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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162화 (162/163)

162화

“데미안, 어쩔 수 없다. 파혼하거라. 그렇지 않으면 전쟁이 난다.”

“전쟁 나도 됩니다!”

플로렌스 대공은 전처럼 또 메이아를 가지려고 했다. 용서할 수 없다.

모두 다 죽이고 전쟁을 일으키면 될 일이다.

“다 죽일 거야……. 다……! 테베린!”

황제와 황후 그리고 파츠래리를 모두 죽였다. 황좌에 앉자마자 메이아와 테오도르가 찾아왔다.

다른 남자 품에 안겨 있는 메이아의 모습에 피가 거꾸로 솟구쳐 오르는 분노를 잠재울 수 없었다.

“왜 남의 약혼녀를 품에 안고 계시는 겁니까? 플로렌스 대공.”

“데미안 폰 마브로 황제는 들어라. 전 하츠벨루아 공작 부부의 살해 혐의로 널 처단하겠다.”

“메이, 저 사람 말을 믿으면 안 돼.”

“저와 파혼만 해 주시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흑마법사와 결탁해 내 어머니 아버지를 죽인 증거들이 나왔어요. 절대 당신을 용서할 수 없어요.”

슬퍼하는 그녀의 표정에 괴로워하기보다는 오히려 데미안은 울먹이는 메이아를 꽉 안아 주는 테오도르를 갈기갈기 찢고 싶을 뿐이었다.

“내 부모를 살해한 사람과 결혼이라니…….”

“메이, 제발……! 난 그 누구도 살해한 적 없어.”

“어릴 때부터 내가 예뻐하던 강아지와 새를 몰래, 몰래 죽였던 거 모를 줄 알아? 내 유모 유디까지 죽이는 거 봤어……! 그래서 당신에게서 난 도망친 거야!”

죽이는 걸 자제했어야 되는 걸까?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철저하게 그녀를 외톨이로 만들어야지.

시리우스 제국의 플로렌스 대공이 크기 전에 죽여 버려야지.

이런 생각이 들자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가장 괴로운 건 메이아가 테오도르 품에 안겨 있는 모습을 보는 거다.

“당장 그 남자 품에서 떨어져. 메이, 부탁해.”

“영원히 당신을 잊고 플로렌스 대공비로 살아갈 거야!”

날 잊는다고……?

잊으면 안 되지. 메이 네가 그러면 안 돼……!

쾅!

“여기구나.”

굉음과 함께 한 남자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누구냐?”

“나? 시리우스 제국의 록벨리온가의 얀투스라고 해.”

칼을 고쳐 든 그의 몸에서는 상당한 검기가 느껴져 소름이 돋았다.

“인사와 함께 작별 인사를 하겠네. 잘 가, 카르펜 황제. 테오, 지금의 빚은 나중에 톡톡히 받겠어.”

강함 검기를 방어할 틈도 없이 데미안의 심장을 꿰뚫었다. 사지가 잘려 나가는 고통이 또 느껴졌다.

그러나 몸의 아픔보다, 찢어질 것 같은 심장의 통증보다, 마지막까지 테오도르의 품에 안겨 있는 메이아를 보는 게 고통이었다.

떠지지 않은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흐릿한 시야 너머로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오자 왼쪽 머리가 아파서 절로 신음 소리를 냈다.

“윽, 머리야.”

그리고 이상함을 느꼈다. 소드 마스터인 록벨리온 공작에 의해 심장이 뚫려 죽었는데…….

눈을 깜박였다. 자리에서 일어나보니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심장에 손을 가져다 댔다. 멀쩡했다.

설마 또 시간이 되돌려진 건가?

거울 앞으로 가 비친 자신의 모습을 쳐다봤다.

다시 어려진 내 모습이 보였다. 시간이 또 되돌려진 거다. 이번에는 메이아를 철저히 고립시켰다.

그리고 메이아는 내 앞에서 이별을 고하며 자살해 버렸다.

비명을 질렀다. 끔찍하다. 이번에는 완전히 내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녀는 또다시 사라졌다.

그것도 죽음으로.

쉴 새 없이 눈물이란 걸 흘리고 괴로워했다. 온통 머릿속에서 그녀가 죽는 모습이 되풀이되었다. 일부러 죽이려는 게 아니다. 그저 널 사랑해서 너무 사랑해서 그런 것뿐이다.

자리에 주저앉아 메이아의 시신을 끌어안았다. 심장이 너무 아파 온다.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 모습은…….”

내 어릴 때 모습이잖아.

똑똑.

“데미안 황자님 일어나셨습니까?”

대답도 하기 전에 내 손에 죽었던 유모가 문을 열고 들어와 말했다.

“오늘은 하츠벨루아 공작님과 공녀님께서 방문하시는 날입니다.”

“……!”

또 시간이 되돌려져 있었다.

죽은 줄 알았던 그녀를 다시 만날 테니까. 그리고 또 내 손안에 넣을 거니까.

“이젠 내가 두려워할 게 없어졌어.”

시간이 되돌려지다니……! 이건 축복이다. 메이아를 잃을까 전전긍긍해 할 필요가 없어진 거다.

“죽음조차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게 된 거야. 그렇지, 메이?

흑마법의 계약은 나에게 축복 아니, 스스로 만들어 낸 기적이다.

“너와 영원히 함께 있게 해 달라고. 그리고 나의 소원은 잔인할 만큼 이루어졌어.”

내가 죽어도.

그녀가 죽어도.

다시 시간은 되돌아가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사랑해.”

잘 가, 메이.

“다시 만나자.”

안녕. 나의 종달새.

그녀의 죽음만 수백 번. 내 죽음만도 수십 번 겪었다. 물론 내 죽음은 자살로 인한 것이다.

메이아가 내 곁을 떠나자마자 찾기도 귀찮아서 자결을 하고 다시 시작했다.

권력의 정점을 쥐어도 그녀는 내 곁을 떠났고, 모든 걸 버려도 그녀는 사라졌다.

“메이가 내 곁만 안 떠나면 되는데…….”

그리고 꼭 가출한 그녀는 테오도르 플로렌스를 찾아간다.

내가 그자보다 못한 것이 무엇이지?

언제쯤 그녀는 나에게서 떠나지 않을까?

괜찮아. 계속 날 떠난다 하더라도 나는 널 놓지 못해. 이 괴로움과 혼자라는 쓸쓸한 감각 속에서 살아간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안 하고 후회하지 않을 거야. 나는 널 사랑하니까……. 이렇게라도 평생 네 곁에서 네 죽음까지조차 가질 수 있다는 꿈 같은 현실에 만족할 거야.”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칼을 들고 내 목을 그었다.

다시 눈을 뜨면 우리의 첫 만남 날로 돌아가겠지? 사실 처음 만난 날이 가장 좋았던 것 같아.

하루 종일 날 보고 웃어 주는 너와 그걸 곁에서 지켜보던 나. 그리고 수줍게 맞잡은 두 손까지.

보고 싶어, 메이아 하츠벨루아.

“꿈틀거리는 걸 보니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 모양이구나, 데미안.”

테베린은 앞에 놓인 손바닥만 한 검은 알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가 원하는 대로 난 이루어 줬어. 영원히 그녀와 함께할 수 있도록.”

테베린은 검은 알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고 살포시 입맞춤하며 미소 지었다.

“계속 행복하게 꿈꾸길 바라. 그리고 나에게 계속 달콤함을 줘.”

계약을 깨는 방법은 데미안이 메이아를 포기하면 될 일이다. 간절히 원했던 것만큼 그걸 포기한다면 계약은 깨진다. 하지만 그는 절대 그녀를 포기하지 않을 거다.

”난 더 이상 노예를 고문해서 부정적인 기운을 억지로 만들지 않아도 되고 데미안은 이 안에서 행복해지고, 정말 좋은 결말이야. 그렇지?“

마법사에게 마나석이 중요하듯 흑마법사에게는 저주의 계약을 한 사람의 감정이 중요하다.

특히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일부러 저주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처음에는 기쁨만 느끼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부정적인 감정만 넘친다.

그러고 시간이 지나면 정신이 나가 버려 오래 못 버티고 검은 알이 깨져 버린다.

그래서 테베린은 부정적인 감정을 위해 노예를 구매해 일부러 고문을 하며 부족한 부정의 힘을 채우곤 했다.

하지만 데미안을 만나고 달라졌다.

일부러 그의 곁에서 그의 분노를 키워 주었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고갈되지 않은 마나석이 있다면 바로 이런 거겠지.”

테베린은 다시 한번 검은 알을 소중하게 품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흑마법사와 인간의 계약은 소원이 인위적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아니다. 계약을 한다는 건 겉으로는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겠지만 마지막까지 흑마법사의 고갈되지 않은 에너지 원천이 될 뿐이었다.

*

파츠래리는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오랫동안 옆에서 보필했던 메이아에게 파혼을 통보하고, 하츠벨루아 공작 자리에서 물러나는 루만의 딸인 메릴에게도 파혼을 요구했다.

사람들은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처럼 보이지만 뭐든지 이용하고 필요 없어지면 버리는 파츠래리의 평판을 재평가했다. 물론 좋지 않은 방향 쪽으로.

정확히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으며, 필요에 따라 간사하게 이용한다고 말이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메이아를 놓치지만 않았더라면…… 파혼하지 않았더라면…….

<메릴 공녀에게 다 들었어. 플로렌스 대공에게 협박을 받아 약혼했다는 걸.>

<협박이라니요?>

<알고 있어. 플로렌스 대공이 메이아에게 첫눈에 반해서 결혼하지 않으면 카르펜 제국을 지도에서 지워 버리겠다고 협박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와 약혼을 한 거라는 걸…….>

<메릴 언니가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전혀 협박받지 않았습니다.>

<나한테는 솔직하게 털어놔도 돼.>

<전 대공님을 사랑해서 약혼했습니다.>

<극악무도한 플로렌스 대공에게서 구해 줄게.>

<제 약혼자를 그렇게 매도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메이아는 끝까지 테오도르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참으로 지독한 그녀의 말이었다. 그리고 카르펜을 지키기 위한 마음까지도…….

어차피 더는 붙잡을 수 없다. 떠나보내는 게 아니었다. 엘르민의 말만 듣고 파혼하는 게 아니었다. 이렇게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무척 괴로웠다.

그녀를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포기해야만 한다.

<파츠래리 황태자, 잊지 마. 내 대공비에게 더는 다가가지 마. 이건 경고도, 충고도 아니야. 협박이지.>

국력이 약하다는 게 무엇인지, 힘없는 개가 짖는다는 말의 뜻까지 이번 일로 깨달았다.

그래도 메릴과의 파혼을 하게 되었으니 다행이었지만 그 뒤에 따라붙은 악평은 날 신뢰했던 메이아를 배신한 대가라고 생각할 거다.

사랑하지만 놓아줄 수밖에 없다는 말이 무엇인지 파츠래리는 깨달았다며 두 번 다시 사람을 배신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앤디, 딸기 차 한 잔 내와.”

“딸기 차 싫어하셨잖아요. 알겠습니다.”

테오도르가 말했었다.

<넌 그녀의 지나간 기억의 일부분일 뿐이야. 그래, 추억거리도 안 되는 존재지.>

그녀에게 있어 난 기억의 일부분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나에게 아련한 추억이고, 가장 빛나던 시절을 회상하게 해 준다.

“딸기 차는 나에게 추억이 되었으니까…….”

두고두고 회상하고, 두고두고 후회하고, 두고두고 그리워하겠지. 그래도 안 마실 수 없다.

지금으로선 그 추억이라도 있어야지 버틸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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