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오늘따라 택시가 하나도 없었다. 마음이 급해지니 더 숨이 차서 수아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뛰었다. 걸려 온 전화에서 ‘병원’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잊고 있던 기억이 기시감처럼 떠올랐다. 한밤중, 병원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은 엄마와 손을 붙잡고 허겁지겁 병원으로 뛰어가던, 매우 슬프고 두렵던 기억이었다.
아니야, 불길한 생각 하면 안 돼. 아직 자세한 건 모르잖아.
이성을 찾으려고 노력해도 급한 마음에 몇 번이나 발을 헛디뎠다. 하필이면 새아빠도 전화를 받지 않아서 더 불안해졌다.
막 주차장을 지나는데 빠른 속도로 나온 차 한 대가 그녀 옆에 갑자기 섰다. 차에서 내린 윤성이 그녀를 다짜고짜 잡아채 조수석에 밀어 넣었다.
“어디 병원이야?”
“어? 우신병원.”
“데려다줄게. 벨트 매.”
내비를 찍는 윤성의 말에 수아는 벨트를 잠그려고 했으나 손이 떨려서 제대로 되지 않았다.
“가만있어 봐, 내가 할게.”
제 벨트를 채우려던 윤성이 몇 번이나 헛손질하는 그녀를 보더니 길게 팔을 뻗어 제대로 줄을 당기고 한 번에 채웠다.
차가 출발하기 시작하자 이상하게도 더욱 조바심이 났다. 윤성은 소리 없이 눈물을 훔치는 수아를 흘깃거리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누나가 이럴 수도 있구나. 엘리베이터 사고 땐 겁에 질렸어도 나름 침착했는데.”
“우, 우리 엄마는 감기 말고 아픈 적도 없었어. 갑자기 이러니까…… 진짜 무섭단 말이야.”
수아가 훌쩍거리면서 대꾸하자 윤성이 헛기침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나쁜 뜻은 아니었어. 나한텐 그렇게 소중한 가족이 없으니까 잘 몰라서 그래, 미안.”
“아냐, 내가 지금 정신이 없어서……. 저기, 고마워. 데려다줘서.”
정면에 시선을 둔 윤성이 채 천천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아플 정도로 세게 쥐고 서툴게 몇 번 흔드는 게 위로라니, 참으로 그다웠다. 이렇게 엄마 걱정으로 가득 차 있지만 않으면 놀렸을 텐데.
수아가 맞잡은 손으로 눈물을 닦자 윤성이 짧게 한숨을 내쉬며 투덜거렸다.
“그만 울어. 보호자로 가는 거면 정신 바짝 차리고 있어야지.”
“그러게. 나도 안 울고 싶은데…… 너무 무서워서 저절로 눈물이 나와.”
“생각해 보니까 나도 그런 적 있었어. 지금 누나처럼 걱정으로 이성을 잃을 때가.”
“……응?”
“요양원에 불났을 때. 나 정말, 누나 걱정 많이 했었어.”
“그땐…….”
“그냥 그랬다고. 지났으니까 하는 소리야. 지나친 걱정은 쓸데없으니까 누나가 할 수 있는 일만 생각해. 나도 그럴 테니까.”
신호에 걸려 차가 멈춘 사이, 신호등을 노려보던 윤성이 낮게 욕을 중얼거리더니 손을 놔주며 툭 내뱉었다.
“얼른 남친한테 전화해. 보통 능력자가 아닌 것 같은데 이런 위급 시엔 뭐라도 해 줄 거 아냐.”
아, 화희 씨. 수아는 윤성의 말에 허둥지둥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자마자 바로 들리는 목소리에 울컥 목이 메었다.
-수아 씨?
수아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들리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빠르게 말했다.
“어, 저기요,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했대요. 지금 병원에 가는 길인데…….”
-어딥니까, 병원이?
“우신병원…….”
콰쾅, 갑자기 전화기 너머에서 큰 소리가 났다. 연이어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다.
-……악! 사…… 사람이…… 졌어!
수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다급히 그를 불렀다.
“여보세요? 화희 씨?”
잠시 침묵이 흘렀지만, 곧 대답이 돌아왔다. 주위 소리를 차단한 듯 주변의 소음이 사라지고 그가 나직하게 달래듯 말했다.
-수아 씨, 어머님은 괜찮으실 겁니다. 지금 바로 갈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줘요.
“어, 방금 무슨 소리예요? 괜찮은 거예요?”
-아무 일도 아닙니다. 잠깐 전화 상태가 좋지 않아서. 수아 씨가 많이 놀랐을 텐데 난 그게 걱정이군요.
“기다릴게요. 조심히 오세요.”
수아는 끊긴 전화를 두고 잠시 멍했다. 분명 건너편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가뜩이나 제정신이 아닌 데다 워낙 순식간에 들린 소리라 알 수 없었다.
다만 화희의 목소리를 들으니까 조금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깊게 심호흡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그녀를 곁눈으로 살핀 윤성이 인상을 쓰며 투덜거렸다.
“늦기만 해 봐라, 정체를 다 까발릴 테니까.”
“……응?”
영문 모를 소리에 그녀가 되묻자 그는 그녀의 어깨를 짚어 의자에 기대게 했다.
“꽉 잡아. 최대한 빨리 갈 테니까.”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차가 무서운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구급차가 줄지어 세워진 병원 입구부터 로비를 지나 응급실까지 환자와 보호자들로 아수라장이었다. 얼핏 다중 추돌 사고라고 들었는데 부상자들이 모두 이 병원으로 온 모양이었다.
상황을 보니 더욱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수아는 환자들 중에 혹시 엄마가 있을까 살피면서 접수대로 향했다.
“송난희 씨요.”
“아, 검사가 끝나서 지금 응급실에서 회복 중이세요. 자세한 검사 결과는 환자분 담당 선생님이 알려 주실 거예요.”
“회복 중이요? 그, 그럼 수술은 안 해도 되는 거예요?”
“의식 회복하셨으니까 환자분 뵙고 입원 수속 밟으시면 되세요.”
듣던 중 정말 반가운 소리였다. 수아는 하마터면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을 뻔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응급실로 달려가 허겁지겁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
“수아야!”
새아빠를 발견한 그녀는 한걸음에 달려갔다.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누워 있던 송 여사가 수아를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어우, 얘. 얼굴 질린 거 봐.”
“엄마! 괜찮아?!”
“괜찮지, 그럼. 많이 놀랐어?”
수아는 엄마의 상태를 빠르게 살폈다. 머리에 감은 붕대 이외 얼굴 반쪽에 멍이 들고 목 보호대를 했을 뿐, 다행히 큰 이상은 없어 보였다.
“다친 데는? 응? 수술까지 해야 한다고 그랬는데?”
그래도 혹시 몰라 캐묻자, 새아빠가 대신 설명했다.
“사고 날 때 머리를 부딪쳐서 의식을 잃었던 것뿐이래. 검사 결과 큰 이상은 없는데 만일을 대비해서 며칠 입원했다가 별다른 증상이 없으면 퇴원해도 된다더라.”
“아, 진짜 다행이에요. 제가 너무 놀라서…… 하아, 죄송해요. 더 놀라셨을 텐데.”
한시름 놓자 그만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수아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먹이자, 간이 의자에 그녀를 끌어다 앉힌 새아빠가 어깨를 토닥이며 달랬다.
“아이구, 많이 놀랐나 보네. 내가 회의 중이라 전화를 못 받는 바람에 너한테 먼저 연락이 갔나 보구나. 회사가 근처라 내가 더 빨리 왔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결과 나오자마자 진작 말해 줄걸.”
송 여사도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거들었다.
“이제 내 심정을 좀 알겠니? 나는 너 때문에 몇 번이나 응급실에 왔었는데, 그때마다 진짜…….”
“여보! 지금 수아에게 그 말은 좀 아니지 않나요? 나도 얼마나 놀랐는데.”
“……흐윽…… 그래, 엄마. 지금 절 놀릴 때예요?”
“내 걱정은 하지 말란 소리지. 나는 증손주 볼 때까지 알아서 짱짱할 테니까, 넌 쓸데없는 걱정 말고 박 서방이랑 빨리 내 손주나 만들어 내놔. 혼수로 손주는 어떻게 안 되…….”
“여보, 제발. 수아도 여보가 괜찮다는 건 잘 알았을 테니까 그만 놀려요. 여긴 병원이에요.”
수아는 새아빠랑 아옹다옹 말다툼을 벌이는 엄마를 감격해서 쳐다보다가, 응석 부리듯 엄마 배에 얼굴을 비볐다가, 얼굴에 멍을 보고 또 훌쩍였다. 송 여사와 새아빠는 그런 그녀를 달래면서 서로의 손을 다정하게 맞잡았다.
“여기, 작성한 서류예요.”
수아는 입원 수속 서류를 내밀고 퉁퉁 부은 눈을 손등으로 슬쩍 가렸다.
서류를 냈을 땐 무심하게 받던 직원이 모니터를 보고 한껏 더 친절하게 대답했다.
“아, 송난희 님 입원 수속은 이미 완료되었습니다.”
“지금 처음 접수하는 건데요?”
“VIP 병동에 입원 예정이 되어 있으세요. 응급실에 계시면 담당 간호사가 해당 병실로 모셔다드릴 거예요.”
“VIP 병동요? 어, 누가…….”
얼떨떨하게 되묻던 수아는 더 묻지 않고 알겠다고 대답했다. 이렇게 배려해 줄 사람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정말 보면 볼수록 너무 완벽해. 아, 이럴 때가 아니고 얼른 전화부터 해야지.
수아는 혼잡한 로비를 지나 주위가 조금 조용해지자 핸드폰을 꺼냈다. 순간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송난희 씨 보호자 되시죠?”
돌아보니 응급실 유니폼을 입은 간호사였다.
“담당의 윤석민 과장님 사무실로 잠깐 오시겠어요? 검사 결과 중에 특이점을 발견해서 보호자 확인이 필요하시답니다.”
“네? 설마 어디가 안 좋은가요?”
“그건 아니고요. 가족력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서요.”
다른 일을 하다가 잠깐 온 건지, 간호사는 그녀가 따라오는지 힐끔 확인하면서도 들고 있는 차트를 넘겨 보며 핸드폰으로 환자에 대해 묻고 확인하느라 바빴다.
원래 저렇게 바쁜 건가, 큰 사고로 환자들이 밀려들어 모두 바쁜 건가, 수아는 자신의 일이라도 빨리 끝낼 수 있도록 걸음을 서둘렀다.
엘리베이터 앞에 갔는데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한참 위로 올라간 층수와 대기 중인 사람들을 번갈아 보던 간호사가 그녀에게 물었다.
“3층이라서 걸어가는 게 훨씬 빠를 것 같은데요.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그럼 전화하면서 가야지. 순순히 간호사를 따라가던 수아는 간호사가 연 비상구 문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혼잡한 통로를 지나서일까, 갑자기 사람이 없는 곳에 오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움직이지 않자 한발 앞서 비상구 계단에 들어서던 간호사가 돌아보았다. 순간 마주친 눈빛이 섬뜩했다.
수아는 본능적으로 급히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어느새 바짝 뒤까지 기척도 없이 쫓아온 남자가 그녀를 붙잡고 비상구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읍!”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바로 입이 틀어막히고 매콤한 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억센 손을 뿌리치려고 버둥거리기도 전에 몸에서 힘이 풀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 안 돼.
수아는 까무룩 가라앉는 의식에도 핸드폰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으나 소용없었다.
그대로 그녀의 세상이 암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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