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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14/112)
  • <14화>

    배를 채운 우리는 마을의 노천카페에 앉아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대륙 동쪽에선 독특한 맛의 과일 탄산음료를 많이 판다는 게 생각나서 소개했는데, 네드 님은 마음에 들었는지 벌써 두 잔째 그걸 마시고 있었다.

    네드 님은 유네리아 음식이 전체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그건 엘데도 마찬가지였다.

    ―지상의 음식에도 먹을 만한 것이 있군.

    말로는 간신히 쓰레기를 모면한 물건을 보는 듯하면서 집어먹는 입은 왜 그렇게 민첩한지 모를 일이었다.

    네드 님은 음식을 신나게 먹는 엘데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저 사람이 저렇게 진지한 표정 하면 무섭다.

    자꾸 오동나무 관이 생각나서 참을 수가 없다……!

    “……회생의 물약은 어떻게 만들 수 있습니까?”

    이젠 진실(?)을 아는 네드 님이 물었다.

    아무래도 저 표정은 비상식량…… 그러니까 내 용이 죽은 게 못내 신경 쓰여서 그러는 모양이다.

    정 많은 뉴비님이네.

    “공정이 좀 복잡하긴 한데…….”

    “그래도 꼭 만들고 싶습니다.”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메인 스토리 깨자고 다짜고짜 다른 동네로 날아갈 순 없는 노릇이었다.

    엘데의 속도가 워낙 빨라 비상식량을 타고 날아다니진 않겠지만, 어차피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네드 님의 기동성도 확보해야 한다.

    “그럼 물약 먼저 만들죠. 일단 재료는 열 가지 정도인데 일곱 개는 그냥 몬스터 좀 때려잡으면 나와요. 다른 세 개 구하는 거랑 공정이 좀 실패율이 높아서 그렇지.”

    그거야 물량으로 밀면 된다. 난 지도를 열어 네드 님에게 공유했다.

    “대륙 동쪽에서 재료 네 개 정돈 구할 수 있고, 남쪽에서 세 개 구할 거고요. 남쪽 NPC 두 명한테 호감도 높여서 나머지 재료 두 개 구하고요. 마지막 재료는 일단 나중에 생각하고…….”

    “호감도…….”

    네드 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진짜 NPC랑 친해질 방법을 고심 중이신 것 같은데.

    “괜찮아요. 그 재료 파는 NPC는 그렇게 경계심 안 높아요. 대충 약 한 열댓 개 먹이면 될걸요?”

    ‘친구 되는 약’ 내지는 ‘친구약’은 NPC들이 환장하는 음료 라비스의 별칭이었다.

    아무리 봐도 용도가 호감도 올리는 것밖에 없는 아이템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유저들이 그렇게 불렀다.

    “……약이요?”

    “네. 경계심 낮은 애들이면 퀘스트 깰 때 약 일곱 개만 먹여도 퀘스트 내용 술술 불어요.”

    라비스 재료가 아직 아이템창에 남아 있던가?

    아이템창을 뒤지면서 확인해 보는데 반투명한 아이템창 너머의 네드 님 표정이 아까와 다르게 묘하게 굳어 있었다.

    왠지 이쪽을 경계하는 듯한 얼굴이다.

    “왜…….”

    내가 또 뭐 잘못 말했나?

    아이템창을 끈 난 곧 생각지도 못한 걸 깨달았다.

    그러게, 약 좀 먹이면 된다는 소리를 입 밖으로 내니까 좀 범죄자 같은 느낌이…….

    “……저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뒤늦게 수습해 보았지만 네드 님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난 볼을 긁적이다가 테이블을 툭 쳤다.

    “다 마셨으면 출발할까요?”

    네드 님은 대답 대신 마시던 음료를 조용히 내려놓으셨다.

    설마 방금 대화 때문에 안 마시는 거?

    내가 거기 약 탔다고 생각하시는 거 아니죠?

    약 안 탔어요. 안 탔다고! 님한텐 듣지도 않는다고!

    * * *

    당연한 이야기지만 NPC마다 성격이 다르다.

    유네리아는 이것과 관련해서 NPC 호감도 시스템이 좀 특성화되어 있는 게임이었다.

    오죽하면 사실 성장형 RPG게임이 아니라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

    NPC마다 호감을 얻는 방법은 달랐지만 이 시스템에 있어 치트키는 당연히 라비스였다.

    뉴비들이 만들기엔 번거로운 물건이라 값은 꽤나 나갔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네드 님은 라비스를 건넬 때마다 눈에 띄게 부드러워지는 NPC들의 표정을 보며 자꾸 흠칫했다.

    내가 준 물은 앞으로 안 먹을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죠? 네?

    “‘물약 생산’ 스킬을 켜 보면…….”

    라비스를 다발로 만들어대는 통에 나도 이 스킬은 마스터가 되어 버렸다.

    이 스킬로 회생의 물약을 만드는 건 맞는데 내가 만든 것보단 네드 님이 만드는 게 더 품질이 좋게 나올 것이다.

    유네리아의 모든 생산 관련 스킬은 캐릭터의 ‘집중력’ 스탯을 따라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내 스킬창에서도 재료는 볼 수 있으니까…….

    “어?”

    난 내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했다.

    내가 기억하는 회생의 물약 마지막 재료는 ‘대륙 중앙의 성화’였다.

    대충 대륙의 기운을 모아 죽은 용을 회생시킨다는 용가리공 짝퉁 같은 설정이었지만 이제 대륙 중앙의 힘은 필요 없는 건지 쌩뚱맞은 게 재료로 들어가 있었다.

    [하늘의 기운 0/1]

    하늘의 기운이면 나도 아는 유명한…… 잡템이다.

    대륙 동쪽 업데이트될 때, 사람들이 있어 보인다고 아이템창에 다 백 개씩 처박아 놨던 아이템.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쓸데가 없어서 문의해 보니 그냥 잡템이라는 답변을 들었다는, 전설 아닌 전설의 아이템.

    용 컨텐츠하고 같이 업데이트되긴 했는데 그 후 시나리오 작가가 바뀌고 나서는 모두의 기억 속에 묻혀 버린 비운의 아이템이기도 했다.

    “몇 년 된 용 컨텐츠를 건드렸다 이거지?”

    이거 건드린 거 보면 바뀐 메인 스토리에서 용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유네리아 한두 해 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거 보면 촉이 날카롭게 선다.

    “일단 동쪽 끝으로 가야 할 것 같아요.”

    난 어깨 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작은 엘데를 쿡 찔렀다.

    어딘가 불손한 눈빛을 보내는 것도 잠시, 엘데는 금세 거대화해 원래 크기로 돌아왔다.

    ―또 갈 데가 있나?

    “대륙 동쪽 끝.”

    엘데의 등 위에 탄 나는 네드 님께 손짓했다.

    네드 님은 불만에 가득 차 보이는 엘데의 얼굴을 보다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저 인간은 조금 예의가 있군.

    자길 구워 버린 토르의 검이 원래 누구 검인지 몰라서 나오는 소리다.

    “그―”

    ―쓔웅!

    난 엘데에게 슬픈 현실을 알려주려고 했지만 엘데는 네드 님이 올라타자마자 하늘로 빠르게 쏘아져 올라갔다.

    혀 깨물 뻔했다.

    * * *

    보통 구하기 엿 같은 아이템이라고 하면 이 몇 가지 조건 중 한두 개 이상을 충족하기 마련이다.

    첫 번째, 구할 수 있는 곳에 나오는 몬스터들이 세다.

    두 번째, 몬스터를 잡으면 환상 속 아이템은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매우 적은 확률로 나온다.

    세 번째, 매우 긴 던전을 돌아야 나온다.

    네 번째, 재생성 시간이 몇 시간 단위를 넘어가는 레이드 보스에게서만 나온다.

    유네리아는 저 조건에 해당되는 아이템이 많은 게임이었다.

    유저들의 동시접속을 늘리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욕을 다발로 처먹으면서도 절대 고치지 않았다.

    때문에 생산 스킬 마스터 유저들 중에서도 생산 스킬을 다루는 컨트롤이 뛰어난 유저는 돈까지 받고 대리제작을 해주기도 했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재료만 있다고 장땡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재료를 가지고 실패 확률을 비껴가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생산 스킬을 쓸 때마다 앞에 펼쳐지는 미니게임을 높은 점수로 통과해야만 이 물건을 제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미니게임은 만들기도 귀찮았는지 생산 스킬과는 상관도 없는 다트 게임이었다.

    회생의 물약이 누누이 욕먹는 이유는 이것이었다.

    재료가 비교적 구하기 쉬움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생산 스킬을 거쳐 만들어내야 하는 데다가, 미니게임에서 요구하는 점수가 높았던 것이다.

    물론 이것도 뉴비들 한정이지, 어지간히 용가리 살려본 사람 입장에선 한두 번 실패하고 성공하는 정도였다.

    그래서 재료는 보통 세 개 정도 준비하기 마련이다.

    별로 스트레스받는 일도 아니다.

    아니, 스트레스받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재료가 ‘하늘의 기운’으로 바뀌기 전에는.

    우리는 하늘의 기운이 함정인 줄도 모르고 가벼운 마음으로 그걸 찾아 대륙 동쪽을 반나절을 뒤졌다.

    어차피 바뀌기 전 회생의 물약 재료인 ‘대륙 중앙의 성화’도 그다지 까다로운 아이템은 아니었으니 비슷하리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마침내 구하는 법을 찾았는데…….

    “그건 이 상자 안에 있답니다.”

    네드 님은 NPC가 건네주는 상자가 신기한 듯 만져 보고 있었다. 아주 순수한 눈이었다.

    하지만 유네리아에 찌든 내 촉은 날카롭게 저 상자를 믿지 말라고 하고 있었다.

    보통 유네리아에서 상자라고 하면…….

    “아주 낮은 확률로 획득하실 수 있어요.”

    난 웃으며 말하는 NPC 데이아의 멱살을 잡을 뻔했다.

    그래, 익숙한 느낌이 난다 했어!

    설마 캐시샵도 아니고 게임 안에 키트를 만들 줄 몰랐다! 이놈의 확률성 도박 아이템!

    “회생의 물약 재료가 키트라고?”

    이거 완전 미친 거 아니냐?

    내가 지금 키트 까려고 돌아 돌아 대륙 구석까지 날아온 줄 알아?

    열 받아서 책상을 내리치자 책상이 심상찮은 소리를 냈다.

    “키트가 뭡니까?”

    그때 네드 님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난 유네리아의 어두운 면을 모르는 뉴비 네드님을 애잔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쉽게 말해서 도박이에요. 보통 상자 모양인데, 사용하면 한 몇백 개 정해져 있는 아이템 중에서 랜덤으로 하나가 떠요.”

    “……랜덤으로?”

    “네.”

    난 마른세수를 했다.

    “다시 말해서 우린 하늘의 기운이 나올 때까지 키트를 미친 듯이 까야 한다는 소리죠.”

    “한 번 얻은 아이템도 계속 나옵니까?”

    네드 님의 담담한 목소리가 물어 왔다. 난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게 키트의 악독함이었다. 원치 않는 아이템이 산처럼 나와도, 원하는 아이템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산더미 같은 키트 쓰레기를 치워야 한다는 것.

    “그럼, 하늘의 기운이 나올 확률은 어느 정도 됩니까?”

    네드 님의 질문에, NPC 데이아는 기다렸다는 듯 카운터 구석에서 긴 두루마리를 꺼내 보였다.

    ―펄럭!

    데이아가 펼친 두루마리를 보니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잎사귀’ 등 잡스러운 물건들 몇십 개가 줄줄이 늘어져 있는 게 보였다.

    그것들을 쭉 지나자 한구석에 작게 ‘하늘의 기운’이 있었다.

    [하늘의 기운 - 1.93%]

    “와.”

    이성이 춤추며 날아가는 확률에 이를 갈고 있는데, 네드 님이 손을 움찔하셨다.

    설마? 아니죠? 난 네드 님을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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