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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156화 (156/163)

156화

<황제 폐하께서 접견실로 오라 하셨습니다.>

<갑자기 날?>

<예.>

<나도 같이 가지.>

<황제 폐하께서는 공녀님만 모시고 오라고 명하셨습니다.>

<하오나…….>

시종은 주저했다. 황제의 명도 중요하지만 눈앞의 사내는 플로렌스다.

<왜 그러지?>

<아…… 아닙니다.>

<황제가 왜 대공비를 만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황제가 대공비한테 찾아와야 될 거야.>

차갑게 말하는 테오도르의 눈빛에 시종은 얼어붙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내해.>

결국 시종은 테오도르의 압박을 이기지 못해 메이아와 그를 황제의 접견실 앞까지 안내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접견실 앞에 섰을 때 이상한 위화감이 들었다. 메이아는 그림자에 숨어 있는 쥬안에게 낮게 속삭였다.

“쥬안, 모습은 드러내지 말고 내 이야기를 들어.”

“예.”

늪에 빠져들어 서서히 가라앉는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메이아와 테오도르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가 보랏빛으로 점점 빛나기 시작했다.

“황제의 접견실에 흑마법사가 있다고 푸링 스승님에게 전해 줘.”

그때였다.

문이 벌컥 열리고 메이아는 접견실 안으로 순식간에 빨려들어 갔다. 그리고 문은 쾅 소리와 함께 닫혔다. 쥬안은 필사적으로 메이아 그림자 속에 숨어 있으려고 했으나 접견실 문에 튕겨 나가떨어졌다.

“아가씨!”

쾅쾅쾅.

접견실 문을 두들겼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고, 열리지 않았다. 안내해 준 시녀는 입에서 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접견실 앞에 있던 기사들도, 시종들도 모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쥬안은 망연자실하게 문을 쳐다보았다. 그건 테오도르 또한 마찬가지였다.

메이아는 강한 힘에 이끌려 접견실 안으로 들어오며 넘어졌다. 손목이 살짝 시큰거렸지만 지금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정면에 보이는 데미안 발밑에는 아르헨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설마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신 건가요?”

“아니야, 메이. 내가 이 방에 들어왔을 때 이미 죽었어.”

“거짓말.”

“왜 내가 하는 말을 다 거짓말이라고 하지? 왜 날 믿어 주지 않는 거야……? 난 너무 슬퍼.”

데미안은 황좌에서 일어나 메이아에게 천천히 손을 뻗으며 다가갔다.

“테베린! 당장 채워!”

철컹.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한쪽 팔이 옥죄어 오는 느낌에 팔을 내려다보았다.

“아앗!”

메이아가 팔찌가 채워진 감각을 깨우기도 전에 어느새 옆으로 조용히 다가온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사내가 메이아의 팔에 두꺼운 은팔찌를 채우며 웃는 게 보였다.

“완료.”

테베린은 메이아 가느다란 손목에 굵은 은팔찌를 채운 다음, 한 손으로 그녀의 등을 앞으로 떠밀었다.

“이런 팔찌도 참 잘 어울려, 메이.”

어느새 앞으로 다가온 데미안이 메이아의 손목을 낚아채며 말했다.

메이아는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손목에 힘을 주어 팔찌를 빼내기 위해 이를 꽉 물었다.

“힘주면 다칠 수도 있어. 메이.”

“이거 놓으세요!”

“저번처럼 놓아 주면 또 도망갈 거잖아……. 싫어.”

메이아는 잡히지 않은 다른 손에 집중해 마력을 모으려고 했다. 그렇지만 마력이 모이지 않아 당황했다.

“이 팔찌는 마력 봉인 도구야. 목걸이로 하려다가 쉽게 채우기 위해 팔찌로 했지. 메이에게 어울리는 디자인을 생각하느라 감옥에서 많은 고민을 했어. 다행히 잘 어울리네.”

마력을 봉인 당한 메이아는 지금 이 순간 가장 무능력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드디어…… 나의 염원이 이루어지려고 해.”

팔을 붙잡고 있는 데미안의 눈에는 광기로 얼룩져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미쳐 있기보다는 많이 불안해 보였다. 아니……, 기쁨으로 설레는 것처럼 보였다.

“테베린, 빨리 시작해.”

“걱정하지 마! 데미안 황자. 그녀가 이곳에 들어온 순간부터 발동시켰으니깐.”

“뭘 발동시킨 거죠?”

“너와 내가 함께할 수 있는, 낙원으로 가는 길이야.”

데미안은 황자로서 많은 걸 가지고 누릴 수 있는 돈과 지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걸 버리고 오로지 메이아만을 원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걸 망가뜨리고 있다.

“제가 죽어 버리면 함께 가지 못하겠죠.”

“그 예쁜 입에서 그런 말을 하면 안 돼.”

메이아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메이……, 너무 사랑해. 나와 함께 가자.”

“전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비록 짝사랑이라도 좋아. 지금 이렇게 함께 있을 수 있다면 메이가 날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아.”

“제발 놔 달란 말입니다!”

메이아의 혐오 섞인 큰 소리에 데미안의 눈에는 눈물이 한가득 맺히더니 후두둑 떨어졌다.

“그렇게 내가 미운 거야?”

“전 데미안 황자님의 마음이 부담스럽습니다.”

강요된 마음을 상대방을 버겁게 만들 뿐이다.

“제 말을 들어 주지 않고 하고 싶은 말만 하는 황자님이 부담스럽습니다.”

데미안은 필사적으로 메이아를 붙잡았다.

어느덧 황좌에 있던 공간에 조금씩 금이 갔다. 그리고 갈라진 틈이 서서히 열리고 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시커먼 어둠만 보이는 공간이 눈앞에 보였다.

“저건…….”

좋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비 오는 날 맨발로 진흙 바닥에 있는 더러운 걸 밟은 감각이 느껴졌다.

흑마법의 기운이다.

어떻게서든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분명 밖에 있던 쥬안이 테오도르와 푸링을 데리고 올 것이다. 그때까지 시간을 끌어야 한다.

“사실 메이의 지금 약혼자를 죽일 생각이었는데 생각이 바뀌었어.”

“왜 바뀌셨죠?”

“빨리 너와 단둘이 되고 싶어서.”

입꼬리를 쓱 올리며 메이아의 손목을 들어 올리며 입을 맞춘 데미안의 표정은 무척 만족스러워 보였다.

“저 어둠 속에서 죽을 때까지 나와 함께 지내면서 우린 많은 것을 함께하겠지.”

“저는 싫습니다. 놓아 주세요.”

“메이가 날 미워한다는 것쯤은 알아. 뭐…… 날 평생 미워해도 좋아. 네 기억 속에서 분노로 자리 잡혀 회상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도 드니깐. 그게 내 사랑이지.”

그의 삐뚤어진 사랑은 큰 압박감만 줄 뿐이다.

“전에도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후회하지 않을 방법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된다고 말이죠.”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나에게 가장 큰 후회가 될 거야.”

“그래서 제가 황자님에게 후회라는 벌을 드릴 겁니다.”

“메이에게 받는 벌은 벌이 아니라 축복일 거야. 이렇게 널 생각하는 나에게 무슨 벌을 준다는 거지?”

“영원히 당신을 내 머릿속에서 지우는 것.”

“내가 메이 머릿속에서 없어질 리가 없잖아.”

“아니요. 연금술로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 연금술이 있을 리가 없잖아……. 농담하는 거지?”

메이아에게 집착하는 그에게 가장 적합한 벌은 ‘그리움’일 것이다.

“난 죽을 때까지 당신을 잊고 살아가겠지만, 당신은 날 기억하겠죠, 평생.”

데미안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전 당신을 영원히 잊게 될 거예요. 아니 잊어버릴 겁니다.”

그게 당신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벌이 될 거야.

“아버지는 당신과 나의 결혼을 막기 위해 저를 파츠래리의 약혼녀로 만들었어야 했어요. 보통 영식들이라면 황자인 당신을 이길 수 없었겠지만…… 황태자의 약혼녀라면 당신이 날 건들 수 없다는 걸 아신 거죠.”

메이아가 어릴 때부터 힘들게 견뎠던 모든 것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함이었던 거다.

“아버지가 그랬죠. 최고의 지위에 앉더라도 사랑받지 못한다면 그걸 보고 후회하겠지만, 데미안황자와 결혼시키는 건 후회가 아닌 날 죽이는 거라고. 그래요, 아버지는 날 살리기 위해 평생 고통받을 후회를 선택하신 거죠.”

그만큼 날 사랑하기에 할 수 있었던 최악의 선택이자 최선의 선택.

“데미안 황자, 당신이 말한 그곳에서 혼자 지내면서 평생 나만을 그리워하다 죽으세요.”

그 순간이었다.

쾅!

큰 소리와 함께 벽이 허물어진 곳에 테오도르가 검을 들고 나타났다.

“메이!”

“테오!”

테오도르는 메이아의 손목을 잡고 있는 데미안의 오른손을 망설임 없이 잘라 내면서 발로 그의 배를 찼다.

손목이 잘리면서 걷어차이게 된 데미안은 바닥에 구르며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크아아악! 내 손. 내…… 크아.”

“괜찮습니까? 메이.”

메이아는 두 팔 벌려 테오도르의 목을 끌어안았다.

“와 줄 거라 믿고 있었어요.”

“베르샤!”

뚫린 벽 사이로 베르샤와 기사들 그리고 푸링이 들어섰다.

“예!”

“대공비를 안전한 곳으로 모셔.”

“알겠습니다.”

“테오도 같이 가요!”

“안 됩니다. 저는 플로렌스 대공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가셔야 합니다, 대공비 마마.”

안절부절못한 눈빛으로 테오도르를 바라보는 메이아에게 푸링이 가까이 다가섰다.

그리고 공간이 뻥 뚫린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건 흑마법으로 열린 어둠의 공간입니다. 저 공간은 공녀님을 원합니다. 그러니 나가 주셔야 제가 저 구멍을 힘 안 들이고 닫을 수 있습니다. 베르샤 기사단장님, 얼른 공녀님을 모시고 나가 주십시오.”

메이아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잘린 손목을 꽉 잡고 있던 데미안이 나가지 말라며 울부짖었다.

메이아가 나간 걸 재차 확인한 테오도르는 데미안 앞에 섰다.

*

“아가씨께서 흑마법사가 있다는 말씀과 함께 접견실에 빨려 들어가시면서 갇히셨습니다! 빨리 구해 주십시오!”

푸링은 펄쩍 뛰며 황제의 접견실까지 달려갔다.

테오도르에게 성인식을 멈추게 하라고 전달받은 파츠래리는 그럴 수는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기사들과 제국 내 마법사들도 모집해 달라 하셨습니다.”

“갑자기 성인식을 멈추고, 기사들까지.”

“흑마법사가 나타났습니다!”

흑마법사의 출현이라는 말에 파츠래리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갔다.

“황제의 접견실 안에 흑마법사가 나타났습니다.”

푸링은 바로 접견실 앞에 섰다. 테오도르가 미친 듯이 롱 소드로 벽을 때리고 있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윽, 썩은 내.”

쾅!

채앵! 쾅! 채앵.

테오도르는 롱 소드를 계속 높이 들어 올리고 내려치기를 쉬지 않고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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