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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16/112)
  • <16화>

    “용한테 너무 비싼 거 주시면 안 되는데.”

    “아, 그건 NPC한테 안내받은 적이 있습니다. 용은 비싼 먹이를 주면 싼 건 먹이로 인식하지 않는다고요.”

    잘 아시네! 그거 벌써 주면 나중에는 뭐 주시려고!

    저거 다음 단계는 하나에 금화 60개가 넘어가는 구름사탕밖에 없었다.

    천상계 1층에서 수집해야 하는 거. 수집하면 5% 확률로 나오는 거.

    “타고 다니는 게 너무 미안해서요.”

    내가 입을 좀처럼 다물지 못하자 네드 님이 웃으며 말했다.

    “크게 부담되는 가격은 아니라서.”

    “아…….”

    하긴, 토르의 검이 네드 님 거였지.

    비록 용이 하루에 여덟 끼를 먹는다고 해도 네드 님 입장에서는 크게 부담되지 않을지도 몰랐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데이터 다시 바뀌면 제가 줘야 하는데.”

    본심은 바로 튀어 나갔다.

    비상식량이 내가 마음에 안 드는지, 아니 정확히는 내가 줄 음식이 벌써부터 마음에 안 드는지 콧김을 푸릉 내뱉었다.

    “……아.”

    중요한 사실을 자각한 네드님이 우뚝 굳었다.

    그러고는 뭔가 결심한 얼굴로 말했다.

    “……그건 제가 확실히 책임지고 배상해드리겠습니다.”

    배상까지?

    근데 네드 님이 책임 못 질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

    작은 상태로 내 어깨 위에 앉아있던 엘데가 앞발로 내 얼굴을 톡톡 건드렸다.

    “뭔데.”

    ―오늘 저녁이 기대되는군.

    엘데는 내 안의 양심이 봉기하길 원하는 눈빛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양심은 숙청당한 지 오래였다.

    “기도 안 차는 소리 하지 마라.”

    난 예누스 정제육을 주는 대신 작은 엘데의 꼬리를 콱 꼬집어 주었다.

    ―크르릉!

    엘데가 불만 가득한 소리를 내며 파닥거렸다.

    * * *

    비상식량은 2층의 용이라서 그런지 인간의 말을 할 수가 없었지만, 엘데는 가능하다는 게 이렇게 페널티가 되어 돌아올 줄은 몰랐다.

    명백한 의사 표현이 가능한 엘데는 자기도 정제육을 안 주면 날지 않겠다는 의미로 커지고 나서도 하품이나 뻑뻑 해댔다.

    그런 주제에 끝까지 정제육을 달라곤 하지 않았다.

    눈빛으로만 비상식량을 쏘아봐서 엘데보다 서열이 한참 낮은 2층의 용 비상식량이 꼬리를 말다 못해 네드 님의 품에 안기도록 만들었다.

    결국 보다 못한 네드 님은 엘데의 입에 예누스 정제육을 물려 주었다.

    ―슈우웅!

    엘데는 주인을 바꾸고 싶다는 눈빛으로 날 흘겨본 다음 우릴 태우고 불쑥 하늘로 날아올랐다.

    엘데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는 비상식량은 네드 님의 품에서 순수한 척 눈망울을 깜빡이고 있었다. 아오!

    “메인 스토리 끝난 부분이 알라반으로 가는 거였다고 하셨죠?”

    “예.”

    네드 님이 담담하게 말을 덧붙였다.

    “가다가,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길을 잃어버려서 북쪽 섬을 털어버리는 바람에 크리스탈이 하나 더 생긴 건 좋은 상황인지 나쁜 상황인지 모르겠다.

    메디카에서 알라반으로 올 거면 남서쪽으로 내려왔어야 했는데, 네드 님은 엉뚱하게 북쪽으로 가 버렸으니 지도를 들고도 반대로 가는 길치인 게 제대로 증명된 셈이었다.

    “교황청 퀘스트가 없어졌다고 치면…… 다행히 우리 둘 다 비슷한 부분까지 진행한 것 같아요.”

    1층의 용은 역시 달라도 다른 모양이다.

    보통 용은 삼십 분만 날아도 지쳐서 뽀르르 내려앉기 바쁜데, 엘데는 벌써 네 시간째 비행 중이면서도 멀쩡했다.

    우리가 메인 스토리 퀘스트 마크가 어디 떠 있는지 확인하겠답시고 같은 자리를 빙빙 돈 것 때문에 짜증만 좀 났을 뿐이었다.

    “엘데. 알라반 왕성으로.”

    ―……벌써 세 번째다.

    “이제 진짜 마지막이야. 왕성 근처에서 내릴 거야.”

    용들에게 저 콧김은 한숨의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콧김을 길게 내뿜은 엘데가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고 보니 알라반에는 예누스 농장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워낙 풀떼기하고 친한 나라라서.”

    난 별생각 없이 말했다. 네드 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르면 용들이 아주 좋아할 것 같습니다.”

    “그렇기야 하겠는덟.”

    난 말끝을 이상하게 맺음과 동시에 혀를 씹을 뻔했다.

    엘데의 속력이 남다르게 빨라졌던 것이다.

    * * *

    우리는 구름 위를 날고 있었다.

    천상계보다는 아래지만 충분히 높은 곳이었다.

    나무가 빽빽한 곳 근처로 지나갈 때마다 렉 때문에 몸과 얼굴이 따로 노는 내 모습을 본 뒤로 엘데는 고공비행을 고수하고 있었다.

    예누스 농장에 흥분한 엘데가 속력을 높이자 알라반은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다.

    숲과 나무의 나라라고도 불리는 알라반이다.

    가까워지자 나는 슬슬 주변 시야가 버벅거리는 걸 느끼고 있었다.

    내가 네드 님한테 ‘제 목과 몸이 분리돼도 놀라지 마세요’를 어떻게 안 이상하게 말할지 고민하는 사이, 엘데가 아래로 방향을 꺾었다.

    “오…….”

    벌써 도착한 모양이다.

    네드 님의 놀란 얼굴을 마지막으로 시야가 3초쯤 멈췄다가 돌아왔다.

    숲의 나라, 알라반이었다.

    * * *

    “사람을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네드 님은 일생일대의 고민을 맞이한 것 같았다.

    작아진 엘데는 네드 님을 쳐다보더니 콧바람을 풍풍 뿜으며 내 어깨에 앉아 버렸고, 네드 님 품에 여전히 안겨 있는 비상식량은……

    ―푸흥.

    날 대놓고 비웃었다.

    렉에 내 모가지가 날아간 걸 제대로 목격한 게 분명했다.

    용도 썩은 미소가 가능하다는 걸 알게 해 줘서 고맙다. 이따 네드 님 주무실 때 따로 면담 좀 하자.

    “사람……은 그냥 살리면 되는데 저 진짜 괜찮아요.”

    아무래도 내 목이 날아간 게 너무나 충격적이었나 보다. 네드 님은 거듭 내 목을 확인하고 있었다.

    “렉이었어요. 아까처럼 나무 엄청 많은 맵 들어갈 때 보통 그래요. 사람 열 명 넘게 모이기 시작해도 그렇고.”

    난 나름 침착하게 설명했지만 네드 님의 시선은 내 목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주변에 나무가 있어서 불안한 모양이다. 환장하겠다.

    결국 네드 님의 불안을 가라앉힐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스킬창에 ‘소생’이라는 스킬이 있는데 그거 쓰시면 돼요. 한 번 쓰면 10분 후에 쓸 수 있으니까 남발하시면 안 되고.”

    스킬창을 확인한 네드 님은 좀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풀린 표정으로 내게 웃어 주었다.

    “어차피 우리 둘뿐인걸요.”

    그 얼굴로 스윗한 말을 하시면 반칙입니다. 난 슬쩍 손등을 코에 댄 채로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근데 진짜 저 목 날아갔다고 그거 쓰시면 안 돼요.”

    “네, 알겠습니다.”

    제 목 다시 쳐다보면서 대답하면 설득력이 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 * *

    난 네드 님과 만나기만 하면 큰 문제는 없을 줄 알았다.

    그나마 문제라면, 네드 님이 메인 스토리 진행을 너무 안 한 나머지 다시 메디카로 날아가서 지루한 초반 메인 스토리를 봐야 할지 모른다는 걱정 정도?

    하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퀘스트 진도는 같나 봐요.”

    한참 동안 퀘스트창을 살핀 끝에, 난 얼굴을 펴고 말했다.

    운 좋게도 나랑 네드 님은 둘 다 왕성 퀘스트를 진행해야 할 차례였다.

    난 당연히 초보 마을 다음이 교황청인 줄 알았는데, 메인 스토리가 바뀌면서 교황청은 그냥 서브 퀘스트로 빠진 모양이다.

    그런데 정말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국적이 어떻게 되십니까?”

    “알라반이요.”

    난 고민 없이 답했다. 그리고 다음으로 답해야 하는 네드 님은, 순간 멈칫했다.

    응? 왜―

    “메디카입니다.”

    난 네드 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이유를 알아챘다.

    메디카랑 알라반 적대국가잖아!

    근데 네드 님, 그 설정 알고 계셨나?

    “메디카인?”

    왕궁 경비병은 흠칫하더니 뒤쪽에서 사람을 불러 뭔가를 지시했다.

    유네리아에는 쓸데없는 설정이 있다.

    메디카랑 알라반은 비록 30년째 휴전 중이긴 했지만 엄연히 적대관계라는 것.

    “메디카에서 방문하신다는 연락은 받은 적이 없다고 하는데요…….”

    경비병은 네드 님을 경계하고 있었다.

    “잠시 확인될 때까지 따라와 주시겠습니까?”

    전개가 이렇게 꼬일 줄은 몰랐다.

    아니, 메인 스토리에 국적 따지는 게 어딨어?

    PC 버전 유네리아에서도 국적이 메디카인 캐릭터는 다른 국적 캐릭터들이 할 때보다 좀 차가운 대우(?)를 받는다곤 들었지만 퀘스트 내용이 달라지는 줄은 몰랐다.

    네드 님과 일행 상태라서 그런가 네드 님 앞에 뜨는 퀘스트 선택지 창이 흐릿하게 보였다.

    [① 지금 따라간다

    ②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선택지를 보던 네드 님은 일단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를 선택한 후 나를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제가 메디카인이라서 메인 스토리 진행이 다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는 엄청 곤란해하는 얼굴이었다. 아니 뭐 그렇게까지…….

    “으음.”

    난 고민에 빠졌다.

    경비병들이나 병사들이 네드 님뿐만이 아니라 같은 알라반인인 나까지 의심하는 걸 보면, 왕성 설정이 완전 바뀌진 않은 것 같다.

    유네리아의 왕성 퀘스트는 까다로운 편이다.

    왕성답게 처음 입장할 땐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이 제한됐기 때문이었다.

    퀘스트를 진행해 왕의 신뢰도를 높일수록 왕성 맵에서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이 많아지는 구조였다.

    “이걸 어떻게 설명드린다…….”

    난 끙끙거려야 했다.

    돌아다니지 못하는 곳만 있으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신뢰도가 낮을 때 들어가면 페널티를 받는 곳도 있다는 게 문제였다.

    예를 들어 왕의 신뢰도가 17% 이상일 때 열리는 기사단 훈련장에 그 이하의 신뢰도를 가진 유저가 입장할 경우, 새로운 돌발 퀘스트가 발생한다.

    [지하 감옥으로]

    이름부터 살벌한 퀘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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