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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구한 적 없다-111화 (111/118)

제111화

소문이라는 게 본디 자극적인 쪽이 더 많이 퍼지기 마련인지라, 소문은 날이 갈수록 몸집을 키워 갔다.

“그 이야기 들었어? 알레한드로 님께서 어떤 여자랑 돌아오셨다는 이야기?”

“들었어! 아니, 그렇게 여자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시더니. 밖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여자를 데려오신 걸까?”

“나도 궁금하다. 그렇잖아도 알레한드로 님께 관심이 있었던 애들은 다 기가 죽어 있더라. 약혼자라며?”

“약혼자래?”

“결혼하려는 게 아니면 왜 같이 탑으로 돌아왔겠어! 알레한드로 님은 어디든 갈 수 있는데.”

“맞네, 맞네!”

“나도 들었는데, 약혼녀 분이 임신을 한 것 같다더라고.”

“임신까지?”

“입덧을 막 하더라는데?”

“세상에!”

“아마 얼른 식을 올리려고 마탑으로 데려오신 게 아닐까?”

“그게 맞는 것 같아! 사이가 그렇게 좋으시다며!”

“웬일이니, 웬일이야!”

그렇게 발 없는 말은 부풀려질 대로 부풀려졌다.

그렇잖아도 작은 소식에도 쉽게 와글거리는 것이 마탑이었던 탓에 소란한 기류가 온 마탑을 휩쓸었지만, 우습게도 정작 마탑으로 돌아온 당사자들은 그 소문을 모르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문을 소곤거리기는 해도 차마 직접 물어볼 용기가 있는 사람이 없었던 데다, 원래 연애 문제라는 건 직접 나서기보다는 수군거리면서 지켜보는 게 더 재밌는 법이었던 탓에.

물론 돌아온 이들도 마탑이 근래 들어 유독 소란하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알레한드로의 귀환에 소란을 떠는 것이리라 대수롭지 않게 넘긴 탓도 있었다.

이 소문을 제일 먼저 알아챈 것은 코르넬리였다.

다른 친구의 연구실에 놀러갔다가, 연구는 뒷전이고 마탑주의 연인에 대한 이야기로 저들끼리 이야기꽃을 피운 장면을 목격해 버린 까닭이었다.

이때, 만약 들은 사람이 예니트였더라면 이런 반응이 나왔을 것이다.

“뭐라는 거야, 이 멍청이들이!”

라고 소리치며 삼삼오오 모여 있던 테이블을 마법으로 뒤엎어 버리는 것.

하지만 코르넬리는 그럴 성정이 되지 못했다.

그 특유의 유약하고 매사에 수긍이 빠른 성격은, 알레한드로의 귀환까지 함께한 당사자임에도 이런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알레한드로 님이 언제 오필리아와 그런 관계가 되신 거지?!’

하고.

그는 소문을 철석같이 믿었다. 피앙세라는 부분부터, 임신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그리고 이 사실을 꽁꽁 숨겨 온 알레한드로와 오필리아, 두 사람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까지 비밀로 하신 거람!’

코르넬리는 성격은 유약할지라도 행동만큼은 잽싼 사람이었다.

그는 당장 알레한드로의 집무실로 쳐들어갔다.

“알레한드로 님! 제가 오늘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아세요? 알레한드로 님께서 오필리아와 약혼 관계이고, 오필리아는 혼전 임신까지 했다던데 어떻게 이런 걸 저한테까지 숨기실 수가-”

속사포로 와르르 말을 쏟아 내던 코르넬리의 입술이 우뚝 멈추었다.

한 발 늦게 방 안의 얼어붙은 기류를 느낀 까닭이었다.

때마침 그때 알레한드로의 집무실에는 알레한드로 본인 뿐만 아니라 오필리아, 예니트까지 있었다.

같은 모양으로 경직된 세 사람의 시선이 코르넬리에게 꽂혔다.

1초, 2초, 3초.

쾅. 코르넬리의 등 뒤로 문이 닫혔다. 손댄 이가 없었으니, 그것이 알레한드로의 소행임을 의심할 사람도 없었다.

철컥. 문이 잠기고, 알레한드로가 입을 열었다.

“그 이야기, 다시 해 봐. 코르넬리.”

* * *

모든 상황을 알게 된 후, 알레한드로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했군.”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할지 모르겠네요. 헛구역질을 한 건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서였는데.”

오필리아가 며칠 전의 일을 떠올리고는 말했다.

마탑은 지리적 특성상 주로 해산물 요리가 식탁에 오르곤 했다. 그리고 이는 비위가 약한 오필리아에게는 다소 고역인 일이었다.

어패류는 거의 입에 대지 못하고, 그나마 익힌 생선이나 조금 먹을 수 있는 정도일까.

그러나 대부분 비린내를 잡기 위해 향신료를 강하게 사용했고, 자연히 오필리아는 헛구역질을 하며 음식을 마다하게 되었다.

-나는, 속이 안 좋아서. 우욱, 다음에 먹을게요.

그랬던 것뿐이었는데, 이 사실이 소문을 타고 가니 임신이 되어 버렸다.

“정작 우리는 손이나 잡은 게 고작인데 말이에요.”

다시 생각해도 우습다는 듯, 오필리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녀가 알레한드로의 집무실에 와 있었던 데에는 사실 소문과 정확히 반대되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알레한드로가 마탑에 온 이래로 오필리아를 계속해서 피하기 시작했다는 부분이었다.

그렇잖아도 라딘에서 충분히 알레한드로의 도망을 경험한 오필리아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예니트에게 미리 협조를 구해 집무실을 급습했던 것이다.

-알레이, 얘기 좀 하죠. 이번에도 도망치면 앞으로 내 얼굴을 보지 않겠다는 것으로 알아듣겠어요.

이렇게 나오니 알레한드로도 달리 답이 없었다. 그는 꼼짝없이 붙잡혀 피한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신전으로 편지를 보낸 사람이 있다는 것부터, 혹시라도 오필리아를 노릴지 모르니 거리를 두려 했다는 것까지.

그런데.

“기껏 피한 게 아무 소용이 없어지다니…….”

알레한드로는 다소 의기소침해졌다.

그도 그럴 게, 알레한드로는 정말 열심히 참아 왔던 것이다.

지나가다 오필리아의 방문이 보여도 두드리고 싶다는 욕구를 꾹 눌렀고, 오필리아와 함께 식사하거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욕망은 더욱 힘껏 눌렀다.

기억을 되찾으며 그녀를 사랑해 온 시간이 길어진 만큼 그리움은 배가 되었는데 닿을 수 없다니 고문도 그런 고문이 없었다.

거의 허벅지를 꼬집어 가며 견뎌 온 고통이었는데, 정작 바깥에서는 결혼이니 뭐니 이야기가 떠돌다니.

“제가 멍청했습니다. 조금 더 처신을 잘했어야 했는데. 하다못해 소문에 조금 더 귀를 기울였더라면,”

“그럼 뭔가 달라지는 게 있나요? 소문은 이미 퍼졌는데.”

“그래도 뭔가 조치를,”

“우리 관계를 부정하기라도 하려고요?”

알레한드로는 입을 딱 다물었다. 그는 유독 연애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어리숙했다.

이미 지난 생에서 이런 수군거림과 연애, 그리고 결혼 모두를 겪어 본 오필리아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지만 말이다.

“난 오히려 좋아요. 이 정도는 귀여운 관심이잖아요. 다들 당신을 좋아하네요. 내가 예전에 염문설이 퍼졌을 때는 어떤 소리를 들었는지 알아요? 남자를 유혹해서 한 자리 꿰차려고 내가 밤에,”

“됐습니다. 거기까지만 듣겠습니다.”

“왜요? 더 말해 줄 수 있는데.”

“사양하겠습니다.”

알레한드로의 낯이 조금 전보다 아주 미묘하게 더 구겨졌다.

오필리아는 몸도 말도 굉장히 솔직한 남자를 웃으며 바라보았다. 놀리는 건 이 정도면 됐고.

“어쨌든, 알레이.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 정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그리고 사실 조금 걱정하기도 했거든요.”

“무엇을?”

“마탑에 와 보니까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새삼 느껴져서요.”

오필리아가 스치는 모두가 알레한드로를 사랑했다.

그들은 좋은 스승이자 불세출의 천재인 알레한드로에게 경애를 품고 있었고, 자연히 주위에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그냥…… 당신이 날 사랑할 이유 같은 건 하나도 없어 보였어요.”

함께 마탑까지 오며 유대는 생길 수 있었겠으나, 유대가 반드시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여 오필리아는 생각했다. 만약 알레한드로가 유대를 잠깐 사랑으로 착각한 건 아닐까.

‘라딘에서는 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아니니까.’

사람의 마음은 변하기 마련이고, 감정은 착각하기 너무 쉬운 개념이다.

그러니 알레한드로가 뒤늦게 착각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을 피하고 있다면.

“그렇다면 제대로 이야기를 하고 끝내려고 했죠.”

“그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그리고 알레한드로는 난생 처음으로 제 뺨을 후려갈기고 싶어졌다.

“내가 감정 하나 자각 못 하는 얼간이로 보이는 겁니까? 나는, 오히려 당신이 날 마음에 들어 할 이유가 조금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알레한드로가 괴로움에 낯을 구기는 찰나, 그를 물끄러미 지켜보던 오필리아가 입술을 뗐다.

“알레이, 난 당신 얼굴이 마음에 들어요.”

“……잘 관리하겠습니다.”

“손도 마음에 들어요. 곧고 예뻐서.”

오필리아의 손이 알레한드로의 것을 감쌌다.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지며 그물처럼 얽혀 들었다.

가까워진 손을 따라 그들의 몸도, 낯도 가까워졌다.

“목소리도 좋아해요. 가끔 콧노래 부르는 것, 듣기 좋거든요. 성격도 귀엽다고 생각하고. 찡그리는 게 특히 귀여워서 장난을 치고 싶어지거든요.”

알레한드로의 시선이 맞잡은 손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돌아와 코앞의 새파란 눈동자를 마주했다.

나직한 목소리가 속삭이듯 타박을 건넸다.

“아주 장난감 취급이십니다.”

벽안을 담은 눈매가 가늘게 휘어졌다.

“그런 나를 좋아하잖아요.”

“그걸 잘 알고 있는 점까지도 마음에 듭니다.”

속삭임 끝에 콧날이 겹치고, 입술이 맞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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