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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구한 적 없다-95화 (95/118)
  • 제95화

    신전의 감옥은 다른 감옥들이 으레 그러하듯 지하에 위치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그 주위를 둘러싼 화로들이 숨통을 틀어막는다는 점 정도일까.

    화로에서는 녹색 불꽃이 피어올랐다. 세간에는 단순히 생기를 빼앗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생물의 마력을 갈취하는 불꽃이었다.

    살아 있는 것이라면 누구나 자연히 지니고 있는 마력을 앗아가며 일시적인 노화 현상을 보일 뿐.

    생물의 근본을 뿌리 뽑는 불꽃인 셈이다.

    그리고 그 불꽃은 당연하게도, 마법사들에게는 굉장히 치명적이다.

    ‘아주 작정하고 둘러놓았군.’

    주위를 날카롭게 둘러본 알레이의 입술에서 콜록, 마른기침이 한 번 터져 나왔다.

    불꽃이 끊임없이 타오르는 통에 그리 넓지 않은 감옥은 숨쉬는 것도 제법 고역인 수준이었다.

    알레이의 기침 소리를 들은 예니트가 옆방에서 쿵, 벽을 쳤다.

    “괜찮, 콜록,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다. 나보다는 네가 더 상태가 나쁠 텐데.”

    “콜록, 콜록! 확실히, 이런 걸 겪을 일이 근 몇 년 간은 없었더니 숨 쉬기 쉽지 않긴 합니다.”

    루헤일의 녹색 불꽃은 공기 중 마나를 태우고, 이는 언제나 공기 중 마나의 흐름을 느끼며 살아온 마법사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었다.

    공기 중 산소가 고갈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당연하지만 이는 마력양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았다.

    퍼내고 퍼내도 줄지 않는 마력을 보유한 알레이와 달리 양동이 하나 정도인 예니트에게 더 위독하게 다가오기 마련이라.

    알레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손에 묶인 사슬을 한 번 흔들어 보았다.

    ‘이대로 오래 있으면 예니트에게는 위험할 것 같은데.’

    예니트가 어떻게 느낄지는 몰라도, 알레이에게는 이 사슬이 정말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다. 당장 조금만 몸부림을 쳐도 끊어 낼 수 있을 정도라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레이가 이곳에 갇혀 있는 데에는 물론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당연히 오필리아에게 해가 갈 것이 두려워서였고, 두 번째는 그에게 이미 빠져나갈 수 없는 죄목이 씌워진 탓이었다.

    신전에 침입하고 황족을 해하려 든 것.

    알레이는 몇 시간 전, 임시 신전으로 향했다.

    그리 어려운 길은 아니었다. 순간이동 몇 번으로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녹색 불이 타오르는 장소에 다시 다다를 수 있었다.

    ‘아까 왔을 때는 이 불꽃이 없었던 것 같은데.’

    알레이는 그 잠깐 사이에 달라진 임시 신전의 모습을 보고 찰나 위화감을 느꼈다. 이유는 간단하다. 녹색 불꽃은 주교급만이 피워 낼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대개 신전에서도 성화를 따로 모시는 곳에만 녹색 불꽃을 피워 두는데, 여기는 온 건물에 불꽃이 피어 있다니?

    ‘마법사는 근처에 오지도 말라는 것 같군.’

    문득 무언가를 잡기 위한 덫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알레이는 스스럼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은신을 쓰고 있었던 만큼 부주의했던 것도 있고, 애초에 알레이 본인이 워낙 강하다 보니 대부분의 상황에서 안전을 크게 고려치 않았던 까닭이다.

    애초에 눈 한 번 깜빡할 사이에 시야에서 완전히 종적을 감출 수 있을 거리를 오가는 사람에게 그런 게 크게 와닿을 리 없다.

    ‘무엇보다 이곳 지리는 아까 충분히 익혀 두기도 했고.’

    알레이는 산테가 알려 준 방으로 향했다. 편지를 매단 세이렌이 다녀갔다는 방은 바다 쪽으로 난 절벽을 바라보고 있는 동편의 가장 끝방이었다.

    알레이는 방에 인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발을 들였다.

    그러나 그 안으로 이동해 갔을 때, 그를 기다리던 것은 단순한 텅 빈 방이 아니었다.

    매캐한 연기가 자욱한 방.

    그 연기가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저도 모르게 들이마쉰 순간 기도를 타고 폐부로 흘러들어 제 안의 마력을 태우는 지독한 독성이 느껴졌으므로.

    “콜록, 콜록!”

    그건 루헤일의 불꽃이 만들어 낸 것이었다.

    연기를 들이마신 코와 눈이 불에 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알레이가 저도 모르게 낯을 부여잡으며 기침하자,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리고 알레이에게로 다가오는 인기척이 있었다.

    “이런, 많이 고통스러워 보이시는군요.”

    연기 속에서도 선명한 녹안이 보였다. 녹조에 잡아먹힌 바다 같은 탁하고 짙은 시선이.

    “신의 불꽃이 태울 수 있는 것은 오직 마녀와 이단뿐이라, 저는 이 속에서도 아무렇지 않은데 말입니다.”

    “……!!”

    사제복을 입은 남자가 그렇게 말하며 다가오자, 알레이는 비틀거리며 몇 걸음 물러섰다.

    방 안의 연기부터 기다렸다는 듯한 등장까지, 자신이 함정에 걸렸다는 것이 피부로 와닿았던 까닭이다.

    “콜록, 당신은…….”

    “소개가 늦었습니다. 루헤일의 여섯 번째 종, 베일란이라고 합니다. 이곳 밀레세트에서는 셋 뿐인 주교이기도 하고. 전능하신 루헤일의 말씀을 따르는 것을 일생의 한 가지 낙으로 삼고 있기도 하지요.”

    장황한 겸손의 끝에는 대부분의 신자들이 그러하듯 저들이 모시는 신에 대한 이야기가 따라붙었다.

    “혹 알고 계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루헤일께서는 자연의 섭리를 어기는 것을 가장 큰 죄악으로 삼아 저희 사자들의 손을 빌려 치죄하게끔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루헤일의 뜻을 받들어 이단을 치죄하는 데에 힘을 쏟고 있었습니다만. 하고 덧붙인 베일란이 책상으로 걸어가 무언가를 집어들었다.

    그것은 종이였다. 희미하게 마력이 묻어나는 편지.

    “그런데 이런 편지가 왔더군요. 당신이 이단의 소굴인 마탑의 주인이라고.”

    “……!”

    “당신을 제법 잘 아는 자가 쓴 것 같더군요. 당신이 언제 올지 모르니 늘 대비하라는 문구도 친절히 적어 둔 걸 보면 말입니다.”

    그래서 급히 준비했는데, 이렇게 걸려들 줄이야.

    그 말을 들은 순간 알레이의 낯이 일순 굳어 들었다.

    ‘정말 마탑이었군.’

    함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도망치지 않은 이유는 어디까지나 저 편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는데, 덕분에 편지의 발송지가 마탑이라는 것이 한결 확실해졌다.

    하지만 상황이 희망적이지는 않았다. 그가 있는 이곳은 말마따나 베일란이 판 함정이었으므로.

    ‘여기서 붙잡히면 안 된다.’

    일이 꼬이긴 했으나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확인했으니 도망쳐야 했다. 정체를 들킨 이상 오필리아의 입장이 난처해지기는 하겠으나, 이렇게 된 이상 아예 전부 몸을 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디로든 몸을 피하고 이동진을 그려서…….’

    그려서. 그 다음에는?

    도망자로 살고 싶지 않다던 오필리아가 문득 떠올랐다. 막힘없이 흘러가던 사고가 우뚝 멈추었으나, 알레이는 얼른 털어 냈다.

    ‘뭐가 됐든 여기서 붙잡히는 것보다는 낫다.’

    그는 당장 순간이동을 써서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으나, 상태가 생각보다 나빴다.

    상처 입은 몸이 제대로 수식을 발동시키지 못한 것이다.

    펑!

    애꿎은 곳에서 폭발음이 울리고, 다시 한번 알레이의 입에서 힘겨운 기침이 터졌다.

    “쿨럭!”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전의 밭은 기침과 달리 피가 섞여 있었다. 제대로 발동되지 못한 수식이 마력을 교란시켜 내상을 입은 까닭이었다.

    알레이의 마법이 강력했던 만큼 내상 또한 격했다.

    입안에 피비린내가 퍼지고, 혼란과 고통이 뇌리를 마비시켰다.

    처음 겪어 보는 마법의 교란으로 인해 안정되지 못한 마력이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다른 때였더라면 그것을 통제할 수 있었을 텐데, 당시의 알레이는 그럴 수가 없었다.

    무의식중에 끌어올려진 마력이 파도치며 건물을 진동시키기 시작했다.

    쿠구궁, 주변으로 들려오는 소리가 머리를 조여왔다. 그는 점차 이성을 잃어갔다.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은 힘에 도취되어 점차 파괴적으로 변해갔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주변을 둘러싼 다급한 발소리가 늘어나는 것이 느껴졌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알레이에게는 그저 바람 소리나 다름없을 따름이었다.

    ‘그래, 차라리 여기를 다 부숴 버리는 게 낫겠어.’

    그러면 오필리아를 도망자로 만들 필요도 없고, 그녀가 이런 대우를 받으며 지낼 이유도 없다.

    차라리 내가 전부 죽여 버린다면…….

    ‘오필리아에게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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