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112)

<3화>

“……? 잠시만요.”

내 앞에서 네리아GM은 어딘가로 급히 연락을 취하기 시작했다.

혹시 유얼머니게임즈에서 준비했다는, 좋은 말로 전무후무하고 나쁜 말로는 듣도 보도 못한 선물이 이거였나?

유얼머니게임즈 사옥 건축에 지대한 투자를 한 유저의 데이터를 날려 버리는 거?

이게 선물이야?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그럼 유니 님께는 그렇게 전할게요.”

뭔가 좀 나온 모양이다.

네리아GM은 갑자기 내 앞에 불쑥 어떤 화면을 내밀었다.

“이런 유저 분 본 적 있으세요?”

불쑥 보이는 건 유네리아에선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던 겁나게 잘생긴 남캐였다.

당연히 본 적 있었다. 잊을 리가 없잖아!

“네드 님!”

난 화면을 가리키며 벼락같이 외쳤다.

“응?”

근데 이 타이밍에 네드 님은 왜 보여줘?

설마?

“뭐야, 설마 나랑 네드 님 캐릭터 바뀐 거 아니죠? 아니, 상태창에는 내 닉네임 제대로 나와 있는데?”

이게 뭐람?

혹시 붉은 구슬 이벤트 당첨자 선물이 캐릭캐릭체인지였어?

“혹시 네드라는 유저 분과 붉은 구슬을 바꾸신 적이 있나요?”

“…….”

바……꿔……? 설마 그거 때문이라고 말할 셈?

난 일그러진 얼굴로 네리아GM을 올려다보았다.

네리아GM은 내 반응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상황이 어떻게 된 거냐면요…….”

네리아GM의 설명은 이러했다.

원래 유저마다 조금씩 다른 모양의 붉은 구슬을 줬는데, 선물을 받을 특별한 유저의 구슬에만 어떤 장치를 해 놨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래대로라면 내 캐릭터의 스펙과 아이템을 그대로 가져왔어야 했는데 하필이면 네드 님과 내 구슬이 바뀌는 바람에 이 사달이 났다고.

“아니, 붉은 구슬을 떨어뜨릴 수 있게 만들지를 말든가!”

난 당연히 화딱지가 머리끝까지 솟아 외쳤다.

“그걸 깜빡했지 뭐예요.”

네리아GM이 머리를 긁적이며 윙크했다.

그게 웃으면서 할 소리야!

결국 너희들 잘못이잖아!

“빨리 로그아웃이나 시켜 줘요.”

“그게, 안 됩니다.”

“응?”

엥? 응? 음? 아깐 된다며?

말이 순식간에 바뀐 네리아GM이 언제 꺼냈는지 모를 안경을 척 올려 쓰며 말했다.

“지금 네드 유저님하고 정보가 바뀌어 있으셔서요. 정상적으로 로그아웃이 안 되네요.”

“헐.”

“그냥 클리어하시면 로그아웃할 수 있으신데…….”

빡이 머리끝까지 차올랐지만 난 한숨으로 내리눌렀다.

그래, 한 번 클리어한 거 두 번은 못 할까.

게다가 유네리아는 오래된 게임치고 메인 스토리 퀘스트가 많은 편도 아니었다.

“그럼 그냥 빨리 캐릭터 정보 돌려주세요. 이것도 설마 못 고치는 거 아니죠?”

“당연히 고칠 수 있죠. 이 경우는 유니 유저님의 아이템을 네드 유저님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편취한 상황으로, 해킹 피해 복구 서비스를 통해 도움 받으실 수 있답니다.”

지들이 잘못한 주제에 말은 청산유수였다.

“네드 님이 해킹한 게 아니라…… 아니, 그래요. 그래서 복구는 어떻게 받는데요?”

내가 네드 유저님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하면 그만이다.

일단 캐릭터 정보나 제대로 돌려놓자.

“일단 유니 유저님의 OTP 보안 서비스 내용을 좀 확인할게요.”

“저 OTP 안 했는데.”

OTP. 접속할 때마다 핸드폰 붙잡고 30초 내에 비밀번호 두드려야 하는 거.

복잡해서 안 한다.

요즘 지문으로 패스되는 로그인 시스템도 있는데 뭐 하러 해?

네리아GM이 내 말에 눈을 깜빡였다.

“유네리아는 게임 규정상 OTP 유저 분들께만 해킹 피해 복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답니다.”

“?”

이게 말이야 방귀야? 난 눈을 깜빡였다.

“그럼 안타깝게도 유니 유저님의 피해 복구는 불가능할 것 같네요.”

네리아GM이 싱그럽게 웃었다.

“그럼 오른쪽 아래에 안내해 드린 공지사항 다시 한번 확인해 주시고, 유네리아 세계에서 즐거운 탐험 되시길 바랍니다.”

“네? 저기요?”

????????

그러더니 네리아GM은 방긋 웃고는 파우더 가루를 신명 나게 펑 뿌리며 사라져 버렸다.

아무래도 급히 사라지는 게 튀는 것 같은데?

뭐야? 끝이야? 이대로 끝? 나보고 어쩌라고?

“즐거운 탐험?”

난 머리를 붙잡았다.

이게 다 그 붉은 구슬 때문이다!

아니, 내가 구슬 모양이 다른 거야 알고 있었지만 그런 깊은 뜻이 있는 구슬인 줄 알았으면 다시 구슬 바꿨지!

“지금 나랑 장난해?”

아니 그 전에, 이런 멍청한 이벤트를 주의사항도 없이 진행한 유얼머니게임즈는 또 뭐고, 우리나라 과학기술은 언제 이렇게 발전해서 내가 이딴 게임 뽕짝 세계에 떨어져서……

머릿속이 혼란한 와중에 네드 님 얼굴이 불쑥 생각났다.

“으아아아아!”

Noooo! Nooooooooo!

방긋 웃으며 던전 안으로 들어갔던 네드 님의 모습이 떠올라 입에서 절규가 절로 튀어나왔다.

머릿속으로 백 번쯤 과거로 돌아간 난 끊임없이 과거의 나에게 외쳤다.

그 구슬을 바꾸지 마오! Nooooo!

* * *

그 후로 한 시간이었다.

내가 로그아웃하려고 별짓을 다 한 시간이.

내가 컴퓨터를 할 때야 게임 렉 걸리는 거 한두 번도 아니고, 강제 종료도 해 보고 이것저것 해도 안 되면 컴퓨터 껐다 켜면 그만이었다.

근데 이건 컴퓨터가 아니라 내가 게임 속으로 들어와 버린 셈이니 껐다 켜는 것도 당연히 안 되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앞에 떠 있는 메뉴창을 뒤지는 것뿐이었다.

[메뉴]

[인벤토리]

[상태]

[장비]

……

물론 로그아웃 따위는 없었다.

네리아GM을 한 대 쳐 버리기 전에는 이 게임에서 나가지 못할 것 같다.

난 내 잠정적인 목표를 정하고 방구석의 우편함을 열어 보았다.

아까 네리아GM이 주의사항 있으니까 꼭 읽어 보랬지.

편지는 세 개였다.

[안녕하세요, 유니 유저님! 유네리아 대륙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유저님은 세계 최초로 유네리아 대륙을 두 발로 체험하는 유일한 유저 분이세요!]

편지는 이런 전무후무하고 듣도 보도 못한 엿 같은 경험을 하는 첫 번째 유저가 나임을 가르쳐 주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주의사항은 당첨자 발표와 함께 유네리아 PC버전의 게임 내 공지사항으로 알려드렸던 것과 같습니다.]

“……못 봤는데?”

네리아GM이 내 닉네임 말하는 것도 못 들었다.

이건 십중팔구 우리 집 인터넷 문제가 분명했다.

그래도 다행히 주의사항은 중요하다며 밑에 다시 쓰여 있었다.

[첫 번째, 남은 HP와 마나는 시야의 오른쪽 아래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P가 떨어질수록 움직임에 제한이 생깁니다.]

이건 기존 유네리아 PC버전과 같은 내용이었다.

문제는 지금은 내가 컴퓨터를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내 몸이 직접 움직이기 힘들어진다는 거겠지.

[두 번째, HP가 모두 떨어지면 사망합니다. 다른 유저가 살려 주기 전까지 살아날 수 없습니다.]

뭐, 똑같은 내용이네. 읽어 볼 필요 없는 거……

“잠깐만.”

뭔가 이상함을 느낀 나는 다시 편지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세계 최초로 유네리아 대륙을 두 발로 체험하는 유일한 유저 분이세요!]

유일하다고? 그럼 유저가 나밖에 없는 거네?

[다른 유저가 살려 주기 전까지 살아날 수 없습니다.]

“?”

그러니까 요컨대 뒈지면 바닥에서 십 년이고 천 년이고 만 년이고 엎어져 있어야 한다는 소리?

점점 입가에 인자한 미소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세 번째, 포만도 시스템이 추가됩니다!

상태창에서 현재의 포만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포만도가 50% 아래로 내려가면 한 시간에 HP가 10%씩 하락합니다.

밥을 잘 먹고 다녀 주세요.]

“염병!”

[네 번째, 기존에 알고 계시던 내용과 일부 다른 메인 스토리 내용이 적용되었습니다.

유네리아 대륙을 다시 한번 구해 주세요, 용사님!]

“필요 없어!”

용사님은 개뿔! 난 첫 편지를 다 읽지도 않고 구겨서 던져 버렸다.

더 보면 열 받아서 일찍 세상 하직할 것 같았다.

[네리아GM의 두 번째 편지]

네리아GM, 두고 보자. 난 두 번째 편지를 거칠게 펼쳤다.

[안녕하세요, 유니 유저님! 네리아GM입니다. 유네리아 대륙에서 즐거운 모험 즐기고 계신가요?

저희 측의 불찰로 유니 유저님과 네드 유저님의 캐릭터 정보가 바뀐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래서 네드 유저님도 현재 유니 유저님과 같은 세계에 떨어진 것으로 확인되었어요.]

“오,”

그것참 기쁜 소식이었다.

혹시 내가 뒈져 버려도, 이 맵만 더럽게 넓은 유네리아 대륙 한복판을 헤매던 네드 님이 나를 우연히 발견하고 살려 줄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니까.

아주 좋아, 그렇죠, 네리아GM님? 응?

그래도 마지막 편지는 좀 쓸만한 내용이었다.

[안녕하세요, 유니 유저님! 네리아GM입니다. 유네리아 대륙에서 즐거운 모험 즐기고 계신가요?

내부 회의 결과 유니 유저님께 해킹 복구를 해 드리지 못하는 대신 소정의 보상을 드리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아래 빈칸에 유저님이 원하는 것을 적어 주시면 내부 회의를 거쳐 적용시켜 드릴게요.

단, 메인 스토리 퀘스트가 바뀐 채 적용되었기 때문에, 퀘스트를 통해 얻어야 하는 캐릭터 스탯 및 경험치에 관한 사항은 적용시켜 드리기 어렵습니다.]

아니, 쓸만하다는 거 취소다.

스탯도 경험치도 안 되면 뭘? 소원 세 개 이루어 주세요?

[소원을 두 개 이상 이루어 달라는 것도 적용시켜 드리기 어려운 점 참고해 주세요^^]

“…….”

왠지 간파당한 것 같아서 기분이 더러웠다.

“뭘로 하지?”

네리아GM의 멱살을 잡는 건 나중 일이고 일단 레벨업을 해서 게임을 클리어한 다음 여길 탈출하는 게 급선무였다.

네드 님은 좋겠다.

내 스펙이면 옷 다 벗고 팬티 바람으로도 메인 스토리 깰 수 있는데.

난 상태창과 아이템창, 스킬창을 열어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헐.”

그러다가 아이템창을 보고 튀어 나갈 뻔한 눈을 진정시킨 다음 편지에 쓸 말을 결정했다.

네드 님이 붉은 구슬을 받을 정도로 캐릭터에 돈을 부었다는 걸 내가 잊고 있었다.

네드 님 만세!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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