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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구한 적 없다-81화 (81/118)
  • 제81화

    그 사실이 오필리아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간 무슨 이유로 거리를 두었든, 어쩌면 이번은 그 거리를 다시 좁힐 수 있는 기회였을지도 모르는데.

    자신이 문조차 열지 않고 상대를 돌려보낸 까닭에 그 기회가 영영 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알레이가 없으면 계획이 어그러지니까.’

    그래, 그런 이유이리라.

    알레이는 오필리아의 계획을 완성시킬 가장 중심 열쇠였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서 등을 돌린다면 자신은 분명 꼼짝없이 발이 묶이고 말 것이다.

    하지만 정말.

    ‘정말 그런 이유뿐인가?’

    알레이가 자신에게 등을 돌려서, 더는 자신을 그렇게 노을 물든 눈빛으로 보지 않아서 조급해지는 것이.

    정말로 계획을 성사시킬 수 없다는 생각만으로 생긴 감정인가?

    ‘확신할 수 없어.’

    정말 드물게, 오필리아는 그런 생각을 했다. 자신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고.

    ‘이런 적이 없었는데.’

    그녀는 스스로를 잘 알았다. 자신의 감정이 어디서부터 기인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한 번도 혼란을 겪어 본 적이 없었다.

    이안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도, 이안의 사랑을 더 이상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도.

    아리엘에게 죄스러워하고, 북녘의 성에서 몸 안팎의 추위로 자신이 서서히 괴사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도.

    언제나 감정은 명확했고, 해야 할 일 또한 명확했다.

    그러니 인어의 비늘을 삼키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고, 그러니 이 대륙을 떠나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오필리아에게는 혼란마저도 길이 있었다.

    이안을 다시 만나 동요할 때도, 혼란스러워 할 때도 그 길은 언제나 선명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무슨 감정인지도 모르겠어.’

    내가 알레이에게 느끼는 이 감정은 단순한 친애인가? 아니면 유능한 힘을 아끼는 것인가?

    알레이의 유용함을 사랑하는 것인지, 알레이가 주는 편안함을 사랑하는 것인지.

    ‘만약 둘 다 아니라면.’

    알레이라는 인간을 사랑하게 된 것인지…….

    알레이가 오필리아에게 거리를 두기 시작한 이후, 그녀에게 가장 먼저 찾아든 공허는 늘 밤에 존재했다.

    한 줌 그림자조차 곁을 떠나는 밤.

    오필리아는 책상에 앉아 고개를 들 때나, 악몽에서 깨었을 때 확인할 수 있는 누군가가 없다는 사실을 낯설어했다.

    사실 누군가 없는 쪽이 더 당연할진데, 고작 며칠 함께했다고 그걸 소슬해한다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랐다.

    자신은 어떻게 이다지도 탐욕스러운 인간인지.

    동이 터 오는 해안으로부터 고개를 돌렸을 때 텅 빈 방을 마주하는 것이 싫었다.

    자신이 책장을 넘길 때 방 한편에서 사각거리는 펜촉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싫었다.

    그가 사라진 뒤의 공백이 싫었다. 그곳에 차오르는 허무가 싫었다.

    단순히 공백이 싫었더라면 다른 사람으로 채우면 될 일인데.

    그런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으니 이상한 일이다.

    어느 날 밤에 라펠 사냥을 다녀온 산테가 창문을 두드린 뒤에야 오필리아는 제 빈 방에 다른 누군가가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별것도 아닌 일에 어째서 이다지도 시야가 좁아지는 건지.

    자신을 외면하는 알레이가 야속했고, 그가 없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채운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과 알레이가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 으레 콧잔등을 찌푸리게 되었다.

    오필리아는 이런 감정을 대개 무엇이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질투. 독점욕.

    생각이 그에 닿자 오필리아는 지레 놀라 저도 모르게 입을 가리고 말았다.

    ‘내가 그를 독점하고 싶어 한다고?’

    정말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제야 오필리아는 자신이 겪었던 모든 혼란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자신이 어째서 그토록 알레이의 부재에 마음 쓰여 했는지. 어째서 그토록 시린 기분이 들었던지.

    ‘나는 그가 나를…… 특별하게 여긴다고 생각했구나.’

    그에게 있어 자신이 특별한 사람일 거라 착각하고 말았다.

    자신을 보는 눈이 태양을 보는 해바라기를 닮아 있어서. 자신에게 드러내는 감정들이 다른 곳에서는 내보이기 힘든 종류라는 것을 알아서.

    그들이 나눈 이야기들이, 그가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각별했으므로.

    알레이에게 있어 자신이 대단한 부피를 가진다고 그만 착각을 해 버렸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제 안에서 그의 부피가 이토록 커진 것이다.

    ‘바보 같이…….’

    알레이는 좋은 사람이었다. 뛰어난 사람이었고. 변변한 신분을 빼면 내세울 것 없는 자신과 달리 능력만으로 모두의 경애를 받는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러니 그가 자신을 굳이 특별하게 여길 이유가 없다.

    ‘각별할 수는 있어도 특별할 수는 없겠지.’

    그가 자신을 가깝게 여기고, 마음을 써 준다 한들 그에게는 자신을 둘러싼 숱한 사람들 중 한 명일 뿐일 터다.

    그 사실이, 그의 주변에 사람이 없던 때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예니트와 코르넬리가 오자 바로 드러난 셈이고.

    ‘당연한 일이야.’

    토끼가 풀을 뜯고 자두 서리를 하는 아이들의 옷자락이 붉게 물드는 것처럼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왜 그것이 이다지도 서럽게 느껴지는 건지…….

    ‘왜 나는.’

    그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지는 건지.

    예니트와 코르넬리가 오기 전이 그립다고 하면 이상한 일일까.

    그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던 때가 그립다. 그와 마주 보고 이야기하던 것이 하루의 일과를 차지하는 것이 당연했던 때가.

    알레이의 손을 잡고 시선을 마주하는 것이, 격랑이 이는 듯한 그의 낯을 제게 붙잡아 두는 것이 낯설지 않았던 그때.

    그때 자신은 조금도 불안하지 않았는데.

    ‘이 감정은 정말 뭘까.’

    해가 진 뒤에 만나서 이야기하면 알게 될까?

    물론 그때도 알레이가 자신을 피하려 한다면 화를 참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알레이가 다시 한번만 자신을 찾아와 준다면 기쁠 거란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이렇게 방으로 돌아오기만 해도 알레이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딜 그렇게 말도 없이 다녀오냐며 화를 내기까지 했는데.

    방 안에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 자신을 더는 이런 일로 유약해지게 내버려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필리아는 막연하게 생각하며 방문을 열었다.

    그런데 누군가 오필리아의 속내를 읽기라도 한 걸까.

    정말 방 안에는 누군가 존재했다.

    “돌아왔어, 오필리아.”

    그렇게 말하는 산테의 밀색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렸다.

    그가 앉아 있는 창틀에서 반투명한 커튼이 함께 휘날리는 것이 보였다.

    하오의 햇살을 등진 그는 성별을 가리지 않고 누구든 홀릴 수 있을 것 같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살짝 휘어진 유려한 눈매와 반듯한 음영을 드리우는 콧날, 그 아래 얇게 휘어진 입술까지도 당장 입을 맞추고 싶어질 만큼 매혹적이다.

    하지만.

    “…….”

    “오필리아? 왜 그런 표정이야. 내가 많이 기다리게 했나? 아니면 걱정이라도?”

    “……그런 건 아니에요.”

    오필리아의 표정이 썩 밝지 않은 것이 내심 마음에 걸렸던지, 산테가 훌쩍 창틀에서 내려와 오필리아에게 다가왔다.

    그림자가 가까워질수록 울컥하는 기분이 들어, 오필리아는 고개를 떨어트리고 애써 웃는 소리를 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자신이 만날 수 있는 생명체 중 가장 아름다운 이를, 그토록 혼자이고 싶지 않은 순간에 만났는데.

    다른 이가 보고 싶어졌으니.

    “어서 와요, 산테…….”

    오필리아는 애써 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산테를 본 순간 오필리아는 저도 모르게 깨닫고 말았다. 자신이 정말로 바랐던 것이 무엇인지.

    방 안에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던 생각.

    그것은 정말로 ‘누군가’를 바란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원했던 것은 오직 한 사람이었다.

    범인은 두려움에 함부로 접근할 수도 없는 벽해를 공처럼 주무를 수 있는 남자. 그보다도 쉽게 자신의 불안을 가라앉게 하는.

    자신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알레한드로.’

    그가 정말, 보고 싶었다.

    * * *

    그 감정은 대체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야속한 만큼 그립고, 친애하는 만큼 원망스러운 그 무질서를.

    ‘확실한 건 하나뿐이야.’

    알레이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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