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화
그러나 오필리아는 아리엘이 무엇 때문에 죽는지, 그리고 왜 자신이 원인인지는 말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말해 주겠다고 했더라도 분명 용기가 나지 않아 듣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과 닮은 듯 다른 그녀가 어째서 자신이 죽는 원인이 되는 건지 듣고 나면 그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리고 할아버지가 시간에 대한 것은 모를수록 좋다고 했어.’
본디 몰라야 했던 것이라면 되도록 모르는 채로 두는 게 좋다고.
자세히 알게 될수록 운명은 꼬이기 마련이라고.
막내 손녀딸을 지극히 아꼈던 인어들의 선왕은 그렇게 말했다.
그는 알고 있었던 걸까, 그렇게 아꼈던 손녀딸이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될 거라는 것을.
‘그 인간 남자를 봤을 때까지만 해도 좋았는데.’
밤하늘을 보며 유영하고 있던 중에 마주친 범선.
어째서인지 소란한 갑판 끝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아리엘이 살면서 본 중에 가장 잘생긴 남자였다.
마른 뺨을 타고 깎인 달빛이 어쩐지 우수에 찬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짙은 흑발이 밤하늘과 끔찍하게 잘 어울리는 인간.
물그림자에 살며시 몸을 숨기고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심장이 뛰는 것만 같았다.
만약 그때 갑작스러운 격랑이 배를 덮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갑판에 서 있던 남자가 중심을 잃고 바다로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아리엘의 품에 남자가 있었고, 배는 사람을 잃은 채 파도에 휩쓸려 점점 죽음에 가까워지는 중이었다.
앞도 뒤도 온통 밤을 닮은 검은 물뿐인 망망대해에 남자와 아리엘만을 남겨 둔 채로.
그때의 묘한 희열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유성. 그래. 그건 유성이었다.
유성이 제 품으로 뛰어든 것 같았다.
남자를 끌어안은 심장이 너무 뛰어 터질 것만 같았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인간을 사랑해 그들을 바닷속으로 끌어들였던 고대의 인어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인어들에게는 한 가지 원칙이 있었다.
물 위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그 무엇도 참견하지 말 것.
아리엘은 이 넓은 바다에서 난파가 얼마나 흔한 일인지 봐 왔다. 그리고 죽음이 얼마나 가까운 명제인지도.
그러니 그 남자 역시 그 자리에서 놓고 돌아갔어야 옳았겠지만…….
“……나 조금 피곤해서 쉬러 갈게, 언니들.”
아리엘은 떠들썩하게 다가오는 언니들을 뒤로하고 제 방으로 헤엄쳐갔다.
착잡한 속내는 오필리아와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던져졌던 물음을 곱씹고 있었다.
오필리아는 아리엘에게 이렇게 물었다.
만약 그녀가 과거와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지.
-만약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됐다면. 그런데 그 사람이 다른 이와 결혼하는 걸 본다면 당신은 뭘 바랄 것 같나요?
아리엘은 어째서인지, 그 별것 아닌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 * *
한편, 같은 시각.
“그러니까, 당신이 저 사람을 해변에서 구해 오셨다는 겁니까?”
“조난당한 모양이더군요.”
오필리아가 알레이의 물음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녀는 아리엘과의 대화를 마치고 성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참이었다.
나갔을 때와 똑같이 산테를 타고 돌아왔는데, 돌아와 보니 방에 인영이 있었다.
당연하지만 알레이였다.
마침 이안의 목숨을 어느 정도 붙여 놓을 사람도 필요했으니 잘된 일이었고.
마침 물어볼 것도 있었으니 더욱 잘된 일이었다.
‘아리엘과 비늘에 대한 타개 점을 찾지 못했다는 것 말고는 아직 문제는 없군.’
오필리아는 작금의 상황에 조금 피로를 느끼며 소파의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얼마 전, 해변.
오필리아는 아리엘에게 자신이 겪은 과거를 설명했다.
아리엘이 어째서 죽어야 했는지, 그리고 자신이 어째서 과거로 돌아오게 되었는지.
물론 자세히 말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언니들이 칼을 주었다는 내용이나, 아리엘을 뭍으로 보내 준 사람이 누구였는지. 그리고 자신이 로넨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등은 빼놓고 이야기했으니까.
“정리하자면, 당신이 사랑하게 된 남자가 자신을 구해 준 상대를 나로 오해했기 때문에 이 모든 비극이 일어났다는 거예요.”
“말도 안 돼…….”
아리엘은 처음에 믿지 않는 표정이었으나, 오필리아의 이야기가 진전될수록 불신을 갈망하게 되는 낯으로 변해갔다.
처음 만난 상대가 자신이 누구인지부터, 누굴 사랑하게 되었는지까지 모두 알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심지어는 그 끝이 비극이라고까지 말해 버렸으니.’
순진한 인어에게 몹쓸 짓을 한 기분이지만. 별수 있나.
이걸 말하지 않고서 오필리아는 자신의 목적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녀가 아리엘을 찾아온 이유는 어디까지나, 비늘의 마법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으므로.
“나는 당신의 유품이 내게 남긴 마법에 대해 알아보려 하는 중이에요. 이 상태로는 다른 마법을 걸 수도 없고.”
무엇보다 마법은 대개 영구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만약 인어의 비늘이 건 마법의 유효 기간이 끝난다면, 순식간에 현실로 곤두박질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영구적인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이 경우가 그런 것일지는 확신할 수 없으므로.
오필리아는 지금 이 삶이 언제 사라질지 몰라 벌벌 떨고 싶지 않았다.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에요. 단지 마법의 실체 정도만 파악하고 싶어요. 끝이 나는 종류라면 언제 끝이 날지, 혹은 계속 지속되는 경우인지. 당신이 날 도와준다면 나도 당신이 일찍 죽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어요.”
그리고 그것은 정말 간단한 일이었다.
아리엘이 뭍으로 나오지 않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혹은 이안이 아리엘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돕거나.’
어느 쪽이든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거라고 오필리아는 장담할 수 있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는 자신의 구원자를 사랑하게 될 테니 말이다.
오필리아는 아리엘의 시린 눈동자를 응시하며 글자를 눌러 말했다.
“당신이 나를 당신의 마법에서 자유롭게 해 준다면 나도 당신의 목숨을 구해 줄게요.”
꼭 목숨이 아니어도 좋다. 다른 걸 원한다면 그걸 도와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의외의 곳에서 발생했다.
조금은 속이 상한 얼굴로 오필리아를 바라보던 아리엘이, 고개를 저은 것이다.
“미안해요. 당신이 무슨 상황인지는 모두 이해했지만 이 문제는 내가 도와줄 수 없을 것 같아요.”
“……왜죠?”
아리엘을 만나면 무언가 해결책을 찾을 거라고 내심 기대했던 오필리아가 허탈함에 물었다.
그녀가 아리엘은 만난 이유는 어디까지나 비늘의 마법을 풀 방법을 찾기 위함이었는데.
그 무엇도 도울 수 없다니.
“보통 마법의 시전자가 그 파훼법도 알고 있지 않나요? 하다못해 실마리라도.”
“당신이 무슨 실마리를 원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번 걸면 끝을 보기 전에는 풀 수 없는 마법도 있어요.”
“마법에도 종류가 있나요?”
오필리아는 반쯤 불신하며 되물었다.
마법이 박해받아 온 만큼 그에 대한 내용은 대중화되어 있지 않지만, 오필리아가 누구던가.
그녀는 전생에 이 세계 최고 대마법사를 지인으로 둔 사람이었다.
당연히 그한테 전해 들은 풍월이 제법 되었다.
그런 오필리아가 알기로, 자연의 이치를 연구해 계산식을 만들면, 마법은 마력이라는 매개를 이용해 이 계산식을 현실로 구체화하는 작업이었다.
이 본질은 어느 종족을 가든 동일하다고, 알레이는 설명했다.
-인간들은 마법 계산식을 만들기 위해 많은 연구를 거쳐야 했지만, 인어나 세이렌과 같이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종족들은 인간과는 다른 눈을 가졌습니다.
인간보다는 동물에 가까운 그들은 더 밝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별다른 연구 없이도 자라면서 자연히 이러한 계산식을 터득하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마법은 계산식이었고, 그를 풀기 위한 파훼식 또한 분명 존재했다.
그런데 풀 수 없는 마법이라니?
“당사자가 저렇게 말할 정도라면 분명 그런 종류의 마법이 맞는 것 같군.”
만약 산테가 옆에서 한마디 거들지 않았다면 오필리아는 아리엘을 믿지 못했을 것이다.
“산테, 그런 종류의 마법이라는 건.”
“말 그대로, 시전자도 풀 수 없는 마법 말이야. 인간은 그런 걸 조건식 마법이라고 부르던데.”
산테는 말을 아꼈다.
이런 문제는 디안 놈이 제일 잘 알 거라며 그에게 물어보라는 말도 했다.
마치 이 일에서 발을 빼려는 듯한 태도.
불안감이 엄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