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 (4/106)
  • #4

    날이 밝았다. 간밤의 폭우가 거짓말처럼 하늘은 무척 맑고 쾌청했다. 그러나 여느 때처럼 즐겁게 하루를 시작하려던 사람들은 일어나자마자 끔찍한 비보를 접해야 했다. 호킨스 부부의 외동아들 엘리엇의 시신이, 조악하게 만들어진 배와 함께 남쪽 해변에 쓸려와 있었다.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젊은 청년의 사체는 형태도 없이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팔다리와 몸체가 종잇장처럼 너덜너덜 찢겨 나가 흡사 산 채로 분해된 모양새였다. 다행히 해조류가 덕지덕지 들러붙은 얼굴만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엘리엇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은 공포 그 자체였다. 한 쌍의 동공이 텅 빈 채 활짝 열려 있었다. 이미 혼이 온전히 빠져나간 그 자리에 엄청난 충격과 공포가 잔재되어 있었다. 상상도 못할 만큼 무시무시한 괴물을 코앞에서 목도한 것만 같았다. 그 괴물의 발톱이 제 몸을 무자비하게 난도질하는 순간 직전까지.

    “앤지, 보지 말아라- 어서 집으로 가 있어! 상어에게 뜯긴 거야.”

    앤지의 부모는 그녀의 등을 억지로 돌려세워 집 쪽으로 보냈다. 그녀 또래 다른 아이들도 어른들에게 이끌려 해변가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을 바삐 집으로, 학교로 보내는 어른들의 속삭임이 바다의 미풍을 타고 앤지의 귀에도 와 닿았다.

    “그러니까 절대 엉뚱한 생각하면 안 돼. 바다 너머엔 끔찍한 괴물이 있어.”

    “배가 뒤집혀서 상어에게 물어뜯긴 거 아니에요?”

    “상어가 아니었어도 저런 꼴이 됐을 거야! 상어보다 훨씬 더 끔찍하고 무서운 괴물들이 바다 너머 있으니까. 그러니 우리 모두, 무조건 이 섬 안에만 있어야 돼. 그래야 안전해, 암. 그렇고말고…….”

    앤지는 집을 향해 기계처럼 걸었다. 머리를 감싼 스카프와 허리에 두른 흰색 에이프런이 바람에 살랑였다. 엄마가 재빨리 몸을 돌려세우는 바람에, 엘리엇의 상태를 자세히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무릎 아래가 크게 찢겨 나간 한쪽 다리는 확실히 보였다. 너무도 끔찍했다.

    앤지는 잠시 발을 멈추고 눈을 꼭 감았다가 떴다. 섬뜩함이 전신을 휘감았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오한이 찌릿, 바늘처럼 찌르고 들어왔다.

    뭔가가 이상해. 왜일까. 왜인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뭔가가 아주…… 이상해.

    엘리엇 호킨스의 거주지는 앤지가 거주하는 남쪽과는 다소 동떨어진 동북쪽 군락이었다. 생전의 그와는 안면도 없었다. 만 명 남짓한 극소수 인구는 블랙웰 가문이라는 구심점 아래, 섬 여기저기 가장 살기 좋은 지역에 터를 잡고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모두가 다 알고 지내진 못했다.

    고인에 대한 안타까운 감정이 진하게 밀려왔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앤지의 몸에 침투해 온 전율은 좀 더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저 바다 너머에 정말 뭔가가 있을까……?

    앤지는 다시 발을 뗐다. 그대로 계속 서 있으면 사람들이 그녀를 이상하게 볼 터였다. 집으로 향하는 길 양쪽에 싱그러운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늘어서 있었다. 녹색 잎 사이로 가을 햇살이 따사롭게 비쳐 들었다. 간밤에 일어난 끔찍한 사고가 거짓말 같았다.

    사고…… 사고는 아니잖아. 상어에게 물어뜯긴 거야. 하지만……

    앤지의 뇌리에 한 줄기 의혹이 섬광처럼 스쳤다.

    만약 상어가 아니라면?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어쩐지 상어가 아닐 것 같다는 강한 직감이 들었다. 상어 아닌, 누구도 모르는 미지의 거대한 생명체가 엘리엇이란 남자의 사지를 그토록 잔인하게 뜯어 발긴 것만 같았다.

    만약 그렇다면, 엘리엇을 죽인 괴물은 과연 뭘까. 정체가 뭐지? 정말로 바다 건너편에 살고 있는 괴생명체인가?

    누구에게도 이 의혹을 말할 생각은 없었다. 부모님을 포함한 모두는 그녀가 때로 상상력이 지나치게 풍부하다 말했다. 심각하게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역시 속으로만 감춰 두는 편이 현명할 것 같았다.

    바다 건너편에는 대체 뭐가 있을까…….

    앤지는 천천히 걸으며 심란한 머릿속 생각을 떨쳐 내려 애썼다.

    섬의 평화를 잠시간 붕괴시킨 끔찍한 아침이 훌쩍 지나갔다. 마을 사람들은 오후가 되어서야 엘리엇의 집을 나섰다.

    졸지에 외아들을 잃은 호킨스 부부는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고 대성통곡을 하다가 간신히 울음을 추스른 상태였다. 개신교 목사와 이웃들은 장례 절차며, 묘지의 양지바른 곳을 미리 손봐 두는 등 가엾은 부부를 위해 협업하길 꺼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 호킨스 부부는 평소처럼 밝게 아침을 맞이했다. 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마을 사람들이 챙겨 주고 간 샌드위치와 수프, 캐서롤을 접시에 담아 식탁에 마주 앉았다. 눈이 충혈되도록 통곡하고 수심에 잠겼던 며칠 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올해는 추수가 좀 일찍 끝났구려. 이제 옥수수만 거두면 되겠어.”

    “그러게요. 겨울에 두고두고 먹을 과실주랑 절임만 남았어요. 천천히 하려고요.”

    두 중년 남녀의 얼굴은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슬픈 기색은 어디에도 없었다.

    * * *

    그는 사실 나이가 더 많을지도 몰라.

    앤지의 그런 의혹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강해져만 갔다. 블랙웰가 공자에게 책을 읽어 주고 말동무를 하러 다닌 지 어느덧 2년째의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녀는 12월의 마지막 금요일, 티타임 시간에 맞춰 블랙웰 하이츠의 눈 덮인 정원으로 향했다. 사시사철 온난한 기후라 해도 겨울은 겨울이었다. 며칠에 걸쳐 쉼 없이 내린 눈 때문에 섬 전체는 거대한 얼음의 장막 속에 둘러싸인 듯 무척 추웠다.

    앤지는 양털코트에 달린 모자 끈을 단단히 잡은 채, 눈꽃이 탐스럽게 핀 나무들 사이를 열심히 걸었다. 한 발짝 걸을 때마다 두터운 눈이 뽀드득 뽀득, 장화 아래 밟히며 노래를 불렀다. 그녀는 작년 9월 처음 저택에 발을 디딜 때의 계약과는 달리, 지금은 일주일에 세 번 도련님을 방문하고 있었다.

    이제는 눈 감고도 저택 게이트를 넘어와, 정원에서부터 3층 침실 앞까지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져 있었다. 도련님과도 심적으로 훨씬 가까워져 있었다. 적어도 그녀가 느끼기로는 그랬다.

    카일은 여전히 두꺼운 커튼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에드워드 리암 블랙웰 공작님의 외동아들, 카일렉 로던 블랙웰의 나이는 기실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었다.

    언젠가 바느질 모임 소녀들이 호기심에 속닥거리기도 했었다. 공작 부인이 수년에 걸쳐 쌍둥이를 포함해 여러 아이를 낳았지만, 다들 태어난 지 일 년 안에 죽어 버리고 카일 도련님만 생존해 있다는 소문이었다. 물론 억측에 지나지 않는다.

    생김새 역시 철저히 비밀에 싸여 있긴 매한가지였다. 본가 저택의 집사들을 제외하고 그의 얼굴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 같았다.

    그나마 앤지는 매우 특별한 케이스에 속했다. 커튼에 슬쩍슬쩍 비치는 실루엣이야 그림자에 불과하다 해도 적어도 일주일에 삼 일, 세 시간 동안에는 그의 목소리를 실제로 듣는 외부인이었기에.

    대외적으로는 그녀보다 한 살 많은 열여덟 살로 알려져 있지만 누구도 확신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녀와 동갑이거나 더 어릴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는 그녀가 짐작했던 것보다 더 나이가 많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대체 무슨 병이길래…… 그렇게 오랫동안 침대에 누워만 있어야 하는 걸까.

    저택 밖으로 하루도 나가지 못하고 방안에만 틀어박혀 살고만 있다니. 던스트 부인의 말에 의하면, 대대로 블랙웰가를 섬겨 온 주치의들이 계속해서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으니 수년 내 도련님의 병이 치료될 예정이라 듣긴 했었다.

    -사실은 병이라고 할 수도 없다.

    던스트 부인은 얼마 전 그녀를 현관까지 배웅하며 엄숙하게 말했다.

    -피부가 햇빛에 매우 민감하고 몸이 매우 허약해 실내에 계실 뿐이야. 밤에는 가끔 정원에 산책도 나오시니까. 너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으시는 건 낯을 가리시는 것뿐이고. 우리도 도련님을 어쩌다 한 번 뵐 정도니 괜한 신경 쓸 거 없다.

    앤지는 던스트 부인이 그렇게 말했던 날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했던 말보다는, 멀리서도 느껴지던 기묘한 두 시선 때문이었다. 제각기 다른 곳에서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두 시선.

    앤지는 그 말을 들은 후 부인에게 깍듯이 인사한 뒤 저택을 나섰다. 아기천사들이 활을 쏘는 분수대를 지나 양옆에 나무들이 늘어선 길로 접어들 무렵, 그녀는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뚜렷한 이유는 없었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초겨울 하늘 아래, 던스트 부인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현관을 나선 지 한참 되었는데도 부인은 여전히 문 옆에 석상처럼 서 있었다. 거리상 표정까지 보이지는 않았다.

    기묘한 느낌이었다. 정체 모를 전율이 앤지의 전신을 밧줄처럼 사로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앤지가 뒤돌아선 채 굳어 있자 부인은 몸을 돌려 안으로 사라졌다.

    또 다른 시선이 느껴졌다. 앤지가 무심코 고개를 치켜올렸다. 살짝 열린 창 너머, 너울거리는 커튼 안쪽에 누군가의 실루엣이 있었다. 3층, 오른쪽 맨 끝방이었다.

    저긴 도련님 방인데…….

    그림자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창턱에 올라가 있던 한 손도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앤지의 몸이 살짝 떨렸다. 아까 던스트 부인의 시선과 마주했을 때보다 더 강렬한 전율이 등골을 훑었다.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카일 도련님일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그의 침실 창가에 서 있을 린 없으니까.

    앤지는 수 초간 더 창문 쪽을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이상한 예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점점 더 빨라지는 심장 박동이 앞으로 다가올 것 같은 미지의 전조와 박자를 함께 하고 있었다.

    섬찟했다. 설명할 수 없는 불길함의 전류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춤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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