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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154화 (154/163)

154화

테오도르 또한 푸른 계열과 소매와 깃에 레이스로 장식된 푸른 계열의 제복을 입었다.

“드디어 오늘이군요.”

“맞아. 오늘이야. 미성인이었던 메이아가 성인이 되는 날이지. 그 말은 곧…….”

결혼식을 올려도 된다는 것. 하지만 들뜬 감정을 차분히 눌러야만 했다.

“베르샤.”

“예.”

“오늘은 큰일이 날 수도 있어.”

“주의를 기울이겠습니다.”

“기울이는 걸로는 부족해. 데미안 황자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감옥에 있는 자입니다. 그곳 경비를 강화하라고 명하겠습니다.”

“데미안 황자는 흑마법사와 계약한 인물이야. 얼마든지 빠져나올 수 있어. 그리고 메이를 찾아올 거야.”

그동안 카르펜 제국에 있으면서 메이아와 다양한 사교계 장소를 찾아다녔다. 다행히 흑마법사와 계약한 사람은 더는 없었다. 그렇다면 데미안이었다.

그가 무슨 조건을 걸고 흑마법사와 계약을 했을까? 그가 원하는 것이라면 단 한 가지인데…….

“베르샤 무슨 일이 있어도 대공비를 지켜야 해.”

“알겠습니다.”

데미안은 메이아만을 원했다.

똑똑.

“들어오세요.”

“허허, 플로렌스 대공 각하.”

익숙한 목소리에 테오도르는 거울에서 시선을 떼고 문 쪽을 쳐다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푸링 대마법사님께서 어쩐 일이십니까?”

“록벨리온 공작의 의뢰를 받고 왔습니다. 먼저 메이아 공녀님을 만나려고 했지만 옷을 갈아입고 계셔서 대공 각하에게 왔습니다, 허허.”

“잘 오셨습니다. 그나저나 무슨 의뢰를 받고 오신 겁니까?”

“흑마법사가 있다는 걸 듣고 왔습니다.”

푸링의 눈빛이 평소와 달랐다. 아니, 공기가 달라졌다.

“데미안 황자는 최근에 계약한 것일 겁니다.”

소매 부분을 매만지던 테오도르는 푸링을 쳐다보았다.

“흑마법사와 계약한 사람은 마탑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런데 데미안 황자는 마탑에 들어오기도 했고 의뢰까지 했습니다.”

테오도르는 자신의 왼손에 끼워진 반지를 보이며 말했다.

“이건 연금술사 안톤이 흑마법의 어두운 기운을 빨아들이면 빛나게 해 주는 마정석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데미안 황자는 흑마법사와 계약한 자가 맞습니다.”

“예. 그러니 예전에는 흑마법사와 계약하지 않았지만 최근에 계약했다는 추론이 성립이 되는 것이지요.”

“데미안 황자가 원하는 건 메이뿐입니다. 그러니 흑마법사와 계약에 분명 그녀와 관련되어 계약을 했을 겁니다.”

“오늘 동행을 함께 하겠습니다. 혹시 제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푸링 님이 함께라면 저도, 그녀도 든든할 겁니다.”

“허허허.”

사실 푸링은 처음 록벨리온 공작에게 의뢰를 받았을 때는 의아했다.

<데미안 황자가 흑마법사와 관련이 있다는 증거를 잡았습니다.>

그 말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계약한 자가 아닙니다. 마탑에 들어왔습니다!>

<최근에 했나 보죠. 흑마법사 손을 잡을 만큼 원하는 게 있다는 뜻입니다. 제가 푸링 대마법사님을 지명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흑마법사를 그 어떤 마법사보다 잘 알고 계시니 말이죠.>

<예, 맞습니다. 바보 같은 예전의 바보 제자가 그 길로 갔으니 말이죠.>

<데미안 황자 이야기를 들어 보니 플로렌스 대공비에게 집착한다 들었습니다.>

<예. 아주 지독하게 집착합니다.>

<그녀가 사라지면 우리 테오가 많이 힘들어할 겁니다. 저는 그 꼴 못 봅니다. 푸링 대마법사께서 가서 그녀를 흑마법으로부터 지켜 주십시오. 그게 제 의뢰입니다.>

<허허, 의뢰가 아니더라도 가서 지킬 겁니다.>

입 안이 씁쓸하고 껄끔껄끔해지는 기분이었다. 뭔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아무래도 흑마법사와 연관이 되어 그런 듯했다.

잡념을 떨쳐내듯 고개를 도리질한 푸링은 테오도르에게 말했다.

“저는 잠시 유디에게 다녀오겠습니다. 입구 앞에서 뵙죠.”

유디를 만난 푸링은 그녀로부터 뭔가를 감싼 보자기를 조심스럽게 건네받았다.

“우선 최대한 모아 보았습니다. 이걸로 아가씨를 지킬 수 있는 게 맞지요?”

푸링은 유디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건네받은 보자기를 조심스럽게 마법 이공간에 넣어 두었다.

데미안이 원하는 건 다 하나. 메이아다. 그렇다면 그녀와 관련된 흑마법의 계약을 맺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푸링의 표정이 비장하게 변해 갔다.

*

사람을 사고파는 노예 매매는 예나 지금이나 암흑가에서 암암리 퍼져 있다. 그만큼 돈이 되기 때문에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깊게 파고들고 아무리 없애 버리려 애를 써도 노예 매매가 사라지는 일은 없다. 다만, 사라진 척만 했을 뿐이다.

도박에 빚진 사람은 더는 돈을 갚을 길이 없어 자기 몸뚱이만 남았을 때 결국 노예가 되어 팔린다. 그리고 마약류의 경우는 노예들에게 도망가지 못하도록 많이 쓰는 편이다.

노예, 마약, 도박. 이렇게 삼박자는 절대 뗄 수 없는 관계다. 사람들은 이 삼박자가 나쁘다는 걸 알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하며 다가간다.

오로지 욕망과 욕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악랄하게 즐기고, 악랄하게 죽어 간다. 그렇게 죽어 가는 존재들에게 흔한 명복조차 빌어 주는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사업을 모두 접는 거 아깝지 않겠어?”

“전혀. 어차피 돈을 벌기 위해 했던 일이니……. 테베린 네가 가지든가.”

“뭐야. 진짜 내가 가져?”

“흑마법사는 노예가 꼭 필요하잖아. 난 어차피 메이만 있으면 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아.”

테베린은 필사적으로 무표정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붉게 달아오른 뺨이 그의 기분을 말해 주었다.

“테베린, 잘 부탁해.”

“한 공간에 너희 둘만 있으면 돼. 그리고 어떻게서든 그녀를 끌고 검은 연옥 속으로 들어가면 될 거야.”

“그녀는 마법사야.”

“걱정 마. 내가 숨어 있다가 마력 제어 팔찌를 채우고 바로 사라지면 검은 연옥이 공간을 찢고 나타날 거야. 그곳에 공녀와 함께 들어가면 돼.”

테베린은 너무 신난다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좋아. 그렇다면 우선 데미안 황자 너부터 감옥을 빠져나가야 되겠군.”

“테베린 네 힘만 있으면 빠져나가는 건 그리 어려운 건 아니니……. 그녀가 황궁에 올 때까지 즐겁게 기다려 볼까?”

“그래. 데미안 황자.”

“아아……, 얼마 남지 않았어…….”

10년 동안 한결같이 기다려 온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그 전에 죽일 수 있는 자들은 모조리 죽여야 내 속이 풀릴 것 같아.”

“걱정 마. 도와줄게!”

*

황궁의 연회장에 테오도르와 함께 입장했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제 스무 살이 되는 영애와 영식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카르펜 제국은 성인식을 통해 이제 성인이 되는 남자와 여자를 짝지어 주는 사교장으로 만들었다. 효과는 매우 좋았다. 성인식이 끝나고 다음 날에 많은 영애와 영식들이 짝을 이루기 때문이다.

성인식은 간단하게 황제가 나와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한 명씩 앞으로 불러 가문과 이름을 불러 성인이 되었음을 인정하며 사람들에게 축하받게 했다. 이때 황제가 ‘어느 가문의 누구는 폰 마브로의 이름으로 성인이 되었음을 축하하네’라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성인이 된 사람의 가문을 알게 된다.

높은 지위의 사람일수록 당연히 인기가 높았다.

“오늘따라 영식들 외모들이 무척…….”

“메이아 공녀님을 유혹하기 위해 다들 외모만 꾸미고 왔잖아요.”

“뭐…… 우린 눈요기하고 좋네요, 호호.”

“세상에…… 저 영식은 어느 가문이죠?”

“글쎄요. 저도 처음 보는데. 어려 보이는데요.”

“다들 엄청 꾸미긴 했네요.”

“호호, 시엘 영애도 저 영식 좀 한번 봐 봐요.”

“저는 관심 없어요.”

“지금은 뭐 그럴 나이이긴 하죠.”

“저 사람들한테 관심이 없는 거지. 관심 있는 남자는 있어요.”

“그게 누구예요?”

시엘은 도도하게 턱짓으로 가리켰다.

“저 남자요.”

“저분은…….”

“예, 플로렌스 대공 각하요.”

“네?!”

“관심 갖고 좋아하는 건 죄가 아니잖아요.”

시엘의 당당한 말에 주위에 있던 영애들은 부채를 피고 입을 가리며 ‘호호’ 하고 웃었다.

“로로드비엔 영애.”

“네, 페르젠 영애.”

“그 마음이 잘못된 건 아니지만 마음 밖으로 나오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항상 입조심을 하세요. 임자가 있는 남자를 탐낸다는 발언 굉장히 위험하답니다. 아직 나이가 어리니 지금은 웃어넘기겠지만 앞으로 조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올리비아의 단호한 말에 시엘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테오, 잠깐 혼자 있어 주시겠어요? 잠시 2층에 올라가 다른 영애들을 만나고 와 봐야 되어서요.”

2층에 올라오자 익숙한 얼굴이 보여 메이아는 다가가려다 발걸음을 멈췄다. 올리비아의 격양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마음이 잘못된 건 아니지만 마음 밖으로 나오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항상 입조심을 하세요. 임자가 있는 남자를 탐낸다는 발언 굉장히 위험하답니다. 아직 나이가 어리니 지금은 웃어넘기겠지만 앞으로 조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특히 메이아 공녀님 앞에서.”

“플로렌스 대공 각하가 제 이상형이라서 말한 것뿐인데 너무 날카롭게 구시는 거 아닌가요? 페르젠 영애.”

“제 약혼자가 매력적이긴 하죠.”

시엘 등 뒤에 서 있던 메이아가 자애로운 미소를 띠며 올리비아에게 다가섰다.

“로로드비엔 영애, 오래간만이에요.”

“……네.”

“제 약혼자를 잘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상냥하게 미소 짓는 메이아를 시엘이 쳐다보았다.

“네…….”

그녀의 미소는 오히려 시엘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괜히 울컥한 감정이 치솟아 올랐다.

“전에 처음 뵈었을 때 그분에게 마음이 갔습니다.”

“예.”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싱긋 웃으며 대답하는 메이아는 여유로워 보였다.

“그분의 여자가 되는 것도 상상했답니다.”

시엘은 메이아를 도발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이 자리에서 모르는 영애들은 없었다.

“아무리 나쁜 남자라고 소문이 나더라도 그 매력적인 조건들을 보면 동하지 않을 여인들이 몇이나 있을까요? 솔직히 대공 각하시라면 대공비 이외 다른 부인들도 둘 수 있다고 하던걸요. 혹시 알아요? 저도 대공 각하의 여자가 될지.”

“책임지지 못하는 말은 그만하시면 좋겠습니다.”

“책임지는 말만 하는 게 귀족의 기본이죠.”

“저에게 이야기를 하되 후회하지 않을 이야기만 해 주셨으면 합니다.”

사실 메이아는 테오도르의 또 다른 부인이 되고 싶다는 말에 배 속 안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생전 처음 느끼는 불편한 감정이 몸 안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피를 역류시키고 장기를 꼬아 뒤집는 더럽고 아픈 감정.

“생각이 짧은 언행이십니다.”

“괜찮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두 분은 아직 결혼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대공 각하도 약혼은 얼마든지 파혼하실 수 있는 거죠. 메이아 공녀님도 파혼해 보신 경험이 있으니 약혼이 얼마나 얕은 약속인지 잘 알고 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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