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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구한 적 없다-114화 (114/118)
  • 제114화

    그것은 오필리아가 마탑에 완전히 익숙해졌을 즈음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아침마다 침대 옆의 인기척을 느끼며 일어나는 것이 더는 낯설지 않아졌을 무렵.

    오필리아는 예정되어 있던 대로 마력 친화력 검사를 했다.

    “미리 말씀드리는데, 마력에 대한 친화력은 그냥 말 그대로 자질일 뿐이에요, 자질. 대부분 어느 정도의 친화력을 가지고 있고, 이게 심각하게 없는 수준인 사람은 거의 없거든요.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오필리아가 마법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형식적인-”

    “이게 지금 몇 번째 그 소리냐. 아주 귀에서 피 나겠다, 피 나겠어!”

    듣다 못한 예니트가 코르넬리의 등짝을 한 대 퍽 친 뒤에야 코르넬리는 겨우 잠잠해졌다. 하지만 안절부절못하는 듯한 투는 여전했다.

    아마 오필리아의 친화력이 낮게 나와서 그녀가 실망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탓이리라.

    오필리아는 빙긋 웃으며 코르넬리를 진정시켰다.

    “난 친화력이 낮게 나와도 괜찮으니까, 진정해요.”

    “오필리아가 그렇게 말한다면…….”

    “애도 아니고, 참.”

    성가시다며 코르넬리를 밀어낸 예니트가 친화력 측정 장소로 오필리아를 안내하며 혀를 찼다.

    “측정 방법이야 코르넬리가 입이 마르도록 얘기했으니 제가 더 얘기하진 않겠습니다.”

    “그래요. 원 안에 들어가서 측정석에 손을 올리면 된다고 했죠.”

    “맞습니다. 그러면 곧장 떠오르는 그림이 있을 겁니다. 친화력과 별 연관은 없지만, 대개는 그것이 마법사들의 진로를 결정짓곤 하죠.”

    마법사라고 하여 모두가 같은 계열을 공부하는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회복 마법에 특화되어 있는가 하면 또 누군가는 절단 마법에 특화되어 있는 것이다.

    “코르넬리는 측정할 때 눈이 내리는 걸 봤다더라고요.”

    “예니트는요?”

    “저는 말씀드리기 썩 유쾌하지만은 않은 내용을 봤습니다. 그런 경우는 대개 공격 마법으로 전공을 정하는 편이죠.”

    자신은 염동력을 전공했으니 그나마 유한 쪽이었다며, 예니트가 잡담을 이어 갔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들으며 오필리아는 다른 생각을 했다.

    ‘알레이는 무얼 봤을까?’

    하고.

    그러나 예니트에게 그걸 물어보기도 전에, 그들은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자, 이다음은 혼자 들어가시는 겁니다.”

    “생각보다 어둡네요.”

    아닌 게 아니라, 예니트가 가리킨 방 안은 밤이 아닌데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암흑만이 자리할 뿐.

    그러나 이제 와서 그런 것이 두려울 리 없다. 오필리아는 예니트를 뒤로 하고 방 안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놀랍게도 그토록 어두워 보였던 방 안은, 들어가자 어슴푸레한 속에 모든 구조물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눈으로 본다기보다는 느낀다고 하는 쪽이 옳았다.

    ‘안에 들어가면 괜찮을 거라더니, 정말이네.’

    눈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공간을 파악하는 것은 처음이라, 오필리아는 낯선 기분을 느끼며 방 중심에 자리한 측정석으로 다가갔다.

    ‘이 주변만 공기가 다른 것 같은데…….’

    착각인 걸까.

    오필리아는 잠깐의 위화감을 떨치고, 중앙의 측정석에 손을 올렸다.

    그 순간.

    딛고 선 땅이 일렁이는 듯한 감각이 해일처럼 휘몰아쳐 오필리아를 덮쳤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생명의 맥동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고,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분명 마법사들이 해 준 말에 이런 변화는 없었다.

    곧게 서 있기조차 어렵게 느껴진다거나, 주변 환경이 갑작스럽게 변하는 것 같은 느낌은.

    혹시 형상이 머릿속에 떠오른다는 게, 이런 변화를 거친 뒤의 일인 걸까?

    오필리아는 저도 모르게 의문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는.

    [이제야 만나는군.]

    완전히 새로운 풍경이 오필리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닥과 천장의 구분이 없고, 끝도 보이지 않는 어떤 공간.

    느껴지는 것은 오직 발끝을 살며시 감싸는 분홍빛 물살과.

    “……당신은 누구죠?”

    어떤 아름다운 사람뿐이었다.

    * * *

    오필리아는 이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렸다.

    그도 그럴 게, 공간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었다.

    아무리 오필리아가 마법에 문외한이라고는 해도 이런 공간에 분홍빛 물살이라니.

    ‘환각인가?’

    [의심은 훌륭한 미덕이나, 네가 경험하지 못한 걸 모두 그렇게 치부해서는 안 되지.]

    “속마음이 당신에게 들리는 걸 보니 여긴 내 무의식이라도 되는 모양이군요.”

    [……보통은 내가 전능해서 그렇다는 생각을 하지 않던가?]

    “나는 신자가 아니라서요.”

    오필리아가 그렇게 대꾸하며 맞은편의 사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상대는 아주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그것 말고는 달리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뜻이다.

    상대는 오필리아가 생각하는 미의 기준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목소리는 꿈속에서 하프를 뜯는 것처럼 몽환적이었으며, 외관과 목소리 모두 중성적인 느낌이 났다.

    상대의 머리칼은 길었으나 오필리아는 그것이 제가 긴 머리칼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내 속마음을 느낄 수 있고, 완벽하게 내 취향으로 맞추어진 외모라면 내 무의식이 반영되었다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이겠죠.”

    내 말이 틀리냐는 듯 오필리아가 상대를 응시하자, 상대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얼빠진 표정 좀 구경하려고 했더니, 영 글렀군.]

    “기대에 부응해 주지 못해 유감스럽군요.”

    [아니야. 만난 것만으로도 기쁘구나.]

    어느새 생긴 티 테이블 앞에 자리를 잡고 앉은 상대가 손을 휘저었다.

    [나는 너와 만나기를 오래도록 기다려 왔으니 말이다.]

    “나를 아는 모양이군요.”

    [내 어린 주인이 너를 사랑해서 무슨 짓을 저질렀는데 그걸 모르겠느냐.]

    상대의 말을 들은 오필리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는데…….”

    [막상 마주하니 놀랍나?]

    “당신이 잊힌 시간을 기억해서 놀랐습니다.”

    [내 어린 주인도 비슷한 말을 했지. 제가 거래한 게 누구인지도 모르고 말이야.]

    조건식 마법은 거래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누구와의 거래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었다.

    오필리아는 상대, 마탑 세이렌의 말을 듣고 문득 반문했다.

    “혹시 당신은 신인 건가요?”

    [신자는 아니라더니.]

    “허세 좀 부려 봤습니다.”

    솔직한 대답에 상대의 미소가 깊어졌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전능한 칭호를 받을 법하지는 않다. 필멸자들이 나를 무엇이라 칭하든, 나는 고작 이 탑에 묶여 있을 뿐이니.]

    완연한 부정도 긍정도 아닌 대답.

    [하지만 한 가지는 확언해 줄 수 있구나. 내가 너희들의 모든 시간을 기억한다는 것을. 그리하여 오래 너를 기다렸다는 것을.]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네게 걸려 있는 마법과, 그보다 더 오랜 소망 때문이지.]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오필리아가 서 있는 곳을 가리켰다.

    비현실적인 연분홍빛 물살이 복사뼈를 건드리고 있는 장면을.

    [너희들이 측정석이라 부르는 물건은 나의 정신과 너희들의 무의식을 잠시나마 이어주는 매개이지. 그래서 대개는 그 찰나에 어떤 장면을 본다고 하더구나.]

    그리고 그것은 무의식을 통해 잠재되어 있던 개개인의 본질을 잠시 엿본 것이라고, 마탑은 설명했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무의식의 표상이었으니 진로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을 수밖에.

    [그렇다면, 하나 묻지. 네 무의식은 무엇처럼 보이느냐?]

    “……바다. 바다가 아닌가요.”

    바닥에는 모래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고, 바다 특유의 짠내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오필리아는 어째서인지 이 공간에 온 순간 바다를 떠올렸다.

    단지 비현실적인 모양새라서 잊고 있었을 뿐.

    [네가 그렇게 느낀다면, 네 대답이 옳을 것이다. 이곳은 너의 공간이니까.]

    “그것이 무슨 상관이-”

    [내 오랜 친우가 죽었을 때, 나는 그의 유해에 걸고 약속했다. 그가 남긴 아이를 지키겠노라고.]

    말이 이어지며, 공간이 바뀌었다. 그것은 오필리아가 잊고 있던, 아니, 필사적으로 잊어야만 했던 어떤 기억을 드러내고 있었다.

    “엄마, 엄마……!”

    욕조에 누운 어느 여인과, 그 앞에서 울고 있는 어린아이.

    그것은 어린 오필리아의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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