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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159화 (159/163)
  • 159화

    “감사한 일입니다. 메이아 공녀님께서 대공비가 되어 주시는 일이요…….”

    베나블은 트롤리 위에 있던 초콜릿 쿠키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파티시에가 특별히 바이올렛 님을 위해 만든 초콜릿 쿠키입니다. 초콜릿 향은 최대한 줄이고, 소화가 잘되도록 입 안에 들어가는 즉시 혓바닥에 살살 녹아내리게 만들었답니다. 입덧에 매우 좋은 간식이 될 거라 하셨습니다.”

    “파티시에가 이렇게나 신경 써 줘서 고맙다고 전해 줘.”

    “칭찬에 기뻐할 겁니다.”

    바이올렛은 초콜릿 쿠키를 하나 입에 넣었다.

    “역할 정도로 냄새가 강하진 않고, 설명대로 입 안에 들어가자마자 녹아……. 그러면서 과자를 씹는 감칠맛도 놓치지 않았어……. 맛있어!”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대공저에 계시는 동안 성심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하지만 바이올렛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대공님이나 우리 딸은 카르펜 제국에서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나는 여기서 과자를 맛있게 먹고 감탄을 하고 있다니…… 흑…….”

    “바이.”

    “눈물이 나. 메이에게 너무 미안해서……. 엄마로서 지켜 주지 못한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하고…… 흑.”

    바이올렛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자 데이빗은 살포시 그녀를 껴안았다.

    “바이……,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뿐이야. 힘들고 지치고 걱정이 크더라도 기다려야 해. 그리고 임신했잖아.”

    “임신했다고 메이를 걱정 안 할 순 없어. 난 그 애 엄마야.”

    “난 아빠야……. 부모로서 우리는 할 수 있는 최선책들을 선택했고, 후회하게 되더라도 기다려야 해. 그리고 바이는 현재 안정이 중요해.”

    “알았어. 아는데 기분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뱃속 아이 때문에라도 마음을 가다듬으려 노력했지만 한편으로는 메이아 걱정에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함은 커져 갔다.

    테오도르가 곁에 있으니 안심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테오도르는 본인이 데미안의 표적이 될 걸 알면서도 스스로를 희생 삼아 메이아를 지키러 간 것이다.

    그게 몹시 고맙기도 하고 미안했다.

    “부모들은 원래 자기 자식을 위해 얼마든지…….”

    양심을 버리고 이기적으로 굴 수 있지만 문득 데이빗의 머릿속에 시녀장 한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주인님은 마음의 문을 닫으셨습니다. 웃지도, 울지도, 화를 내지도 않죠. 그런데 메이아 공녀님을 만나고 변하셨습니다. 늘 무표정한 모습에서 웃고, 울고, 그리고 질투심에 눈이 멀어 화도 내셨죠. 10년 만에 대공가가 사람 사는 저택이 되었습니다.>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목숨조차 내놓을 수 있다는 그의 마음을 이용해 메이아를 지키게 만들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흘렀다. 그리고 기다리던 소식이 도착했다.

    “록벨리온 공작님.”

    “잘 지내신 것 같군요. 불편함은 없으신가요?”

    “예.”

    “데미안 황자가 사라졌습니다.”

    “무슨 말씀이시죠?”

    “죽었다고 봐야 하는 게 맞겠군요. 데미안 황자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습니다.”

    너무나도 기다리던 소식이었다.

    데미안이 없다면 카르펜으로 당장 돌아가도 된다.

    “어제 데미안 황자가 메이아 공녀를 납치하려다가 테오도르가 해결했다고 합니다. 많은 기사들이 흑마법사를 목격했다고도 보고가 들어왔죠.”

    “증인이 생기게 되었군요.”

    “그래서 따로 증거를 만들 필요는 없고, 소문만 만들어 흘릴 겁니다.”

    데미안 황자가 사라졌다. 이제 다 끝이라며 일이 마무리되는 게 아니다.

    “성국과 흑마법사와의 관계 뒤에는 데미안 황자가 있었다, 불법적인 일을 하면서 뒤에서 흑마법사들의 활동 자금 및 노예들을 대 주었다. 도와준 이유는 황태자가 되기 위한 것이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참고로 데미안 황자가 아르헨 황제를 죽였기 때문에 황태자가 되기 위한 일이라는 건 사람들이 납득할 것입니다.”

    “데미안 황자가 뭐가 급했나 보군요. 그는 이렇게 급한 성격이 아닙니다.”

    “황제가 테오도르를 빨리 시리우스 보내기 위해 성인식을 앞당겼다고 합니다. 성인식을 올린 메이아 공녀가 플로렌스령으로 바로 돌아갈지도 모르니 성급해진 거죠.”

    록벨리온 공작은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흑마법사가 부추겼을 수도 있고,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어찌 되었든 그는 사라졌습니다. 이 말은 즉, 카르펜 제국의 위험 부담이 없어졌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데미안 황자는 황제를 죽인 다음 황태자까지 죽이려고 했지만 플로렌스 대공 부부가 황태자를 구했다고 이야기 마무리 짓는다면 사람들은 영웅 부부의 탄생이라며 기뻐할 겁니다.”

    역대 최고의 찬사를 받은 대공비 부부가 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위험 요소가 없어졌으니 카르펜 제국으로 돌아가셔도 될 겁니다.”

    하지만 바이올렛의 입덧이 심해 바로 돌아갈 수 없었다.

    “데빗이 먼저 가서 메이가 잘 있는지 먼저 확인하고 돌아와 줘.”

    임신 초기에는 텔레포트를 사용할 수도 없고, 배를 타고 이동하는 건 시간도 오래 걸릴뿐더러 몸에 무리가 간다.

    “그러면 얼른 다녀올 테니 바이, 안정 또 안정해야 해.”

    “알았어. 그나저나 메이가 많이 놀라겠지?”

    “놀라면서도 기뻐해 주지 않을까?”

    “속였다고 화낼 수도 있어.”

    “음…… 메이가 화를 내면 무서운데…….”

    흘러나오는 많은 생각들을 정리하고 카르펜 제국으로 가자.

    메이가 화를 내더라도 겸허히 받아들이자. 좋아한다면 함께 좋아해 주고, 운다면 같이 울어 주고 진심으로 사과하자.

    “좋았어!”

    그리고 공작저 앞으로 도착했을 때 입구를 지키던 기사들과 사용인들이 상당히 놀랐다.

    루만 또한 데이빗이 살아 있다는 이야기에 얼굴이 창백해진 채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고 공작저 입구로 뛰어갔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내 장례식까지 치렀다고? 하하. 루만, 아무리 공작이 되고 싶다고 해도 그렇게 빨리 할 줄은 몰랐는걸? 우리 메이가 상처 받았을 거야.”

    “그것이, 하하…….”

    “그건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고. ……루만.”

    “예.”

    “만약 내가 보면 안 될 서류들이 있다면 내가 돌아올 때까지 얼른 치우는 게 좋을 거야.”

    루만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살짝 숙였다.

    “드이임.”

    “예, 주인님!”

    데이빗의 생존에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을 살짝 흘렸던 드이임은 손수건을 꺼내 눈가 주위를 닦으며 답했다.

    “내가 진짜 데이빗으로 보여?”

    “물론입니다. 제가 20년을 모셨던 분인데 못 알아뵐까요. 아무리 변장을 잘한 사람일지라도 저는 알아봅니다. 무사 생환을 축하드립니다, 주인님.”

    “역시 드이임이야. 원래대로라면 진짜 나인지 확인해야 되는데 다들 수긍하고 마는 모습……. 하츠벨루아 가문의 사용인들답지 않으니 교육 좀 시켜.”

    “새로 온 사용인들이 많아서 그럴 겁니다. 교육시켜 놓겠습니다.”

    “그나저나 우리 메이는?”

    메이아를 찾는 데이빗의 질문에 드이임은 금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렸다.

    지금 그녀는 테오도르와 단둘이 방에 있다. 어제 큰일이 있었기에 기절한 메이아를 테오도르가 간호해 주고 있다는 걸 모르는 사용인들이 없었다.

    “지금 아가씨께서는 쉬고 계십니다. 조금 후에 만나 보시는게…….”

    “메이는 방에서 쉬고 있는 거지?”

    “……그렇습니다.”

    떨떠름한 표정의 드이임을 데이빗은 가늘게 눈을 뜨고 쳐다보았다.

    “메이의 방으로 가지.”

    “예?!”

    “드이임, 뭘 놀라는 거지? 내가 메이 방으로 가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 건가?”

    “있습니다. 주인님!”

    “무엇인데?”

    하지만 대답을 못 하고 뜸만 들이는 드이임을 뒤로 한 채 데이빗은 거침없이 메이아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노크를 한 뒤 문을 열며 크게 외쳤다.

    “메이! 아빠가 돌아왔단…… 다? 하. 하. 하, 대공 각하. 지금 제 딸 위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시는 겁니까? 하. 하. 하.”

    눈이 마주쳤던 테오도르는 말 그대로 굳었다. 데이빗이 팔짱을 끼고 노려보자 굳어 버린 표정을 풀며 눕혀져 있던 메이아를 앉히고 옷과 머리를 정돈했다.

    잊고 있었다. 남자들은 아빠 빼고 다 늑대라는 걸 메이아에게 가르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

    테오도르와 오붓한 시간을 가질 것 같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왔다.

    처음 보았을 때는 유령인 건가? 대체 왜 내 눈에 보이는 거지? 그리고 머릿속에서는 읽었던 책 중의 내용이 떠올랐다.

    [유령은 발이 없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인물은 발이 보였다. 그러니 유령은 아니었다.

    테오도르가 옷과 머리를 다 정리해 줄 때까지 머리가 복잡했다.

    “……아버지?”

    날 보고 웃는다. 내가 그리워해서 보이는 환상인 걸까? 떨리는 입술을 애써 꽉 깨물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메이아는 냉정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왼손을 들고 테오도르가 선물해 준 흑마법의 기운을 빨아들이는 마정석이 박힌 반지를 쳐다보았다. 보랏빛으로 반짝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앞에 있는 사람은……?

    ‘흑마법사나 그와 계약한 자는 아니고…….’

    하지만 암살자일지도 모른다. 암살 대상을 제거하기 위해 전문적인 암살자들은 대상의 일면식이 있는 인물로 변장하기 위해 키와 체형, 목소리, 머리카락 굵기까지 똑같이 복제한다.

    지금 이곳에는 플로렌스 대공인 테오도르가 있다. 나나 그를 죽이려고 변장하고 온 암살자라면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메이, 이 아빠는 살아 있었단다.”

    현재 눈앞에 자신의 아버지라 말하는 자가 정말 데이빗인 걸까? 그렇다면…….

    “아버지가 어머니와 결혼하기 위해서 했던 일은? 그로 인해 외할아버지께서 얻으신 병은?”

    데이빗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입꼬리를 활짝 올렸다. 아버지인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에 메이아가 기뻐하며 뛰어들어 안길 줄 알았지만 오히려 생물학적 아버지가 맞는지 확인을 하다니……!

    “외박 그리고 화병.”

    ‘우리 가족들만 알고 있는 문제를 내면서 간을 보다니……. 역시 내 딸이지만 짜릿해.’

    “훌륭하구나. 메이, 그래, 그렇게 의심하고 확인해야 된단다. 침착하게 잘했어. 만약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보자마자 눈물 뚝뚝 흘리면서 안겼다면 난 널 혼냈을 거다.”

    정말 지독하게도 자신과 닮은 메이아를 바라보며 데이빗은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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