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112)
  • <7화>

    유니와 비밀의 방을 찍고 한 시간 후, 나는 성의 고급 레스토랑에 있었다.

    “음! 맛있는 냄새!”

    역시나 초보 마을과는 달리 고레벨 유저들도 자주 오는 테리반 성답게 레스토랑 음식의 질이 달랐다.

    그러니까 질이 다르다는 말은 요컨대 음식의 레벨 제한이 적어도 300부터 시작한다는 소리였다.

    가격도 동화나 은화가 아니라 금화부터 시작이다.

    “그럼 즐거운 식사 되십시오, 손님.”

    “넵넵.”

    난 내가 즐겨 먹던 레벨 491제의 부챗살 스테이크를 시켰다.

    어딜 가나 흔히 파는 음식이지만 스테이크가 어디 다 똑같은 스테이크인가?

    고기는 어딜 가든 중간은 간다지만, 그만큼 최고가 되긴 힘든 음식이기도 하다.

    적당히 구워진 스테이크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넓은 접시 가운데에 스테이크가 금방 식지 않도록 깔려 있는 철판이 센스 있다.

    그 옆으로 데코되어 있는 토마토 세 조각과 소스. 간단해 보이지만 오히려 복잡한 것보다 이쪽이 훨씬 낫다.

    칼을 들고 고기를 한 조각 잘라, 소스에 콕 찍어 먹으면.

    “아, 좀 살 만하네.”

    입 안에 향긋한 육즙이 퍼졌다. 난 나도 모르게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성까지 걸어오는데 빵 쪼가리만 먹느라 죽는 줄 알았다.

    난 켄이 준 주머니를 꺼내 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고맙다, 켄!”

    그리고 미안하다!

    켄이 준 금화는 이 레스토랑에서 다 썼다.

    검소한 청년 켄이 보면 과소비에 놀라 뒤집어질지도 모르지만 내 레벨 대에 이 정도 소비는 과소비도 아니다.

    한 번 사냥하면 장비 수리비만 금화 20개가 넘게 나오는데, 스테이크 하나에 금화 3개쯤 한다고 이상하진 않잖아?

    네드 님 레벨에 금화를 700만 개 이상 쌓아 놓고 사는 건 좀 문제가 있지만.

    “…….”

    눈부신 금고 안쪽의 모습을 떠올리자 다시 머릿속이 띵해졌다.

    내 금고에 있는 돈이 대략 금화 14만 개 정도이다.

    그 정도면 사물함에도 아슬아슬하게 보관되는 수준인지, 난 은행 뒤쪽에 그런 파라다이스…… 아니, 그런 비밀 공간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긴장할 만했네.”

    그걸 생각하니 날 보자마자 어깨가 굳던 엔의 반응도 이해가 간다.

    그건 처음 보는 사람을 보고 긴장한 게 아니라, 은행의 VVVIP를 보고 자본에 반응한 몸이 굳어 버린 것이다.

    유네리아도 역시 철저하게 자본주의에 입각하여 굴러가는 세상이었던 것이다.

    게임이라고 무시할 게 못 된다…….

    “하여튼 수리비는 문제가 없을 것 같고, 겉옷 탭에 입을 옷도 좀 살 수 있을 것 같고…….”

    나도 양심은 있는 사람이다.

    그 황금산이 다 내 거라고 생각 안 한다.

    네드 님한테 어차피 네드 님 물건 좀 써도 되냐고 묻기도 했고, 나중에 쓴 돈은 내 금고에서 다 빼서 드리겠다고 했으니 허락만 하신다면 금고에 있는 돈에서 적어도 금화 14만 개 정도는 융통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그 정도면 옷 사고 악세서리도 좀 사고, 음식도 냠냠 하고, 토르의 검 수리하는 데에도 문제가 없지.

    “아, 대장장이가 문젠가?”

    토르의 검을 수리할 만한 대장장이는 이 유네리아 세계에서도 몇 없으니까.

    그리고 말도 좀 사고…… 레벨 높여서 용도 좀 사고.

    유네리아는 용가리도 콧대가 높아서 나보다 약한 자의 말은 듣지 않는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적어도 레벨 300은 찍어야 타고 다닐 수 있었다.

    할 짓이 순식간에 많아지네.

    [우편이 도착했습니다.]

    “오, 벌써?”

    나한테 우편 보낼 사람 딱 하나밖에 없다.

    이거 참 말하고 보니 설레는 말이네.

    * * *

    [안녕하세요, 유니 님. 네드입니다.

    보내주신 우편은 잘 받아보았습니다.]

    PC버전에서야 그냥 유네리아 전용 글씨체로 딱딱하게 편지가 쓰였겠지만, 여기는 가상 세계라 그런지 편지 오는 게 좀 달랐다.

    네드 님의 글씨체가 그대로 보였다.

    한 번 스쳐 지나가듯 본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는 것도 참 웃기지만, 생각보다 엄청 정갈하고 진중한 글씨체였다.

    글씨체에 사람 성격이 묻어난다던데 굉장히 성의 있고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워 보이는 글씨체이기도 했다.

    거의 날려쓰듯 편지를 썼던 과거가 조금 후회되기 시작했다.

    [이전에 주신 활로 던전은 무사히 클리어했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먼저 감사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유네리아에 우편 시스템이 있는 줄 몰라 늦게 인사드리게 되었네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아니, 잡템 하나 준 거 가지고 그렇게 막…… 그나저나.

    “네드 님도 그냥 다짜고짜 소환당한 거구나.”

    하여간 네리아GM, 이거 다 깨기만 하면 내가 멱살 잡으러 간다!

    [말씀하신 북쪽의 몬스터 섬은 혹시 베리스 섬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 섬이라면 우편을 보내시기 조금 전에 갔다 온 것 같습니다.]

    “오…….”

    거기서 부디 크리스탈을 얻으셨어야 할 텐데.

    [말씀해 주신 크리스탈은 찾으러 가보았으나 붉은 지붕의 건물을 찾지 못했습니다.

    대신 푸른 지붕의 건물이 있었던 잔해만 찾았습니다.

    혹시 제가 길을 잘못 든 거라면 다시 한번 알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다시 한번 가볼 예정입니다만, 그 전에 길을 제대로 알고 가고 싶습니다.

    (몬스터가 다시 생성되는 속도가 빨라 조금 늦을 수도 있습니다.)]

    다시 생각하지만 아주 정성 가득한 편지다.

    “푸른 지붕 건물의 잔해면 Z좌표를 못 보신 것 같은데.”

    너무 위로 날아가셨네…… 아래로 가라고 해야겠다.

    [그런데 찾으러 가는 중에 도저히 걸어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가 없어 본의 아니게 유니 님의 용을 타게 됐는데, 용이 말을 듣지 않아서 메모해 주신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메모?”

    내가 뭘 메모했는데? 내 용? 메모면 프로필 말하는 건가?

    내가 거기에 뭐라고 썼더라? 곰곰이 생각하던 난 무릎을 쳤다.

    [꼭 맞아야 정신을 차려요]

    에이리 님이 볼 때마다 빵빵 터지는 프로필이었다.

    “그걸 메모라고 생각한 거야?”

    뉴비들 머릿속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난 웃음을 터뜨렸다.

    “아, 귀여워.”

    우리 네드 님 하고 싶은 거 다 해요!

    그 용은 원래 유네리아에서도 골칫덩이인 버그에 렉 덩어리였다.

    그 덕에 가끔 유저한테도 몬스터로 인식될 때가 있는데, 그럼 당연히 타지지 않는다.

    그걸 내 캐릭터 스펙으로 터치하면 그 몬스터로 인식된 용이 죽는데, 죽으면 비로소 탈것으로 돌아와서 탈 수 있는 뭐 그런 버그가 있다…….

    ……뭐 네드 님 입장에서는 용용이를 본의 아니게 때린 셈이니 미안했을 수도 있겠다.

    [용에게도 미안한 마음에 먹이를 듬뿍 주었으니 거듭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귀여워! 크아악! 귀여워!

    [그리고 아이템은 걱정 않고 사용하셔도 됩니다.

    저도 유니 님의 아이템을 본의 아니게 쓰고 있어서요. 정말 편지에 죄송스러운 말뿐이군요.

    참, 금고에도 약간의 금화가 있으니 편한 대로 사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용하다 보면 아이템이 깨질 수도 있다고 들었는데, 갖고 있던 것들이 별로 부담스러운 가격은 아니니 마음대로 사용해 주세요.]

    “응?”

    편지를 보던 난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아이템창을 다시 보고 편지를 다시 봐도 편지 내용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부담스러운 가격은 아니니 마음대로 사용해 주세요.]

    토르의 검이 부담스러운 가격이 아니라고?

    본인이 샀을 테니 가격을 몰라서 하는 소리는 아닐 테고, 이 사람 대체 정체가 뭐야?

    [오히려 레벨이 낮은 제 능력치로 고생하시는 유니 님이 걱정입니다.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제가 날아가서(먹이는 잘 주겠습니다) 도와드리고 싶은데요.]

    “아냐, 안 돼.”

    이 사람이면 대륙 미아가 될 게 분명하다.

    날아다니다가 우편함도 못 찾아서 연락도 끊길 거야!

    [그럼 위치를 다시 알려 주시면 가 본 후에 다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끝까지 정중한 편지였다. 편지를 읽고도 난 고개를 흔들었다.

    “허 참, 부담되지 않는 가격…… 부담되지 않는 가격…….”

    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네…….

    난 편지지를 만지작거렸다. 이 돈 많고 귀여운 뉴비에게 쓸 말이 많았다.

    * * *

    난 네드 님한테 내 딴에는 정중하게 격식을 갖추어 답장을 써 드렸다.

    일단 크리스탈의 자세한 위치부터. 그리고……

    [그리고 토르의 검 이거 엄청 비싼 건데 진짜 써도 되ㄴ]

    이건 물어보려다가…… 지웠다…….

    토르의 검은 둘째치고 갖고 있는 아이템들 가격만 따져 봐도 그게 ‘별로 부담되지 않는 가격’이면 토르의 검도 진짜 부담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컸던 것이다.

    [Level Up!]

    돈도 있겠다, 아이템 착용 레벨 제한도 없앴겠다, 아무래도 부캐를 치트키 써서 키우는 것 같은 이 상황에 문제가 있다면 딱 하나였다.

    “아, 또 숲 맵이야.”

    유네리아는 너무 높은 레벨의 몬스터를 잡아도 레벨이 안 오르는 엿 같은 게임이다.

    본인 캐릭터하고 딱 20 차이 나는 몬스터까지만 경험치를 준다.

    덕분에 난 레벨에 맞춰서 최대한 높은 던전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들 속성도 꿰고 있고 나오는 곳도 꿰고 있고 함정도 꿰고 있으니 던전 깨는 건 괜찮은데, 문제는 렉이었다.

    “이놈의 숲!”

    대체 게임 세계로 날아온 주제에 렉이 왜 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 렉 때문에 제대로 몸이 움직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나무가 많이 있는 이 숲은 앞으로 걸어가기만 해도 렉이 심하게 걸렸다.

    [유니 / Lv. 133]

    그래도 레벨업 많이 했다.

    여기서 7업만 더 하면 나무 나오는 던전 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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