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화
그리고는 밀레세트 귀족들 특유의 비음이 많이 섞인 억양으로 오필리아의 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분이 천한 신분에 대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는 건 수도 귀족들 중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그 열등감 때문에 사사건건 제가 하는 일을 못마땅해하시죠.”
“천한 신분이요? 황녀 전하시라면서.”
문제는, 예니트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부류의 사람이라는 부분이었다.
오필리아의 이야기라기에 귀 기울여 듣고 있었는데,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나오자 그녀는 학창 시절의 버릇을 다시 꺼내 들고 만 것이다.
“듣기로는 당신은 그냥 귀족이라던데, 귀족이 황족을 천한 신분이라 말해도 되는 겁니까?”
“다, 당연하죠. 황녀라고 다 같은 황녀인가? 고작 하녀 태생인 주제에.”
“하녀 태생이어도 황녀면 황녀지, 뭐가 다릅니까?”
예니트가 정말 모르겠다는 투로 묻자, 릴리스는 속이 터져 죽겠다는 눈치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다르죠! 아니, 당연한 거 아니에요? 태생부터가 다르잖아요!”
“아, 혹시 당신들은 종마와 어림셈을 같은 방법으로 하는 겁니까?”
“뭐, 뭐라고요?”
“너무 태생을 운운하시기에 물어본 건데. 혹 내가 말실수를 했습니까?”
예니트는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투로 되물었다.
마탑은 철저한 능력제 사회였다.
물론 마력이라는 게 유전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고위 마법사 가문이 그 안에 존재하기도 하지만, 대단한 마법사 부모 아래 태어난 자식이 썩 변변찮은 녀석일 수도 있는 법이다.
혹은 아예 마법과는 연관이 없던 핏줄에서 엄청난 기량을 탄생시킬 수도 있는 법이고.
‘전자가 내 쪽이지.’
그리고 후자가 불세출의 천재라 불리는 그녀의 주인, 알레한드로 디아뮈드였다.
마탑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8할은 마법사다.
이 이야기를 외부인이 들으면 대개는 두 가지 반응을 하곤 했다.
하나는 마법사가 그렇게나 많냐는 것과, 또 다른 것은 마법사가 아닌 사람이 그렇게나 많냐는 것.
‘현재는 마탑 외에 마법사가 전멸하다시피 했으니 그럴 만도 하지.’
마법에 대한 신전의 규제가 풀린 뒤, 메이너드 대륙의 모든 나라들은 마법사 확보에 눈을 부릅떴다.
이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여태 신전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니 다들 눈이 돌아갈 수밖에.
마법사만 양성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신전이 제공하는 신성력을 위해 신전의 비위를 맞추지 않아도 되었다.
모든 나라의 군주들은 조금이라도 마법에 재능을 보인다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싹싹 긁어모으기에 이르렀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여전히 대륙의 마법사는 모두 합쳐 채 오십도 되지 않는다.
그나마 인구수가 가장 큰 밀레세트에 서른 명 남짓 있는 게 가장 큰 마법사 집단이었으니.
거대한 도시에 맞먹는 마탑의 인구 대부분이 마법사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마탑이 생긴 전말을 듣고 나면 오히려 후자의 의문을 표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마법사들이 박해를 피해 들어간 곳이 마탑이라면, 왜 마법사가 아닌 사람이 그렇게나 많은 거죠?
간단한 이야기다.
마법사들이 마탑으로 이주할 때 아내나 형제 등 마법 능력이 없는 사람들도 함께 데려왔기 때문에. 그리고, 마법사들 사이에서도 돌연변이처럼 마법에 대한 능력이 없는 사람이 태어나기 때문에.
그리고 예니트는 다행히 그런 축에 속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부모가 그 세대에서는 손꼽히는 마법사였다는 것이 문제인 쪽이었다.
예니트의 부모님은 전형적인 천재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낳은 아이가 범재라는 사실에 상당히 괴로워했다.
-어떻게 이 계산식조차 이 나이에 이해하지 못하는 거지?
-머리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닐까요?
천재는 범재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던가. 정확히 그 꼴이었다.
-이번에 아벨 님께서 데려온 아이는 그렇게 영특하다던데…….
-젊을 때 나보다도 나은 것 같아요. 벌써 상급반 졸업을 앞두고 있다잖아요.
-역시 마탑의 주인이 선택한 아이는 다른 건지…….
알레한드로 디아뮈드. 그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제 부모님을 통해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았다. 당시 마탑의 주인이었던 아벨 디아뮈드가 마탑의 최하층에서 데려와 직접 키웠다던 고아 아이.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마법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지.’
최하층에 머무는 이들은 대개 마법을 익히지 못하는 이들이었으니, 닭들이 낳은 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었다.
하여 최하층 출신에, 최연소로 마탑의 주인이 된 사람은 알레한드로가 전무후무하리라고 떠드는 이들도 왕왕 있었다.
그러나 그 사실에 대해 불만을 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마탑은 실력제 사회였고, 알레한드로가 그 누구보다 뛰어난 기량을 가졌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므로.
그러나 예니트가 마탑을 나와 직접 겪어 보니, 사람들은 신분이라는 것으로 서로를 나누고 있었다.
출생이 어떻고 신분이 어떻고.
덕분에 예니트는 이에 적응하기까지 제법 많은 시간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간혹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튀어나올 때가 있었다.
마치 지금처럼.
예니트는 주사기라도 꽂힌 것처럼 줄줄 질문을 뱉어 냈다.
“태생이 다르면 같은 핏줄 안에서도 능력치가 달라져서 그렇게 태생을 따지는 겁니까? 아니면 환경이 달라지기 때문입니까? 하녀 태생이라는 이유로 귀족인 당신이 황족인 그녀를 깔보듯 말할 수 있다면, 소속되는 핏줄보다는 태생이 우선되어 신분을 나누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데.
예니트의 말에, 릴리스의 얼굴이 살짝 질렸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냐는 듯.
물론 그것은 예니트에게는 일상과도 같은 일이었다.
릴리스의 눈빛에도 예니트가 조금도 굴하지 않자, 결국 릴리스는 헛기침을 몇 번 하며 제 말에 근거를 대기 시작했다.
“태생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사람의 근간이라는 게 있잖아요. 천한 핏줄이 섞이면 아무리 고귀한 핏줄이라고 해도 그 격이 떨어지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요? 오필리아 전하께서도 본인이 격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거예요.”
“그렇습니까? 격이 떨어진다고는 못 느꼈는데.”
“흥, 조금만 대화해 보면 밑천이 드러나죠. 제대로 배운 것도 없으면서 매번 신분만 앞세워 사람을 찍어 누른다고요.”
예니트는 이번에도 입이 근질거렸다.
오필리아가 신분을 앞세워 사람을 찍어 누르는 종자였더라면 진즉 제게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그녀는 머무는 내내 코르넬리와 예니트를 세심하게 신경 쓰면서도 한 번도 제 계급을 과시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못 배운 것도 아닌 것 같던데.’
예니트는 종종 오필리아의 집무실을 찾아가곤 했던 것을 떠올렸다.
일단 그녀가 로넨 대공의 치료를 위해 방문했다는 명분이 있으니 그걸 위해서라도 로넨 대공의 상태를 하루 한두 번씩 보고해야 했던 탓이었다.
그럴 때마다 오필리아는 책을 펼치고 있었다.
가끔은 지도이기도 했다.
그녀는 바다가 그려진 곳 위로 몇 개의 표식을 그려 놓기도 했고, 어떤 화살표들을 어지럽게 그려 놓기도 했다.
자세한 건 보지 못했으니 알 수 없으나 그건 분명 측량의 일종이었다. 그것도 상당히 수준이 높은.
‘거기다 저번에는 고대어를 펼쳐 놓고 있었지.’
측량이야 무역이 발달한 로넨에서는 여느 귀족들이 다 익히는 기본 교양이니 그렇다 치지만, 고대어는 이야기가 달랐다.
고대어는 현재 메이너드 대륙을 비롯해 마탑까지 통용되는 공용어와 각 나라가 사용하는 언어들의 기본이 되는 언어로, 그 체계가 언어 서너 개를 합쳐 놓은 것만큼 어려웠다.
또한 고대어는 상급반을 졸업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필수적으로 익혀야 하는 교양이기도 했다.
마법에 사용되는 문자는 고대어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또 계산식의 수준이 올라갈수록 그 범위가 넓어져 고대어를 모르면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식이 많은 탓이었다.
그러니 예니트 역시 고대어를 알아볼 수 있었지만, 오필리아 또한 그런 지식을 갖추고 있다는 게 놀라워 말을 붙여 보았다.
-저, 오필리아. 혹시 지금 펼쳐 놓은 거 읽을 수 있습니까?
-삶은 부식의 일환이다. 우리는 녹슬어 죽어간다. 그러니 모든 것이 부식되어 흘러드는 바다는 명계의 일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됐습니다. 충분합니다.
그녀는 정말로 고대어를 읽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오필리아가 못 배웠다니?
“혹시 당신 고대어 할 줄 압니까?”
“그걸 배우는 사람도 있어요?”
“……오필리아는 잘하기에 궁금해서 물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