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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구한 적 없다-116화 (116/118)
  • 제116화

    인어들의 왕비가 인어 사냥꾼에게 잡힌 인어들을 풀어 주다 도리어 잡혀갔을 때, 그 누구도 그런 결말을 예상하지는 못했다.

    그녀는 뛰어난 마법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분명 어렵지 않게 바다로 돌아올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녀가 돌아오지 않자, 바다는 날이 갈수록 흉포해졌다.

    마탑이 기억하기로 그처럼 난폭한 바다는 처음이었다.

    인어들의 성정은 대개 물처럼 온유하여 쉽게 끓어오르지 않으나, 한 번 끓어오르면 가라앉히기 힘든 것도 사실이었다.

    인어 왕의 인내심은 극에 달하여 해역을 지나는 배들을 침몰시키는 것으로도 모자라 뭍으로 해일을 보내려 했고, 그의 자식들이라고 하여 크게 사정이 다른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어머니를 잃을까 불안에 몸서리를 치다, 결국 마탑을 찾아왔다.

    “세이렌 님, 세이렌 님. 듣고 계십니까?”

    “세이렌 님이라면 어머니가 어디 계신지 아실 수 있으시겠지요.”

    “저희는 물을 떠날 수 없는 몸이지만, 어머니의 오랜 친우이신 세이렌 님께서는 자식을 얼마든지 날려 보낼 수 있지 않으십니까.”

    “부디 자비를 베풀어 저희를 한 번만 도와주세요.”

    여섯 인어가 매일같이 울어 대니 마탑이라고 마냥 눈을 감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마탑은 내심 제 오랜 친우가 걱정이 되기 시작한 참이었다.

    ‘이렇게까지 언질이 없을 리 없는데.’

    돌아오지도 않고, 어떠한 연락조차 취하지 못하고 있다니.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태초에 하늘과 바다의 섭리를 공유하고, 그들 종족에게 마법을 전해 준 최초의 인어와 세이렌.

    그것이 인어 왕비와 마탑 세이렌이었다.

    본디 그들을 칭하던 말들이 더 나아가 그들 가족과 종족을 칭하는 말이 되기까지, 그리고 날개 달린 육체를 포기하고 본인이 마탑이라는 일종의 마력체로 현신하여 자연의 일부로 자리하게 되기까지.

    세이렌은 많은 삶과 죽음을 제 친우와 함께 지켜보았다.

    만약 창공의 신이 그였다면, 인어 왕비는 바다의 신으로 비견할 수 있으리라.

    그것은 곧 그녀가 바다를 오래 떠나 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바다에서는 무한에 가까운 삶을 보장할 수 있으나 바다를 떠난다면 무색했던 세월은 배가 되어 그녀를 강타할 것이고, 뙤약볕 아래 던져진 물고기처럼 빠르게 말라가리라.

    그것을 모를 그녀가 아닐 텐데, 어째서 이토록 연락이 없는지.

    답은 생각보다 금세 알 수 있었다.

    결국 인어들의 호소와 불안을 이기지 못한 세이렌이 제 종족 중 한 마리의 몸을 빌려 인어 왕비를 찾아갔을 때.

    “세이렌……?”

    그녀를 쏙 빼닮은 아이가 그녀의 곁에 있었으니까.

    게다가 그녀는 인어의 모습도 아니었다. 뭍에 있을 때보다 훨씬 생기를 잃은 데다, 두 다리를 단 채였다.

    온 바다를 채울 만큼 막대했던 마력은 바다를 오래 떠나 있었던 탓에 작은 웅덩이조차 채우기 버거워할 정도가 되어 있었고, 그 빛깔마저 세이렌이 기억하는 것과는 달랐다.

    “대체 네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인간들의 왕이 나와 새끼를 가지고 싶어 했어. 아마 어떤 생명이 탄생할지 궁금했던 거겠지…….”

    그마저도 확신할 수는 없었던지, 인어는 쓰게 웃었다.

    그녀가 이곳으로 옮겨져 두 다리를 갖고 아이를 낳기까지 겪은 일들을 단편적으로나마 보여 주는 미소였다.

    덕분에 세이렌은 한층 더 답답해졌다.

    “그럼 아이를 낳고 돌아오면 될 게 아닌가?”

    “하지만 이 아이를 봐, 세이렌. 이 애는 인간이야.”

    “그게 뭐가 어쨌다는 거냐.”

    “내가 물로 돌아가면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 인간들의 세계는 우리들의 것보다 훨씬 사납더라고. 부모 없는 아이를 거두지 않아.”

    “그 애의 아비는? 너 혼자 아이를 낳은 것도 아닌데!”

    “……세이렌. 가장 무서운 건 부모 없는 아이들이 정말 부모가 없어서 고아가 되는 게 아니라는 거야.”

    그녀가 떠나면 아이는 아비가 있든 없든 고아나 다름없는 신세가 될 거라는 뜻이다.

    “그게 대수인가? 너는 여기에 있으면 죽게 될 거다. 네 남편과 물의 아이들이 우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나?”

    “왜 생각하지 않았겠어?”

    결국 인어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그 벼려진 목소리가 세이렌보다 스스로를 찌르고 있음은 자명한 일이다.

    “나는 이미 쇠약해졌어. 바다로 완전히 돌아갈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바다로 돌아간다 한들 금세 죽겠지.”

    두 다리를 얻은 순간 그녀는 제 운명을 직감했다. 다시는 바다를 누비던 몸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고.

    그래도 바다로 돌아갈 생각은 있었다. 단지 조금 미뤘을 뿐이다.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만. 아이가 걸을 수 있을 때까지만. 아이가 말할 수 있을 때까지만…….

    정신 차려 보니 아이는 이미 뛰어다니고 있었고, 자신은 죽음을 목전에 두게 되었다.

    “……어차피 완전히 돌아갈 수 없다면 이 아이를 조금이라도 지켜 주고 싶어. 남편과 아이들은 내가 없어도 괜찮겠지만, 이 아이는 아니니까.”

    “널 이렇게 만든 놈의 아이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사랑하게 되었는걸. 내 딸, 내 오필리아……. 두고 온 아이도 이렇게 안아 줄 수 있다면 좋으련만…….”

    목소리가 떨리는가 싶더니, 결국 그녀는 눈물을 보였다.

    아이를 두고는 바다로 떠날 수도, 바다에 두고 온 가족들을 그리지 않을 수도 없었던 탓이다.

    “내가 죽으면 이 아이는 맨몸으로 암초에 던져지는 거나 다름없을 거야. 그러니 세이렌, 네게 이 아이를 부탁하고 싶어.”

    “이 역겨운 곳에 다시 올 일 없다. 끼어들 일도 없고.”

    “아이를 지켜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이 아이가 위험할 때 한 번만 지켜 줘. 내 목숨을 걸고 키운 아이야.”

    “그것참 버거운 목숨값이군.”

    “그래. 이 아이는 내 몫까지 행복해질 테니까.”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얼핏 떨렸다. 아무리 직면한다 한들 죽음은 두려운 것이라.

    여러 감정이 뒤섞인 듯 보이는 목소리는 한참 침묵을 유지하더니, 끝에 가서야 겨우 한 마디를 더 뱉어 냈다.

    “아이를 부탁해, 세이렌.”

    그것이 그녀의 유언이었다.

    * * *

    ‘그것도 시간이 제법 지났겠군.’

    마탑으로 지내며 가장 희미해지는 것은 시간 개념이다.

    잠깐 눈을 돌릴 때마다 시간이 휙휙 지나가 있곤 하는 것은 이제 익숙하다 못해 당연하기까지 한 사실이었다.

    이번에도 그가 잠깐 눈을 붙인 사이 인어 왕비의 인간 아이는 무럭무럭 커서 제 앞으로 돌아왔다.

    붉은 머리칼, 청염이 머무르는 푸른 눈동자. 모두 제 어미를 놀랍도록 닮아, 세이렌은 간만에 제 친구가 그리워졌다.

    ‘네 아이는 잘 컸다, 아멜리아.’

    이제는 제법 는 혼잣말을 되새기며, 마탑은 눈을 감았다.

    그의 친구, 인어 왕비 아멜리아의 말은 옳았다.

    아이는 넘치도록 행복해질 것이다. 그녀의 몫까지.

    * * *

    “……리아, 오필리아!”

    “정신이 드세요?”

    오필리아는 자신을 흔드는 거센 힘에 눈을 떴다. 낯선 천장과 익숙한 얼굴들이 시야에 잡혔다.

    “……예니트? 코르넬리?”

    “하아, 그래도 정신이 잘못된 건 아닌 모양이네……. 쓰러져 있어서 깜짝 놀랐는데.”

    “천만다행이지 딱히 어디 다친 곳도 없어 보이고.”

    “혹시라도 기억 못 하시면 알레한드로 님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나 했다고.”

    두런두런 들리는 말소리가 낯설었다. 분명 자신은 조금 전까지 분홍빛 바다에 서 있었는데.

    그리고 마탑과 이야기를 했고, 잊고 있었던 과거의 기억을 봤고.

    그리고…….

    “오필리아!”

    오필리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코르넬리와 예니트의 눈이 기겁하여 솔방울만 해지는 것이 보였으나 그녀에게는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당장 확인해야 할 일이 있었다.

    “당신 지금 환자입니다, 오필리아!”

    “좀 진정을 취하셔야 해요!”

    “난 괜찮아요. 어디 아픈 게 아니니까.”

    “지금 측정실에서 쓰러져 놓고 그런 말씀이 나오십니까? 거기서 사람이 쓰러진 건 처음이라고요!”

    측정실.

    예니트와 실랑이를 하던 오필리아의 몸짓이 우뚝 멈추었다. 문득 잊고 있었던 것이 떠오른 탓이다.

    두 어린 마법사를 돌아보는 오필리아의 파란 눈동자에 알 수 없는 빛이 서렸다. 측정실에 들어가기 전과는 사뭇 다른 시선.

    “측정 결과는, 나왔나요?”

    “……참 빨리도 물어보십니다.”

    이런 와중에 그게 궁금하냐는 듯, 예니트가 눈을 가늘게 떴다.

    “단순 수치만 따지자면 역대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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