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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9. 클로이 황후의 술버릇 (21/21)
  • 외전9. 클로이 황후의 술버릇

    새해의 첫 날, 황녀를 위한 무도회가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게 펼쳐졌다. 그날 클로이는 유난히도 기분이 좋았다.

    모두가 새 황녀를 반갑게 맞이하며 덕담을 해 주었다. 어떻게 그렇게 예쁜 황녀님을 갖게 되었냐며 부러워하는 이들도 있었고, 축하해 주는 이들도 있었다.

    레이몬드 또한 평소보다 기분이 좋았는지, 거만하게 앉아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리던 평소와 달리 몸소 일어나 여러 귀족들 사이를 누볐다.

    엘리엇과 에스델은 날이 조금 더 어두워지자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들어갔다. 제아무리 제국의 황태자이고 성녀라 한들, 어린 아이들이었다.

    이브는 일찌감치 레베카를 데리고 어디론가 나가 버렸다.

    시간은 차츰 자정을 향해 달려갔고, 기분이 극도로 좋아진 클로이는 술을 연거푸 마셨다.

    “어? 눈이 오네…….”

    문득 창밖으로 내리는 하얀 눈송이가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번 겨울의 첫눈이 내리던 순간이 생각났다.

    그날은 성녀의 환영 행사가 있던 날이었다. 레이몬드와 밀회를 하려 했지만 뒤따라온 에스델과 엘리엇에게 들켜 버린 날이기도 했다.

    함께 첫눈을 맞았고, 첫눈이 손바닥 위로 내려앉는 순간 울음을 터뜨렸던 에스델을 꼬옥 안아 주었었다. 품속에 폭삭 안기던 작은 몸이 그토록 사랑스러웠다.

    “푸흐흐…….”

    에스델을 떠올리는 클로이의 입가로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황후 폐하, 기분이 좋으신가 보군요.”

    지나가던 젊은 귀족 영식이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을 걸어 왔다.

    “그럼요. 아주 좋아요. 행복이란 게 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클로이는 손에 들고 있던 샴페인을 한 모금 더 마시며 길쭉한 눈꼬리를 포스스 접어 내렸다.

    “아…….”

    순간 그녀와 마주 서 있던 귀족 영식이 작은 탄성을 터뜨리더니, 제 손에 들고 있던 샴페인 잔을 저도 모르게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쨍그랑.

    요란한 소리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다른 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레이몬드는 클로이의 상태를 보더니 황급히 이야기를 중단하고 그녀가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황후……!”

    이런, 젠장.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지나치게 술을 많이 마신 모양이다. 그를 발견한 클로이가 붉은 눈동자를 흐드러지게 휘었다.

    “으응, 레이…….”

    차츰 그녀의 술버릇이 나오려 하고 있었다. 레이몬드는 재빨리 그녀의 허리를 한 팔로 휘감으며 제 쪽으로 몸을 기대게 했다.

    “황후는 내가 이만 데리고 가지.”

    클로이의 주량이 아주 약한 편은 아니었지만, 과도하게 술을 많이 마시면 약간의 주사가 있었다.

    레이몬드는 낭패라는 표정으로 클로이를 부축하며 바깥으로 나갔다. 차가운 눈송이가 피부에 닿자 클로이의 몸이 움찔 떨렸다.

    “클로이? 괜찮나? 술을 얼마나 마신 거야?”

    “레이몬드 델 아스타로트.”

    빙글 몸을 돌린 클로이가 레이몬드를 똑바로 올려다보며 두 눈에 힘을 부릅 주었다. 그러더니 찰싹, 양손으로 레이몬드의 얼굴을 치며 붙잡았다.

    “아스타 제국의 황제구나.”

    “그래, 클로이. 내가 황제야.”

    레이몬드는 클로이에게 얼굴을 붙잡힌 채로 어색하게 맞장구를 쳤다.

    “참 잘생겼어.”

    클로이의 양손이 레이몬드의 얼굴을 지분거리기 시작했다. 흡사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의 심정으로 레이몬드가 절절맸다.

    “자, 잠깐만, 클로이. 일단은 우리 방에 들어가서…….”

    “잘생긴 황제에게는 키스를 해 주어야지.”

    싱긋 입꼬리를 말아 올린 클로이가 까치발을 드는가 싶더니, 레이몬드의 입술 위로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댔다.

    “이건 네게만 주는 상이야, 레이. 너는 아스타 제국에서 가장 잘생긴 황제니까.”

    “크, 클로…… 읏…….”

    클로이를 말리려던 레이몬드는 이내 자신의 입술을 덮치는 클로이로 인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당해 버렸다.

    술에 취한 클로이는 지나치게 격렬하고 뜨거웠다. 레이몬드는 그만 참지 못하고 그녀의 허리를 거세게 그러안았다.

    “하…… 클로이…….”

    입술을 뗀 그가 정염이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클로이 또한 그를 지그시 올려다보았다.

    빛에 반사된 새하얀 얼굴 위로 발갛게 물든 두 뺨과 눈가가 레이몬드로 하여금 미칠 듯한 갈증을 일으켰다. 천천히 그녀의 두 눈이 야살스럽게 휘는가 싶더니, 맑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실 클로이의 술주정은 유구한 역사를 지녔다. 이제는 소멸되어 버린 시간에서부터.

    술에 취한 클로이는, 첫째로 얼굴이 굉장히 빨개진다. 보는 이로 하여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홀리게 만드는 얼굴에 레이몬드와 다리아는 클로이의 금주를 위한 법안을 귀족 의회에서 통과시켜야 한다고 진지하게 주장했다.

    둘째, 웃음이 헤퍼진다. 처음에는 보석처럼 붉은 그 눈동자를 뭉근하게 휘며 눈웃음을 짓다가, 조금 더 취하면 체리 빛깔의 입술이 둥글게 휜다.

    그러다가 그녀의 주사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 꺄르륵거리는 소녀 같은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곤 하는데, 그 웃음이 굉장히 치명적이었다. 이미 몇몇의 희생자들이 그녀의 웃음에 홀려 시름시름 상사병을 앓기도 했었다.

    셋째, 말이 짧아진다. 사실 이 부분은 레이몬드가 눈이 뒤집힐 만큼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반말을 하는 클로이는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색다른 매력을 보이곤 했는데, 특히나 그 새로운 매력은 침대 위에서 더욱 빛을 발휘했다.

    넷째, 달리기를 잘한다. 그냥 잘하는 게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어느 정도냐면, 어지간해서는 체술과 관련하여 다른 이들에게 뒤쳐진 적이 없던 레이몬드마저도 술에 취해 달리기 시작한 클로이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 클로이의 주사는 셋째에서 넷째로 향하는 중이었다.

    상대를 매료하듯 고혹적으로 웃던 클로이가 갑작스럽게 레이몬드의 몸을 살짝 밀쳤다.

    “클로이……?”

    그러고는 그가 당황하는 틈을 타 냅다 몸을 돌려 반대편으로 달아났다.

    “클로이……! 안 돼! 다들 황후를 붙잡아라!”

    레이몬드 델 아스타로트는 그녀의 술주정으로 인해 영원히 고통 받는 희생양이었다.

    그리고 그가 스스로 그 희생양이 되기를 자처하기 이전에 몇몇의 희생양들이 더 있었다.

    카일로스 루드비히.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망각된 시간 속의 남자는 오래전 클로이에게 황제가 좋아하는 취향의 술을 한번 권했다가 호되게 당한 적이 있었다.

    ‘숙부님은 정말 개새끼예요.’

    무작정 뺨을 때리고 달아나는 통에 카일로스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가 쫓아갔을 때는 어린 기사를 붙잡고 훌쩍훌쩍 울다가 웃는 것을 반복하는 클로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숙부님은, 흐어어엉…… 정말 개새끼예요……!’

    심지어 기사에게 하는 말을 자세히 들어 보니 온통 자신의 욕뿐이었다. 클로이를 다시 붙잡은 건 다행이었지만, 문제는 그 어린 기사가 그녀에게 반해 버렸다는 데에 있었다.

    ‘이 개자식! 레이디 가넷슈의 원수……!’

    사랑의 열병에 흠뻑 젖어 버린 치기 어린 기사는 감히 카일로스에게 흉기를 들고 달려들었다가 곧바로 나가떨어졌다.

    카일로스는 그대로 클로이를 침실로 데려가 재울 생각이었는데, 클로이는 또다시 카일로스의 뺨을 때리고 도망쳤다. 어찌나 빠르던지, 카일로스는 또다시 그녀를 놓치고 말았다.

    뒤늦게 주방의 하녀를 붙잡고 훌쩍훌쩍 울다가 웃는 그녀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주방의 하녀마저 그녀에게 반해 버린 뒤였다.

    ‘숙부님은, 흐어어엉…… 정말 개새끼예요……!’

    ‘이 개자식! 레이디 가넷슈의 원수……!’

    그래도 하녀는 어린 기사보다는 조금 더 똑똑했다.

    그는 곧바로 그 자리에서 카일로스를 해하려 드는 대신 이튿날 카일로스의 식사에 이상한 약을 섞었다가 곧바로 들통이나 쫓겨나고 말았다.

    술을 마신 클로이에게 뺨을 두 대 맞고, 그녀에게 홀린 엉뚱한 사람들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두 번이나 받았다.

    그 이후로 카일로스는 클로이에게 술을 마시라 권하지 않았다. 물론 술을 마신 모습 또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매료시킬 만큼 굉장했다. 하지만 취했을 때의 그녀는 정신 상태가 썩 좋지 않았기 때문에 장차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염려에서였다.

    게다가 어째서인지 클로이는 자신이 술에 취한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이 카일로스의 권유로 마셨던 위스키를 곧바로 뱉어 냈다고 잘못된 기억을 하고 있었다.

    사실 그녀가 위스키를 뱉어낸 것은 처음 한 모금뿐이었고, 그 뒤로는 다시금 피어오른 오기에 위스키 한 병을 몽땅 마셔 버렸는데 말이다.

    다만 이제는 카일로스 루드비히가 죽고 없었기에, 그 일을 기억하는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두 번째 희생양은 다리아 캐롤라인.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클로이에게 억지로 술을 먹인 그녀는 도리어 클로이의 술주정에 호되게 당하고 말았다.

    ‘나한테 정부가 되라고 했어?’

    대뜸 말이 짧아질 때부터 그녀가 취했단 것을 알아챘어야 했는데.

    ‘내가 당신의 정부가 되었으면 좋겠어?’

    은근하게 물어오는 목소리가 꼭 유혹하는 사람의 것과 비슷해서, 다리아는 그녀가 취한 게 아니라 대담하게도 자신을 유혹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잠깐, 클로이. 내가 그런 장난을 네게 하기는 했지만…….’

    하필이면 그들이 술을 마신 장소는 클로이의 침대 위였고, 다리아가 무어라 변명을 하기도 전에 그녀의 몸이 침대 위로 폭삭 쓰러졌다.

    ‘하지만 나는 황후 폐하의 정부가 될 수 없어. 왜냐면 나는…….’

    후두둑, 툭.

    굵은 눈물방울이 다리아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 화끈, 그녀의 온 얼굴에 열이 올랐다.

    제 위에 올라타 서글피 두 눈을 휘며 눈물을 뚝뚝 떨구는 클로이의 모습은 미칠 듯이 매혹적이었다. 이성애자인 다리아마저도 그대로 휩쓸려 홀려 버릴 만큼.

    철두철미한 성격이었던 카일로스 루드비히와 달리 다리아 캐롤라인은 이따금씩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적인 면모가 있었다.

    그래서 다리아는 그 이후로도 종종 클로이에게 술을 권했다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일이 잦았다.

    그러다가 클로이가 취하고 나면 늘 후회하고는 했지만, 아마도 다리아 캐롤라인은 평생토록 그 실수와 후회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다리아가 그토록 방만해진 까닭은 믿는 구석이 하나 있기 때문이었다.

    레이몬드 델 아스타로트. 클로이와 관련된 일이라면 항상 절절 매곤 하는 가엾은 남자.

    클로이가 술에 취하면 가장 난처해지는 것은 다름 아닌 레이몬드였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클로이가 술을 마실 때면 평소보다 배는 더 긴장하곤 했는데, 하필 오늘은 너무나 기분이 좋은 나머지 긴장을 늦추고 말았다.

    실수였다. 클로이가 이렇게 취하도록 내버려두다니.

    한참을 뛰어간 레이몬드는 멀지 않은 곳에서 기사들에게 붙잡힌 클로이를 발견했다.

    “클로이! 아, 이런, 젠장.”

    클로이는 그들에게 아주 애절한 몸짓으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기사들의 눈빛이 뭉근하게 풀려 있었다.

    “에스델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인지 모두가 알아야 해요.”

    “네, 황후 폐하! 에스델 황녀님을 보다 더 세심하게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단순히 모시는 것만으로는 안 돼요. 그 아이의 사랑스러움을 알아야 한다고요. 내 말을 알겠나요?”

    “네! 알겠습니다!”

    “정말요? 정말 아는 거 맞아요?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대답하는 거 아닌가요?”

    가만히 그것을 지켜보는 레이몬드의 입가에서 조금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허……. 이제는 취중의심까지.”

    클로이에게 걸어간 그가 그녀의 어깨 위로 자신의 팔을 둘렀다. 그러자 클로이에게 홀려 있던 기사들이 뒤늦게 레이몬드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며 허리를 숙였다.

    “화, 황제 폐하!”

    “황후의 말상대가 되어 주어 고맙군. 하지만 이제는 내가 왔으니 그만 가 보도록.”

    “네, 넵!”

    레이몬드의 서슬 퍼런 눈빛에 놀란 기사들이 몸을 물렸다. 레이몬드는 클로이의 몸을 번쩍 들어 올리며 걸음을 옮겼다.

    “클로이, 너 정말…….”

    짧은 한숨을 내쉬자 그의 품에 안긴 클로이가 푸스스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에스델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두가 알아야 한단 말이야.”

    “오늘은 에스델인가…….”

    “그 아이가 수줍게 웃는 것을 초상화로 남겨야 해.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릴 땐 레이몬드와 닮았어. 아, 레이몬드가 누구냐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남자인데…….”

    재잘재잘 떠드는 목소리가 썩 나쁘지 않아서, 레이몬드의 입가에도 그녀의 것과 비슷한 미소가 어렸다.

    “어? 레이몬드다!”

    슬그머니 올라간 그의 입꼬리를 발견한 클로이가 기뻐하며 박수를 쳤다.

    “이거 참, 제대로 취해 버렸군.”

    “사랑해요, 레이. 당신이 정말정말 좋아.”

    양 팔을 뻗은 클로이가 레이몬드의 뺨을 붙잡아 당기더니 그 위로 제 입술을 초옥 맞대었다.

    술에 잔뜩 취했는데도 귀찮기보다는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건, 그녀가 클로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클로이라서. 온 세상에 유일한 제 연인이라서.

    “오늘 밤은 아주 길겠는데.”

    레이몬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걸음을 마저 옮겼다.

    귓가에 울리는 그녀의 맑은 목소리에 그의 얼굴도 한결 온화하게 풀렸다.

    * * *

    이튿날 아침. 조금 늦은 시간에 일어난 클로이는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취했나 보구나, 하는 생각에 한숨이 비죽 새어나왔다. 기억 한 자락이 몽땅 날아간 것치고는 숙취가 전혀 없었다.

    클로이가 침대 밖으로 몸을 일으킬 때였다.

    똑똑, 앙증맞은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시녀들 중에서는 저렇게 사랑스럽게 노크를 하는 이가 없었다.

    “들어오렴.”

    누구인지 궁금한 마음을 숨기며 들어오라 하자 곧바로 문이 활짝 열리며 낭창한 목소리가 울렸다.

    “어머니!”

    “에스델?”

    “문안 인사를 드리러 왔어요!”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에스델이었다.

    “문안 인사?”

    아스타 제국에는 없는 풍습이었다. 한 번도 그런 것을 받아 본 적 없는 클로이가 당황하며 되물었다. 그러자 에스델이 생긋 웃으며 클로이에게 허리를 숙였다.

    “오늘 하루도 어머니의 미모만큼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고마워, 에스델.”

    뒤늦게 감사를 표한 클로이가 짧게 웃으며 에스델을 한번 안아 주었다.

    “바지를 입었네?”

    “네! 오늘은 엘리엇이 사냥터를 구경시켜 준댔어요! 사냥터에 가서 황금 사자를 잡아올 거예요!”

    “황금 사자?”

    뜬금없는 이야기에 클로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금 사자의 모피로 어머니에게 멋진 선물을 만들어 드릴 테니까 기대하고 계셔요!”

    잔뜩 신이 나서 이야기하던 에스델이 시계를 한번 보고서는 늦겠다며 후다닥 달려 나갔다.

    “음…… 황궁 사냥터에는 황금 사자가 살지 않을 텐데…….”

    클로이는 지금이라도 에스델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다.

    “에스델이 실망하겠는걸.”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시녀들을 불러 창고에 있는 황금 사자의 모피를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다.

    지난 사냥제 때 참가한 엘리엇이 우승 상품으로 받아온 물건이었다. 다행히 잘 보관된 덕에 상태가 아주 좋았다.

    클로이는 시녀들의 도움을 받아 황금 사자의 모피를 재단하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에스델에게 어울릴 만한 귀여운 망토를 만들어 줄 생각이다.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아……!’

    만드는 김에 엘리엇과 이브의 것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금 사자의 망토를 두르고 함께 황궁을 휘젓고 다닐 세 아이를 생각하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하얀 눈송이가 꽃비처럼 흩날리는 창가에 서서, 클로이는 저 멀리 뛰어가는 에스델과 엘리엇을 바라보았다. 두 손을 꼬옥 붙잡고 있는 모습이 그녀를 흐뭇하게 만들어 주었다.

    에스델이 그녀에게 돌아온 그해의 겨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따뜻한 겨울이었다. 평생토록 망각하지 않을, 그런 행복한 겨울이었다.

    마침내 온전한 행복이 그녀에게 머물렀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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