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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신혼-56화 (56/95)
  • 두 번째 신혼 56화

    무영이 머리를 거칠게 쓸어넘겼다. 인내가 곧 끊길 것처럼 그의 호흡이 쉰 소리를 냈다.

    “하, X발. 은혜를 원수를 갚는 새끼네, 이거.”

    무영의 태도가 위협적이라고 해서 가장 중요한 얘길 빼놓을 수가 없었기에, 세인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총지배인님에 대한 일을 얘기하고 싶은데요.”

    달칵. 그가 라이터를 당겨 담배에 불을 붙였다.

    “강제일?”

    강제일은 무영의 이종사촌으로, 명문대를 나와 유명 호텔의 지배인으로 근무하다 더블나인에 스카우트된 인재였다.

    사람을 부리고 몸을 쓰는 쪽이 무영이라면, 제일은 브레인이었다. 두 사람의 친분이 어렸을 적부터 두텁다는 건 전부터 알고 있었다.

    “총지배인님에 대해 저한테 뭐 하실 말씀 없으세요?”

    “이게 예쁘다 예쁘다 하니까…… 한도 없이 기어오른다?”

    후. 짙은 담배 연기가 테이블을 넘어 세인의 눈가를 탁하게 찔렀다.

    그러나 세인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다.

    “저희 언니랑 총지배인님, 만나는 거 알고 계셨죠.”

    “어디서 주워들었어, 그건.”

    무영이 담뱃재를 바닥에 아무렇게나 털었다.

    “언제부터 아신 거예요? 왜 안 말리셨어요?”

    “지들 꼴리는 대로 만나는 걸 내가 무슨 수로 말리냐. 내가 걔네 부모야?”

    “그럼 저한테 말씀해 주시지…… 왜 숨기셨어요?”

    “말씀해 주셨으면 너는 말릴 수 있었겠냐? 지 언니 편이나 들고 있었겠지.”

    “……저는.”

    “부총아, 너는 네가 고결하고 깨끗한 것 같지? 맑은 물만 마시고 산 것 같고 그래?”

    세인이 입술을 질끈 물었다. 훙춘이 긁어모은 검은돈으로 먹고 자랐으니 바로 답할 수 없던 터다.

    “사람은 다 죄를 짓고 살아. 죄목이 다를 뿐이지.”

    “하지만……!”

    “정혜인, 강제일 아니었으면 일찌감치 손목이라도 그었겠지. 둘이 자그마치 4년이다. 4년.”

    입사 5년 차인 세인이 근속 연수를 따지면 딱 4년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두 사람의 내연 관계가 입사 시기부터 시작됐단 소리인데…….

    설마 제일이 이곳에 있어서 혜인이 더블나인에 머물길 택한 걸까.

    세인은 복잡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입술을 잘근거렸다.

    “끼리끼리 어울리는데 뭐가 문제야. 강제일이 정혜인 명줄 붙여놨으면 됐지.”

    “총지배인님 아내분은요? 그분은, 이 사실을 모르잖아요. 이거 불륜이잖아요.”

    “부총 이렇게 순진해서 어쩌냐.”

    “도리잖아요. 그래도 안 되는 거잖아요, 대표님.”

    “조폭 아비를 뒀으면 흐린 물에서 놀아야지. 너 자꾸 깨끗한 물 마시겠다고 터 옮기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다.”

    무영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잔에 가득 찬 술을 단번에 입속으로 털어 넣었다.

    그러곤 한층 걸걸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입 다물고 있어주면 정혜인 그 계집애가 널 여기에 붙잡아 두겠다고 하잖아.”

    “……뭐라고요?”

    “너를 이 호텔에 들여앉히겠다는데 닥치고 있어야지. 그래야 예뻐 뒈지는 정세인을 옆에 끼고 있지, 안 그러냐?”

    무영이 두 사람의 불륜을 알고도 침묵한 이유가 결국 세인이란 소리였다.

    무영은 세인을 곁에 두고, 혜인은 비밀을 지키고.

    “내가 너 처음 본 게, 8년 전이냐? 형님 옆에서 조용히 밥만 먹는데, 어찌나 꼴려야지. 기회 되면 한번 잘해 보고 싶었다.”

    “하…….”

    “근데 홀랑 결혼을 해버렸네? 별수 있겠냐. 좀 기다리다가 이혼시켜야지.”

    세인은 전혀 몰랐던, 무영의 더러운 꿍꿍이가 아무렇지 않게 설명되고 있었다.

    “이번 중국행도 어차피 거절 못 할 건데. 정혜인이 하라면 할 거 아니야. 그러니까 괜히 힘 빼지 말고 나한테나 헤프게 굴어. 알아들어?”

    촤악.

    세인이 일어나 물을 끼얹은 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뭐 하는 짓거리야.”

    욕지거리를 짓씹은 무영이 형형한 눈으로 세인을 바라보았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난 세인이 턱에 힘을 주고 말했다.

    “사람 인생 가지고 주무르면 재미있어요? 언니가 아픈 게 나한테 어떤 의미인지 알면서 어떻게 그걸 이용해요?”

    “뭔들 못 해, X발. 너 가지고 싶은 걸 몇 년을 참았어!”

    와장창. 무영이 팔을 휘둘러 테이블 위의 것들을 쓸어버렸다. 그 바람에 세인에게도 술과 과일 몇 조각이 튀었다.

    무영이 휘청이는 세인의 팔을 거칠게 잡은 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가 거대한 힘으로 그녀를 소파에 깔아 눕혔다.

    거대한 팔뚝이 쇄골을 짓누르자, 세인은 꼼짝할 수가 없었다.

    “읏, 놔요!”

    “정신 차려, 정세인아. 네가 재벌가 사모님 돼서 떵떵대는 것보다 내 밑에서 살랑대는 게 더 빠를 거다.”

    세인이 버둥댈수록 무영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세인이 발버둥 치자, 바깥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한 기류를 감지해 줬길 바라며 안간힘을 다해 소리쳤다.

    “하지 마!”

    “서이한 그 새끼를 죽여야겠어. 거슬려도 너무 거슬려.”

    무영을 피하기 위해 세인이 얼굴을 휙 돌리는 순간이었다. 그녀를 짓누르던 묵직한 무게감이 사라졌다.

    우당탕. 바닥이 울릴 만큼 큰 소음과 진동이 세인의 전신을 두드렸다.

    겨우 눈을 뜬 세인의 흐릿한 시야로 들어온 건 다름 아닌 이한이었다.

    그가 빠르게 나타나 놀람도 잠시, 안도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그의 발치에서 무영이 엎어져 뒹굴고 있었다.

    이한의 등 뒤로는 아까부터 세인을 쫓던 경호원 둘도 함께였다.

    “우리 세인이 집으로 데려가죠.”

    이한이 경호원 한 명을 향해 말했다. 세인이 겨우겨우 일어나 앉으며 그를 불렀다.

    “이, 이한…….”

    “집으로 가.”

    이어지는 단호한 목소리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세인은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안도감이 번지는 동시에 불길한 예감이 든 터다.

    이곳에 이한과 무영을 두고 가면 필시 커다란 싸움이 생길 터다.

    이한이 또 다칠까 걱정되는 마음에 고개를 저었으나 경호원이 그녀를 번쩍 안아 드는 게 빨랐다.

    “내려줘요…….”

    목이 졸린 것처럼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부질없는 반항이었다.

    “이, 이한 씨. 서이한!”

    목소리를 쥐어짜 이한을 불러보았으나, 이한과 점점 멀어져만 갔다.

    세인이 힘없는 팔로 경호원의 팔이며 가슴을 때렸다.

    내려 달라고. 저 사람을 두고 가선 안 된다고 온몸으로 반항했다.

    “제발, 내려줘요.”

    “죄송합니다.”

    남자가 딱딱하게 말한 뒤, 밖으로 문을 열었다.

    쾅! 문이 닫히는 소리 후, 안쪽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인이 실신하듯 울기 시작했다.

    ***

    세인이 나간 뒤.

    바닥에 엎어져 있던 무영이 일어나며 얼굴을 훔치고 고개를 털었다.

    그러곤 이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한도 기다렸다는 듯 그의 턱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우당탕!

    우위를 선점하고 있던 이한의 주먹이 무영에게 제대로 먹히며 거대한 몸이 테이블 위로 넘어졌다.

    무영이 욕설을 내뱉으며 주변에서 굴러다니는 과도를 쥐었다.

    “이 새끼가!”

    “법 없이 사는 너 같은 부류 상대하는 건 아주 쉬워. 법 없는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새겨주면 얼마 못 가 빌빌거리거든.”

    “이런 X발, 해봐!”

    “그땐, 변호사 찾으면서 울어도 소용없을 텐데.”

    이한이 입꼬리만 올려 서늘하게 웃었다.

    그때부터 두 남자의 싸움이 시작됐다. 덩치가 큰 무영이 무게를 실어 칼을 휘둘렀으나 이한이 피하는 속도가 더 빨랐다.

    무영이 바닥에 떨어진 유리 조각을 밟고 중심을 잃었다.

    그 순간을 이한이 놓치지 않았다.

    무영의 오금을 내리찍어 무릎을 꿇린 뒤, 뒷덜미를 잡아채 얼굴을 바닥에 내리찍었다.

    쾅!

    뒤쪽에서 달려온 경호원 한 명이 무영의 손목을 밟아 과도를 빼내어 저 멀리 차 냈다.

    “세인이한테 못된 짓을 하고 있던데, 뭘 했을까.”

    “큭, X발…….”

    무영의 반항이 상당했다. 이한이 두 팔을 이용해 그의 목 뒤를 누르는 동안, 경호원이 케이블 타이로 무영의 두 다리를 묶어버렸다.

    완전히 제압당한 무영이 헛웃음을 지으며 이한을 노려봤다.

    “네가 이러고도 여기서 나갈 수 있을 것 같냐?”

    “적어도 너 하나는 죽이고 나가지 않겠어.”

    이한이 표정 없는 얼굴로 무영을 내려다보며 대꾸했다.

    퉤, 무영이 침을 뱉는 걸 이한이 무심한 표정으로 피했다.

    “무슨 얘기 했는지 궁금해?”

    “그래, 궁금하네.”

    “정혜인이랑 강제일이 떡치는 사이라고 불었더니 아주 사색이 되던데?”

    쾅!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했을까.”

    이한이 다시금 머리채를 잡아 무영의 안면을 바닥에 뭉갰다.

    “큿, 이 개새끼가……!”

    쾅! 다시금 무영의 얼굴을 차가운 바닥에 내려쳤다. 이한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세인이 모르게 거머리 같은 것들을 하나하나 떼어낼 계획이었다.

    그녀가 다치지 않게 물밑에서, 소리 없이.

    그런데 그걸 무영이 망쳤다.

    “X발, 이미 알고 있었어! 정혜인 강제일 붙어먹는 거 이미 알고 있었다고!”

    몇 번이나 무영의 얼굴을 짓밟았을까. 만신창이가 된 무영이 한쪽 이가 빠진 채로 소리쳤다.

    “끝까지 아니라고 했어야지.”

    “아악!”

    이한이 손으로 무영의 뺨을 눌렀다.

    “뱉는다고 전부 말은 아니야. 다시는 개 같은 말을 못 하게 혀를 끊으면 될까?”

    “어흑!”

    “아니지. 그 전에 세인이한테 무슨 짓 했는지 그것도 지껄여 봐.”

    “흐읏……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우리 애들이…….”

    “무사할 거야. 중국에 착실히 쌓아둔 네 자금이 무사하려면, 내가 멀쩡해야 할 테니까.”

    “그게 무, 무슨!”

    무영이 불법 도박으로 불린 자금을 차명 계좌로 빼돌렸다.

    조직 간부인 그가 보스 모르게 행동한 건 손가락 하나 잘리는 걸로 해결되지 않을 중죄였다.

    중국에 호텔을 짓는 건 명분이겠지.

    그곳에서도 불법 도박장을 열어서 제 주머니를 불리려는 계획임을 이한은 꿰고 있었다.

    “분명히 똥물 튀기지 말라고 했을 텐데.”

    “흣, 내 돈!”

    “그래, 그 개 같은 돈을 국고로 쓸지 불태워 버릴지 고민이야.”

    이한이 소름 끼치는 목소리로 말하자 무영의 두 눈이 흔들렸다.

    돈이 최고인 족속들. 돈의 가치는 이한도 인정하는 바였다.

    하지만 그를 위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고 무엇보다 세인을 끌어들이려 했다. 그리고 그녀를 억압하고 상처 입혔다.

    무영이 커다란 몸뚱이로 세인을 내리찍은 걸 본 순간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리고 싶었다.

    세인이 보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랬을지도 모르겠지.

    “말귀를 못 알아 처먹는 네 귀를 탓해.”

    쾅. 이한의 분노는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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