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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피늄-62화 (62/100)
  • 62화

    “어…… 어지러워요.”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시야가 뒤집히는 바람에 눈앞이 빙 돌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수아가 중얼거리자 그녀의 머리 옆에 양손을 짚은 화희가 유혹하듯 속삭였다.

    “어지러우면 날 꽉 붙잡아요. 난 당신을 위해 존재하니까. 자, 내 목에 팔을 둘러 봐요.”

    “그, 그게 뭐예요? 닭살 돋아요.”

    “이런 대사를 여성분들이 좋아한다고 인터넷에서…… 하아, 늘 말하지만 듣는 쪽보다 말하는 쪽이 훨씬 더 창피합니다.”

    “창피하면 안 하면 되잖아요.”

    “호신술 가르쳐 준다는 핑계로 접촉을 시도했는데 실패했으니 용기를 낼 수밖에요. 이 각도에서 보니 더 예쁘군요. 수줍게 질문해도 됩니까? 지금 무슨 색 입었어요?”

    “지금 그딴 질문 하지 마요!”

    코웃음 친 화희가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껴안고 하체를 지그시 눌렀다.

    “궁금할 땐 언제, 어디서든 물어보라면서. 그럼 다른 질문. 언제 내 이름을 불러 줄래요? 내게 입술을 빼앗기고 난 후에, 아니면 지금?”

    느물거리는 말투와 달리 그녀의 입술을 더듬는 손끝이 매우 조심스러웠다. 수아는 숨 쉬기가 곤란해질 정도로 가슴이 뛰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턱을 부드럽게 잡아 제 쪽을 보게 한 화희가 가볍게 이마를 맞대며 속삭였다.

    “대답해 주면 안 됩니까? 아까부터 당신을 건드렸던 저따위 목검도 부러워서 죽을 지경이었는데.”

    서로의 숨결이 닿을 정도로 그의 입술과의 간격이 아슬아슬했다. 심장 박동이 속절없이 더 빨라졌다.

    목검이 왜 부러워? 난 이렇게 떨리는데.

    숨을 죽이다 문득 억울해진 수아는 충동적으로 그의 목에 양손을 감고 제 입술을 들이댔다. 눈을 감고 부딪치는 바람에 거리 조절이 안 돼서 입술이 얼얼했다.

    멈칫 고개를 든 화희가 눈을 크게 뜬 채 그녀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볼을 붉히며 그의 입술에만 시선을 준 수아는 볼멘소리로 중얼거렸다.

    “‘후’라고 대답했잖아요. 언제까지 수줍어할 거예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화희가 눈웃음치며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여린 피부에 그의 뜨거운 입술이 닿자 짜릿한 감각에 맥박이 크게 뛰었다.

    “읏…… 간지러…… 으응!”

    입술로 목덜미를 진득하게 핥아 올리던 화희가 고개를 들고 단번에 신음을 흘리는 그녀의 입술을 삼켰다. 뜨겁고 부드러운 혀가 그녀의 것을 세게 휘감고 빨아들이자 야릇한 감각이 온몸을 휩쓸었다.

    순식간에 몸에서 힘이 빠졌다. 질끈 감은 눈앞에 색색의 불빛이 춤을 추는 듯했다.

    잠시 입술을 떼고 눈을 맞춘 화희가 그녀의 뺨을 손끝으로 훑었다. 수아가 다정한 손길에 뺨을 기대는 사이, 그는 자신의 긴 다리로 그녀의 다리를 무겁게 짓눌렀다.

    꼼짝없이 그녀를 제 몸으로 옭맨 화희가 그녀의 입술을 가볍게 깨물고 핥았다. 그를 반기며 벌어진 그녀의 입술 사이로 단단하고도 축축한 혀가 파고들어 뜨거운 입 안을 마음껏 헤집었다.

    목이 마른 것처럼 그녀의 타액을 모두 빨아들이고 나서도 그는 깊게 혀를 넣어 입천장을 핥고 자신의 혀와 그녀의 혀를 옭아매 농염하게 비비고 문질러 댔다.

    키스가 깊어질수록 숨이 가쁜데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짜릿한 전율로 감각이 한껏 곤두섰다.

    “……으응.”

    아, 좋아서 미칠 것 같아. 키스가 이렇게 황홀한 것이었을까.

    키스로 사정없이 그녀를 몰아붙이면서도 그의 손은 어쩔 줄 모르는 것처럼 끊임없이 부드럽게 옷 위로 팔과 어깨를 어루만지고 등을 쓰다듬었다.

    간절할 정도로 그녀를 원하는 남자의 몸짓에 아랫배가 뜨거워졌다. 매달리듯 그를 더욱 가까이 끌어당기자 그녀의 턱을 가볍게 감싸 쥐고 눈을 맞춘 화희의 손이 티셔츠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유혹하는 것처럼 느릿하게 살결을 어루만지는 단단한 손이 너무 뜨거워서 델 것 같았다.

    움찔거리며 몸을 비트는 그녀에게 화희가 그녀의 귓불을 입술로 지분거리며 허락을 구했다.

    “안심해요. 그저 나는 당신을 좀 더 알고 싶은 것뿐이니까.”

    잔뜩 낮아진 그의 목소리가 야해서 배 속이 끓는 것처럼 달아올랐다. 수아는 저도 모르게 그의 등을 감싸 안아 제 쪽으로 바싹 끌어당겼다.

    기다렸다는 듯 화희가 헐렁한 그녀의 티셔츠를 걷어 올리고 드러난 살결을 감탄하듯 내려다보았다.

    집요하고 뜨거운 시선만으로 이미 그에게 희롱당한 것처럼 저릿한 자극이 퍼져 나갔다.

    그가 고개를 숙여 살짝 드러난 가슴의 말캉한 부분을 맛보듯 길게 핥자, 정점이 곤두서고 배 속에서 열기가 치솟았다.

    눈을 질끈 감은 그녀가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속으로 파고든 그의 손이 봉긋한 언덕을 감싸면서 완전히 속옷을 벗겨 냈다.

    흐트러지듯 드러난 봉긋한 가슴을 열띤 시선으로 쳐다보던 그가 짧은 신음을 흘리면서 대번에 정점을 머금었다.

    “으응……!”

    날카로운 성감이 길을 내듯 온몸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아찔해진 그녀가 몸서리치듯 몸을 비틀자, 화희는 정성껏 그림을 그리듯 그녀의 가슴을 입술과 손으로 애무하고 희롱했다.

    그의 말캉말캉하고 뜨거운 혀가 닿는 몸 구석구석마다 뜨겁고 아찔한 성감이 배 속을 달궜다. 화희의 손끝과 혀가 예민한 부분을 동시에 뾰족하게 말아 올리자마자 그녀는 결국 낮은 비명을 질렀다.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초조하게 제 입술을 핥은 화희가 그녀의 다리 사이에 자신의 다리를 끼워 넣으며 하체를 짓눌렀다.

    그의 단단한 허벅지가 다리 사이의 예민한 부분을 압박하는 느낌에 수아는 자꾸 신음이 새어 나와서 입술을 깨물었다. 커다랗고 단단한 남자의 중심이 적나라하게 느껴져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난 신경 쓰지 마요.”

    짧게 목을 울린 화희가 속옷 안으로 손을 미끄러뜨렸다. 수아가 본능적으로 그의 침입을 막으려 다리를 오므리려 했으나 화희는 그녀의 입술을 빨면서 조르는 것처럼 속옷 위를 두드렸다. 그가 전해 주는 감각에 내부가 뜨겁게 젖어 들었다.

    뭉근히 달아오르는 내부를 느낀 그녀는 순간 고개를 저었다.

    내가 이렇게 자극에 약한 타입이었던가? 아니야, 그게 아니라 이 남자니까 가능한 거야.

    희롱하듯 귓불이 핥아지고 가슴이 삼켜지자 조금 남아 있던 그녀의 이성이 완전히 녹아 버렸다. 달콤하고 농염한 자극에 그녀는 조르듯 몸을 비틀면서 그의 손길에 몸을 내맡겼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발끝에 힘이 들어가고 온몸이 비틀리며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그가 힘없이 풀어진 그녀를 황홀한 자극의 정점으로 몰아붙였다.

    “……아!”

    온 신경이 그의 손가락과 입술이 주는 감각만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 아앗!”

    뭉근히 고여 있던 내부의 열기가 둑이 터지듯 온몸을 압도하는 것 같아서 그저 할 수 있는 건 새된 신음을 흘리는 일뿐이었다.

    신음을 참으려 깨문 그녀의 입술에 제 것을 맞댄 채 그가 속삭였다.

    “하아, 똑바로 봐야죠, 내가 누군지.”

    “아, 흐윽!”

    그의 손이 안쪽을 파고드는 순간, 몸 안쪽 가장 깊은 곳이 격렬하게 경련했다. 뜨겁고 날카로운 성감의 물속에 잠긴 수아는 그의 품으로 파고들면서 흐느꼈다.

    그녀의 희열을 같이 느낀 것처럼 거친 숨을 뱉어 낸 화희가 그녀를 감싸듯 빈틈없이 끌어안았다.

    전율의 파도가 밀려간 후, 정신을 차려 보니 수아는 어느새 화희의 몸 위에 포개듯 올려져 있었다. 숨이 가쁜 그녀를 위해 입술을 놓아주었나 싶었는데 눈이 마주치자마자 화희가 그녀의 목덜미를 핥았다. 축축한 혀가 여린 피부를 적시면서 쇄골 위를 지나고 맥박이 뛰는 곳을 이 끝으로 살짝 물었다.

    “……불공평하잖아요. 나만.”

    중얼거린 수아가 그의 가슴팍에 손을 올리자 흠칫한 화희가 살짝 인상을 쓰며 신음을 흘렸다. 의아해서 올려다보자 그는 곤란하다는 듯 웃으면서 그녀의 손목을 잡아채 손가락 끝을 잘근거렸다.

    흐트러진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주던 화희는 이내 목이 마른 것처럼 제 입술을 길게 핥았다. 그리고 달래듯 그녀의 턱을 가볍게 쥐고 입술이며 콧잔등, 귓불, 이마, 보이는 대로 족족 버드 키스를 했다.

    채 가라앉지 않은 숨을 몰아쉰 수아가 뒤늦게 그의 눈가에 촉 짧게 입맞춤을 되돌렸다. 가볍던 키스가 다시 짙어져 버리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렇게 둘은 키스를 되돌리고 서로 쓰다듬으면서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몰랐다.

    * * *

    침대 위에 무릎을 꿇고 양손으로 전화를 받쳐 든 수아는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남자 친구가 생겼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바로 결혼한다는 얘기부터 해야 할까.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아직도 감이 서지 않았지만, 결혼이 코앞인데 더는 미룰 수 없었다.

    한참 고민하던 그녀는 눈 딱 감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자마자 바로 받은 송 여사가 대뜸 언성을 높였다.

    -이게 얼마 만이야? 요즘 왜 이렇게 전화가 뜸하니?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어, 회사 일로 좀 바빴어요, 죄송해요.”

    -회사 일로 바쁜 목소리가 아닌데? 무슨 일이야?

    어떻게 전화 목소리만 듣고도 아시지? 인사를 길게 하면서 결혼에 대해 조금씩 언질을 주려던 계획이 어긋났다.

    역시 엄마는 속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바로 선전 포고하듯 말해 버렸다.

    “엄마, 저기, 나 결혼하려고요.”

    한참이나 핸드폰 너머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초조하게 그녀의 반응을 기다리던 수아는 액정을 확인하고 엄마를 불렀다.

    “……여보세요? 엄마?”

    -아기 옷은 분홍색으로 준비할까, 파란색으로 준비할까? 아, 아직 모르겠구나?

    “네? 아기라니요?”

    -저번 달만 해도 아무 소리 없던 애가 갑자기 결혼이라면 뻔하지. 속도위…….

    “아냐, 엄마! 아직 그게 아니고…… 어쩌다 보니 갑자기 이렇게 됐……. 좋은 사람이에요. 미리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해요. 놀라셨죠?”

    뜻밖의 반응에 당황한 나머지 하마터면 아직 거기까진 아니라고 고백할 뻔했던 수아는 급히 말을 바꿨다. 그녀가 당황하여 더듬거리자 송 여사가 달래듯 조용히 물었다.

    -엄마는 네가 택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대환영이야. 그래서 내 사위는 언제 보여 줄 거니?

    “주말에 새아빠랑 같이 시간 되시면 찾아뵈려고요.”

    -그래, 그래. 새아빠도 무척 좋아하실 거야.

    “네, 그럼…….”

    -잠깐. 근데 뭐 하는 사람이니? 나이는? 언제, 어떻게 만났는데? 어, 반찬은 뭘 좋아한다니? 고기? 해산물?

    침착하게 보였던 송 여사는 결국 속사포처럼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끝날 듯 결코 끝나지 않는 질문에 겨우 대답하고서 전화를 끊고 보니 한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얼마나 목이 탔는지 물을 마시러 방을 나오려던 수아는 하마터면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여기서 뭐 해요?”

    “수아 씨가 비장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는 걸 봤습니다.”

    “엄마한테 결혼한다고 말씀드렸어요.”

    잠시 망설이던 수아를 살펴보던 화희가 불쑥 물었다.

    “언제쯤 찾아뵙는 게 좋을까요?”

    “저기, 괜찮다면 주말에요. 엄마가 놀라실까 봐 자세한 건 말씀 안 드렸어요.”

    “수아 씨 상황을 정확히 모르신다는 거군요. 그럼 내 입장에서 솔직하게 말씀드리도록 하죠.”

    “음, 얼마나 솔직하게요?”

    “내가 수아 씨에게 반해서 일방적으로 결혼하자고 졸랐다고. 수아 씨는 끈질긴 구애에 결혼을 허락한 거죠.”

    일방적으로? 수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예 화희에게 감정이 없다면 모를까, 지금은 아니었다. 다만 감정을 대놓고 인정하기 전에 결혼해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던 것일 뿐이었다.

    ‘좋…….’라는 말실수도 했는데. 게다가 어젠 그렇게 뜨거워 놓고.

    뭔가 마음에 걸린 수아는 눈을 가늘게 뜨며 반박했다.

    “내가 걱정했던 건 다른 거예요. 우리 엄마는 당신 같은 남자가 나를 좋아한다는 게 더 충격일걸요.”

    “나 같은 남자가 어떤 겁니까?”

    “삼미요. 미모에, 미친 재력에, 거기다 미혼. 인기가 많아서 사내 팬 카페도 있다면서요.”

    “그중 수아 씨 어머니께서 뭘 제일 마음에 들어 하실까요?”

    “음, 미모?”

    “그래요, 수아 씨가 어머님을 닮았다면 가능한 일이죠.”

    “내가요? 절대 아니거든요? 난 성격이거든요?”

    아무 표정 없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화희가 갑자기 정색하면서 수아를 흘겼다.

    “지금 농담이 나옵니까? 절체절명의 순간인데. 난 꽤 심각합니다.”

    “그래도 절체절명은 너무하지 않나요?”

    “수아 씨에게 어머니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녀의 표정을 살피던 화희가 갑자기 순간 손을 억세게 틀어쥐었다.

    “고등어를 보면서 울던 수아 씨 얼굴을 잊을 수가 없거든요.”

    근데 왜 손은 이렇게 세게 잡지? 수아가 흠칫 놀라 손을 내려다보자 미간을 찌푸린 화희가 급히 손을 놓았다.

    “아, 미안합니다.”

    “괜찮은데요. ……어? 갑자기 어디 가요?”

    “상견례 준비하러 갑니다.”

    휙 몸을 돌려 바삐 아래로 내려갔던 화희가 다시 돌아와 질문을 퍼부어 댔다.

    “어머님께선 뭘 좋아하시죠? 아, 그럴 필요 없이 선물은 종류별로 전부……. 혹시 어머님이 특별히 싫어하는 인간 유형이 있습니까?”

    그 후로 한 시간 동안이나 그의 질문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수아는 자신을 쫓아다니며 질문을 끝내지 않는 화희를 피해 방으로 숨어들어야만 했다.

    어째 나보다 더 긴장한 것 같잖아.

    문밖에서 문을 두들기다가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기 시작하는 화희를 보며 그녀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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