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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구한 적 없다-103화 (103/118)
  • 제103화

    생각이 그에 닿자 알레이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눈물과 회한이 같은 속도로 차올랐다.

    마른 짚더미처럼 꺾인 몸이 비틀거리며 두어 걸음 물러섰다.

    절망은 보기보다 고요했다. 사신의 낫이 그리는 궤도가 으레 그러하듯 첨예하고 고통스러울 뿐.

    호흡이 괴로워 알레이는 손으로 하관을 가렸다.

    세이렌들이 열심히 날갯짓을 한 덕분인지 불길은 거의 사그라들어, 그를 괴롭게 할 연기는 이제 흔적조차 없었을 텐데도.

    들숨에 섞이는 후회가 폐부를 깊게 찔렀다.

    내상을 입을 것을 각오하고 마법을 썼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까. 아니, 차라리 그때 이안을 죽였더라면.

    아니면 제가 이곳에 걸음하지 않았더라면. 제가 붙잡히지 않았더라면. 오필리아가 죽을 일은 없지 않았을까…….

    알레이는 고개를 떨어트린 채 한참을 서 있었다. 불이 꺼지고 백주처럼 밝았던 숲이 다시 본래의 어둠을 되찾을 때까지.

    정신을 차릴 즈음 이안은 사라져 있었다. 그 역시 오필리아의 죽음에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 오필리아의 유해라도 찾아보겠다던 목소리가 문득 기억이 났다.

    알레이는 풍경(風磬) 흔들리듯 걸어 절벽으로 다가섰다.

    주름이 사납게 잡힌 새카만 바다가 꾸역꾸역 암초를 핥는 것이 보였다. 가파른 절벽 아래의 풍경이 얼마나 험악한지도.

    이안의 말마따나 평범한 인간인 오필리아라면 여기서 떨어져서 살아남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다시 한번 깨달음이 찾아들었다.

    ‘오필리아는 죽었다.’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새롭게 흘러내리는 눈물과 빠르게 말라가는 뺨이 낯설었다.

    뜨거운 눈시울이 제 것이 아닌 것만 같다.

    이성과 감정 사이의 괴리가 컸던 탓이다. 부유한 정신이 뇌리를 검게 만들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던, 바다조차 가를 수 있었던 마법사는 고작 한 명의 죽음에 손가락 까딱하지 못하고 자리를 지켜야 했다.

    그렇게 서 있는 동안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 밑의 바다를 가르면 오필리아의 시신이라도 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부터.

    ‘시간을 돌리는 방법이 없나?’

    하는 것까지.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족속으로 살아온 지가 너무 오래되어 그런지, 알레이의 머릿속은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 앞에 마냥 좌절하기보다는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으려 하고 있었다.

    이성을 잃은 뇌리는 넝쿨이 쭉쭉 뻗어 나가듯 문득 떠오른 발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물건의 상태를 이전으로 복구시키는 마법이 있었지.’

    관성을 역이용하는 방식의 마법이었다.

    물체가 원래의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는 것은 곧 물체가 그 상태를 기억한다는 것이므로, 그 기억을 더듬어 형태를 되돌리는 것이다.

    모든 마법이 그러하듯 당연히 범위를 설정하는 것 역시 식의 일부였다.

    하지만 만약 식에서 그 부분을 빼 버린다면?

    ‘시간을 되돌리는 것도 완전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른다.’

    으레 범위가 통제되지 않은 마법은 마법사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그리고 마법사의 마력이 허용하는 범위까지 마법이 시동되는데, 그 일례가 코르넬리의 연금술식이었다.

    모래를 유리로 만드는 실험.

    당시 코르넬리가 범위를 설정하지 않은 데다 식도 잘못되어 있었던 탓에 마탑의 모든 유리가 모래로 바뀌었었다.

    코르넬리의 마력은 그리 많지 않으니 범위가 마탑에 한정되었지만, 창해와 같은 마력을 가진 알레이라면.

    세계 전역의 시간을 되돌리는 것도 이론 상 가능한 이야기였다.

    그야말로 신의 경지였고, 마법의 불문율을 깨는 행위였지만 알레이는 오필리아를 되살릴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의향이 있었다.

    ‘시간을 얼마나 돌릴 수 있을지 모르니 1초라도 빠르게 시작해야 한다.’

    구상이 끝났다면 당장 시동을 해야 성공률을 조금이라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알레이는 차마 마력을 쓰고자 손가락을 한 번 까딱일 수조차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오필리아가 남긴 말들이 발목을 붙들었던 탓이다.

    아셀로가 멋모르고 뱉었던 말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오필리아가 너를 자기랑 아예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대.

    그렇게 말하면서까지 오필리아는 알레이를 놓아 주었다.

    자신이 죽더라도 이 또한 나의 선택이니, 당신은 당신의 인생을 살라고.

    나와 당신은 아예 상관없는 사람이니 내게 매여 있지 말라고.

    아침에 일어나 창밖의 지평선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얼굴을 기억한다. 그 낯에 물든 허무, 자신이 차마 발 들일 수 없었던 그 공백을.

    알레이는 언제나 그 공백이 자신과 오필리아 사이에 있을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결코 그 사이를 좁힐 수 없으며, 그녀의 허무에 발 들일 수도 없다는 것을.

    오필리아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었다. 제 모든 마음을 다 내어 준 것 같으면서도 언제나 숨기고 있는 일부가 있었다.

    그녀를 구할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뿐이라며 속삭여 올 때조차도 알레이는 그녀가 움켜쥐고 있는 비밀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게 나를 신뢰하지 않아서 생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혹은 사람에게 많이 데인 오필리아가 만든 마지막 방어선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숨기고 싶은 것이 있을 테니, 그 간극에 서운해하지 말자고 다짐하기도 하고.

    그러나 일이 이렇게 되자, 알레이는 자신이 느껴왔던 그 공백들이 무엇이었던지 깨달을 수 있었다.

    오필리아가 결코 내어 주지 않던 허무는, 그 간극은 오필리아 본인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오필리아는 알았던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구렁을 알레이가 알게 된다면 그가 결코 제게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될 거라는 사실을.

    그것은 분명 마지막 방어선이 맞았다. 단지 알레이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을 뿐.

    알레이가 너무 깊게 들어오지 않도록, 그래서 그녀의 일을 제 것처럼 여기지 않도록 경계한 것이다.

    하여 오필리아는 그럴 바에, 제 쪽에서 차라리 한 발 떨어져서 고독을 끌어안고 있는 쪽을 선택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녀는 언제나 자신이 맞이할 비극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므로…….

    ‘아.’

    마주한 처음부터 손을 놓을 준비를 하는 관계라니.

    오필리아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자신을 보고 웃었을까. 무슨 생각을 하며 자신과 그 숱한 밤을 보낸 걸까.

    아무것도 모르고, 손을 놓을 줄도 모르는 자신을 두고. 그녀는 무엇까지 가늠했을까.

    ‘차라리 그녀를 몰랐더라면 좋았을 텐데.’

    사고의 끝에는 회한이 묻었다. 오필리아를 잘 알지 못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녀를 너무 깊게 이해해 버리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자신은 분명 저를 두고 투신한 그녀를 도저히 놓아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시간을 돌려서라도 그녀를 붙들어 놓으려 했으리라.

    알레이는 자신의 저열함을 알았다.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인간인지에 대해서도.

    그는 이안과 본질적으로 같았다. 허무주의를 벗지 못한, 껍데기뿐인 인간.

    이안이 오필리아를 등대 삼듯 알레이 역시 같았다.

    그러니 알레이는 오필리아의 부재에 그녀의 치맛자락을 붙들려 애걸했을 터였다.

    만약, 알레이가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더라면.

    그녀가 제 주변인들을 위해 스스로를 고독에 가두어 왔다는 것을 몰랐더라면.

    그렇게 홀로 떠밀려 택한 말로가 이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더라면…….

    ‘도대체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이타적일 수가 있는지. 그 누구도 그녀를 존중하지 않는 곳에서 그녀는 어떻게 그렇게 살아왔을까.

    알레이는 도저히 시간을 돌릴 수가 없었다. 오필리아가 끝내 택한 길이다.

    오필리아 없이 여생을 견딜 길 없다는 이유로 그녀의 선택을 짓밟을 수 없었다.

    가공할 만한 힘이 있는데도 쓸 수 없다는 사실이 끔찍하다.

    가장 끔찍한 것은 오필리아의 죽음을 목도한 채 여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가 바랐던 대로, 자신은 자신의 생을…….

    “윽!”

    그 순간, 끔찍한 두통이 밀려들었다. 알레이는 휘청이며 몇 걸음 물러섰다. 날카로운 고통을 수반하는 묘한 부유감이 있었다.

    제법 익숙한 감각이다. 잊고 있던 기억들이 떠오를 때의 감각이었으므로.

    ‘왜 하필 지금.’

    그렇잖아도 내상에 몸 상태가 나빴는데, 왜 하필 기억이 돌아와도 지금인 건지.

    인상을 쓰며 몇 걸음 물러섰을 즈음, 낯선 대화가 뇌리를 때렸다.

    -……다시 말해 봐. 로넨의 공비가. 뭐라고?

    -식물인간 상태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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