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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구한 적 없다-115화 (115/118)
  • 제115화

    돌이켜 보자면 오필리아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았다.

    어머니가 워낙 어린 나이에 돌아가신 탓도 컸고, 오필리아의 어머니를 입에 올리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탓이다.

    오필리아의 앞에서는 유독 말을 조심하는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뭐랄까.

    ‘제대로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은 느낌이었지.’

    그러니 사람마다 이야기하는 것도 조금씩 달랐다.

    공통된 것은 그녀의 어머니가 궁에 매인 존재였고, 신분이 없어 비천한 취급을 받았다는 것.

    그리고 놀라우리만치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것뿐이었다.

    -폐하께서 그분에 대한 거라면 그렇게 정신을 못 차려 하셨었죠?

    -홀려도 단단히 홀리셨지. 그 외모라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만…….

    -그럼 뭐해요, 오필리아 전하 낳고 5년도 안 돼서 죽었는데.

    오필리아가 사용하던 궁은 그녀의 어머니가 사용하던 궁이었다.

    그러나 총애받는 정부의 궁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외진 곳에 있었고, 심지어 찾아오는 길은 복잡하기까지 해 존재조차 희미했다.

    마치 무언가를 숨기려는 것처럼.

    궁에서 일하던 하녀들은 이를 두고 황제의 소유욕이 상당하다며 떠들어 댔고, 자연히 어린 오필리아의 귀에도 이야기가 들어오곤 했던 것이다.

    그러니 돌이켜 보자면 이상한 일이다.

    오필리아의 어머니가 죽은 것은 적어도 오필리아가 다섯 살은 되었을 즈음인데. 오필리아와 어머니가 따로 산 것도 아닌데.

    ‘왜 여태 어머니에 대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던 거지?’

    어릴 적에는 어머니가 궁금해서라도 종종 하녀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곤 했으나, 자라면서는 그마저도 관심을 끊어 버렸다.

    신분조차 불분명하고, 그토록 사랑했다던 황제가 입에 한 번 올리지도 않는 제 어미를 끌어안고 있어 봐야 쓸 데가 있나.

    잿더미를 끌어안는 것이 차라리 현명하리라.

    그렇게 의구심도 추억하는 마음과 함께 잘라 내었는데.

    ‘다섯 살 정도에 돌아가셨다면 기억나는 것이 한둘 정도는 있을 법도 한데.’

    어째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던 걸까.

    울고 있는 아이를 본 순간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감각과 함께 의구심이, 그리고 깨달음이 돌아왔다.

    자신이 어떻게 어머니를 잊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울고 있는 자신을 어머니가 달래 주었던 것이 떠올랐다.

    -내 딸. 울지 마렴. 엄마는 아픈 게 아니야. 그렇지. 좋은 곳으로 가는 거란다.

    -흑, 흐윽, 좋은 곳……?

    -그래. 슬픔은 잠깐이란다. 너는 엄마를 잊고 더 행복하게 살 거야. 너는 뭍에서 좋은 옷을 입고 태어났으니까.

    오필리아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 그저 가지 않으면 안 되겠느냐며 울기만 했다.

    어머니의 낯에 걸린 난처함이 더욱 짙어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널 두고 가는 내 마음이 무겁구나, 내 딸…….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오필리아의 뺨을 한참이고 쓰다듬더니, 소중히 품에 안기까지 했다.

    -그래도 괜찮아. 괜찮을 거야. ‘그’에게 너를 부탁해 두었으니…….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결국 품에서 아이를 놓을 즈음 여자는 눈물을 보였다.

    -모두 잊고 행복해지렴, 오필리아.

    그 뒤의 기억은 없다. 어머니의 손이 이마에 닿고, 오필리아는 곧장 쓰러지듯 잠들어 버렸으므로.

    그리고 다시 깨어났을 때는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했으며, 빠른 속도로 그녀를 잊어갔다.

    오필리아의 눈앞에 놓인 광경은 그 일환일 뿐이었다.

    원인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저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쥔 오필리아가 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어머니가, 내게 마법을 건 건가요?”

    [네 무의식은 그렇게 말하는구나. 이곳은 네게 거짓을 말할 수 없는 공간. 네가 느끼는 바가 곧 진실일 터.]

    요컨대 짐작을 부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필리아는 마탑의 설명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니까…… 당신이 날 기다린 건 알레이 때문이 아니라, 내 어머니 때문이라는 거죠.”

    [둘 모두인 셈이겠지. 애초에 네 어머니가 아니었더라면 네가 이 자리에 서 있을 성싶으냐?]

    “무슨 뜻이죠?”

    [거래를 건다고 해서 내가 무조건 응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섭리를 거스르는 것이라면 더더욱.]

    조건식 마법에 응하지 않는 방법은 간단했다. 그 자리에서 시전자의 목숨을 빼앗아가는 것이다.

    [내 어린 주인은 거래의 대가가 그 정도에 그친 것을 감사히 여겨야 할 터. 네 어머니의 부탁이 아니었더라면 응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너그러운 짓을 했는지 아느냐며 마탑이 재는 체를 했다.

    그러나 오필리아의 사고는 옆에서 거들먹거리는 마탑이 아니라, 이미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 어린 날의 기억에 머물러 있었다.

    뒤늦게 떠오른 것들이 혼란을 야기했다.

    마탑을 친우로 두었던, 그리고 어린 오필리아의 기억을 지우고 떠난 어머니.

    “……내 어머니는 당신의 예전 주인이라도 되었던 건가요?”

    [나는 주인을 친우로 삼지 않는다.]

    “하지만 마탑과 소통할 수 있는 건 마탑의 주인밖에 없다고 들었어요.”

    [나와 정신을 공유하지 않고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건 나와 연배가 비슷한 자들뿐이니까.]

    바꾸어 말하자면 오필리아의 어머니는 마탑과 나이가 비슷하다는 뜻이 되었다.

    “내 어머니는…… 인간이, 아니었던 건가요?”

    [참 이르게도 깨닫는구나.]

    한심하다는 말과 함께, 마탑이 오필리아의 어깨를 잡아 툭 밀었다.

    그리 강한 힘도 아니었건만 오필리아는 힘없이 밀려 나가, 발을 적시고 있던 물에 잠기고 말았다.

    얕았던 수면 탓에 엉덩방아를 찧었으나, 무의식의 공간이라 그런지 아프지는 않았다.

    [네 어머니는 이제 몇 남지 않은 인어들의 왕비였다. 그가 죽고 나서 나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인어 왕밖에는 남지 않았지. 애석한 일이야.]

    “말도 안 돼…….”

    [의문해 본 적 없느냐? 네가 왜 인어들의 막내 공주와 그토록 닮았는지. 어째서 네가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고, 어째서 배우지 않은 마법식이 눈에 훤히 보였던지.]

    “그건, 그냥.”

    오필리아는 거기까지 말했다가, 도로 입을 닫았다. 무어라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저 우연이라 생각했다.

    아리엘과 닮은 것은 우연,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타고난 기질, 마법식이 눈에 보였던 것은 황족이라서라고.

    하지만 설명할 길 없는 우연은 동시에 운명이라 쓰이기도 한다.

    오필리아의 부정이 희미해져 갈 즈음, 마탑이 그린 듯 아름다운 미소와 함께 다가와 오필리아의 이마를 짚었다.

    [의심하지 마라. 나는 언제나 너의 편이다. 이번에도 내 덕을 크게 보지 않았느냐.]

    “시간을 돌린 것이라면 알레이가-”

    [무슨 소리냐. 편지 말이다.]

    마탑이 싱글거리며 뿌듯하게 말했다.

    [그걸 보내느라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느냐? 몸이 잠들어 있어서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단 말이다.]

    “……편지라면, 혹시 임시 신전에 세이렌을 시켜 보낸 편지?”

    [그래!]

    “그걸 보낸 게 당신이셨다고요?”

    [운명을 속이기에 아주 완벽한 장치였지!]

    오필리아는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잔뜩 신이 난 듯 보이는 마탑과 달리 그녀는 당장 멱살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금 누구는 그 편지 때문에 범인을 찾느라 고생인데, 정작 범인은 다 알면서 모르쇠를 하고 있었다니!

    [좋게 생각하거라. 내 덕에 이렇게 마탑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지 않았느냐?]

    “저는 절벽에서 떨어졌고, 알레이는 피를 토했습니다. 숲은 절반이 타 버렸고요. 그게 무사히입니까?”

    [죽은 이가 없다면 되었지.]

    “그게 무슨 궤변-”

    [자, 자. 그만. 어미를 닮아 성격이 상당하구나.]

    마탑이 손뼉을 짝짝 두어 번 치자, 거짓말처럼 오필리아의 목소리가 사라져 버렸다.

    목소리를 잃은 오필리아가 표정으로 항의했지만 그 역시 일축해 버릴 따름이었고.

    오필리아의 이마를 쓰다듬듯 툭 짚은 마탑이 한 걸음 물러나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인어의 비늘이 네게 건 마법은 이제 풀렸다. 내가 널 기다린 이유가 그것이었으니, 우리가 더는 함께할 필요도 없겠지.]

    마탑은 제 친우의 아이를 애정 어린 눈동자로 내려다보았다.

    상대의 붉은 머리칼과 파란 눈동자가 이제는 흐릿해진 기억과 겹쳐졌다.

    [행복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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