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을 구한 적 없다-50화 (50/118)

제50화

아리엘은 파도 쪽을 눈짓하며 말을 이었다.

“소라게가 하도 법석을 떨기에 와 봤는데, 언니들에게 들키기 전에 얼른 돌아가야 하거든요.”

“그 언니들이라면 걱정하지 마. 널 막을 방법을 토론하느라 한동안은 물 아래로 내려갈 일이 없어 보이던데.”

“언니들을 봤나요?”

“그렇지 않다면 내가 왜 너를 불렀겠어?”

정확히 말하자면 오필리아에게 점수를 따려고 한 게 컸지만, 산테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게다가, 그는 이 상황을 재미있게 만들 방법이 하나 더 생각나기도 했다.

어제 오필리아가 시간을 거슬러 왔다는 것을 밝힌 이후, 산테는 오필리아에 대한 정보를 몇 개 가늠하게 되었다.

‘물론 오필리아는 시간을 돌아온 일에 대해 많은 걸 말할 생각이 없어 보였지만.’

산테에게는 연륜이 있었다.

물론 세이렌의 원로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이만큼 살았다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보이는 게 있었다.

예를 들어, 아리엘이 뭍으로 나가 어째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부분.

아리엘이 과연 눈치를 챘을지는 몰라도, 산테의 눈에는 확연히 보였다.

‘조건식 마법을 썼겠지.’

생물의 종을 바꾸는 것처럼 자연을 거스를 수 있는 마법은 오직 조건식 마법뿐이다.

다만 그 조건을 아리엘이 달성하지 못해 결국 목숨을 잃었겠고.

‘그에는 오필리아가 책임이 있겠지.’

경험 적은 인어에게는 몰라도 산테에게는 불 보듯 뻔한 일.

그걸 알아챈 것까지는 좋았다. 산테는 자신의 재빠른 눈치를 늘 자랑스러워하는 편이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 검은 머리 인간 수컷 앞에 오필리아가 잠깐 내보였던 표정이 그의 목을 가시처럼 찌르고 있다는 사실.

산테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느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언제나 그 눈동자 속에 도사리고 있던 청염이 사그라들었다는 사실? 아니면 그녀가 늘 걸어 닫고 있던 빗장이 그 수컷 앞에서는 잠시 느슨해졌다는 것?

아무래도 좋았다. 산테는 그 수컷을 오필리아의 옆에서 치우고 싶었다.

그가 50년만 어렸더라도 분명 당장 그 자리에서 수컷의 대가리를 터트렸을 텐데.

‘나도 많이 죽었군.’

수장으로 지냈더니 몇 없는 온정이 강해지기라도 한 건지.

산테는 속으로 혀를 한 번 차고는, 여전히 사람 좋은 낯을 한 채 다리 위에 턱을 괴었다.

“듣다 보니 문득 내가 너를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언니들이 뱀장어와 세이렌의 말은 믿는 게 아니랬어요.”

“그랬으면 소라게가 네 앞에서 무슨 염병을 떨든 이리로 나오지 말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산테가 사늘히 웃으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아리엘의 말마따나 인어들의 세이렌에 대한 경계는 결코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리엘이 이리로 나왔다는 건 뜻이 자명했다.

“너도 내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던 거겠지. 네 짧은 식견으로는 결코 뭍으로 나갈 방법을 알 수 없을 테니 더더욱.”

“나는-.”

“내 말이 틀린가?”

산테의 물음에 아리엘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는 조금 분한 표정이 되었다가, 파도가 세 번쯤 암초를 적신 뒤에야 입을 열었다.

“……맞아요.”

“솔직하니 좋군.”

“어쩔 수 없잖아요. 언니들은 나한테 그 어떤 마법도 알려 주지 않으려 할 게 분명하다고요. 내가 마법사들하고 이야기라도 할까 봐 마탑의 위치도 알려 주지 않았어요!”

“그래, 그런 모양인 걸로 보였지.”

산테가 싱긋 웃으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아리엘, 난 널 뭍으로 데려가 줄 수 있을 법한 마법사를 알아.”

* * *

같은 시각, 라딘 성.

산테가 말한 바로 그 마법사는 다른 두 마법사 청년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다.

시큰둥한 듯 잔뜩 신이 난 표정으로 서 있는 한 명은 당연하게도 예니트.

그리고 대놓고 선망의 눈빛을 감추지 못하는 다른 한 명은.

“코르넬리. 적당히 떨어져. 네 멍청함이 알레한드로 님께 옮으면 어떡하려고 그래?”

“하지만 내가 알레한드로 님을 다시 보고 있다는 게 도저히 믿기질 않는걸? 예니트, 혹시 내가 여기 있는 게 꿈은 아니겠지?”

“왜, 한 번 걷어차 주랴?”

“아냐, 꿈은 아닌 것 같아. 친절은 감사히 받을게.”

털이 복슬한 강아지를 연상시키는 인상의 청년, 코르넬리는 말하는 내내 알레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진지하게 경애하는 이들 사이에서, 알레이는 사람이 부담스러워서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경험하는 중이었다.

‘오필리아…….’

그는 지금 길 잃은 세 살배기가 어머니를 찾는 것보다 더 강렬하게 오필리아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오필리아가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기억을 잃기 전의 나는 대체 어떻게 이런 걸 견딘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잖아도 어느 정도 괴리감이 있던 과거의 자신과 다섯 계단쯤 더 멀어진 기분이다.

상황은 지금으로부터 약 30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라딘 성으로 돌아온 그들은 어렵지 않게 코르넬리를 찾아냈다.

코르넬리의 마력에 익숙한 예니트가 탐지 마법을 풀어 성 근처를 불안한 듯 서성이고 있던 코르넬리를 잡아낸 덕분이었다.

“산테의 말을 따라서 여기까지 오기는 했는데,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 막막해서 성벽을 돌고 있었어요.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코르넬리는 그렇게 말하며 예의바르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밀빛 머리부터 둥근 눈매까지, 순하고 선한 것이 눈에 띄게 드러나는 유형인 것 같았다.

그 씩씩하고 싹싹한 모습을 보며 알레이는 저도 모르게 안도했다.

‘예니트처럼 나한테 과도한 경애를 표하지는 않겠군.’

숲에서의 찰나였지만 숨 막히는 경험을 떠올린 알레이가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쉰 순간.

털썩.

코르넬리 쪽에서 돌연 소리가 났다. 그가 털썩 무릎을 꿇은 탓에 생긴 소리였다.

“아, 알레한드로 님…….”

코르넬리는 울고 있었다.

그는 알레이를 보고 경애를 표하지 않았던 것은 그가 본디 그런 성격인 탓이 아니었다.

그저 경황이 없어 너무 늦게 알레이를 발견해 버리고만 탓이었다.

갑작스러운 눈물에 예니트가 당황하며 코르넬리를 서둘러 일으켰다.

“왜 울고 그래? 기껏 만났는데!”

“알레한드로 님을 다시 뵙고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서……. 다시는 못 뵐 거라 생각했는데, 흑!”

코르넬리는 예니트에게 등짝을 맞아가면서도 눈물을 쉽게 그치지 못했다.

덕분에 알레이만 죽을 맛이 되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상황을 중재한 건 오필리아였다.

“예니트 씨. 코르넬리 씨가 아무래도 진정을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저기 식당으로 데려가는 게 어떻겠어요?”

안절부절못하는 알레이와, 주접에 소질이 있는 두 마법사 덕분에 소란했던 상황.

우습게도 오필리아가 입을 열자 상황은 가볍게 정리되었다.

“이 상태로는 신원 증명을 하기도 어려울 것 같고. 식당에 가서 물도 좀 마시고 진정을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아, 아무래도 그래야겠네요. 식당이 어느 쪽이죠?”

“저쪽이에요. 방 두 개 건너서 오른쪽으로 꺾고.”

“흐음, 그만하면 알겠네요.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니트는 그렇게 말하고는 여전히 눈물로 즙을 짜고 있는 코르넬리의 손목을 덥석 붙들어 순간이동으로 휭하니 사라졌다.

그렇게 복도에 오필리아와 알레이 둘만 남는 상황이 되자, 오필리아가 웃음기 없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제 좀 알겠네요.”

“무엇을 말입니까?”

“저 사람들이 어떤 성격인지. 알아볼 시간이 좀 필요했어요.”

예니트와 코르넬리에게 말을 건넬 때의 상냥한 목소리와는 사뭇 다른, 그러나 알레이에게는 한결 더 익숙한 관조적인 목소리.

“당신을 경계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럴 일은 없겠네요.”

“날 경계할 거라 생각한 겁니까? 언제는 그리워했을 테니 믿으라더니?”

“물론 내 기억 속에 당신은 환대받는 입장이었어요. 하지만 예외라는 게 있잖아요.”

식당 쪽을 보는 오필리아의 눈이 사뭇 가늘어졌다.

“산테에게서 누가 올지 들었을 때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당신은 마탑의 주인이고, 바다도 순식간에 잠재울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마법사인데.”

어째서 기본적인 계산에서조차 실수를 하는 어리숙한 마법사 한 명만 보내는 걸까요?

덧붙여지는 물음에 알레이가 고개를 기울였다.

“마탑은 워낙 밖을 꺼리는 이들이니 그럴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당신이 기억을 빼앗기고 쫓겨났다는 부분에 좀 더 초점을 뒀어요.”

“내가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라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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