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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구한 적 없다-90화 (90/118)
  • 제90화

    첫째 인어는 자신이 여기까지 온 것 역시 말을 전하기 위함이라며 운을 뗐다.

    “네가 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의문이 생기는 게 있어서 말이다. 다만 다들 있는 곳에서 이야기하기에는 조심스러워서 둘만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제가 한 말에 무슨 문제가 있나요?”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네가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게 있는 것 같더구나.”

    오해라니? 오필리아가 의아함에 고개를 기울이자, 첫째 인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인어의 비늘을 삼키고 과거로 왔다고 했지.”

    오필리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첫째 인어의 낯에 담긴 조심스러움이 한층 짙어졌다.

    “인어의 비늘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으니 네가 오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만……. 인어의 마법은 자연을 거스를 수 없다.”

    “……그게 무슨 뜻이죠?”

    “자연을 거스르는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건 인간 마법사들뿐. 인어의 마법은 그 어느 것도 자연을 거스를 수 없어.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오는 것 역시.”

    그래서 조건식 마법은 입에 담는 것조차 금기시하는 것인데.

    “네가 아리엘의 비늘을 삼켰다 한들 그것만으로 현재에 이를 수는 없다는 거다.”

    오필리아의 심장이 쿵 떨어졌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부정했다.

    “그럴 리 없어요.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에요.”

    “네가 시간을 거스르기 위해 뭘 했다는 뜻이 아니다. 네가 오해를 했다는 거지. 인어의 비늘은 기껏해야 인어의 죽기 전 소망을 잠깐 들어주는 정도일 뿐이야.”

    무언가를 죽일 수는 있어도, 시간을 거스르는 것처럼 자연에 반하는 행위는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죽음의 부산물일 뿐인 비늘이 그렇게 고차원적인 행위를 할 수 있을 리 없지.”

    “하지만, 저는 비늘을 삼킨 직후 이곳에 떨어졌어요.”

    “잘 생각해 봐라. 네가 비늘을 삼킨 뒤 무슨 일이 더 있었을 수도 있는 일 아니냐?”

    “아…….”

    “네 기억만을 쫓아가지 말고, 상황을 한 발 뒤에서 조명해 보라는 거다. 이곳으로 온 뒤 뭔가 이상한 점을 찾지는 못했나?”

    오필리아가 고민에 빠지자, 첫째 인어는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말은 전부 했으니 잘해 보라며 행운을 빌어 주고 떠났다.

    덕분에 오필리아는 새로운 사실에 대한 충격과 고민에 잠긴 채로 노을곶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녀는 물기 하나 묻지 않은 드레스 자락을 툭툭 털며 고민을 이어갔다.

    ‘뭔가 이상한 점?’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안이 기억을 되찾았다는 것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나머지는 자신이 과거의 기억을 가진 채로 시간을 돌아온 탓에 바뀐 것들이었으므로.

    ‘하지만 이안이 나와 마찬가지로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게 대체 무슨 상관이라고?’

    그건 그냥 시간의 오류로 생긴 것일 수도 있지 않나?

    아니면 인어의 비늘이 무언가 뜻하는 바가 있었다거나.

    무언가를 알려 주고 싶었다거나…….

    ‘잠깐.’

    무언가를 알려 주고 싶었다고?

    생각이 그 즈음에 이르자, 오필리아는 저도 모르게 행동을 멈추고 생각에 골몰하고 말았다.

    자신이 놓치고 있던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 탓이다.

    그리고 그것이 첫째 인어가 말한 것과 자신이 기억하는 것 사이의 괴리를 해결할 가장 큰 열쇠가 될 것 같다는 직감도.

    그래서 오필리아는 이안을 만났을 때의 기억을 되짚었다.

    이안이 무슨 이야기를 했고, 또 어떻게 굴었던지.

    그리고 마침내 무언가를 기억해 냈다.

    오필리아가 이안에게 전서구를 보낸 일로 경고를 했을 때.

    이안은 이렇게 변명했다.

    -8년이 넘게 지난 일이라. 깜빡 잊었군.

    8년.

    ‘왜 이걸 잊고 있었지?’

    오필리아가 공비로 지냈던 기간은 5년이었다.

    그리고 이안이 말한 것은 8년.

    간과할 수 없는 차이가 있었다.

    그렇다면 첫째 인어가 했던 말대로 자신이 아리엘의 비늘을 삼킨 뒤에 무슨 일이 더 있었다는 식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이안에게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제대로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돌아온 것이 비단 인어의 비늘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내심 걸리는 부분이 있었던 탓이다.

    첫째 인어가 마법에 대해 설명할 때 했던 말.

    -자연을 거스르는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건 인간 마법사들뿐. 인어의 마법은 그 어느 것도 자연을 거스를 수 없어.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오는 것 역시.

    요약하자면 그 말은 곧 시간을 거스를 수 있는 건 인간 마법사뿐이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그 말을 듣자 머릿속을 스쳐간 사람이 있었다.

    당연하지만, 알레한드로 디아뮈드.

    오필리아를 살게 한 그녀의 유일한 마법사 친구.

    ‘알레이가…… 마법으로 나를 살려 내려 했을까?’

    만약 그랬다면.

    생각이 그에 닿자, 오필리아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있었다.

    오필리아는 마탑의 위치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 코르넬리에게 마탑에 대해 다양한 것들을 물어봤는데, 개중 이런 대화도 있었던 것이다.

    “코르넬리. 궁금한 게 있어요. 알려 줄 수 있나요?”

    “그럼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마탑에서 추방당하는 경우 말이에요. 어떤 경우가 있나요?”

    “추방이 흔한 일이 아니니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일단은 흑마법을 사용하려 한 게 가장 일반적이에요. 그건 정말 고려의 여지없이 바로 마탑이 추방을 결정짓거든요.”

    혹은 마탑의 주인이나 고위 마법사 회의에서 강력 범죄자의 추방을 결정짓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코르넬리는 말했다.

    하지만 그건 오필리아가 원하던 대답이 아니었다.

    “난 알레이가 추방된 이유가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그가 추방된 건 둘 다 아니었잖아요.”

    “음, 그렇죠. 알레한드로 님께서 추방당한 건…… 그분의 행방이 묘연해져서 찾다가 마탑을 통해 겨우 알게 된 사실이거든요.”

    정확히 말하면 처음에는 실종이었다고 했다.

    알레이는 순간이동이 가능한 사람이니, 어디론가 급히 떠난 게 아닐까 하고.

    하지만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고, 다들 알레이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냐는 물음이 나올 즈음 죽은 듯 있던 마탑이 딱 한 번 입을 열었다고 헀다.

    “알레한드로 디아뮈드는 섭리를 거스른 죄로 추방했다. 그게 마탑이 남긴 마지막 말이에요.”

    그 뒤로는 계속 잠에 들어 있는 통에 알 수 있는 게 없었다고, 코르넬리는 설명했다.

    “아무래도 섭리를 거슬렀다고 하면 대개는 흑마법을 떠올리기 마련이라서요. 하지만 알레한드로 님께서 그럴 분이 아니셨으니 의견이 분분했어요.”

    알레이가 정말 흑마법을 썼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걱정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며 코르넬리는 다시금 눈물을 찍어냈다.

    당시 오필리아는 알레이의 추방 원인을 알고자 질문을 던졌던 만큼, 원하던 대답이 나오지 않자 조금 실망했었다.

    더불어 대체 알레이가 무슨 섭리를 어겼기에 그렇게 쥐도 새도 모르게 추방당해야 했던 걸지 의아해했고.

    ‘하지만, 시간을 돌린 거라면?’

    그러면 어느 정도 아귀가 맞았다.

    시공간을 거스르는 것은 섭리를 거스르는 것 중에서도 가장 큰 범죄로 취급되니까.

    새로운 사실을 알아 가면 알아 갈수록 진상에 근접하는 기분이 들었다.

    오필리아는 입술을 한 번 꾹 물었다 놓았다.

    “산테, 당장 성으로 돌아가야겠어요.”

    당장 알레이를 만나야 했다.

    * * *

    오필리아는 라딘 성의 정원에 발을 디뎠다. 그녀를 내려놓은 산테가 은신을 풀고 날개를 감춘 뒤, 오필리아는 입을 열었다.

    “산테, 한 가지만 부탁할게요. 당신이 날 망망대해에 홀로 보냈으니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을 거라 믿어요.”

    “두 번 보냈다가는 날개가 죄 부러지게 생겼군.”

    “알레이가 아직 임시 신전에서 안 돌아왔을까 싶어서요. 가서 만약 알레이를 보면 나한테 와 달라고 좀 전해 줘요. 당신만큼 빠른 연락책이 없어서 그래요.”

    오필리아가 다급하게 말을 쏟아 내자, 산테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무래도 너는 그렇게 간절한 목소리 내는 것 좀 고치는 게 좋겠어.”

    들을 때마다 말려들어서 큰일이라니까.

    산테는 그렇게 말하곤 털 망토를 여몄다.

    그리고 머잖아 독수리를 닮은 금빛 새 하나가 검어진 하늘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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