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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신혼-29화 (29/95)
  • 두 번째 신혼 29화

    맞닿은 신체에서 이한의 욕망이 느껴졌다.

    세인은 슬쩍 떨어지려는 이한의 허리를 안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냥 더 해주면 안 돼요?”

    이한만 보며 그의 생각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사실 좋은 것 같았다.

    좋아서…….

    세인이 부푼 제 입술을 빨며 작게 말했다.

    “더 해요, 우리.”

    “지금 이거 기억 못 하면, 내가 진짜 개새끼가 되는 꼴을 보게 될 건데.”

    “술은 아까 깼어요. 혀 넣을 때.”

    “가지고 놀지.”

    이맛살을 찌푸린 이한이 단번에 세인을 집어삼켰다.

    “읍…….”

    그동안 어떻게 그를 잊고 살았나 싶을 정도로 진득했다. 그리고 기이할 정도로 애틋함이 가득 담긴 입맞춤이었다.

    그는 정말 불면증 치료를 위해 온 걸까.

    세인은 내내 외면하고 있던, 이한의 마음을 전부 알고 싶어졌다.

    이한이 왜 그때와 같은 온도로, 아니, 그보다 더 뜨겁게 자신을 보는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제, 그만…….”

    취기에 흔들리는 가느다란 허리를 이한이 부드럽게 감싸 세우며 말했다.

    “그만? 더 해달라면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세인처럼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세인은 두 손으로 이한의 뺨을 감쌌다.

    잘생긴 두 눈썹이 실룩거렸으나 그녀의 눈엔 그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이 얼굴 때문인 것 같아. 맞아. 얼굴 때문이야.”

    심각하게 중얼거리는 입술을 그가 바라보는 것 또한, 그녀는 몰랐다.

    세인이 잠시 내리깔았던 눈꺼풀을 젖히며 말했다.

    “서이한 씨…….”

    그때 왜 혼자 갔어요?

    함께 가자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왜 그냥 떠난 거예요?

    왜 그런 식으로 이별을 알게 했어?

    당시 사랑에 목매는 쪽은 세인이 아니라 이한이었다.

    이한이 남처럼 변할 거란 생각은 못 했기에,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더는 내가 있어도 잠이 오질 않으니까, 그래서 떠난 거야?

    그럼 왜 나랑 결혼하겠다고 한 건데요?

    정말 이름뿐인 나만 필요했던 거예요?

    지금은 왜 돌아왔어?

    그는 물음표만 남기는 남자였고, 여태껏 세인은 그 해답을 혼자 찾아왔다.

    나름대로 답을 내릴 때마다 무너졌던 마음을 그는 알까.

    어려운 서이한.

    “……궁금한 게 있어요. 물어도 돼요?”

    “뭘 말할까, 내가.”

    이한이 너그러운 눈빛으로, 뭐든 대답해 줄 것처럼 대꾸하자 세인은 용기가 났다.

    하지만 그만큼 두려웠다.

    달콤한 눈빛에 다른 이유가 있을까 봐, 진실을 알기가 무서워졌다.

    또다시 상처받을까 봐.

    “……대체 서이한 씨는 왜 이렇게 생겼어요?”

    “생김새가 불만이야?”

    “네.”

    하, 헛숨을 퍼뜨린 그가 제 양 뺨에 달라붙은 세인의 두 손을 잡아 한 손으로 가볍게 움켜쥐었다.

    “언젠 생겨 먹은 게 좋다고 하더니. 내 기억이 잘못됐나 봐.”

    “말 지어내지 마세요.”

    그 순간 이한의 그녀의 두 손목 안쪽에 입술을 묻었다. 색조 옅은 눈동자가 세인을 주시했다.

    마치 잡아먹을 듯한 시선이었다.

    “여기가 부러질 것 같아. 식사는 제때 해?”

    “그냥 체질이에요.”

    “그럼 체질 변화를 꿈꿔야겠네.”

    내도록 뻔뻔하고 오만한 태도를 보이는 이한은 전혀 죄지은 사람 같지 않았다.

    그래서 세인은 그에게 잘못이 없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래서 진짜 궁금한 게 뭐야.”

    어차피 이미 끝난 사랑을 겁내는 건 의미가 없었다. 호기심을 해결할 뿐이니 주저할 이유 또한 없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목이 막히지.

    세인이 입술을 달싹이는 순간이었다. 눈앞이 핑하니 돌았다.

    취기와 피로, 격정적인 입맞춤으로 인한 현기증이 한꺼번에 밀려든 것이다.

    그녀의 뺨이 이한의 너른 가슴에 힘없이 내려앉았다.

    “이제야 안아주고 싶어졌어?”

    “……그런 게 아니라.”

    “세인아, 자?”

    물속에 잠긴 것처럼 이한의 목소리가 멀게만 느껴졌다. 세인은 무거워진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그렇게 잠들었다.

    ***

    세인은 유난히 따가운 눈두덩을 손등으로 누르며 기상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다가 머리를 쓸어 넘겨주는 커다란 손을 감지하곤 기겁하듯 뒤로 물러났다.

    “읏!”

    “일어났어?”

    침대 헤드에 기대어 앉은 이한이 웃으며 물었다.

    사위가 밝아서일까. 눈이 아파서일까.

    세인은 햇빛을 받아 청량하게 웃는 이한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어제의 일이 차라리 기억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주 또렷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눈을 깜빡거릴 때마다 야하기 짝이 없던 행위가 점점 더 선명해졌다.

    잊지 말라며 새겨주던 이한의 열기가 아직도 화끈거리는 듯했다.

    “……언제 잠이 들었어요?”

    결국 세인이 눈을 옆으로 피하며 물었다.

    “키스한 뒤에.”

    “……아.”

    세인이 탄식하듯 대꾸했다.

    “많이 피곤했나 봐. 평소에 잘 못 자?”

    이한이 부스스한 세인의 머리칼을 마저 뒤로 넘겨주며 물었다.

    그녀는 흠칫 놀라며 약간 몸을 뒤로 물렸다.

    그러고 보니 이한은 외출 준비를 마친 모습이었다.

    몇 시지? 서둘러 시간을 확인한 세인은 기겁해 이불을 걷고 일어나려 했다. 벌써 11시였다.

    “하루 정도는 푹 쉬지 그래.”

    이상하게도 이한의 목소리가 막 잠에서 깬 사람처럼 잠겨 있었다.

    세인은 부스스한 머리칼을 쓸어내리면서 그를 흘긋흘긋 살폈다.

    여전히 훌륭한 외모였지만, 이한의 눈가가 밤을 새운 것처럼 어둑했다.

    어제 쓰러지듯 잠들었으니, 이한은 이때다 싶어 세인의 옆자리를 파고들었을 거다.

    그리고 숙면했을 테고.

    그런데 왜 못 잔 것 같지?

    “혹시 못 잤어요?”

    “정세인, 내가 어떤 마음으로 밤새웠을 것 같아?”

    이한이 느릿하게 웃는 순간 세인은 손으로 머리를 빗다 말고 멈칫했다.

    “정말 못 잤어요?”

    “한숨도.”

    “……왜?”

    수면제의 효력이 벌써 다한 걸까, 세인은 애써 미소를 띠며 물었으나 속이 복잡해졌다.

    6년 전에도 이한은 세인을 안고도 잠들 수 없게 되자, 곧바로 마음이 떠난 듯 행동했다.

    결혼까지 한 마당에 쉽게 헤어질 수는 없겠지만 당장에라도 미국으로 돌아간단 소리를 해댈지 몰랐다.

    키스 후 이별이라니. 정말 최악이었다.

    “지난번엔 긴장이 풀리면서 잠이 쏟아진 거고.”

    “그럼……?”

    “내 아내가 무방비하게 잠들었는데. 속 편하게 잠이나 오겠어?”

    세인이 머리를 살짝 옆으로 기울였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모르는 척을 하는 거야, 아니면 6년 전처럼 정말 몰라.”

    “저 때문에 못 잤단 소리예요?”

    “순진한 것도 정도껏 해야 귀엽지. 사람 하나 죽일 뻔했어, 너.”

    순진? 세인은 자신과 참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고 생각하며 이한의 말뜻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한이 손끝으로 세인의 뺨을 툭 건드렸다. 뭐지. 왜지.

    은은하게 들어오는 햇살 때문일까. 눈이 부시도록 예쁘게 웃고 있는 이한에게 마음이 술렁였다.

    세인은 뒤늦게 그의 말을 이해하고 말을 더듬었다.

    “아, 서, 설마…….”

    “이제 좀 알겠어?”

    말을 마친 이한이 꾸물거리는 세인을 잡아끌어 그의 허벅지 위에 앉혔다.

    순식간에 이한과 마주 보게 된 세인이 엉덩이를 들어 올리며 뒤로 내빼자, 이한이 허리를 당겨 더 깊숙하게 안착하도록 했다.

    “이 정도 상은 줘도 되잖아. 밤새 괴로웠던 대가로. 응?”

    나직하게 속삭이는 말엔 어제의 열기가 잔재했다.

    “제가 상 줄 일은 아닌 것 같네요.”

    “더 해달라고 매달리던 게 누구였는지 기억이 안 나나 봐.”

    세인은 끈질기게 따라붙는 이한의 시선이 민망해서 괜히 뾰족하게 대꾸했다.

    “술 마시고 무슨 말을 못 해요.”

    이한이 자그마한 골반을 잡아 조금 더 밀접하게 신체를 붙였다. 허벅지 안쪽으로 꽉 들어찬 이한의 부피감에 세인은 비명을 지를 뻔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지, 이제 좀 감이 와?”

    세인의 귀까지 열이 올라붙었다. 예전에도 자주 하던 자세였는데, 그때완 다른 숨 막히는 열기가 느껴졌다.

    “모, 모르겠다고요.”

    그와 밀착한 부위가 신경 쓰여 세인이 움찔하는 순간, 이한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그러나 이한은 그 이상 힘을 써 세인을 잡아 두려 하진 않았다.

    “그…….”

    “말해 봐.”

    “……호, 혼자 하면 되잖아요. 남자들은 보통 그렇게 풀지 않나요?”

    누가 들을까 싶어서 속삭인 세인이 고개를 푹 떨궜다.

    “그건 이미 인이 박이도록 했고.”

    “……네?”

    “내 머릿속에서 네가 어땠는지, 말해 줘?”

    “아니요?”

    세인이 숨도 안 쉬고 대답하자, 이한이 눈을 접어 웃더니 세인을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배 쪽에서 이물감이 느껴졌으나 이한은 더는 그런 상태를 강조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세인의 등을 두드렸다.

    마치 잠결에 보채는 아이를 달래듯 다정한 손길이었다. 그 흐름에 밀려 세인은 경직된 몸을 조금 편하게 기댔다.

    세인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질문이 부유하고 있었다.

    자신을 수면제로 활용하기 위한 아첨이라고 생각하기엔 이상한 점이 많았다.

    이한은 오늘 잠을 자지 못했고, 그런데도 달콤한 행위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대체 무엇을 위해?

    “저기…….”

    “괜찮아. 천천히 말해도 돼.”

    위축돼서 웅얼거리는 걸 이한은 기가 막히게 알아냈다. 예전의 그도 그랬다.

    세인이 주저할 때마다 이한은 알아챘고, 기다려 주었다.

    그래서인지 세인은 쫓기는 느낌 없이, 천천히 입을 열 수 있었다.

    “왜 잠을 못 잤는데도…… 저한테 이래요?”

    “음?”

    “숙면하고 싶은 거 아니었나요? 못 했잖아요. 못 잤잖아. 그런데 왜 잘해 줘요?”

    “정세인은 날 대체 어떻게 생각하는 건지.”

    웃음이 담긴 말끝에 날카로움이 서려 있었다.

    상체를 조금 떼어낸 세인은 미어질 듯 주름 잡힌 베스트 부근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다정하니까 이상해서요.”

    “너랑 고작 잠이나 자보겠다고 이러는 것 같아? 뭘 착각하는 것 같은데.”

    잠시 말을 멈춘 이한이 세인의 턱을 들어 눈을 보게 했다.

    “6년 전에도 잘 못 잤어. 내가 잘 자고 있다고 여긴 건 네 착각이었는데.”

    “……네?”

    “한두 번이야 그래, 잠들었는데. 그 후엔 애국가를 몇 번을 불렀는지 알아?”

    세인이 느리게 이한의 말을 곱씹는 사이, 이한이 쐐기를 박았다.

    “좋아하는 여자가 옆에 있는데 속 편하게 잠드는 등신이 어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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