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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구한 적 없다-110화 (110/118)
  • 제110화

    알레한드로의 귀환은 마탑을 떠들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니, 이미 떠들썩해져 있었다고 해야 하나.

    “알레한드로 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탑이 드디어 깨어났더군요! 대체 어디서 어떻게 지내셨던 건지……!”

    오필리아는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맞는 것 같은 환대에 놀라 알레한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알레한드로는 이런 반응이 익숙하다는 듯 웃고 있을 뿐이었다.

    “이야기하자면 기니 다음에 이야기하지. 그보다 손님이 있으니 맞이해 주지 않겠어?”

    “아, 네! 물론이지요. 실례가 아니라면 존함이……?”

    “오필리아라고 부르면 되네.”

    오필리아가 말을 받자, 이름을 물어본 상대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마탑 최고층의 내부 살림을 총괄하는 사람인 건지, 그는 싹싹하게 웃으며 오필리아에게 방을 안내해 주었다.

    “자, 이쪽입니다. 따라오시지요.”

    “알겠네.”

    그를 따라가며, 오필리아는 흘끔 뒤를 돌아보았다.

    개선장군이나 다름없는 알레한드로와, 개선장군의 졸병이었던 예니트, 코르넬리가 어깨를 으쓱하는 것이 보였다.

    “예니트! 밖에서 지내더니 어떻게 알레한드로 님을 만나게 된 거야!”

    “코르넬리 네가 갈 때까지만 해도 정말 알레한드로 님이 계실 줄 몰랐는데, 마탑이 깨어날 줄 누가 알았겠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 좀 해 봐.”

    “큼큼, 흠, 이야기 전에 목이 좀 마른데.”

    “물, 물 가져올게!”

    “달달한 게 좀 마시고 싶고.”

    “거기 주스 없어?”

    “먼 길을 왔더니 다리가 다 아파.”

    “소파!”

    거들먹거리는 코르넬리 주위로 잔이며 의자 따위가 날아다녔다.

    코르넬리 또래로 보이는 젊은 마법사들은 코르넬리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라면 간도 쓸개도 빼 줄 의향이 있는 모양이었다.

    “멍청이 놈들…….”

    그 모습을 보며 예니트는 다소 질린 것 같은 표정을 했지만, 제게 내밀어지는 얼음 잔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저 둘이 상급 이상의 마법사들 중에서는 제일 어리다고 했던가.’

    마탑에서 상급반을 졸업하면 마탑의 최상층에 출입할 수 있었다.

    그들은 간부나 다름없는 직급으로 따로 대우를 받고, 상급 졸업반도 그 정도 열에는 끼워 주는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개중에서는 예니트가 가장 먼저 졸업했고, 코르넬리는 이제 졸업만을 앞두고 있다고.

    그러니 젊은 마법사들은 알레한드로를 데리러 갈 기회조차 없었으리라.

    코르넬리와 예니트를 부러워하며 이야기를 조르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렇게 환대받는 건 좋지만.’

    오필리아의 시선이 알레한드로에게로 옮겨갔다.

    그는 청년 마법사들이 와글와글 모여 삐약거리게 내버려 두고, 그 본인은 또 다른 간부직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무사히 귀환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알레한드로 님.”

    “내가 없는 동안 고생이 많았다, 메르시아.”

    “당연한 일일 뿐인 것을요. 이제 돌아오셨으니 저도 휴가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메르시아라는 청년은 사람 좋은 얼굴로 미소 지으며 알레한드로와 각자의 근황을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얼핏 봐서는 딱히 이상하다고 말할 점을 꼽기도 어려워 보이는 장면이었지만, 오필리아는 거기서 위화감을 느꼈다.

    ‘젊은 마법사들은 저렇게 잔뜩 뛰어 나왔는데.’

    어째서 간부직은 메르시아라는 사람밖에 나오지 않은 거지?

    그녀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위화감이 더욱 선명하게 와닿았다.

    일전 카델리아의 소풍에 억지로 함께 따라나섰다가 돌아왔을 때.

    자신을 기다리는 것은 자신이 돌아와야 불을 끌 수 있는 제 궁의 시녀 하나뿐이었다.

    -어서 오세요, 전하! 침대를 데워 두었어요.

    -목욕부터 하시죠! 목욕물이 준비되어 있답니다!

    왁자지껄하게 카델리아를 반기는 인파와, 졸음이 가득 낀 눈으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시녀 한 명.

    초라함이 달리 소슬하게 느껴지지도 않았지만, 이런 상황을 맞이하니 새삼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 것은 그저 기우일 뿐일까.

    ‘흑마법을 썼다고 오해받고 있다고 했지.’

    하지만 이렇게 귀환했으니 그 오해도 곧 풀릴 것이다. 무엇보다 알레한드로는 지난 생에도 무사히 마탑으로 귀환해 잘 살지 않았던가.

    ‘별일 없겠지…….’

    오필리아는 불길함을 털어 내며 시선을 거두려 했다. 문제는 조금 늦었다는 것이었지만.

    “……!”

    알레한드로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렇게 빤히 쳐다봤으니 마주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지도 모르겠지만.

    시선이 마주친 알레한드로가 빙긋 눈을 휘어 웃었다. 반듯한 뺨이 움푹 파이고, 입매가 부드러운 호선을 그었다.

    별것 아닌 마주침인데도 그 모습에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은 왜일까?

    ‘알레이가 너무 인상을 찌푸리고 살아서 그런가.’

    뺨부터 목까지가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오필리아는 마주 웃어 주는 것도 잊고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때마침 그녀에게 방을 안내하던 사람이 몇 걸음 앞서 가고 있었기에, 급히 자리를 피할 이유는 충분했다.

    오필리아는 서둘러 도망쳤다.

    * * *

    탁탁탁.

    오필리아가 돌계단을 후다닥 뛰어 사라지자, 멀어지는 그림자를 따라 돌계단 위로 새싹이 하나둘씩 돋아났다.

    마탑의 소행이었다.

    슬쩍 미간을 좁혔다가 푼 알레한드로가 마탑에게 말을 던졌다.

    ‘세이렌, 너도 오필리아가 마음에 드나?’

    [마음에 들 게 있느냐? 널 죄짓게 만든 여자를.]

    ‘그럼 저 새싹은 뭐지? 네가 기분이 좋을 때나 저런 걸 만드는 걸 모르지 않는데.’

    [널 돌아오게 만든 여자이기도 하니까.]

    ‘솔직하지 못하긴.’

    알레한드로가 속으로 픽 웃었다. 마탑은 오랜 시간을 살아왔음에도 표현에 서투른 감이 있었다.

    그러나 모든 생각과 감정을 마탑과 공유하는 알레한드로에게 마탑의 진의를 알아내기란 눈 감고 제 손가락을 세어 보는 일보다도 쉬웠다.

    마탑은 그 무엇보다도 강력하지만, 주인이 없다면 의지를 행할 수 없었다.

    그러니 주인이 없는 동안에는 끝없이 잠을 잘 수밖에 없는데, 그 무력한 잠이 끝난 것에 마탑은 몹시 기뻐하고 있었다.

    [얼마 자지도 않았는데 탑 상태가 말이 아니야. 네가 얼마나 막중한 임무를 저버리고 도망간 건지 알겠느냐?]

    ‘네가 잠드는 건 세대가 바뀔 때면 늘 겪는 일이잖아. 핀잔은.’

    기뻐하는 것의 표현이 타박이라니 참 둔한 치였다.

    마음 같아서는 귀환을 기념하여 실컷 놀려 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안타깝게도 알레한드로는 그럴 정신이 없었다.

    바로 눈앞의 메르시아 때문에.

    오필리아가 느낀 위화감을 알레한드로라고 느끼지 못했을 리 없다.

    ‘애초에 나는 또래에게 좀 더 인기가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간부직에서 메르시아 한 명만이 나와 반기는 것은 박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지난 생에도 겪은 일이었다.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다.

    단지 한 가지 다른 점이 발목을 잡았다.

    ‘마탑에서 임시 신전으로 편지를 보냈지.’

    과연 그게 누구일까.

    마탑에게 물어도 대답은 없었다.

    물론 마탑으로 돌아온 이상 알레한드로를 위협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그에게 흑마법을 썼다는 오해가 있다고는 해도 시간이 지나면 곧 풀릴 문제였다.

    하지만 작정하고 그를 위협하려는 상대가 있다면 그건 별개의 문제였다.

    알레한드로는 너무 막강하니 오필리아를 위협한다는 선택지가 나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은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오필리아와 거리를 좀 두는 게 좋겠군.’

    알레한드로는 정말 마지못해 생각했다.

    마음 같아서는 오필리아에게서 한 시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지만, 일부러 그녀를 먼저 방으로 보낸 것도 그 연장선이었다.

    마탑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의 특성상 소문은 잘 퍼지고 외부인은 관심을 많이 받기 마련이기에.

    메르시아도 내심 궁금한 눈치로 질문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함께 오신 그 여자분은 누구십니까?”

    “밖에 있을 때 도움을 좀 받은 사람. 나와 별 관계는 없고, 은신할 곳이 필요하다기에 모셨다.”

    알레한드로는 딱딱하게 대답했다. 오필리아와 자신은 별 관계가 아니라고 선을 긋기까지 했다.

    문제는 그것이 역효과를 냈다는 점이다.

    ‘별 관계가 있으시군.’

    ‘아까도 환히 웃으시던데.’

    ‘교제하고 계신 것 아냐?’

    ‘곧 결혼하신다에 내 마력석 전부를 걸겠어.’

    ‘받고 내 졸업 논문도 걸지.’

    알레한드로의 말을 들은 그 자리의 모든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생각은 곧 소문이 되어 마탑 전체로 퍼져 나갔다.

    마탑의 주인이, 피앙세를 데려왔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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