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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160화 (160/163)

160화

테오도르는 갑자기 등장한 데이빗을 보고 메이아가 기뻐할 줄 알았지만 평소보다 더 차가운 표정으로 오히려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에게 이상한 질문을 했다.

“외박 그리고 화병.”

테오도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둘을 번갈아 봤다. 메이아는 여전히 표정을 풀지 않았다.

데이빗은 싱글벙글 웃으며 만족스러워했다.

“플로렌스가의 가신들이 일을 참 잘하더군요, 사위님. 특히 플로렌스 대공 각하의 피앙세라든가, 그 피앙세가 우리 메이라는 이야기가 전 제국에 신문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데미안 황자 소식을 록벨리온 공작이 알려 줬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이곳으로 오게 되었죠.”

“그러시군요.”

테오도르는 가신들 활약에 무척 기분 좋다는 듯 싱글벙글 웃었다.

“아직 결혼 전이니 제 딸에게 손끝 하나도 손대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손끝은 에스코트할 때 닿을 수밖에 없습니다, 장인어른.”

“잠깐만요!”

메이아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던 데이빗과 테오도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버지가 살아 있는 것도 지금 놀라운데……. 둘이 아는 사이였던 걸까? 하지만 그것보다 더 궁금한 건…….

“어머니는요? 그리고 제 약혼자와 아시는 사이신 거예요?”

“바이도 같이 오고 싶어 했는데. 입덧이 심해서 말이야.”

“입…… 덧이요?”

“메이, 네 동생이 생겼으니 좀 더 기쁜 표정을 해 주겠니?”

메이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데이빗을 쳐다보았다.

“어머니…… 임신하셨어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동생이 생기는 일은 무척 축하할 일이었다. 하지만 모든 게 갑작스러웠다.

“그래서 어머니는 지금 어디 계시는 건가요?”

“플로렌스 대공저에서 지내고 있단다.”

그의 말에 메이아는 알고 있었냐는 표정으로 테오도르를 쳐다보았다.

“메이 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메이아를 보며 데이빗은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긴 이야기가 될 거란다.”

메이아가 데미안 황자를 처음 만난 날부터 시작된 이야기.

“그리고 너무 사위한테 뭐라고 하지 말거라. 우리가 살아 있다는 걸 숨겨 달라고 신신당부했단다.”

데이빗은 따듯한 눈길로 메이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길면서도 짧은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

카르펜 제국의 2황자인 데미안 폰 마브로가 흑마법사들의 뒤를 봐주면서 불법적인 일을 저질렀다는 걸 황제에게 들키자 바로 그를 암살했다는 사실이 일파만파 퍼지기 시작했다.

“데미안 황자가 흑마법사와 계약을 맺다니!”

파츠래리는 회의 테이블 상석에 앉아 사람들의 이야기 듣는 게 피곤한지 연신 미간을 눌렀다.

“다들 그만…….”

데미안이 흑마법사와 계약한 사실과 성국의 마물들과 연관이 있다는 증거가 시리우스 제국에서 날아왔다. 덕분에 아르헨의 장례식을 제대로 치를 수가 없어 시신을 안치해 놓은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만하라니요! 자칫 잘못하면 우리 모두 흑마법사와 연관이 있다고 다른 제국에서 오해할 게 아닙니까! 전쟁이라도 선포 당하면 어쩌시려는 겁니까! 황태자 전하, 빨리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데미안 황자를 지지했던 귀족파들은 그 입 다무세요!”

“뭐라 했습니까? 레이스텐 백작!”

“내가 틀린 말 했습니까? 그나마 플로렌스 대공 각하와 메이아 공녀님이 아니었다면 데미안 황자는 파츠래리 황태자 전하까지 죽이고 카르펜 제국을 차지했을 거 아닙니까!”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

“그만!”

웅성거림이 멎었다.

파츠래리도 현재 상황이 어떤지 잘 알고 있다. 데미안이 흑마법을 이용해 아버지를 죽였다. 그리고 자신을 죽이려고 오는 찰나, 그걸 막아 준 사람은 다름 아닌 테오도르였다.

<황태자…… 아니, 이젠 황제가 되는 건가?>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데미안 황자가 흑마법사와 손을 잡아서 황제를 죽였어. 그는 성국과 관련도 깊지. 그렇다면 다른 제국들이 카르펜 제국을 뭐라 손가락질할까?>

재미있는 장난감을 가진 아이처럼 미소 짓는 테오도르에게 파츠래리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내가 낸 제안을 받아 준다면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날 순 있어.>

달콤한 말.

<받을 텐가?>

대답을 이미 정해 놓고도 선택권을 주는 자신이 자애롭다고 생각하겠지.

“경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 제국은 흑마법사가 있을 거란 손가락질을 받지 않을 것이오.”

웅성거림이 다시 커졌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커다란 사내가 들어왔다. 시종이 후다닥 달려와 외쳤다.

“시리우스 제국의 플로렌스 대공 각하이십니다.”

시종의 소개말에 다들 얼어붙은 듯 가만히 있었다. 테오도르는 평소와 다르게 무표정한 얼굴로 회의실을 쓱 둘러보고는 파츠래리가 있는 상석으로 걸어가 앉았다. 그 모습을 루만이 뿌듯하게 쳐다보며 어깨에 힘을 주었다.

“황태자, 내가 이 자리에 앉는 것이 불만은 없겠지?”

“……예.”

테오도르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살짝 기대고 다리를 꼬아 앉았다. 누가 봐도 거만해 보였지만 그 누구도 그걸 지적하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그는 플로렌스 대공이니까.

“흑마법사와 계약한 데미안 황자 때문에 카르펜 제국이 성국처럼 흑마법사들하고 손잡았을 거란 의심을 타 제국에서 받게 하지는 않을걸세. 혹시 모를 전쟁의 위험도 없을 거라고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겠네.”

“그게 정말이십니까?”

“내일이면 조용해질 테니 죽은 아르헨 황제의 장례식을 잘 치르면 돼.”

“감사합니다.”

“파츠래리 황태자,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나야.”

메이아에게 일방적으로 상처를 주고 파혼을 통보해 줘서.

“그리고 내가 나간 뒤에 약속을 지켜.”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테오도르가 회의실에서 나간 이후 파츠래리는 다시 회의를 시작했다.

“대체 무슨 방법으로 플로렌스 대공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겁니까?”

그가 도와준 이유는 메이아가 살았던 고향을 흑마법사의 소굴이란 소리를 듣게 하기 싫어서다. 그리고…….

‘데이빗 공작과 공작 부인이 살아 계시다니…….’

<장인어른이 다시 하츠벨루아 공작이 되어야 해, 황태자.>

장례식까지 올렸고, 루만이 공작위를 이어받았다. 그런데 데이빗이 살아 돌아와서 다시 공작위를 다시 잇기 위해선 가신들의 찬성과 황제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현재 황제는 죽었기 때문에 그 대리인 파츠래리가 대신 승인을 내야 한다.

<반대하는 가신들은 다 찍어 죽이든지, 협박하든지 가신들 찬성 받고 승인 도장을 찍어. 아, 그리고…….>

테오도르가 마지막으로 제안한 내용은 다행히 원하던 것이었다.

파츠래리는 회의실 귀족들에게 데이빗과 바이올렛의 생존을 알렸다. 반가워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귀족파 귀족들은 개 사료라도 씹은 표정으로 뚱하게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들보다 더 표정이 좋지 않은 사람은 바로 루만이었다.

“루만 하츠벨루아 공작.”

“예.”

“공작위를 내려놓게.”

“그게 무슨 말씀이신…… 지.”

“플로렌스 대공의 장인어른이 하츠벨루아 공작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루만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해 갔다.

하츠벨루아 가신들은 데이빗과 바이올렛의 생존 소식을 듣고 기뻐했다. 그리고 그가 다시 공작위를 받는 걸 찬성했다. 물론 루만을 지지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황제가 될 파츠래리가 강력하게 승인을 밀고 나가니 반대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이 자리에서 하츠벨루아가의 메릴과 파혼을 선포하겠다.”

더는 하츠벨루아 공작의 딸이 아닌 메릴이기에 파혼이 된 것이라는 것쯤 사람들은 파츠래리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도 예상했다.

순식간에 차지했던 자리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

하츠벨루아 측에서 메릴과 파혼이 되도록 유도한 이유가 생겼다.

“우욱, 욱.”

사용인들은 한동안 하지 않은 달거리와 계속 헛구역질하는 메릴의 모습을 메이아에게 말했다.

비밀리에 의원을 불러 진단하게 했다.

“……임신이십니다.”

안 봐도 누구 아이인지 안다. 바로 토마스의 아이다. 이 사실을 안 데이빗은 크게 분노했다.

하츠벨루아 공작위에 복귀한다고 하더라도 메릴이 황태자비가 된다는 걸 크게 문제 삼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문제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데이빗은 테오도르에게 부탁해 메릴과 파츠래리가 파혼할 수 있도록 유도해 달라 부탁했다.

“메릴 하츠벨루아는 가문의 일원에서 제한다.”

“형님……, 제발 메릴을 용서해 주십시오.”

“루만, 황태자의 약혼녀로서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조카가 하츠벨루아가의 이름에 먹칠을 해 놓았는데 용서를 입에 담는 것이냐?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 가문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 자체가 불명예스럽구나!”

루만은 무릎 꿇고 용서를 빌었다. 하지만 데이빗은 차갑게 돌아섰다.

“넌 여기서 메릴의 일은 가슴에 묻고 네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거라.”

가슴에 묻으라는 말에 루만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메릴을 데리고 가게 해 주십시오.”

“그건 안 돼.”

“제발, 형님, 부탁드립니다.”

“쿠룬달스 백작이 메릴의 배 속에 있는 후계를 달라고 했다.”

“그게 무슨!”

“어차피 토마스 영식은 제국 밖으로 추방당했어. 자연스럽게 쿠룬달스 백작가의 후계가 없어진 셈이지.”

“그 말은……!”

“아이를 낳으면 쿠룬달스 백작에게 데리고 갈 거다. 어쩔 수 없이 평생 사생아로서 찍혀 살아갈 테지만 쿠룬달스 백작가의 귀한 후계라는 점은 변하지 않을 거란다, 루만.”

루만은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렸다.

황태자의 약혼녀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다면 황족을 능멸한 죄로 양가 집안은 죗값을 치러야 된다. 그러니 태어나는 외손주는 평생 엄마가 평민 출신으로 알고 자랄 거다. 자신 또한 외할아버지라고 말 한번 못 할 것이다.

고귀한 핏줄을 이어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어받지 못한 천한 사생아로서. 남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그럴 수 없습니다. 하츠벨루아가의 핏줄입니다.”

차라리 황태자와 약혼시키지 말걸.

그렇다면 태어날 외손주도 사생아라고 손가락질받지 않았을 것이며, 메릴은 당당하게 쿠룬달스 백작 부인이 되었을 텐데…….

“하츠벨루아가의 핏줄이라고 한다면 우리 가문은 황족을 능멸한 죗값을 치러야 해.”

데이빗은 루만에게 다가가 천천히 허리를 숙이고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난 내 아우의 입을 꿰매고 싶지 않아. 그러니 입조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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