요.”
난 경비병을 슬쩍 가리켰다.
“경비병 죽이면 지하 감옥 맨 아래층에 갇혀서 심문받거든요. 신뢰도는 0이 되고.”
“…….”
네드 님의 펜이 멈췄다.
“경비병 뜨면 절대 잡지 마시고 그냥 공격 맞으면서 말 통하는 NPC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웬만하면 그 메디카인이 들어가는 국빈관? 거기 NPC 호감도 풀로 채워놓는 게 좋아요.”
난 아이템창을 열어 라비스 음료를 다발로 건네 드렸다. 이거 꼭 여행 가는 동생 챙겨 주는 기분인데.
“왕은 라비스 음료를 싫어할까요?”
네드 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했다가 난 삼 초쯤 후에 깨달았다.
“좋아하긴 하는데 신뢰도랑 호감도는 다른 개념이라 호감도 MAX 찍어도 신뢰도 안 올라가요.”
뉴비의 난감해하는 표정을 보다니 평소라면 즐거웠겠지만 지금은 안 즐거웠다.
“아직 멀었습니까?”
경비병이 네드 님을 재촉했다.
NPC 주제에 유저를 재촉하다니!
난 네드 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길 잃어버리시면 안 돼요. 최대한 모르는 곳으론 가지 마시고 계속 지도 보고 다니시고―”
아, 이 사람 지도 보고도 길 잃는 사람이었지.
“……방향 모르겠으면 경비병 NPC 붙잡고 물어보시는 게 빠를 거예요.”
“명심하겠습니다.”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네드 님을 보자니 아무래도 물가에 애 내놓는 기분이었다.
원래라면 지도에 일행의 위치가 떠야 하는데 왕성만은 제외라서 더 불안했다.
이 사람이 언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니까.
난 결국 아이템창에서 반지까지 꺼내서 네드 님한테 내밀었다.
[연인의 반지]
이 낯뜨거운 이름을 갖고 있는 아이템은 반지를 낀 채 서로가 있는 방향으로 손을 뻗으면 멀리서도 빛이 나는 아이템이었다.
가까워질수록 그 분홍색 이펙트가 커진다.
“이거 액세서리에 끼시고요.”
반지를 받아든 네드 님은 아니나 다를까 당황했다.
“반지의 이름이…….”
“그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그래도 이런 이름을 가진 반지라면, 보다 귀하게 생각하시는 분과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곤란해하는 네드 님을 경비병이 눈빛으로 재촉했다.
“지금 이 세계에 우리 둘밖에 없는데 네드 님말고 귀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내 말에 네드 님이 멈칫했다. 본의 아니게 로맨틱한 말을 해 버렸지만, 더 설명할 시간은 없었다.
옆의 NPC가 눈에 불을 켜고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난 시계를 보고 네드 님에게 말했다.
“밤 여섯 시에는 다시 여기로 오세요. 따로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
“예.”
그걸 또 노트에 적은 네드 님은 경비병을 따라갔다.
이거 아무래도 불길하다. 무슨 일 생길 것 같다.
네드 님이 죽을 일이야 당연히 없겠지만, 대신 길치 본능 때문에 이상한 곳에 들어가서 쫓아오는 경비병을 툭 치시는 바람에 일행인 나까지 지하 감옥에서 심문을 받게 되는 설득력 있는 미래가 자꾸 눈앞에 그려졌다.
안 돼, 안 돼!
네드 님이 경비병을 따라 사라지고 나서 난 다른 경비병에게 말을 걸었다.
“알라반인이시군요. 혹시 방문 예정이 있으셨습니까?”
난 질문에 답하는 대신 경비병이 내 아이템창에 있는 크리스탈을 인식하길 기다렸다.
최근 왕성에 생긴 이상한 일의 원인을 조사하는 마법사가 경비병과 아는 사이라 이러쿵저러쿵해서 왕성에 들어가는 전개일 테니까.
“…….”
“…….”
하지만 경비병과 나는 그렇게 몇 초 동안 서로를 말똥거리는 눈으로 쳐다보기만 했다.
“없으셨습니까?”
“?”
어라? 설마 이 부분도 메인 스토리 바뀐 거?
아예 메인 스토리를 새로 짠 거야?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없으셨다면 내부 확인을 거쳐야 합니다.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아니, 이렇게 되면 네드 님이랑 진행이 똑같잖아! 이럴 거면 국적은 왜 물어봤는데!
“잠깐, 거기.”
그때 성 안쪽에서 누군가 경비병을 불러 세웠다. 뒤를 돌아본 경비병이 경례했다.
“예, 단장님!”
“그분은 내 손님이다.”
듬직한 경비병 어깨에 가려 이제야 보인 사람은 나도 아는 사람이었다.
“어?”
난 알라반 왕성 기사단장복을 입고 있는 그 사람을 입을 떡 벌리고 쳐다보았다.
켄이 왜 여기서 나와……?
* * *
켄이 죽지 않은 건 기쁜 일이었다.
나름 유네리아 NPC들 중에서 좋아하는 캐릭터이기도 했고 NPC 자체도 괜찮은 성격이었으니까.
근데 메인 스토리 말미에 무덤으로 등장해야 할 NPC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서 내 앞에서 차를 권하고 있으니 참 기분이 괴상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켄은 하얀 왕립기사단장 제복을 입고 있었다.
마을에서 허름한 옷을 입고 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아니, 어쩌면 옷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현실 시간하고 유네리아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는 게 NPC들에게만 적용되는 건지, 켄은 나랑 초보 마을에서 봤을 때보다 몇 살은 더 많아 보였다.
“그냥…….”
이 세계에 떨어진 다른 사람을 만나려고 레벨 300을…… 아니, 고행을 한 다음 구름 위로 올라가서 용가리를 번개로 때려잡고 대륙 한 바퀴 돌았다고 하면 켄이 믿을까?
난 볼을 긁적였다.
“잘 지냈죠. 켄은요?”
이거 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켄은 나를 잠시 가만히 보더니 그냥 웃었다.
“그럼 저도 잘 지냈다고 하겠습니다.”
너도 감췄으니 나도 감추겠다, 뭐 이런 소리로 들리는데.
“오신다고 연락 주셨으면 아까처럼 번거로운 일은 없으셨을 텐데요.”
번거로운 일? 난 고개를 기울였다.
“별로 번거롭지도 않았어요. 왕성이 무슨 관광지도 아니고 경비병이 사람 막는 게 뭐가 그리 이상하다고.”
“일행은 좀 귀찮은 일이 있을 겁니다.”
뭐야, 우리 경비병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보고 있었어?
“걱정되시면 제가 처리해 놓겠습니다.”
켄이 내 빈 잔을 다시 채우려고 움직이자 그가 옆에 차고 있는 검집이 철컹 흔들렸다.
테이블과 검 손잡이가 맞닿아 묘하게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