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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구한 적 없다-34화 (34/118)
  • 제34화

    “이 마법은 다른 마법과 본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종족들은 썩 내켜 하지 않는 마법이기도 하고.”

    알레이는 이어 설명했다.

    마법의 본질은 자연을 따라하는 것이라고.

    자연의 법칙과 규칙을 알아내어 그것을 수식화한 것이 바로 마법의 계산식이고, 마법은 그 계산식을 마법사의 마력을 대가로 시동하는 원리였다.

    “하지만 조건식 마법은 그와 질이 많이 다릅니다. 이건 마법이 걸리는 사람이나 마법을 시동한 사람, 둘 중 한 명의 영혼 일부를 대가로 한 거래라서요. 거래를 완수하지 못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그제야 오필리아는 아리엘과 산테가 이 마법을 꺼린 이유를 깨달았다.

    “무언가를 제물로 내놓아야 하는 마법이라, 다들 그런 반응이었던 거군요.”

    “따지자면 거래를 통해 자연을 거스르는 행위에 가까워서 그럴 겁니다.”

    “그렇다면 대체 누구와 거래를 하는 거죠?”

    “그것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마 마나를 관장하는 쪽일 테니, 굳이 비유하자면 신이 아니겠습니까?”

    “신전에서 듣는다면 돌을 맞아도 이상하지 않을 발언이네요.”

    “어차피 그들은 아직도 마법사를 이단으로 취급하는데, 무슨 상관입니까.”

    알레이가 들으라면 들으라는 듯 심드렁하게 굴자, 오필리아가 심각하던 낯을 풀고 픽 웃었다.

    “그럼 거래를 완수하지 못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나요?”

    “거래는 무산되고, 대상자는 그에 대한 대가를 바치게 됩니다. 때로는 목숨까지도.”

    알레이의 말은 날카로웠다. 분명 그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얘기했으나, 오필리아가 그 말에 찔리지 않을 수 없었던 탓이었다.

    시간을 되돌아온 것도 조건식 마법으로 인한 것이라면, 자신은 어떤 조건을 달성해야 한단 말인가?

    오필리아는 저도 모르게 숨이 막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정말, 거래군요.”

    “괜히 거래라는 말이 쓰이는 게 아니죠.”

    “그럼 우리 둘 다 각자에게 걸린 마법을 해결하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

    “그랬더라면 제가 이렇게 태평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알레이가 턱을 괴며 대답했다. 그는 조금 쓴 투로 말을 이었다.

    “말이 그렇지, 실제로 목숨을 잃을 정도는 아닙니다. 대개 제물을 돌려주지 않는 정도로 끝이 나니까. 아마 내 경우는 제물이 빼앗긴 기억이었을 테고, 기억을 영원히 되찾을 수 없는 정도로 끝을 볼 겁니다.”

    “하지만 장담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대개라면.”

    아닌 경우도 있다는 건데.

    오필리아의 목소리 끝이 조금 떨리자, 알레이가 손을 뻗어 테이블 위 그녀의 손등을 감쌌다.

    “오필리아. 걱정 마세요. 그런 경우는 정말 특이한 경우입니다. 그런 건 불가침의 영역을 건드리는 경우에나 해당할 겁니다.”

    알레이는 나름대로 그녀를 위로하고자 한 행동이었겠지만.

    시간을 거슬러 온 오필리아의 입장으로서는 그의 말이 끝날 때마다 불안이 등줄기를 타고 차츰 올라오고 있었다.

    발목 언저리에서 늘 찰랑이고 있던 검은 물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그러면서도 질문을 멈출 수 없는 것은 미지에 대한 탐구심일까.

    “불가침의 영역이…… 뭐죠?”

    “종족이나 시공간의 영역. 말 그대로 거스를 수 없는 것들.”

    “만약 그걸 거슬렀다면?”

    “그걸 거스르고도 조건을 달성하지 못했다면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겠죠. 당연한 걸 물으시는군요.”

    그에 대한 대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오필리아가 아니었다.

    “피할 방법은 없나요?”

    “물론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 기억하십니까? 마법을 건 사람이나 걸린 사람, 둘 중 한 명에게서 대가를 가져간다고요.”

    그리고 인어의 비늘은 인어의 죽음을 대가로 해서 얻을 수 있는 물건이었다. 즉, 이미 대가를 치렀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확신할 수는 없다.

    “좀 더 알아보긴 하겠습니다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거래의 조건을 알아내는 겁니다.”

    혹은 거래의 조건을 알면 파훼식 또한 만들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니 조건을 알아내어 파훼식을 만들거나, 거래의 조건을 달성해 대가를 치르지 않게 하라.

    그것만이 유일하게 대가를 치르는 것을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대화가 그쯤 이르자, 오필리아의 안에서 휘몰아치던 불안은 아주 명료한 해답에 다다라 있었다.

    ‘일이 여기까지 온 이상 돌아갈 길은 없다.’

    이 마법을 유지하지 못하면 현실로 돌아갈뿐더러, 돌아간 현실에서 죽는다.

    분명 그것을 바라고 비늘을 삼켰으니 원하던 대로 되었다는 말이 어울리겠지만.

    ‘이제는 죽고 싶지 않아.’

    연회장에서 투신해 알레이를 만났던 그 순간부터, 오필리아는 죽음을 원치 않게 되었다.

    백사장에서 겨우 붙잡은 사금 같은 희망이 손아귀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끝을 볼 수는 없다.

    오필리아는 조용히 손을 그러쥐며 이어 물었다.

    “그럼, 조건을 어떻게든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실마리 정도는 있습니다. 조건식 마법의 거래 조건은 대상자의 소망과 맞닿아 있다고 하더군요.”

    조건을 알아낼 실마리는 마법을 건 사람이 아니라, 마법이 걸린 사람에게 있다.

    “내가 당신에게 협력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입니다. 나는 과거의 나에 대해 정말 아는 것이 없어서, 과거의 내가 과연 무엇을 바랐는지도 모르겠거든요.”

    “그럼 내가 정말로 기억을 찾아 줄 거라고 기대한 게 아닌 거군요.”

    “길게 보자면 그렇게 기대한 것도 맞습니다. 당신이 나에 대해 알려 주면, 나는 그걸 통해 얻은 실마리로 조건을 알아낼 수 있을 테니.”

    오필리아 덕분에 전보다는 해답에 훨씬 가까워진 기분이 든다고, 알레이는 말했다.

    “그러니 당신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이 그 당시에 무엇을 바랐는지를 생각하면.”

    대화를 마칠 즈음, 알레이는 전에 없이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필리아의 앞에서 늘 짓궂은 미소를 짓거나 퉁명스럽게 인상을 쓰던 것을 생각한다면, 그 긴장감 없는 낯은 외려 낯설기까지 할 정도였다.

    그러나 오필리아는 어쩐지, 수렁에 빠진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 신뢰와 평화가 곧 죽게 될지도 모르는 자신의 처지와 얼마나 대비되는지 피부로 와닿은 탓에.

    오필리아는 직감했다.

    나는 이 삶을 살아가는 하루하루 더 생을 갈망하게 되겠구나.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도 모르고 단지 하루 더 숨 쉬는 것을 원하겠구나.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를 다시 마주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깨달음에 오필리아가 대답이 없자, 그것을 착잡함으로 인한 침묵으로 오인한 알레이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오필리아, 당장 급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지금은 와닿지 않더라도 곱씹어 보면 뭔가 짚이는 게 있을 겁니다. 큰 도움은 되지 못해도-”

    “아뇨, 도움이 됐어요. 아주 많이. 당신 덕분이에요.”

    고마워요. 오필리아는 거듭 인사한 뒤 알레이에게 밤 인사를 하고 방을 나섰다.

    당장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과거를 마주하는 것.

    * * *

    오필리아는 알레이와의 대화를 마치고 곧장 이안이 잠든 방으로 향했다.

    자신이 그를 구했던 날로 돌아왔으니, 다시금 그때의 그를 마주한다면 자신이 무엇을 바랐던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현재 이안의 보호자는 자신이었기 때문에, 소등 후 이안의 상태를 살피는 게 일과 자체에 포함되어 있었기도 하고 말이다.

    이안이 깨어난 이후에 와도 되었겠지만, 아직은 그럴 자신이 없었다.

    오필리아는 돌계단을 내려갔다.

    또각또각 소리가 제법 스산하게 울리는 어두운 복도 안, 등불이 흔들리며 길을 밝혔다.

    그녀의 목적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몇 걸음 가지 않아 멈춘 오필리아가 노크 없이 방문을 열었다.

    복도와 다를 바 없이 달빛을 제외하면 불빛 하나 없는 어두운 방.

    그 어둠을 조각해 만든 것 같은 방 안에 사내가 깊이 잠들어 있었다.

    오필리아는 그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이안.”

    전생에서는 수없이 불렀던 이름. 그것은 그 자체로 사랑의 언어이기도, 애원의 눈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

    빗물 맛이 혀끝을 맴돌았다.

    오필리아는 천천히 이안에게로 다가갔다. 이안을 다시 보면 무언가 자신이 소망한 것의 해답에 가까워질 수 있을 거란 기대와 달리, 오필리아의 그림자가 이안을 완전히 덮어도 그녀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해변에서 느낀 것과 꼭 같았다.

    오늘은 실망의 연속인 건지. 오필리아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그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서인가?’

    이미 죽어 버린 감정의 부산물을 붙잡고 무언가를 이끌어 내려 한다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었을까.

    오필리아는 조금도 뛰지 않는 심장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가슴을 붙잡고 잠깐을 더 서 있다 발을 돌렸다.

    이안이 해답이 아니라면 다시 원점이었다.

    ‘아무래도 다른 무언가를 찾아보는 게 좋겠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침상으로부터 멀어지려는 순간.

    “오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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