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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구한 적 없다-89화 (89/118)
  • 제89화

    아마 이곳에 가서도 결계를 찾아 조금 헤매기는 해야겠지만, 이만큼 좁힌 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과였다.

    오필리아는 당장이라도 기쁨으로 소리를 치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물론 기껏 마탑을 찾아 놓고 상어 밥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 자중했지만.

    찾았다는 말에 아리엘의 눈이 반짝 빛났다.

    “뭔가를 찾으신 건가요?”

    “네, 찾고 있던 것이 있었는데 덕분에 거의 찾아냈어요. 인간은 바닷속을 다니지 못하니까 아무래도 오류가 잦았거든요.”

    “뭔진 모르겠지만 잘됐네요. 용건은 그게 다인가요? 내 언니들은 당신이 나를 회유하러 왔다고 생각하던데.”

    “그것도 맞아요.”

    일단은 죽고 싶지 않고, 약속은 약속이니까.

    아리엘에게 뭍으로 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오필리아가 부정 없이 수긍하자 아리엘은 도리어 놀란 표정이 되었다.

    “나는 그냥 하는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진짜였단 말이에요? 당신까지? 당신이라면 나를 이해해 줄 거라 생각했는데!”

    “진정해요, 아리엘. 내가 말을 잘못한 것 같으니.”

    정확히 말하자면 오필리아는 회유가 아니라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어서 온 쪽이었다.

    “나는 당신이 내 이야기를 듣고 나서 다시 생각했으면 해요.”

    당신의 목숨을 내던질 결정을 하기에는 그때도 늦지 않으니까.

    * * *

    오필리아는 노을곶으로 돌아왔다. 그녀를 태우고 온 의자는 단 한 방울도 그녀를 적시지 않고 다시 물로 되돌아갔다.

    기다리고 있던 산테가 오필리아를 반겼다.

    “잘하고 오셨나? 공주님.”

    “그럼요.”

    “용케 살아서 돌아왔군. 그 언니들이 아리엘의 고집을 꺾기 전에는 누구 한 명을 죽일 기세던데.”

    부정할 수 없는 이야기라, 오필리아는 픽 웃었다.

    조금 전 바다 한가운데에서 오필리아는 아리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니, 이야기를 했다고 표현하는 쪽이 더 옳을 것이다.

    오필리아는 아리엘에게 자신이 빠트렸던 이야기들을 전했다.

    “당신은 목소리와 다리를 맞바꾸었고, 그때도 당신의 언니들은 포기하지 않았어요.”

    아리엘이 죽어야 했던 이유. 그리고 그녀의 언니들이 알레이와 머리카락을 대가로 거래했던 것.

    “당신은 그 남자의 사랑을 얻어 내지 못하면 죽을 운명이었던 거예요.”

    “그런 마법은…….”

    “조건식 마법이죠. 당신들은 금기시한다던.”

    아리엘은 자신의 목소리를 대가로 다리를 얻었다. 마법을 끝내기 위한 조건은 이안의 사랑을 얻어 내는 것. 그리고 실패할 경우 마법이 가져가는 것은 아리엘의 목숨이었다.

    생물의 종족을 바꾸는 것은 자연의 기본 섭리에 크게 반하는 행동이었으니 당연하다.

    오필리아가 처음에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최대한 과거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아리엘의 협조를 받아내고자 함이다.

    그러나 일이 이렇게 되자 오필리아는 더는 숨길 수 없어졌다.

    “나는 당신의 죽음에 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걸 얘기해 주는 거고요.”

    오필리아는 이어 말했다. 아리엘이 어느 쪽을 선택하든 자신은 말리지 않을 거라고. 당신의 선택을 존중하며, 그때는 더 죄책감 느끼지 않을 거라.

    “만약 그래도 좋다면 당신을 뭍으로 보내 줄 수 있는 마법사를 소개해 줄게요.”

    “……전에 세이렌도 같은 말을 했는데.”

    “아마 같은 사람을 두고 한 말일 거예요. 그는 우리들의 친구라서.”

    이야기가 거기까지 진전되자 아리엘은 조금 혼란스러워 보였다.

    자신이 죽은 이유가 단순히 사람을 잘못 본 것이 만든 비극에 있는 게 아니라, 뭍으로 가기 위해 건 마법 자체에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두렵게 만들었던지.

    게다가 그녀를 살리기 위해 언니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할 즈음에는 거의 울먹일 정도였다.

    “뭍으로 나가는 게 두려운 일이라고 생각은 했어요. 하지만 그건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었는데.”

    뭍으로 나가기 위해 걸어야 하는 마법 자체가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 아리엘은 크게 동요했다.

    만약 자신 혼자만의 일이었더라면 조금 덜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언니들까지도…….”

    사랑하는 언니들까지도 희생하게 되었다니 충격이 적잖은 모양이었다.

    오필리아는 잠자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입술을 떼었다.

    “아리엘.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는 잃어야 하는 것도 있어요. 당신에게 뭍으로 가는 것이 그걸 잃어도 될 만큼 가치 있는 것이라면 나는 당신을 도울 거예요.”

    오필리아는 진심이었다. 여기서 약속을 지키지 못한 죄로 상어 밥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각오하고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당신이 가지고 있는 소망을 잘 들여다보세요. 그것이 정말로 반짝이는 건지, 아니면 그래 보이는 건지.”

    수면은 햇살 아래서 사금을 뿌린 것처럼 반짝이지만, 손에 한 움큼을 뜨면 그저 투명한 액체일 뿐이다.

    오필리아의 말에 아리엘은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이 되었다.

    그녀는 한참이나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알겠다며 작별을 고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아리엘의 언니들은 그제야 오필리아에게로 돌아왔다.

    “……이제 알겠네요. 왜 막내의 마력이 당신에게서 느껴지는 건지.”

    여섯째 인어가 조심스럽게 첫 마디를 뗐다. 오필리아의 이야기를 들은 덕분인지, 인어들의 태도는 공격적이던 조금 전과 달리 한결 조심스러워져 있었다.

    “과거에는 아무래도 우리가 막지 못한 모양이지.”

    “아리엘은 고집이 대단하니까…….”

    “제대로 말려 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게 당연한 결과일지도 몰라.”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시간을 거슬러 오는 게 가능하구나.”

    “인간이 종족을 바꾸는 마법까지 구사할 수 있다니 대단한걸.”

    그들은 저마다의 감상을 떠들며 오필리아에게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딱 한 명, 자매들이 시끌시끌 떠드는 동안에도 침묵을 지키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첫째 인어 공주.

    그녀는 내내 침묵을 지키더니, 오필리아를 데려다 주겠다는 명목으로 인근의 해안까지 그녀와 함께 왔다.

    “이 다음부터는 내가 함께 갈 수 없다. 인간의 눈에 띄고 싶지 않아 그러니 이해하거라.”

    “그럼요. 무사히 데려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게는 나 또한 감사를 표해. 아리엘이 저런 이야기를 듣고도…… 뭍으로 나가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면 그때는 우리도 보내 줘야겠지. 그게 그 애를 위하는 방법일 테니까.”

    “더 잡지 않으시는 건가요?”

    “그래. 인어들도 흔히 쓰는 말이 있어. 물고기는 물에 살아야 한다고.”

    그건 비단 그들이 물에 소속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삶은 원하는 걸 이루어 가는 데에 의의가 있어. 그게 없다면 우리 속의 동물과 다름이 없다.”

    우리는 우리를 사육해서는 안 된다.

    나는 아리엘을 사랑하지만, 그 아이가 오래 살았으면 하지만.

    “그보다는 그 아이가 자유롭게 살았으면 해.”

    그녀의 말에, 오필리아는 조금 놀란 눈으로 상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당신은 조금 특이한 인어로군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제가 만나 본 다른 종족들은 대개 자유를 당연하게 여겼으니까요.”

    “아, 세이렌 말이지.”

    첫째 인어는 오필리아의 말에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들의 자유에는 책임이 없어. 우리에게는 우리가 지켜야 할 9가지 교리가 있지만, 그들에게는 그조차 없지.”

    그저 잔혹하고 이기적일 뿐.

    자못 냉정하기까지 한 평에, 오필리아는 그저 웃기만 했다. 세이렌과 인어가 사이가 나쁘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므로 굳이 변호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탓이다.

    “그런 건 자유가 아니야. 자유에 따르는 책임과 상실을 모르는 놈들에게는 그런 표현을 써 주고 싶지도 않군.”

    각자의 선택이 만들어 낸 결과물로 채우는 것이 삶인데, 세이렌이 자유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허비하는 시간에는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 그러니 자유라는 표현을 쓸 수 없다고, 첫째 인어는 말했다.

    “자유의 끝에 허무가 있어서는 안 돼.”

    “당신 말이 맞아요. 저도 그래서…… 자유를 두려워하지 않고 싶어요.”

    “특이한 인간이구나. 네 삶도 퍽 순탄하진 않겠어.”

    첫째 인어는 살아온 세월이 길어서인지, 말을 퍽 강경히 했다. 올곧음이 싫지 않았다.

    오필리아는 웃으며 그만 작별을 고하려 했다.

    그리고 그때, 첫째 인어가 입을 열었다.

    “오필리아. 네게 한 가지 알려 줄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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