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을 구한 적 없다-1화 (1/118)

제1화

철썩.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해안을 잡아먹은 파도가 오필리아의 발을 스치고 갔다.

그리고, 오필리아의 발아래 쓰러져 있는 한 남자도.

난파당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그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바닷물에 푹 절여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물고기가 뜯어 먹었는지, 아니면 암초가 찢어 놓은 건지 모를 너덜너덜한 옷자락. 햇볕과는 연이 없어 보이는 흰 피부는 군데군데 긁힌 흔적이 역력했고, 심지어는 기절한 채라 숨을 쉬고 있는지조차 불분명했으므로.

오필리아는 무감하게 몸을 숙여, 남자의 코 밑에 손가락을 대었다.

얕은 날숨이 검지를 스치고 가는 것이 느껴졌다.

살아 있다. 그것을 확인하고, 오필리아는 미련 없이 몸을 일으켰다.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남자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구조를 위해 사람을 부르러 가거나, 남자를 흔들어 깨우려 했겠지만, 오필리아는 아니었다.

그런 실수는 지난 생에 한 번 했다.

몸을 일으킨 오필리아가 해안의 모퉁이에 있는 암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붉은 머리칼이 암초 뒤로 화들짝 놀라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오필리아와 꼭 닮은 붉은 머리칼. 그녀는 그 머리칼의 주인이 누군지 알고 있다.

‘거기 있었구나.’

제 발밑에 있는 남자를 해안까지 데려온 장본인이자, 남자를 사랑해 결국 물거품이 되어 버린 비운의 막내 인어공주.

남자의 진짜 구원자.

원래대로라면 여기서 오필리아가 인어공주 대신 남자를 구조해 가야 했겠지만.

“나는 당신을 구하지 않을 거야.”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었는지, 오필리아는 이미 잘 알고 있다.

“당신을 구해 줄 사람은 따로 있으니까.”

다른 사람으로 착각 당해, 가짜 구원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는 건 한 번이면 족했다.

그래서, 오필리아는 해변을 떠났다. 왔던 걸음 그대로 아무것도 들지 않고, 아무도 부르지 않은 채.

그녀의 두 번째 삶에 그는 필요 없었다.

* * *

약 5년 전, 대륙을 떠들썩하게 만든 스캔들이 있었다.

해상 무역으로 대륙의 신흥 강자가 된 로넨 공국의 주인, 로넨 대공이 갑작스럽게 결혼 발표를 한 것이다.

그것도, 밀레세트 제국의 사생아 황녀와.

밀레세트 제국 내에서는 변변한 입지조차 없어 기억하는 이조차 몇 없는 사생아 황녀와 로넨 대공의 결혼이라니.

격이 맞지 않는 이 결혼에 모두가 의문을 표했다.

로넨 대공이라면 얼마든지 더 좋은 혼처를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왜 하필이면 사생아 황녀일까?

그 의문은 금세 풀렸다.

로넨 대공이 배를 타고 가다 난파를 당했는데, 때마침 그를 구해 주었던 것이 그 사생아 황녀였던 것이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말을 나누다 보니 사랑이 싹텄고, 하필 사생아 황녀는 머잖아 원치 않는 정략결혼을 하게 될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렇게 로넨 대공은 자신을 구해 준 사람에게 자신의 여생을 바치기로 했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

그들은 그렇게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주례 앞에 맹세했다.

평생 서로를 사랑하고, 행복하게 해 주기로.

대공도, 황녀도 모두 행복해 마지않았기에 그때는 그 맹세에 한 치 의심의 여지도 없어 보였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대공을 구했던 것이 사실 황녀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 * *

오필리아는 손에 든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반투명하면서도 약간의 이채를 띠는, 수정의 결을 닮은 납작한 손톱을 닮은 물건.

그것의 정체는 인어 비늘이었다.

오필리아는 이것을 제법 오래도록 가지고 있었다. 약 5년쯤 되었을까.

‘진상’을 알게 된 날부터 가지고 있었으니 아마 그 기간이 맞을 것이다.

오필리아의 머릿속에 어느 마법사와 나누었던 대화가 스쳐 지나갔다.

“이게 인어의 비늘이란 말입니까? 저도 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그래요? 얻기 힘든 건가요?”

“물론입니다. 인어가 보기 드문 생명체라는 것도 있지만, 이것은 인어가 죽을 때만 나오는 것이니까요. 이건 인어의 눈물보다 귀한 겁니다.”

“인어의 눈물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 있어요. 인어가 울면 눈물이 보석이 된다고.”

“그 정도는 유명한 내용이죠. 인어의 감정은 귀한 것이라서 그렇습니다.”

마법사는 설명했다. 인어의 감정은 아주 귀한 것이라고.

그래서 인어가 울면 눈물이 보석이 되고, 인어가 커다란 감정을 품고 죽으면 그 사념이 모인 비늘이 남는다고.

“사례가 많지는 않습니다만, 인어 사냥꾼에게 죽은 인어가 남긴 비늘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병들게 했다고 합니다.”

“위험한 물건일 수 있겠군요.”

“맞습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혹시 어떻게 이것을 얻으셨는지……?”

그렇게 묻는 마법사의 눈빛에는 경계가 가득했다.

아마도 인어를 죽였느냐고 묻는 것이리라.

하지만 정말로 그랬더라면 이렇게까지 씁쓸하진 않았을 텐데.

오필리아는 쓰게 웃으며 대답했었다.

“그냥, 누가 줬어요.”

결혼 선물이라고. 죽은 인어의 언니들이 주었다. 그것이 그녀의 유언이라면서.

-아리엘이 당신에게 그걸 전해 달라고 했어.

처음 보는 인어들은 머리칼이 눈물 자국보다 짧았다. 그들의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이 바닷물일 거라고 믿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날은 오필리아가 결혼한 지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신혼의 단꿈에 젖어, 남편과 처음 만났던 바닷가로 신혼여행을 갔었다.

그리고는 어느 아침은 잠시 혼자 걷고 싶어서, 잠든 남편을 두고 바닷가로 나섰고.

그곳에서 울고 있던 단발의 인어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들은 어떤 인어의 이야기.

난파당한 남자를 구해 주고, 그 남자를 사랑하게 되어 목소리까지 팔고 뭍으로 나간 인어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뭍으로 나가 보니 남자에게는 연인이 있었고, 심지어는 남자가 그 연인이 자신을 구해 주었다고 믿고 있었더라고.

-내 동생은…… 우리 아리엘은…… 당신처럼 붉은 머리칼에 파란 눈을 가지고 있었어…….

-흑, 흑……. 그래서 우리가…… 바다로 돌아오라고, 남자의 심장을 찌르라고 했는데…….

-그 애는 결국 그러지 못하고 물거품이 되어 버렸어…….

-남은 건 이 비늘 하나뿐이야……. 당신에게 전해 달라고 했어…….

자세히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인어가 구했다는 남자가 누구인지.

‘이안 카를레 로넨.’

오필리아가 한때 사랑했던, 오필리아에게 여생을 바치기로 약속했던 그녀의 남편.

그리고 이제는, 오필리아와 같은 자리에 있는 것조차 불편해하는 그녀의 남편.

‘한때는 당신이 내 구원자라고 생각했는데.’

우습지만 정말로 그랬다.

이안은 자신을 정략결혼의 위기에서 구해 주고,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처럼 바라봐 주었다.

사랑한다고 말했고, 자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말 하나를 믿고 이안의 손을 잡았다. 반지에 손을 끼웠다.

고작, ‘진상’을 알게 되자마자 손바닥 뒤집듯 바뀌어 버릴 그 마음을 그토록 믿었다.

단발 인어들의 이야기를 들은 것은 비단 오필리아 혼자가 아니었다.

뒤늦게 오필리아가 자리에 없는 것을 알고 뒤따라온 이안 역시, 그들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들었던 것이다.

자신을 구해 준 또 다른 존재와, 그 죽음에 대해서.

그날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이안에게 돌아가는 길에, 오필리아는 해변에 서 있던 이안을 만났다.

-이안, 언제부터 여기…….

-당신이 아니었어.

-……네?

-어쩐지 이상하다 생각은 했는데.

처음 들어 보는 이안의 차가운 목소리. 괴로운 얼굴.

그것은 오필리아가 그만 단꿈에서 깰 때가 되었다고 알리는 호각 소리와도 같았다.

……그 뒤로 로넨 공국으로 돌아가 지내 온 시간은 또 어땠더라.

낯선 환경에 떨어져, 기댈 곳 하나 없이 견뎌야 했던 시간.

로넨 공국에서 사생아 황녀 출신 공비를 반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로넨 대공의 비호가 있었더라면 이야기가 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그는 그날 이후로 오필리아를 의도적으로 피해 다녔다.

이따금 만나더라도, 예전의 애정 어린 시선은 없었다.

철저히 타인을 대하는 눈빛. 겉으로만 다정한 태도. 단절된 대화.

덕분에 지난 5년간, 지독하게 외롭고 지독하게 서러웠다.

이혼하고 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제국은 사생아 황녀를 다시 받아 줄 만큼 너그러운 곳이 아니었다.

‘분명 결혼할 땐 행복할 거라 생각했는데.’

어쩌다 이런 말로에 다다랐을까.

오필리아는 분명 이 틀어진 관계를 회복해 보고자 노력했다.

자신을 무시하는 이들 사이에서 공비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 발버둥 쳤고, 둘만의 시간을 가져 보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언젠가는 달라질 거라 믿었다. 언젠가는, 이곳의 생활이 자신에게 친절해질 날도 올 거라고.

하지만 그게 대체 언제지?

‘이젠 지쳤어.’

어제도 오필리아는 이안의 집무실 앞에 한나절을 내리 서 있었다.

보좌관이 말하길 이안의 일이 끝나면 그때는 들어와도 된다고 해서. 시종처럼 내내 서 있었다.

그렇게 해가 지고,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오필리아가 막무가내로 집무실의 문을 열었을 때.

아무도 없는 텅 빈 방을 보고서야 그녀는 깨달았다.

아.

아무것도 바뀌지 않겠구나.

어떻게 하더라도 자신은 보좌관조차 무시하는 허울뿐인 공비일 테고, 이안의 마음이 돌아올 일은 없겠구나.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그토록 노력했는지.

‘어쩌면 너무 분에 넘치는 자리를 얻었던 것일지도 모르지.’

애초에 이 자리는 내가 아니라, 그 목소리를 잃어버린 인어공주가 가졌어야 했을 텐데.

가짜 구원자 주제에 너무 큰 것을 가졌다.

‘아리엘, 당신도 내가 밉겠지?’

일전에 마법사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인어의 비늘은 그렇다면 어떻게 쓰는 것이냐고.

-아주 강한 저주가 걸려 있다면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험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대개 복용한 사람에게 영향을 줄 겁니다. 만약 인어가 누군가를 원망하며 죽었다면…….

-그 인어의 비늘을 먹으면 죽을 거란 이야기군요.

-……그렇지요.

그럼 됐다. 그녀는 분명 자신의 자리를 빼앗아 간 오필리아를 원망했을 테니까.

언니들에게 굳이 이것을 전해 달라고 한 이유 또한 그런 것이겠지.

오필리아는 망설임 없이 비늘을 입에 넣었다.

단단한 외양과 달리, 비늘은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사르르 녹아 목 뒤로 넘어갔다.

‘다시는 당신들 사이에 끼어들지 않을게.’

나라고 가짜 구원자 행세를 하며 살고 싶었던 건 아니야.

난 그냥, 행복하고 싶었는데.

‘……아.’

머리가 무겁다.

오필리아는 아득해지는 정신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도로 떴다.

익숙한, 그러나 동시에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 눈에 보였다.

“로넨 공국의 대공님이시라는데, 제국의 연회에 참석하시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지?”

그건, 오필리아가 이안을 처음 만났던 날의 연회장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