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을 구한 적 없다-51화 (51/118)
  • 제51화

    “말하자면 그렇죠.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으니 확신할 수는 없어도.”

    그래서 코르넬리와 예니트가 어떤 태도일지 경계했는데, 이만하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고 오필리아는 이어 말했다.

    “둘 다 당신에게 호감이 있고 제법 경계심도 없으니까, 돌아오거든 데려가서 얘기를 해 봐요.”

    “돌아오거든 데려가라고? 당신은 어딜 가고.”

    “나는 잠깐 다녀와야 할 곳이 있어요. 릴리스가 여태 보이질 않는 게 좀 걸리네요.”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상대가 좀 있어서…….

    오필리아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잠시 시선을 먼 곳에 두었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그들 관점에서는 외부인이니, 내가 끼지 않는 쪽이 경계심을 허물기에 더 좋을 거예요.”

    오필리아는 무던하게 대답했다. 반지를 다시 끼고, 옷매무새를 정돈하는 것까지 이렇다 할 동요 없는 표정.

    풀었던 단추를 도로 잠글 즈음에야 그녀는 생각이 닿았던지, 아!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들었다.

    “혹시, 그 둘 사이에 껴 있기가 불편해서 그래요?”

    알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바보 같고 어린애 같은 긍정을 내놓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붉어진 얼굴까지는 숨길 수가 없었던지.

    오필리아가 손을 뻗어 알레이의 뺨을 감쌌다. 닿은 손이 차가웠다. 대체 제 뺨이 얼마나 뜨거워진 건지.

    “다들 당신을 좋아하잖아요. 걱정하지 말아요.”

    “때론 악의보다 호의가 더 두렵습니다, 오필리아.”

    호의는 사람을 연연하게 한다. 행동을 재단하고 스스로가 너무 바보 같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되묻게 되어서.

    그다지 대단한 관계가 아니더라도 상대의 호감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은 고개만 돌려도 수십이 보일 것이다.

    “이렇게 연연할 바에는 차라리…… 나쁘게 보아 주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이 나쁘게 볼 만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랬겠죠. 연연하지 말아요.”

    당신이 어떻게 하든 당신 곁에 있을 사람은 있을 거예요.

    알레이는 그 말을 들으며 잠자코 눈꺼풀을 내렸다.

    차마 상대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응석처럼 보여도 괜찮았다. 크게 다르지도 않을 테니.

    눈을 마주하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불쑥 묻게 될 것 같았다.

    오필리아, 당신은 내 곁에 있을 사람이냐고.

    ‘그럴 수는 없지.’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알레이는 오필리아의 말에 완전히 공감할 수 없었다.

    오필리아의 말마따나 자신이 어떻게 하든 남아 있을 사람은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중에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없다면?

    제게 질려서, 혹은 싫어서 떠나 버릴 누군가 중에 제가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때는 어떡해야 할까.

    결국 스스로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래서 알레이는 오필리아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잘해 보겠습니다.”

    * * *

    그렇게 지금.

    그는 자신의 호기를 후회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지내셨어요, 알레한드로 님?”

    “계속 이 밀레세트에서 지내신 건가요? 로넨에 오신 적은 없으시고요?”

    이 요란한 병아리 마법사들은 여러모로 상대하기 난감한 경향이 있었다. 특히 둘 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했다.

    “밀레세트에서 황궁 마법사로 쭉 일했어. 크센트는 가 본 적이 있는데, 로넨은 아직.”

    “아, 아쉽네요. 로넨에 오셨더라면 저를 만나셨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알레한드로 님, 혹시 다른 마탑의 마법사는 아직 만나 보신 적이 없으신가요?”

    코르넬리의 또랑또랑한 물음에, 알레이가 자꾸만 존대를 하려고 하는 입을 애써 풀어 가며 대답했다.

    “음, 밀레세트에는 마탑 출신이 없어서.”

    밀레세트는 메이너드 대륙에서 가장 신전의 영향이 큰 곳이었다.

    그 말은 마법사들의 입지가 여전히 약하다는 뜻이기도 했고.

    “하지만 만났더라도 알레한드로 님을 알아보기는 쉽지 않았을 거예요. 상급 마법사 정도는 되어야 알레한드로 님을 만날 수 있으니까. 이 정도는 기억나세요?”

    “아니. 기억하는 게 많지는 않아서…… 날 만날 수 있는 기준이 따로 있었던 건가?”

    “아뇨, 상급이 된다는 건 마탑의 마법식 연구에 정식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거라서…… 아참!”

    시니컬하게 이야기하던 예니트의 낯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그러고 보니 혹시 따로 연구하신 수식은 없으신가요? 아니면 개량법이라거나?”

    “아, 맞아! 저 알레한드로 님이 돌아오시거든 여쭙고 싶었던 것들을 정리해 왔어요!”

    예니트의 질문에 코르넬리가 반색하며 제 가방을 붕 띄워 왔다.

    상급 마법사라는 말은 과언이 아니었던지, 그는 가방의 끈을 풀어 안의 내용물까지도 하나씩 공중에 꺼내기 시작했다.

    “마탑을 나가시기 전까지 연구하시던 것들도 가져올까 했는데, 그건 나중에 마탑에 가셔서 봐도 괜찮을 테니까요!”

    “질문도 마탑에 가셔서 봐도 괜찮지 않나? 나도 질문이 많단 말이야. 이동 마법진을 개량 중이었는데 막히는 게 너무 많아서…….”

    예니트도 코르넬리의 질문 공세에 동참해 종이를 가져오더니 무언가를 달필로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동 마법진의 일부였다.

    그들은 탐구심 넘치는 학생들처럼 각자 질문할 게 있다며 저들끼리 떠들더니, 결국 한 지점에서 의견을 합쳤다.

    “이것 좀 봐 주시겠어요, 알레한드로 님?”

    바로, 답을 잘 모르겠으면 알레이에게 묻자는 부분에서 말이다.

    문제는 대화를 듣고 있던 알레이 역시 그 주제에 조금 흥미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슬쩍 훔쳐본 종이들의 수식이 제법 흥미로웠다.

    오필리아가 봤더라면 마탑의 이야기를 알아내야지 뭘 하고 있는 거냐고 쏘아붙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 럼 한 번 볼까.”

    알레이는 자신이 잃어버린 기억 못지않게, 그들이 가져온 이 연구 자료들이 궁금했다.

    잠깐 살펴본 뒤에 다시 마탑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알레이는 슬며시 고개를 드는 양심의 가책을 애써 외면하며 코르넬리가 건넨 자료를 종이 뭉치를 받아 들었다.

    “이게 전부 연구 자료인가?”

    “아, 아닌 것도 섞여 있긴 하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습니다.”

    코르넬리의 말은 맞았다. 몇 장을 넘겨도 전부 연구에 대한 내용들이었다.

    간간이 코르넬리가 연구를 하다 울며 하소연하듯 메모를 남긴 부분도 존재했다.

    [알레한드로 님이 계셨더라면…….]

    [예니트가 이 수식을 좀 알까? 편지가 올 때가 됐는데.]

    [아, 머리 아파.]

    대체로 이런 식으로 혼잣말을 끄적인 것들.

    알레이는 저도 모르게 픽 웃으며 종이를 넘겼다.

    그러던 중, 한 메모가 눈에 들어왔다.

    [메르시아 님은 틀렸어. 그분이 흑마법을 쓰셨을 리 없어.]

    [그분이 아니라면 지금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도 없는데…….]

    알레이의 시선이 우뚝 멈추었다.

    예상치 못한 단서였다.

    ‘그분’과 흑마법.

    이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할 알레이가 아니었다.

    알레이의 시선이 메모 위를 맴돌았다.

    ‘마탑에는 내가 흑마법을 썼다고 알려진 건가.’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알레이는 흑마법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물론 흑마법을 쓴 이후 기억을 빼앗겨 흑마법에 대한 기억까지 함께 봉인 당했을 가능성이 있으니 과거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지만.

    알레이 역시 흑마법을 쓴 마법사가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었다.

    ‘영혼을 먹히고, 마력에서도 불쾌한 기운이 물들기 시작하고.’

    흑마법에 영혼을 먹힌다는 것은 마력의 성질이 바뀐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알레이 본인이 느끼기에 그의 마력은 멀쩡했다.

    알레이는 본인이 흑마법에 물들지 않은 마법사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러니 그의 시선을 붙든 것은 비단 흑마법에 대한 오해가 놀라웠던 까닭은 아니었다.

    ‘이제야 알겠군.’

    코르넬리가 알레이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트렸던 이유를 얼추 가늠할 수 있었던 탓이다.

    그것은 비단 그리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마 내가 흑마법에 물들었을까 걱정했던 거겠지.’

    그리고 변함없는 마력을 느끼고 안도했을 것이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에요…….

    코르넬리는 울면서 이렇게 중얼거리기도 했다. 그때는 그저 알레이가 무사한 것에 그렇게 안도하는 줄 알고 넘겼지만.

    ‘그보다 다른 부분이 걸리는군.’

    메르시아 님?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 없다?

    마탑에 문제가 생긴 건가?

    ‘다른 쪽을 한 번 볼까.’

    알레이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척 마저 종이를 넘겼다.

    그러나 마지막 장에 다다를 때까지 이렇다 할 추가적인 메모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결국 메모를 쓴 본인에게서 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알레이는 태연히 종이를 도로 덮어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다 봤다. 연구를 열심히 했던데, 코르넬리.”

    “과, 과찬이세요! 제가 한 건 아무것도 아닌걸요. 저는 그저 식을 정돈하기만 했어요!”

    “그럼 도와준 이가 있었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