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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신혼-82화 (82/95)
  • 두 번째 신혼 82화

    우당탕.

    현관에서 뭔가 넘어지는 소리가 났으나 세인은 그쪽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강한 힘으로 몸을 결박하며 입술을 붙여오는 이한에 떠밀리기 급급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시간, 전세기에서 한 차례 거사를 치르고도 모자라서 차로 이동하는 내내 이한은 불붙은 짐승처럼 괴로워했다.

    그 결과 두 사람은 현관부터 불꽃이 튀었다. 입술이 격렬하게 부딪치고 서로를 더듬는 손길에 열기가 묻어났다.

    물론 세인에겐 아직 이성이 남아 있었다.

    “이한 씨, 잠깐…… 가방.”

    세인이 가슴을 가로지르는 크로스 백을 벗으려 버둥댔다. 그러나 핸드폰 줄과 엉켜 손을 댈수록 꼬이기만 했다.

    “같은 거로, 아니, 더 좋은 거로 사줄게.”

    “응?”

    세인이 토끼 눈을 뜨고 뜻을 이해하기도 전에 두두둑, 질 좋은 가죽끈이 아작 났다.

    세인은 저 멀리 날아가는 망가진 가방과 핸드폰을 미처 다 확인하기도 전에 이한에게 붙들려 다시금 아랫입술을 내어주어야 했다.

    “집중 안 하지. 집에 들어오면 허락한다고 한 거 잊었어?”

    세인의 허벅지 뒤쪽을 잡은 그가 작은 체구를 띄워 벽에 붙여놓곤 낮게 물었다.

    “저거…… 이한 씨가 사준 건데…….”

    “그래. 그 이한 씨가 괜찮다잖아.”

    그가 격정적으로 입을 맞추며 파고들었다. 그렇게 넘어가려던 세인은 퍼뜩, 현관이란 사실이 떠올라 버둥댔다.

    아무리 그래도 이 자세론 무리가 있었다.

    “잠깐만, 여기 너무…….”

    “아무도 안 봐.”

    한낮의 현관은 너무 밝았다. 하필 직통으로 해가 내리쬐어서 민망한 꼴을 실컷 보일 게 자명했다.

    “흡! 아, 이 자식……!”

    “욕하는 거야? 더 흥분되잖아.”

    “미, 미쳤어. 아…….”

    세인이 턱을 젖히며 아득한 쾌감에 몸서리쳤다. 여유로운 모습을 갖다 버렸는지 낮게 신음한 이한이 귓불을 잘근거리며 세인을 달랬다.

    언제 느껴도 버거운 압박감에 세인이 눈을 질끈 감았다. 새초롬하게 올라선 눈꼬리로 눈물이 고였다.

    이한이 말간 살갗을 착실히 핥으며 세인에게로 달려들었다.

    신혼은 전부 이런 걸까. 한참 뒤 현관 바닥을 기며 세인은 그런 생각을 했다.

    이 불이 얼른 잠잠해지길, 세인은 성난 복근을 발로 차내며 이뤄지지 않을 바람을 소원해 보았다.

    “더, 더는 못 한단 말이야…… 흐윽…….”

    ***

    세인이 수영장에 빠진 사고 이후부터 이한은 병적으로 세인에 집착했다.

    아니, 집착이야 훨씬 전부터 시작된 일이었고 점잖은 체해 보려던 사랑이 손쓸 수 없이 과열되었다고 봐야 했다.

    세인을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단 불안감을 느낀 그는 지칠 줄 모르고 그녀를 찾았다.

    세인이 보이지 않으면 모든 것을 그만두고 그녀를 찾을 만큼, 중증이 되었다.

    상담이 필요한 사람은 세인이 아니라 이한인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이한이 부담스럽거나 귀찮지 않았다.

    도리어 변함없이 자신을 찾아주는 이한에게 변치 않을 사랑을 느꼈다.

    어쨌건 그녀도 중증이었다.

    돌연 백수가 된 세인은 휴식이란 명목하에 빈둥빈둥, 팔자 좋은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혜인은 스위스로 떠났다고 했다. 은희는 병원장 자리를 내놓았단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서 회장의 입김이겠지.

    홍춘의 회사는 변함없이 잘 굴러가는 듯했다. 세이지오 자산까진 서 회장의 손이 닿지 않은 듯싶었다.

    하나 가족과 연을 끊겠다는 뜻은 충분히 전해졌을 테니, 큰 걱정은 안 했다.

    홍춘에게서 몇 번 연락이 왔다. 그는 세인에게 밥을 잘 챙기고 건강 조심하란 당부를 했다.

    갑자기 자상한 아빠 노릇을 하는 홍춘이 껄끄럽기는 매한가지였다.

    은희와 혜인의 얘기는 쏙 빼놓고 단란한 척 대화를 이어가는 것도 괴로웠다.

    세인은 점차 홍춘의 전화를 받지 않게 되었다.

    이한이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라며 지지해 주었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죄책감이 덜했다.

    그동안 세인은 이한의 사무실로 함께 출근했다.

    벌써 열흘째이니, 아침 일찍 함께 출근해서 따로 회사를 빠져나오는 일상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이한이 잠시 회의에 간 사이, 세인은 볕이 가장 잘 드는 집무실 소파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세인이 이한의 사무실에 상주 중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유난이었기에 세인은 최대한 기척을 숨기고 조용히 지내려 노력했다.

    똑똑똑.

    갑자기 들려오는 노크 소리가 의아해서 세인은 몸을 일으켰다. 이한은 지금 부재중이었다.

    빤히 아무도 없는 사무실을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자의 의중이 무엇일까.

    분명 비서가 만류했을 텐데, 굳이 들어오겠단 심보가 곱게 보이지 않았다.

    세인이 곤란하게 이맛살을 찌푸리는 사이 벌컥, 문이 열렸다.

    서채준 이사였다.

    그는 이한의 작은아버지가 낳은 둘째 아들이자, 이한보단 네 살 위의 형이었다.

    그러나 승진에 밀려 실상 후계자 자격은 박탈당했다고 했다.

    이한이 전무로 확정된 뒤 입지가 매우 좁아졌다고도 했다.

    이한의 입이 아닌, 민성을 통해 들은 정보였기에 사심을 뺀 객관적인 정보라 할 수 있었다.

    세인이 아는 얼굴을 떨떠름하게 마주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나운 인상의 채준 뒤로 어쩔 줄 몰라 하며 비서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비서로서는 제문 건설 이사인 그를 이겨내기 힘들었을 터다.

    세인은 그녀의 곤란함을 충분히 이해하고서 괜찮다는 의미로 싱긋 웃어 보였다.

    이한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서며 채준이 비식거렸다.

    “역시나 그 소문이 사실이었네.”

    주인 없는 공간을 아무렇지 않게 활보하며 그가 연신 바람 빠진 소리를 내었다.

    세인은 읽던 책을 정리하며 그를 경계했다.

    채준이 사무실 주변을 빙빙 돌며 조명과 화초, 장식품을 툭툭 건드려 댔다.

    가만히 서서 채준의 동선을 눈으로 따라가던 세인은, 그가 이한의 책상을 들추는 걸 보고 말했다.

    “서 전무님은 자리에 안 계세요.”

    “알아. 나도 눈이 있어.”

    “네. 눈이 있으신데 머리는 없으신 것 같아서요.”

    “뭐?”

    처음엔 황당함, 그리고 언짢음. 채준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했다.

    “그 서류 내려놓으세요. 사람 부르기 전에요.”

    세인이 웃으며 말했다.

    서류는 강남에 세워질 리치 타워에 관한 협력 계약서였다.

    이곳에서 며칠간 머무르며 세인은 여러 가지를 보고 들었다. 소파 등받이 뒤에 숨어 조용히만 있으면 이한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하는 얘길 전부 들을 수 있었다.

    세인이 알기로, 채준이 욕심껏 그러쥔 서류는 극비였다.

    이한과 회장 라인이 추진하는 사업이었는데 냄새를 맡은 게 분명했다.

    “하?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진짜 건방지네?”

    “그동안 저 구박하신 분이 할 말은 아니죠.”

    “뭐?”

    채준은 종종 이한의 사무실을 다녀갔다.

    어쩌다 이곳에 있단 걸 채준에게 들켰고, 그는 처음부터 곱지 않은 시선으로 세인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왜 저런 걸 사무실에 두냐는 주워 담지 못할 망언을 내뱉어 이한을 열받게 한 전적이 있었다.

    그 뒤로 이한의 집무실엔 출입 금지를 당했건만, 뭘 잘못 먹었는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 건지 또 들어와선 세인을 못살게 굴고 있었다.

    “오늘도 일부러 오셔서, 저 있을 곳 아니라고 친히 알려 주시려는 거잖아요.”

    “그러게 말이야. 여기가 유치원이야? 놀이터야? 왜 여기서 빈둥대실까?”

    “이한 씨가 그래도 된다고 했어요. 그럼 이사님은 무슨 권한으로 저를 내쫓고 싶어 하시는 거예요?”

    세인이 한마디도 안 지고 또박또박 대꾸하자 채준이 허리에 손을 얹곤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이야…… 그래, 아깝네. 아까워.”

    가까이 다가온 채준은 이한만큼이나 키가 컸다.

    그가 세인의 턱을 쥐어 위로 들었다.

    “뭐 하는 짓……!”

    세인이 고개를 흔들었으나 채준의 악력을 이길 순 없었다. 그가 조금 더 강한 힘으로 세인의 턱을 고정했다. 손으로 쳐내려 했으나 허무하리만치 쉽게 저지당했다.

    “성깔 있고, 예쁘고. 딱 내 스타일인데 말이야. 할아버지는 왜 이한이한테 정세인 씨를 넘긴 걸까?”

    “미친, 안 놔요?”

    “쥐뿔 가진 것도 없는 게 자존심만 있어선. 하긴 너 같은 애들 굴복시키는 맛이 있긴 하지.”

    “놔!”

    얼마 전 정략결혼의 제물로 유부남이 된 채준이 할 말은 아니었다.

    세인은 버둥대다가 방식을 바꿔 발차기 하듯 오른발을 접었다가 폈다.

    정강이를 차버릴 심산이었는데, 여유롭게 피한 채준이 기분 나쁘게 웃었다.

    “서 전무가 숨겨두고 기르는 고양이. 이걸 어떻게 요리해야 할까? 쥐새끼처럼 사무실에 처박혀서 업무 비밀이나 홀랑홀랑 주워듣고 말이야.”

    “그런 적 없…….”

    “우리 손잡을래? 그쪽이 정보 물어 오고 난 그쪽이 원하는 걸 해주고.”

    세인이 팔을 힘껏 휘저어 채준을 떨어뜨려 놓는 데 성공했다.

    그녀는 아린 턱을 주무르며 그를 쏘아봤다. 그가 막 나가는데 세인이라고 참을 이유는 없었다.

    채준에겐 쌍욕을 해도 된다는 이한의 허락을 받은 진 오래였다.

    “아뇨. 그러기엔 서 이사님께서 저한테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보여서요.”

    “하하…… 진짜 보면 볼수록 아깝단 말이야.”

    “네. 저도 이사님이랑 이러고 있는 시간이 아깝습니다. 하실 말씀 있으면 우리 이한 씨 통해서 해주세요.”

    세인이 휙 돌아서서 문가를 향해 다가갔다. 더 상대해 봐야 좋지 않은 소리나 들을 터다.

    채준은 그저 이한이 끼고도는 여자에 대해 호기심이 있는 것뿐이었다.

    더불어 이한이 하는 사업에 관심도 있을 테고.

    “할아버지 오늘내일하시는 건 알지? 그런데 이한이 녀석, 코빼기도 안 비치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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