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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신혼-61화 (61/95)
  • 두 번째 신혼 61화

    세인이 사라지고 2시간이 지났을 무렵.

    이한은 아직도 그녀의 흔적을 찾지 못한 채였다.

    세단 뒷좌석에 앉은 이한이 필터를 짓씹던 담배를 치웠다.

    머리를 기울이며 세단 뒷좌석 창을 열었다.

    습한 바람과 함께 빗방울이 밀려들었다.

    쏴아아. 장대비였다. 혹여 이런 날씨가 세인에게 해가 될까 곱절로 애탔다.

    실은 이럴 때를 대비해서 정홍춘과 심은희 소유의 은거지 몇 군데를 파악해 두었다.

    하지만 두 시간 동안 그곳을 전부 확인했으나 허탕이었다. 세인이 갈 만한 곳을 추려 사람을 족족 보내는데도 희소식은 없었다.

    급하게 추적하느라 홍춘과 은희의 눈을 피할 여력까지 없었던 게 문제였다.

    홍춘에게서 전화가 걸려오고 있었다. 이한이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니 그도 견디다 못해 연락해 온 것일 터.

    이한은 핸드폰 액정을 밀어 홍춘의 전화를 받았다.

    “서이한입니다.”

    명예욕과 물욕을 채우기 위해 전심을 다 하는 홍춘은 아직까진 이한의 편이었다.

    언제 어긋날지 모르겠으나 이한이 군침 도는 먹잇감을 흔드는 이상, 홍춘은 의리를 지킬 것이다.

    하지만 아내 은희가 복병이 될지도 몰랐다.

    사랑에 미친 남자가 어떻게 나올지, 그건 이한이 가장 잘 알았다.

    홍춘이 활화산 같은 욕망을 버릴 만큼 은희에게 진심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이미 한 차례 은희의 뜻에 따라 이 사기극에 동참하지 않았는가.

    -서 전무, 지금 통화 가능합니까.

    조직폭력배 말단 출신인 그는 제법 사업가 흉내를 냈다.

    감정을 뺀 차분한 목소리에 이한 또한 뒤집힌 속내를 가뿐하게 숨기며 대꾸했다.

    “네. 말씀하시죠.”

    -아랫것들한테 얘기 들었습니다.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자세히 들으니 홍춘은 술에 취한 것 같았다. 지금이면 한창 술자리를 즐길 시간이긴 했다.

    “심 원장님께 물으시면 얘기가 빠르실 텐데.”

    -그게 무슨…….

    아직 모르는 건가.

    “세인이가 병원에서 사라졌습니다. 직전까지 심 원장님과 함께 있었고요. 그래서 갈 만한 곳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 전화는, 전화는 안 받습니까?

    “세인이 핸드폰은 병실에 있더군요. 일부러 두고 간 게 분명한데, 누구 소행이겠습니까.”

    이한이 언짢은 심경을 얼핏 내비쳤다.

    -오해일 겁니다. 아마도 심 원장이 세인이를 잠깐 데려간 것 같은데…….

    “병원에 실려 간 세인이를 내게 한마디 상의 없이 빼돌린 걸 이해해야 합니까.”

    -그러지 말고요, 서 전무. 내 쪽에서 연락해 보죠. 그러니 그만두시면 안 되겠습니까?

    “정 대표님도 세인이가 갈 만한 곳을 찾으시죠.”

    할 말을 마친 이한이 전화를 끊었다. 제자리를 빙빙 도는 영양가 없는 대화를 계속해서 이어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홍춘은 은희마저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무능한 소리를 해왔다.

    “별장 쪽부터 돌지.”

    “네. 전무님.”

    민성이 대꾸했다.

    다만 별장이 워낙 전국 곳곳에 퍼져 있어 일일이 살피려면 시간이 걸렸다.

    수족들을 부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이한은 가장 먼 곳의 별장을 머릿속에 그리며 말했다.

    “우선 부산으로 가지.”

    “전무님이 직접 가시는 겁니까?”

    민성이 한껏 초췌해진 얼굴로 물었다.

    “윤 비서는 남아서 지켜. 연락 잘 받고. 송 기사님만 가시죠.”

    “네. 그러지요.”

    송 기사가 핸들을 꽉 쥐며 대꾸했다.

    서울 거처를 이 잡듯 뒤졌는데 나오지 않는다면 지방으로 빠져나갔을 확률이 높았다.

    이한을 태운 차가 겁 없이 빗길을 질주했다.

    몇 시간 후.

    시간이 흐를수록 이한의 눈가가 상심으로 깊어졌다.

    벌써 별장 두 군데를 뒤졌는데 허탕이었다.

    “하…….”

    이한이 거친 악력으로 허공을 꽉 쥐었다.

    세인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머리가 돌아버렸다.

    위치추적을 할 수 있도록 미리 방비했어야 했는데.

    은희가 이 정도로 저열한 인간이란 것까진 계산을 못 한 건 이한의 실수였다.

    결국 서울로 차를 돌려야 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혹여 본가에 간 건 아닌가 싶어서 그리로 향했다.

    이한이 가까워지는 세인의 친정집을 보며 송 기사에게 지시했다.

    “세우죠.”

    서행하는 짧은 시간도 참지 못하고서 이한이 차 문을 벌컥 열었다.

    벨을 눌렀으나 대답이 없다. 쾅쾅쾅 주먹으로 대문을 두드렸으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담 너머로 불 꺼진 싸늘한 저택이 보였다. 주택가에서 약간 고립된 곳이라 행인의 기척조차 없었다.

    그때였다. 어두운 골목 끝에서 인기척이 났다.

    저택의 뒷문 쪽에서 누군가 몸체가 커다란 바이크를 끌고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청바지에 티셔츠. 언뜻 보면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그러나 걷는 자세에 군더더기가 없다.

    훈련받은 군사처럼 눈빛이 예리했다.

    이한은 분노를 억누르며 침착하게 그 얼굴을 뜯어보았다.

    그래, 결혼식에서 언뜻 봤던 기억이 났다.

    심 원장의 개인 경호 중 한 명이었나.

    수년간 은희의 곁을 지켰으면 그의 위치 또한 낮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둘 중 하나는 어디 있는지 알고 있겠지.

    이한이 고저 없는 투로 물었다.

    “심 원장은 어디 있나.”

    “아, 안녕하십니까.”

    뒤늦게 이한을 알아본 남자가 짧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하지만 경계하는 표정이었다.

    주인과 닮은 꼴이 아닐 수 없었다.

    “심 원장 어디 있냐고 묻지 않았나.”

    “아, 원장님은 제주도에 가셨습니다. 학술 세미나가 있으셔서 2박 3일간 머무를 실 예정입니다.”

    “야밤에 세미나를 가나. 그런데도 그쪽은 여기 남았고?”

    이한이 부쩍 편해 보이는 남자의 옷차림을 훑으며 보며 말했다.

    병원에서 세인을 데리고 나오려면, 남자처럼 평범한 마스크에 편한 차림이 눈에 띄지 않았을 것이다.

    보통의 경호원들보다 앳된 얼굴의 이 남자가 적임이었겠고.

    “예. 저는 여길 경호하는 게 임무입니다.”

    남자가 손으로 집을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우리 세인이는 어디 있을까.”

    “무슨 말씀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퇴근해도 되겠습니까?”

    세인을 숨기고 이곳까지 왔을 시간이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세인이 있단 뜻이었다.

    이한의 인내심이 바닥이 났다.

    남자가 쓰려는 헬멧을 손끝으로 쳐서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뭐 하시는 겁니까?”

    “그러게. 뭐 하시고 있을까. 한가해서 이러고 있을까 싶은데.”

    남자가 허리를 숙여 헬멧을 주우려기에 성큼 다가섰다.

    “우리 세인이 어디 있어.”

    이한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더 낮아졌다.

    “저는 모릅…….”

    “두 번 안 물어. 바로 대답해.”

    이한의 눈빛을 바라본 남자가 뒤로 주춤했다. 바이크를 타고 내빼려는 기색이었다.

    하나 남자가 몸체가 무거운 바이크를 수습하는 것보다 이한의 팔이 더 빨랐다.

    남자의 목을 조르듯 쥐고 담벼락으로 밀어붙였다. 탁, 남자의 등이 거칠게 부딪쳤다.

    남자는 대항해야 하는지 갈등하는 기색이었다. 괜히 사력을 다해 발버둥 치다가 이한의 몸에 생채기라도 나면 곤란해지는 건 아무 힘이 없는 남자였다.

    순식간에 남자의 안구에 핏발이 몰렸다.

    이한은 그럴수록 숨통을 조여갔다. 눈에 보이는 게 없다고 해야 옳았다.

    “대답해.”

    “저는 모르…… 큭.”

    “모르면, 알아봐야지.”

    이한이 가슴을 누르던 팔을 떼주고 콜록거리는 남자를 기다렸다.

    “전화해. 우리 세인이 어디 있는지 물어.”

    “저는 정말 모릅니다!”

    억울한 목소리가 제법 진정성 있었다. 그러나 모른다는 말이 이한이 듣고자 하는 답은 아니었다.

    뒤이어 이한의 경호팀 차가 도착했다. 재빠르게 달려온 그들이 남자를 단숨에 제압했다.

    “전무님, 어떻게 할까요.”

    “족쳐서 불게 하죠.”

    남자가 정차된 세단으로 빨려가듯 끌려들어 갔다.

    이한이 보닛에 걸터앉으며 담배를 빼 물었다.

    남자의 충성심에 따라, 오늘 그가 이 바닥을 뜨는지 마는지 결정될 거다.

    경호팀이 얼마나 공포감을 조성해 줄지 기대하며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부러뜨리곤 차에 올랐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세인을 향해 염원했다.

    ***

    세인을 찾자마자 차가 내달렸다.

    이한은 내도록 세인을 안은 채였다.

    세인이 많이 진정됐을 때쯤, 수건으로 세인의 머리칼을 꾹꾹 누르고 목덜미를 닦아냈다.

    품이 큰 병원복의 네크라인으로 수건이 반쯤 파고들었다.

    세인은 몸을 꼼지락거리며 고개를 이한 쪽으로 파묻었다.

    여전히 추운가 싶었던 이한이 급히 재킷을 벗어 세인을 감싸 안았다.

    그녀가 두른 담요는 흠뻑 젖어 발치로 밀려난 지 오래였다.

    “온도 더 올리죠.”

    이한의 말에 송 기사가 히터 세기를 조절했다. 발발 떠는 세인을 안은 이한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이제 어디로 가요?”

    신혼집은 모두가 아는 곳에 있었다. 은희가 무턱대고 찾아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그 불안을 읽은 이한이 세인의 젖은 머리칼을 넘겨주며 말했다.

    “오피스텔이 있어. 그리로 갈 거야.”

    “오피스텔?”

    “가끔 귀국할 때 썼던 곳인데 당분간 지낼 만할 거야. 아무도 모르는 곳이니까.”

    “가끔…… 귀국을 했었어요?”

    세인이 처음 듣는 소리에 눈을 키웠다.

    아차, 싶었는지 이한의 눈에 낭패감이 스쳐 갔다.

    “한국 올 때마다 오피스텔에 머물렀구나.”

    착잡하게 가라앉는 세인의 목소리를 감지한 이한이 그게 아니란 설명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잘래요. 도착하면 깨워줘요.”

    그러나 세인이 눈을 감는 게 더 빨랐다. 이한은 무어라 말하려다가 말고 그녀를 끌어안아 도닥였다.

    팔 안에 갇힌 작은 몸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세인의 두려움이 걷히는 게 우선이었다.

    상처 난 발을 발견한 이한이 세인이 깨지 않게 손수건으로 진흙을 닦아내고 있자, 그녀에게서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아무 데서나 눈 붙이고 자면 안 돼.”

    이한이 옅게 웃음 지으며 그녀를 살뜰히 살폈다.

    얼마나 한계에 내몰렸으면, 세인은 온전히 진정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금세 잠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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