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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구한 적 없다-73화 (73/118)
  • 제73화

    그런 의미에서 산테를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고, 알레이는 말했다.

    자신이 거리를 두는 사이 산테가 못된 장난이라도 친다면 문제가 될 테니까.

    “산테, 나는 오필리아의 앞을 막는 모든 위험 요소를 그녀 근처에서 제거할 생각이다.”

    그리고 그 위험 요소에는 알레이 본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네가 있으니 내가 없어도 오필리아가 크게 불편하진 않겠지.”

    그러면 됐다.

    그들의 대화는 거기서 막을 내렸다.

    오해도 풀어졌고 알레이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려졌으니 굳이 숲 우는 소리를 들으며 나무 사이에 서 있어야 할 필요가 없었던 탓이다.

    하여 산테는 굳이 캐묻지 않았지만, 가능했다면 한 번은 물었을 것이다.

    ‘인간들의 관계는 그렇게 득실로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들었는데.’

    세이렌에게 있어 관계란 오늘 밥을 함께 먹는 사이. 딱 그 정도였다.

    내일은 함께 밥을 먹지 못할 수도 있고, 함께 사냥하는 것보다 혼자 사냥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 들면 언제든 상종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의 관계라는 것은 한 번 같이 끼니를 해결하는 사이보다 훨씬 복잡했다.

    산테는 이를 모두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 그에게는 살아온 세월에 대한 연륜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말하길, 알레이의 방식에는 문제가 있었다. 단지 그 당시에는 문제가 무엇인지 콕 집어 말할 수 없었을 뿐.

    ‘영 불안하다 했더니.’

    결국 이런 식으로 그 문제가 드러났다.

    이걸 이야기해 줘야 할까. 산테는 수심에 찬 오필리아의 낯을 보며 잠시 고민했다.

    다른 때였더라면 분명 제가 들은 것을 그대로 오필리아에게도 전했겠지만, 이번에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으니 이상한 일이다.

    산테는 수심에 찬 오필리아의 낯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가볍게 숨을 내쉬며 제 털 망토를 도로 어깨에 걸쳤다.

    “그냥 넘어가게 두질 않는군. 너희가 알아서 할 일이다만. 너는 너무 멀리 생각해, 오필리아.”

    “걱정해 주는 건가요?”

    “그래. 난 이기는 쪽에만 거는 편이라. 기껏 붙었더니 사공이 다른 생각에 빠져서 길을 잘못 들기라도 하면 안 되잖아?”

    요컨대 여흥을 제공하겠다는 말로 그를 붙들었다면, 괜히 말려서 수모 겪지 말라는 뜻이었다.

    “난 그런 가학적인 취미는 없거든.”

    “그렇게 행운을 빌어 주는 사람은 또 처음이네요.”

    “네게 하나 정도는 처음을 가져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산테는 그렇게 말하며 창문을 활짝 열더니, 쏟아지는 햇살을 등지고 창틀에 앉아 씩 입꼬리를 올렸다.

    “네가 가져간 내 것들이 워낙 많아서. 이 정도는 해야 수지가 맞을 것 같거든.”

    “그게 무슨 뜻이죠?”

    “글쎄. 알아서 생각해 봐. 난 주인님이 시킨 일이 너무 많아서 이만 가 볼 테니.”

    그 말을 끝으로 산테는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뛰어 나갔다고 하는 쪽이 옳을 것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건장한 남자가 차지하고 있었던 창틀 너머에서 독수리를 닮은 황금빛 새 한 마리가 휙 날아올랐다.

    새가 향한 방향은 해안이었다.

    그는 인어 공주 아리엘을 만나러 간 것이었으므로.

    * * *

    산테가 홀로 아리엘을 만나러 간 데에는 물론 이유가 있었다.

    이안이 라딘으로 온 지는 시간이 제법 지났지만, 아직도 그는 아리엘을 만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리엘이 도무지 모습을 보이지 않는 탓이었다.

    산테 혼자 있을 때는 그나마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도, 근처에 인간 그림자만 비친다 싶으면 후다닥 물속으로 숨어 버린다고.

    원인은 며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테가 오필리아 몰래 아리엘을 만났으며, 그녀에게 뭍으로 올라올 방안을 주겠다고 권했던 것이 들통 난 직후.

    오필리아는 산테를 추궁하는 대신 이렇게 물었다.

    “그래서 아리엘에게서 대답은 들었나요?”

    “제안에 대한 대답을 묻는 거라면, 아니. 대답은 못 들었어.”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의외의 것이었다.

    거절이든 긍정이든 대답이 돌아왔으리라 짐작하고 물었던 것인데, 대답을 아예 듣지 못했다니?

    의문은 금세 풀렸다.

    “아리엘을 부르는 데 쓴 소라게가 실수로 아리엘의 언니들에게 그 사실을 흘려버려서 말이지. 이야기를 듣자마자 득달같이 달려왔더군.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일곱 명이 다요?”

    “그래. 내가 살면서 그렇게 많은 인어를 한 번에 보기는 또 처음인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상황이 어이가 없었던지, 산테는 제 머리칼을 가볍게 헝클어뜨리며 헛웃음을 흘렸다.

    그렇지 않나. 살만큼 산 데다, 법이나 규율에는 조금도 얽매여 본 적 없는 자신이 인어 단속반한테 걸려서 매운맛을 보게 될 거라고 한 번 상상이나 해 보았겠는지.

    “당신이 이기기 힘든 상대였던 건가요?”

    “이기기 힘든 상대라기보다는, 이기기 힘든 장소였다고 하는 게 맞겠군.”

    “바다는 당신이 활동하기가 힘들어서 그런 건가요?”

    “그것도 맞지만, 그런 이야기 들어 본 적 없어? 물의 정령이 인어의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

    “정령 같은 건 설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요.”

    아니면 인어를 본 사람들이 그들에게 홀려서 인어를 정령으로 착각한 이야기라거나.

    오필리아가 반신반의하는 태도로 대답하자, 산테는 으쓱했다.

    “당신 말대로, 정령은 설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이기는 하지. 하지만 내가 그 얘기를 꺼낸 건, 인어들이 물이 있는 곳에서만큼은 정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파급력을 가진다는 뜻이야. 특히 바다처럼 아무리 물을 끌어다 써도 끝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라면 더더욱.”

    게다가 아리엘이 약해서 그렇지, 나이가 제법 있는 첫째 공주나 다양한 마법에 특화되어 있기로 이름난 넷째 공주까지 끼어 있었으니 산테가 대적하기가 까다로울 법도 했다.

    첫째 인어 공주는 산테를 보자마자 3층 높이의 해일을 만들어 냈고, 넷째 인어 공주는 물로 된 투사체를 만들어 쏠 준비를 했으므로.

    “인어들은 호전적이지 않을 뿐 약한 종족이 아니거든.”

    그런 설명을 듣고 나자 오필리아는 어째서 아리엘이 그토록 제 언니들을 두려워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탓에 아리엘을 다시 만날 수 없었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리엘의 언니들은 그녀가 세이렌을 만나는 것까지는 얼추 허용해 주었으나, 인간과 다시 접촉할까 봐 호시탐탐 주위를 맴돌고 있다고 했다.

    덕분에 오필리아는 의도치 않은 애로 사항을 겪고 있었다.

    ‘꼭 이안이 아니어도 아리엘을 만나서 물어볼 게 있는데.’

    되도록 좋은 말로 풀어 보려 했지만, 카델리아가 오고 임시 신전까지 생긴 이상 더는 여유를 부릴 수 없었다.

    오필리아의 계획은 이제 막바지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알레이의 기억을 되찾아 주고 마탑으로 떠나는 것.

    혹은, 자신이 그 마탑의 위치를 찾아내는 것.

    ‘알레이는 기억을 많이 되찾았다고 했지.’

    알레이는 이번에도 역시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나, 오필리아에게 안심하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기억이 많이 돌아왔습니다, 오필리아. 덕분에 파훼식이 많이 완성이 되었고. 아마 조금만 더 하면 완전히 되찾을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얼마나 돌아왔는데요?”

    “산테와 처음 만난 장소를 떠올릴 정도는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장소는 마탑의 주인만이 출입할 수 있는 방이었다.

    마탑에 대한 기억이 얼추 돌아왔다는 뜻이기도 했다. 다만 그가 기억하는 것은 실내인 탓에, 위치를 알아내라고 한다면 주변에 암초와 물이 많다는 것 외에는 썩 도움되는 것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도 이만하면 확실히 장족의 발전이라는 데에는 부정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더 기억을 찾지 못할 수도 있어.’

    오필리아는 이 정도로 안심할 수 없었다.

    그녀는 몸을 틀어 책상으로 다가갔다. 책상 위에 어느 정도 쌓여 있는 서류들과 책 몇 개를 치우면, 그 아래 여러 군데 표식이 박힌 지도가 드러났다.

    그것은 메이너드 대륙과 그 아래 몇 개의 섬이 기록된, 땅보다는 바다를 조금 더 중점적으로 기록한 지도로, 배를 타는 사람이 아니라면 거의 볼 일이 없는 종류의 물건이기도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도가 썩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축척에 대한 지식을 함양하는 것은 둘째 치고, 바다는 산이나 들처럼 측량을 정확하게 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덕분에 배를 타고 다닌 기록을 토대로 만들어진 지도는 다소 투박했다.

    밀레세트에서라면 솜씨 좋은 항해사 정도는 데리고 와야 이 지도를 볼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로넨에서는 아니지.’

    또한 로넨의 공비로서 지냈던 오필리아에게도 해당이 없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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