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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163화 (완결) (163/163)
  • 163화

    데미안 때문에 엉망이 되었던 카르펜 제국의 성인식 날짜가 다시 잡혔고, 메이아는 성인이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메이아와 테오도르는 결혼할 수 없었다.

    “아니! 대공 각하! 그러다가 파혼이라도 당하시면 어쩌시려는 겁니까?”

    “베나블 집사에게 들었습니다! 데이빗 님은 원래 메이아 공녀님과 카르펜 황태자를 파혼시키고 하츠벨루아 공작가에 데릴사위를 들이기로 했었다는 걸!”

    “크흠! 저희 딸이 대공비 마마의 시녀가 되고 싶어서 얼마나 열심히 수행하는지 모르실 겁니다!”

    “당장 하츠벨루아가에 가서 대공비 마마와 결혼 날짜를 받아 오셔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먼저 사고라도 치십시오.”

    “아무리 그래도 우리 플로렌스 대공가를 물로 보지 않는다면야 파혼을 쉽게 하시겠습니까?”

    “어허! 그건 모르는 말씀입니다.”

    “싫다는 여자를 억지로 결혼을 강행하는 무례한 짓을 대공 각하께서 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어떻게서든 하츠벨루아 공작을 설득하는 수밖에요.”

    “지금 우리 딸은 메이아 공녀님께서 대공비가 안 된다면 당분간 저랑 식사 안 하겠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건 저희 딸도…….”

    “혹시 시녀 자리 노리십니까?”

    “당연한 말씀을.”

    “시녀가 누가 될지는 그건 대공비 마마가 결정하실 일입니다.”

    테오도르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누구보다 그녀와의 결혼식을 꿈꾼 건 자신이다.

    하지만 쉽사리 결혼 날짜는 잡을 수 없었다.

    이유는 메이아가 바빠도 너무 바빠졌기 때문이다.

    메이아는 몹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좋지 않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데미안 황자는 사라졌고, 카르펜은 흑마법사의 제국이라는 오명을 얻을 뻔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소드 마스터인 록벨리온 공작과 시리우스 3세 황제가 직접적으로 데미안 혼자 벌인 일이라며 발표해 주었다.

    하츠벨루아 공작이 다시 된 데이빗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루만이 벌여 놓은 일들을 모두 해결하기 위해 잠도 줄이고 일만 했다. 그리고 안살림 일은 바이올렛이 해야 하지만 현재 그녀는 임신 중이고 안정이 필요하므로 모든 일을 메이아가 도맡아 했다.

    성인식만 지나면 빠르게 결혼할 줄 알았던 두 사람은 한 달, 두 달, 석 달, 그리고 메릴이 아이를 낳고 국외로 추방된 뒤에도 바로 식을 올릴 수 없었다.

    그도 플로렌스 대공으로서 바쁘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아니면 2주에 한 번 정도 꼬박꼬박 텔레포트를 타고 하츠벨루아저를 방문한다. 서로 바쁘다 보니 식사나 차 한잔하고 돌아간다. 데이빗의 감시로 애틋한 시간도 보낼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테오도르는 메이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 지어 준다.

    테오도르가 플로렌스령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났다. 하지만 임신한 어머니와 태어날 동생을 위해 지금의 감정을 추슬러야만 한다.

    그가 너무 보고 싶고, 함께 있지 못해 짜증이 치솟아 올라도 늘 웃어야 한다.

    “아가씨…….”

    “응?”

    “또 대공 각하 초상화 보고 계십니까?”

    “퀴니가 보내 줬어.”

    메이아가 퀴니의 선물을 받고 얼마나 좋아했던가.

    메이아는 액자를 쓰다듬으며 애틋한 미소를 지었다.

    <메이, 전 지금의 그리움도 보고 싶어서 괴로운 심정 또한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짧은 괴로움은 앞으로 함께할 인생에 비하면 짧게 지나가는 추억이 될 겁니다. 그때는 그랬지, 하면서 말이죠.>

    테오도르가 메이아보다 더 어른스럽게 말했다. 퀴니의 편지에서는 그가 얼마나 힘들어하고 메이아를 보고 싶어 괴로워하는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그는 배려해 주고 있다. 가문 대 가문으로 청혼서를 밀어붙이면 결혼을 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살아 돌아온 부모님과 태어날 동생을 위해 테오도르는 기다림을 선택했다.

    그리고 오늘 유독 다정한 데이빗과 바이올렛을 보니 그가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아버지.”

    “왜 그러니, 메이.”

    “저 잠시 마탑에 다녀와야 되겠어요.”

    “마탑?”

    “예.”

    메이아는 눈앞의 스테이크를 한입에 넣을 수 있게 보기 좋게 잘라 먹었다.

    “오늘 급한 일은 마무리했으니 금방 다녀올게요. 그리고 이젠 삼촌이 저질렀던 일들 다 수습되지 않았나요?”

    “물론 그렇지.”

    “그렇다면 가신들 중에서 안살림을 도와줄 몇 명을 뽑는 게 어떨까요?”

    “왜?”

    “저도 결혼 준비해야죠.”

    이젠 메이아가 그 기다림을 기다리지 못할 지경에 왔다.

    “결혼 준비하려면 우리 바이가 아이도 낳고, 몸도 풀고, 그 뒤에 준비해도 될 것 같구나.”

    “그렇다면 결혼 날짜라도 조율해 주세요.”

    “결혼 날짜는 내가 사위님과 가주 대 가주로서 결정할 문제란다.”

    “알겠습니다.”

    메이아는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고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았다.

    *

    이번에 하츠벨루아 공작저에 방문을 한 테오도르는 데이빗과 결혼 날짜를 정하게 되었다.

    데이빗은 최대한 늦게 날짜를 잡았고, 테오도르는 한 달 안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들이 충돌하게 되어 바이올렛이 중간에서 정리해 줬다.

    “어머니 출산이 곧 시작되니…… 초조해지네요.”

    “분명 괜찮으실 겁니다.”

    “그렇겠죠…….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네요.”

    결혼 날짜가 정해진 뒤부터 결혼식 준비가 시작되었다.

    준비를 하면서 플로렌스 대공가의 역사, 그리고 시리우스 제국이 가진 문화와 지식, 대공비로서의 마음가짐에 대해 배우게 된다.

    그 밖에 결혼식에 초대될 하객 선택 그리고 본식 드레스와 무도회 드레스를 무엇으로 입어야 하며 디자인을 어떻게 할지 회의를 해야 한다.

    그리고 시녀들 또한 선별해야 하는데 그 부분은 결혼식 끝난 이후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플로렌스령이 다스리고 있는 영지들을 둘러봐야 한다.

    말 그대로 결혼식이 끝나기 전까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게 된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그와 떨어져 지내는 것보다 차라리 너무 바빠도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할 수 있다면…… 바빠서 힘들어도 그것조차 축복처럼 느껴지니까.

    원래 귀족들의 결혼은 가문 유지의 수단으로 쓰일 뿐이다. 사회적인 신분을 유지하고 필요로 하면 정치적인 권력도 가질 수 있다. 그저 상호 계약적이기 때문에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파츠래리를 만날수록 그와 결혼하게 되면 정치적인 문제, 귀족파와의 대립, 그리고 후궁으로 누굴 둘 것이며 누굴 견제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와의 미래는 오로지 카르펜 제국을 어떻게 하면 부흥시킬 것이며, 파츠래리가 황제가 되었을 때 위험 요소를 제거해 나가는 것을 혼자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메이아는 테오도르를 만나고 달라졌다.

    물론 플로렌스 대공비로서 해야 할 일들은 많다. 함께 살아가면서 분명 어려운 일도 있겠지만 그와 함께라면 뭐든지 이겨 낼 수 있는 기분이다.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메이.”

    테오도르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녀의 아랫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전에 사랑을 잘 모르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잖아요.”

    “예, 기억합니다.”

    “이젠 사랑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서요.”

    메이아는 테오도르의 뺨을 어루만지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 모습에 테오도르는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

    “테오는 사랑을 무엇이라 말할 수 있나요.”

    “당연히…….”

    테오도르는 메이아에게 낮은 저음으로 속삭이며 자신의 뺨을 만지던 그녀의 손바닥과 손가락으로 입술을 만지게 했다. 그녀의 손길이 입술에 닿자 빠르게 뛰던 심장이 더욱 힘차게 뛰었다.

    온몸이 저릿저릿해져 온다. 조금씩 열이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메이아 하츠벨루아입니다.”

    그의 진심이 담긴 말에 메이아의 뺨과 귀가 붉게 물들어 갔다.

    “메이 생각뿐입니다.”

    그의 깊은 사랑 고백에 숨쉬기 괴로울 정도로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메이아의 입술을 테오도르가 엄지로 문지르며 속살거렸다.

    “처음 만날 때부터 당당하고 기품이 넘치는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었죠.”

    테오도르는 메이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곤 손바닥으로 어깨와 목덜미를 쓸어내리며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아마도 첫눈에 메이에게 반했던 거죠.”

    메이아는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검은 눈동자와 마주했다.

    “비록 첫눈에 반하지 않았지만…… 테오가 나에게 느끼는 감정과 내 감정이 똑같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최고의 고백입니다.”

    메이아는 축 늘어진 상태로 테오도르의 품에 안겨 있었다.

    테오도르는 가볍게 메이아의 눈가와 이마에 입을 맞추며 꼭 껴안고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러곤 얼굴을 비비며 깊게 숨을 들이켜고 내쉬며 행복한 한숨을 내뱉었다.

    “메이를 많이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체온은 어떠한 모피보다 따뜻했고, 사랑하는 사람의 체향은 어떠한 향수보다 향긋했고,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은 어떠한 관심보다 행복했고, 사랑하는 사람의 고백은 어떠한 말보다도 달콤했다.

    “나에게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어봐 줘요, 테오.”

    “사랑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함께하는 것.”

    “함께 말입니까?”

    “사랑하지 않으면 함께할 필요가 없잖아요.”

    매일 반복되는 하루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다는 건 기쁜 일이다.

    “이번에 떨어져 지내면서 깨달은 거예요.”

    함께하는 것은 곧 사랑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거라는 걸.

    그렇기 때문에 테오도르와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것에 무척 괴로웠다는 걸.

    메이아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테오도르의 목에 팔을 둘렀다.

    “우리 계속 함께해요.”

    “아…….”

    테오도르는 갑자기 자신의 왼쪽 심장에 손을 가져다 댔다.

    “왜 그래요?”

    “너무 행복해도 상사병이 도지는군요.”

    메이아는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 모습을 테오도르는 소중히 바라보았다.

    『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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