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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신혼-91화 (특별 외전) (91/95)
  • 두 번째 신혼 91화

    특별 외전

    두 살 터울의 어린 형제를 키운다는 건 부모가 정신을 반 이상 빼두고 산다는 의미와도 같았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수없이 많은 아침을 보낸 결과, 세인은 아이들의 아침 식사를 동시에 챙기는 기술을 터득했다.

    어린이 식탁 겸 의자에 올망졸망 앉은, 올해 5살과 3살이 된 윤우와 정우는 세인의 비타민이었다.

    머리숱이 없어 겨우 사과 머리를 한 정우와 까치집을 진 윤우는 6시에 기상해 집을 한바탕 뒤집어 놓은 후였다.

    “엄마, 맛있어요!”

    “맛, 없떠.”

    이한을 거푸집처럼 찍어낸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성격은 딴판이었다.

    씩씩하고 똘똘한 윤우와 예민하고 낯가림이 심한 정우.

    어쩜 이렇게 아이가 인형 같냐는 말을 듣곤 하는 건 똑같지만, 같은 상황에 번번이 다른 반응이 나오니 골머리를 앓았다.

    천사 같은 아이들이지만 아직은 버거울 때가 많았다.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에는 왜 엄마가 되는 법은 없는 걸까.

    세인은 날마다 처음을 겪었고 실수를 연발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미안할 때가 많았다.

    “윤우, 아이 잘 먹네. 정우도 먹어볼까?”

    “네!”

    “시러.”

    아이들의 맞은편에 앉은 세인은 현기증을 느꼈다. 그러나 잠시간의 틈을 타 시원한 커피를 전투적으로 넘겼다.

    “정우 왜 싫어요? 된장국에 밥이잖아. 엄마가 알기론 정우 이거 좋아하는데?”

    밥을 먹지 않으려 딴청 하는 정우를 신경 쓰면서 윤우를 동시에 살폈다.

    윤우는 어린이 젓가락으로 콩 반찬을 집으려 애쓰는 중이었다. 그를 발견한 세인이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윤우야, 엄마가 도와줄까?”

    “내가 할 수 있어요.”

    자립심이 강한 윤우는 젓가락질뿐만 아니라 모든 일을 혼자 하는 걸 좋아했다.

    “혼자 부딪치면서 깨달아야 하는 것도 있다고 했어요.”

    이제 겨우 다섯 살이면서 세상 다 산 노인처럼 통달한 소리를 하는 건 덤이었다.

    “세상에. 누가 그러니? 할아버지?”

    “네.”

    윤우는 시댁에서 귀염받는 손주였다. 시아버지가 윤우를 품에 끼고 이것저것 가르치는 모양인데 가끔 이렇게 놀랄 만한 지혜를 습득해 왔다.

    “엄마, 윤우 봐요. 이것 봐요! 콩 집었어요.”

    콩을 자랑한 윤우가 야무지게 집어 입속으로 쏙 넣고 우물거렸다.

    “이야, 대단한걸? 엄마도 잘 못하는 건데.”

    “뭐든 열심히 하면 되는 거예요!”

    세인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 정말 누굴 닮아서 이러는 걸까. 얼굴은 서이한인데.

    윤우는 정우가 태어난 후 부쩍 의젓해졌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형의 무게를 나름 진지하게 받아들인 건지, 수시로 정우의 보호자를 자처했다.

    윤우도 어린아이니까 동생에게 억지로 양보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할 때마다, 윤우는 고개를 저었다.

    ‘정우는 내가 지켜줄 거예요. 아빠가 엄마를 지켜준 것처럼 나도 그럴래요.’

    이런 말을 하며 눈을 반짝이는 윤우를 말릴 재간은 없었다. 또한 윤우는 두 살 아래 동생 정우를 너무나 좋아했다.

    정우가 실수로 윤우를 때려도 싫은 소리 한 번 한 적이 없는 착한 아이였다.

    “그럼 윤우, 피망도 먹어 볼까? 윤우 좋아하는 초록색이네?”

    세인은 말하는 동시에 오동통한 손으로 밥알을 주물럭거리는 정우의 입속에 밥 한 숟갈을 쏙 밀어 넣었다.

    “이거 안냐!”

    정우가 고개를 저으며 이마를 찌푸렸다.

    입이 짧은 정우는 음식을 주무르는 곤란한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제 겨우 세 살인 아이를 혼쭐낼 수는 없어서 그냥 둘 수밖에.

    이것 또한 발달의 과정이라고 하니 조금 곤혹스러워도 기다려 주어야 했다.

    “엄마, 풀 맛이 나요.”

    피망을 우물거리던 윤우가 심각하게 말했다. 세인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풀 맛이 뭘까?”

    “응. 브로콜리처럼 쓰고 싱거워요.”

    윤우가 으음, 미간을 좁힌다.

    이만큼이나 커다란 피망을 먹는 건 처음인데, 뱉어내진 않고 이상한 맛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렇듯 새로운 것의 탐구는 윤우의 주된 일이었다.

    “엄마, 무울!”

    “정우 물 줄까요? 자 여기.”

    물을 달라고 소리치는 정우에게 빨대 컵을 쥐여 주었더니 바닥에 내던진다.

    “안냐!”

    “이거 아니야? 그럼 뭘 줄까?”

    “무울!”

    “방금 줬잖아요. 아, 컵으로 줘?”

    “컵!”

    “그럼 잠깐만.”

    세인은 눈물이 날 것 같은 걸 참으며 바닥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정우가 던져 놓은 사과까지 주워 허릴 펴자, 식판을 아예 뒤엎고 있는 정우가 보인다.

    “정우야, 여기 물. 물 있네요?”

    세인이 식판을 엎지 못하도록 막으며 실리콘 컵에 물을 담아 얼른 건넸다.

    그 모양을 보고 있던 윤우가 툭툭 정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정우야, 형처럼 해야지. 자. 아.”

    윤우가 입을 크게 벌리고 된장국에 만 밥을 넣었다. 그러자 정우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반응에 힘입은 윤우가 한 번 더 밥을 먹으니, 정우가 자지러진다.

    결국 세인도 웃어버렸다. 비록 정우를 다시 씻겨야겠지만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기분이 좋아지고 말았다.

    “좋은 아침.”

    목소리가 들려온 건 다이닝 룸 입구였다. 먼저 출근 준비를 마친 이한이 슈트를 갖춰 입고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이한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 멋진 태가 났다. 진중함이 더해져 깊이 감이 묻어나는 그는, 세인을 늘 설레게 했다.

    세인의 얼굴이 훨씬 밝아졌다.

    이한을 마주하는 일은 언제든 기분 좋았다. 조금 싸웠을 때도 얼굴을 보는 편이 더 마음이 편할 만큼.

    “좋은 아침이에요.”

    “좀 더 자도 됐을 건데.”

    “윤우가 배고프다고 해서요.”

    이한이 두 아이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난리 난 식탁 위를 바라보는 이한의 얼굴에도 난감함과 행복이 동시에 어렸다.

    이한이 두 꼬마의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고 세인에게 다가와 자연스레 허리를 숙여 그녀의 뺨에 키스했다.

    이한에게서 시원하고 깔끔한 향이 났다. 세인이 눈을 내리감고 배시시 웃었다.

    이한이 살짝 볼을 깨무는 게 좋으면서도 아이들이 볼까 부끄러웠다.

    “하지 말아요.”

    “아침부터 이럴래.”

    이한이 여러 의미를 담아 세인의 귓가에 속삭였다. 세인이 눈을 살짝 가늘게 뜨며 되물었다.

    “뭐가 또.”

    “예쁘잖아. 머리 높게 묶으니까.”

    이한이 훤히 드러난 세인의 목덜미를 지분거리다가 말고 허리를 폈다.

    두 사람만의 세상으로 빠질 여유도 없이, 두 아이가 아빠를 부르는 통에 이한의 관심이 저리로 옮겨갔다.

    “그래, 아빠 여기 있다.”

    이한이 음식을 먹는 건지 바른 건지 모를 둘째 아들을 심란하게 바라보다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큰아들을 훑었다.

    “이 녀석들, 밥 잘 먹으라고 했지.”

    “윤우랑 정우 잘 먹었어요. 그렇지요, 엄마?”

    “그럼. 잘 먹었어. 윤우 싹싹 잘 먹었네? 우리 정우도 그랬지?”

    세인이 아이들을 두둔하는데, 정우가 물을 쏟아버렸다.

    “시져!”

    이한이 물티슈를 가져오는 걸 그녀가 말렸다.

    “두고 얼른 앉아요. 어차피 씻겨야 돼. 회사 늦겠다.”

    세인이 남편의 등을 밀자, 이한이 그 옆에 자리를 잡았다.

    아침을 먹지 않는 이한의 몫은 커피 한 잔이 전부지만 그래도 온 가족이 모이는 이 시간은 빠지지 않았다.

    아이들의 아침을 챙기고 어린이집에 보내는 일은 부부가 주마다 번갈아 도맡았다.

    이번 주는 세인이 당번이었는데, 이한은 그녀가 당번인 날도 아침을 차려주는 지극정성을 보였다.

    오늘도 그는 세인이 먹을 아침까지 차려냈다. 제철 과일을 듬뿍 얹은 요거트와 부드러운 빵을 세인의 몫으로 준비해 주었다.

    물론 아직 한 입도 먹지 못했지만.

    이래서야 이한이 내내 아침 당번인 것과 다름없었지만, 체력이 더 좋은 자신이 해도 된다며 이한은 웃을 뿐이었다.

    세인이 조금 전 내려놓은 진한 커피를 이한에게 권했다.

    “어서 마셔요.”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오늘도 늦어?”

    이한이 밀어두었던 세인의 그릇을 앞으로 당겨주었다. 그러면서 정우에게 사과를 새로 쥐여 주는 노련함을 보인다.

    “나가봐야 알 것 같아요. 이한 씨는?”

    “난 늦을 거야. 먼저 자.”

    이한은 살벌한 스케줄에도 한 번도 지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침대 위에서 쏟아내는 열정까지 계산하면 그의 체력은 무한 같았다.

    “이만 가야겠어. 좋은 하루 보내.”

    운전기사의 호출에 이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쉬워할 틈이 없었다.

    “아빠, 내려!”

    정우가 두 손을 뻗고 다리를 달랑거린 터다. 그가 아이 둘을 의자에서 내려준 뒤, 세인에게 다시금 키스하고 자리를 떴다.

    세인은 서둘러 정우를 다시 씻기고 준비해 둔 옷으로 갈아입혔다.

    이게 끝이라면 좋겠지만, 세인의 출근 준비가 남아 있었다.

    “윤우야, 잠깐 정우랑 놀고 있어?”

    “그럼, 윤우 정우랑 기차 가지고 놀래요!”

    “어쩜 이렇게 천사일까.”

    감동한 겨를 없이 세인은 번개처럼 움직였다. 정우를 다시 씻기느라 시간이 꽤 지체되었다.

    씻고, 머리 말리고, 찍어 바르고, 옷을 입기까지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아침 시간엔 일부러 돌보미나 사용인을 들이지 않았다. 아이들과 부대끼는 이 순간도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종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은 회의감이 몰아칠 때가 있었다.

    “출발할까요?”

    세인이 뒷좌석 카시트에 앉은 두 아이를 보며 묻자 씩씩한 윤우의 대답과 알 수 없는 비명을 지르는 정우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세인은 직접 운전대를 잡아 차로 2분 거리의 보육 기관으로 향했다.

    세인이 차를 세우자 기관 입구에서 등원을 돕는 선생님이 나와 손을 흔들었다.

    “오늘도 우리 윤우 정우, 재미있게 놀고 오는 거야. 알겠니?”

    “네, 엄마!”

    “엄마, 쉬이.”

    “뭐?”

    “쉬이! 쉬이!”

    정우가 짧은 발을 동동거리며 소리쳤다.

    기저귀를 뗀 지 얼마 되지 않은 정우는 종종 실수를 했다. 세인은 재빨리 차에서 내려 날쌔게 정우를 카시트에서 떼어냈다.

    “윤우 어머니 오셨어요?”

    “선생님! 정우 화장실에 가야 해요.”

    “어머, 정우 이리 주세요.”

    선생님의 품에 안겨 연행되듯 사라지는 정우의 뒤로 윤우가 쏜살같이 뛰어 따라 들어간다.

    “엄마, 빠빠이!”

    제 남동생이 화장실을 가는 걸 지키겠단 소리였다.

    “하아…….”

    세인은 한숨을 돌리며 차에 올랐다. 그것참, 순조로운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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