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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구한 적 없다-12화 (12/118)

제12화

그 호의적인 시선 앞에서, 알레이의 입술이 멋대로 질문을 뱉었다.

-과거에 내가 당신과 무슨, 사이였기에…….

-……오늘 문답은 여기까지. 대답은 하나만이었으니까요.

오필리아는 자연스럽게 말을 맺었지만, 알레이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꽤 난처한 기색이었다는 것을.

‘대답을 피한 이유가 인어 때문이었나.’

분명 궁금했던 질문의 대답을 얻었는데,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드는 것만 같다. 알레이는 이 변화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떨 때는 제 길을 열어 주는 것 같다가, 어떨 때는 또 닫아 버리고. 명확한 것이 없어 성가셨다.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미간이 좁혀 들었다.

이런 상태로 오필리아를 마주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는 그의 상관이었다.

비단 그의 기억을 찾는 일이 아니더라도 계속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나마 다행으로 어제 오자마자 대부분의 민원을 처리했기에 오필리아와 동행해야 할 일은 없었지만, 가장 중요한 도로 재건 관련이 남아 있다.

당연하지만 겨우 말단 마법사에게 도로 재건을 하라는 것은 아니고, 물살을 좀 막아 준다거나 사람이 다니기 어려운 길목에 자재를 옮겨 준다거나 하는 등 재건을 도우라고.

그러니 공사 현장으로 가기 전에는 보고를 위해 오필리아를 만날 수밖에 없다.

알레이는 말단직에 단 한 번도 불만 가져 본 적이 없었지만, 오늘만큼은 그의 처지가 제법 짜증스러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하지 않으면 근무 태만이다.

‘줘야 할 물건도 있으니…….’

알레이는 불평을 그만두고, 심호흡을 한 뒤 오필리아의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와요.”

방문이 조금 갉아먹은 허락이 돌아오자, 알레이는 문을 열었다.

라딘 성의 귀빈실은 문도 얌전했다. 소리 없이 문이 열리고, 책을 보고 있던 오필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이에요, 알레이?”

시선이 마주쳤다. 알레이는 무심코 미간을 좁혔다가, 서둘러 시선을 내렸다. 오필리아가 보던 책이 보였다.

글씨가 작은데다가 거꾸로 놓여 바로 알아보기는 힘들었지만, 작게 들어간 삽화와 그림 몇 개는 알아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알레이는 잠깐,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인어에 대한 책입니까?”

“네. 해안이다 보니 이런 책이 몇 개 있더라고요.”

그리고 부정당했다.

오필리아의 방을 향하는 내내 했던 의심이 확신으로 굳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 꿈은 그의 기억이었고, 그 붉은 머리 인어와 오필리아 간에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내내 응어리져 그를 괴롭히던 의문들이 단번에 해결되었다.

‘뭔가 홀가분해진 표정인데. 고민이 해결됐나.’

그리고, 오필리아는 그런 알레이의 변화를 기민하게 알아차렸다.

사실 오필리아가 알레이의 심경이 복잡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꽤 시간이 지난 일이었다. 알레이는 나름대로 잘 숨겼다고 생각했겠지만, 일생의 대부분을 눈칫밥을 먹으며 보낸 오필리아의 시선을 피해가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누구라도 잃어버렸던 자신의 정보들을 알게 된다면 다소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을 테니 그저 함구해 왔을 뿐.

‘무엇보다 알레이를 신경 써 줄 만큼 여유가 없는 것도 있고…….’

여러모로 복잡한 오필리아의 시선이 조금 전까지 보던 책으로 내려앉았다. 그것은 인어에 관한 책은 맞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전설 속 인어를 정리해 놓은 책이라고 하는 것이 옳았다.

애초에 인어들은 세이렌과 마찬가지로 그 존재조차 불분명하다고 알려져 있었으니까.

그래도 뭔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펼쳐 보았는데, 생각 이상으로 쓸데없는 것들이었다. 차라리 오필리아가 알고 있는 게 더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인어의 비늘에 대한 정보를 좀 얻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영 허탕이네.’

이미 삼켜 버린 인어의 비늘에 대한 정보를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확히 왜 자신이 과거로 돌아오게 됐는지 알기 위해서.

그리고, 단순히 과거로 돌아온 게 아닐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

어제 마차로 가기 위해 순간 이동을 한 이후, 극심한 멀미에 시달린 오필리아는 겨우 어지럼증이 가라앉은 이후에 알레이의 상태를 살폈다.

-앞으로 순간 이동을 할 기회가 되도록 없었으면 좋겠네요. 당신은 괜찮아요?

그 잠깐 사이에 눈에 띄게 초췌해진 오필리아와 달리, 알레이는 멀쩡했다.

고개를 끄덕인 알레이가 여상하게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순간 이동으로 인한 멀미는 대개 마력에 대한 친화력이 없어서 생기는 거니까.

-……마법사인 당신은 겪을 일이 없는 일이겠군요.

-그렇긴 합니다만…….

그런데, 대답하는 알레이의 표정이 미심쩍어 보였다.

-……뭔가 이상합니다. 잠시 왼손을 줘 보시겠습니까?

오필리아가 손을 내밀자, 그는 지난번 만남에서 그가 오필리아에게 끼워 주었던 반지를 빼 만져 보더니 여전히 의아함이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제가 드린 이 반지, 뺀 적이 있으십니까?

-아뇨, 아무리 해도 빠지질 않던데요. 뭔가 문제라도 있나요?

-그게 정상입니다. 마법을 쓰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마도구를 뺄 방법이 없을 테니.

크기가 줄어들었으니 자연히 마도구일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렇게 직접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그런데 대체 뭐가 문제기에 알레이가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 거지?

오필리아의 의문은 금세 풀렸다.

-제가 이 마도구에 걸어둔 마법은 착용한 사람의 마력 친화도를 높여주는 것이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차고 있는 것만으로도 순간 이동 정도는 버틸 수 있게 되는 게 정상인데.

-……그런데 대체 나는 왜 그렇게 멀미를 한 거죠?

-글쎄요. 가설은 두 가지입니다.

그는 천천히 반지를 손 틈에서 굴리며 느리게 말을 이었다.

-하나는 당신이 끔찍하게 친화력이 낮을 경우.

이어, 알레이는 이 경우가 아주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드물게 그런 경우가 존재하기는 하니까.

하지만, 오필리아는 알레이의 어조에서 이미 그가 그 경우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눈치챘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오필리아에게는 해당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당신도 알겠지만, 밀레센트의 황족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의 마력친화력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렇죠.

-그래서 이상하다는 겁니다. 생각할 수 있는 가설이 하나밖에 남지 않으니까.

저렇게 말한 알레이는, 이어서 설명했다.

남은 한 가지 가설은, 이미 오필리아에게 누군가의 마법이 작용하고 있을 가능성이라고.

누군가의 마법이 작용하고 있을 가능성.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스쳐 간 것이 있었다.

인어의 비늘.

처음부터 의아하게 생각하긴 했다.

아리엘이 죽으면서 바랐던 것은 무엇이기에 자신이 과거로 돌아왔는지. 그리고, 인어의 비늘이 대체 어디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단순히 과거로 돌아오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면.’

그녀의 계획에 차질이 없게 하기 위해서라도 아리엘이 무엇을 바랐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짐작으로 대비하는 것과,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은 또 다른 기분이었다.

알레이는 황족들이 스스로에게 거는 보호 마법 따위가 오래되어 변형되면 거부 반응이 생기기도 한다고 말했지만, 오필리아는 그런 이유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황제는 단 한 번도 그녀에게 보호 마법을 걸어 준 적이 없으니까.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으십니까?

-……있긴 해요. 풀 방법을 모르겠다는 게 문제지만.

오필리아의 말에 알레이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해결하지 않으면 여러모로 생활에 지장이 갈 겁니다. 타인의 마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몸이 될 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알레이 역시 뾰족한 수가 없었던지, 반지를 회수해 가는 것에서 그들의 대화는 끝이 났다.

‘치료 마법 하나 쓸 수 없는 신세가 되면 좀 곤란한데.’

우선은 아리엘을 다시 만날 계획이지만, 정작 비늘을 준 사람은 죽었으니 현재의 아리엘을 만난다고 해서 과연 해결이 될지 의심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알레이에게 물어보기라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오필리아는 어젯밤 알레이가 세이렌을 보고 놀라던 것을 기억했다.

그는 인외 종족들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세이렌에 대해서도 모르니 인어에 대해서 알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는 게 낫지.’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오늘 라딘의 도서관에 가서 책을 몇 권 빌려 왔었다.

결과는 처참하지만.

오필리아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책을 덮었다. 어쨌든 사람을 앞에 두고 계속 상념에 빠져 있는 것도 예의가 아닐 테니.

“그래서, 무슨 일인가요?”

“도로 공사 현장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서 찾아뵈었습니다.”

“내가 동행해야 하는 일인가요?”

“결재해 주시면 혼자 다녀오려 합니다. 그리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 같진 않으니.”

오필리아는 알레이가 책상에 내려놓은 서류를 끌어당겨 서명했다.

운하 옆 도로 공사에 알레이가 파견되는 것은 과거에도 있었던 일이었다. 별문제는 없으리라.

서명한 서류를 다시 돌려주는데, 알레이가 빈 책상에 다시 무언가를 내려놓았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오필리아의 손에 끼워져 있던 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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