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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152화 (152/163)
  • 152화

    “메이…….”

    누가 왼쪽 심장을 뜯어 가 주었으면 좋겠다. 그녀를 어디든 눕혀 놓고 흐트러진 그녀에게 쉬지 않고 입맞춤하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데 왜 나는 아프지. 아니야. 아픈 게 아니야. 그저 떨어지기 싫을 뿐이야. 하루 종일 당신만 바라보고 싶어. 그저 메이를 사랑하고 싶어. 당신의 푸른 눈동자에 나만 깃들었으면 좋겠어.

    메이아는 붉게 물든 그의 뺨에 손을 올리며 쓰다듬었다.

    그의 매달리는 듯한 검은 눈빛이…….

    살짝 눈썹이 내려간 모습과 금방 울 것 같은 눈동자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 많이 피곤했죠. 쉬어요.”

    그와 같이 있는 게 좋다. 그리고 몹시 원한다. 하지만 일부러 반대의 말을 내뱉으면 테오도르는 금방 무방비해진 모습을 보여 준다.

    꼭 방문을 열어 달라고 문을 긁어 대며 낑낑거리며 서성이는 커다란 강아지 같다.

    나의 마음과 칭찬을 기다리고 있는……. 테오도르의 머릿속이 너무 훤히 보여 미소가 지어진다.

    “자꾸 자극하지 마십시오.”

    “무슨 자극이요?”

    “참기 어렵습니다.”

    “뭘 참고 있나요?”

    “너무 짓궂은 질문이십니다.”

    사냥 나가는 주인 옆에서 꼬리는 흔드는 귀여운 블랙 레트리버가 웃었다.

    얼른 사냥하러 가고 싶으니 빨리 자기 속도에 따라오라는 듯한 필사적인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저런 표정은 반칙이야……. 너무 필사적이라 받아 주고 싶잖아.’

    앞에 커다란 블랙 레트리버는 내가 없으면 안 되겠지. 그리고 지금 내 명령을 기다리고 있겠지.

    메이아는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보름달처럼 눈부신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겼다.

    “이리 와요.”

    테오도르에게 손을 뻗은 메이아의 푸른 눈동자가 점점 가늘어지며 곱게 휘어지더니 곧 가늘어졌다.

    메이아에게 다가간 테오도르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귓바퀴에 대고 중얼거렸다.

    “예쁩니다.”

    점점 다가오던 그의 몸을 메이아는 밀어 내지 않았다.

    입술은 너무 뜨거웠고 테오도르의 몸은 자신의 몸과 다르게 단단했다.

    몸속에서 느껴지는 쾌감이 머릿속까지 침범했다.

    “가슴이 꽉 조이고 계속 벅차오릅니다.”

    “나도 그래요.”

    정신을 잃을 만큼 어지러우면서도 황홀한 감각에 숨이 찬다.

    이건 블랙 레트리버가 아니고 시커먼 늑대가 분명했다.

    그의 열기가 다시 한번 꿈틀대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그의 움직임이 되풀이되었다.

    *

    메이아와 테오도르는 다양한 사교계 초대를 받았고, 참석했다. 그의 소문이 워낙 무섭게 나서 그런지 그에게 다가가려는 사람들은 없었다.

    오늘도 저녁 만찬회에 초대받은 메이아는 테오도르와 동행했다. 메이아를 바라보는 테오도르에게는 유순한 이미지가 굉장히 강했다.

    “테오. 여기 잠깐 있어요.”

    “다녀오세요, 메이.”

    메이아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 숨죽인 주위 사람들이 그를 힐긋 쳐다보며 눈치를 본다. 그녀를 볼 때마다 환하게 미소 짓던 그의 얼굴은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기다렸죠?”

    테오도르는 다시 다가온 메이아의 팔을 끌어당겨 안았다. 그리고 미묘한 미소를 짓다 금세 갈무리했다.

    테오도르는 선량한 얼굴을 메이아에게 보여 주고선 그녀를 꽉 껴안고 노골적으로 쓰다듬으며 사람들에게 눈빛으로 말했다.

    ‘이 여자는 내 거다.’

    입매를 휘며 웃는 테오도르를 보고 오싹함을 느낀 사람들은 너도나도 그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그런 사람들은 테오도르는 차가운 눈동자로 직시했다.

    테오도르의 소문은 날이 갈수록 말이 보태어져 퍼져 나갔다.

    ‘악랄한 악인이다.’

    ‘메이아는 강제로 약혼 당한 거다.’

    좋지 않은 말이 떠도는 반면.

    ‘메이아 공녀가 약혼하지 않았더라면 시리우스 제국이…… 카르펜 제국을 성국처럼…….’

    ‘약혼을 하셨기 때문에 우리 제국이 무사한 걸 수도 있어요.’

    ‘아아…… 메이아 공녀님. 아니 이젠 플로렌스 대공비 마마라 해야 되겠죠.’

    메이아가 사실 제국을 구한 영웅이라는 말까지 나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젊은 영애들 사이에서는…….

    “보셨어요?”

    “봤어요!”

    “어쩜 눈빛이 그리 달달한지…… 보는 제가 다 설레던데요.”

    “의자도 먼저 빼 주고…… 챙겨 주고……. 아무리 악인이라고 하지만 자기 여자한테는 잘하는 악인이라면 저도 만나고 싶어지네요.”

    “남에게 차갑지만 내 여자에게 다정한 남자라니…….”

    메이아에게 푹 빠진 테오도르는 젊은 영애들 사이에서 세상에 둘도 없는 소설 속 남자 주인공이었다.

    그 소문은 파츠래리를 초조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소문대로라면 테오도르는 메이아에게 첫눈에 반해 억지로 약혼을 강행한 것이다.

    ‘내가 파혼만 하지 않았더라면…….’

    ‘메이아 얼굴도 안 보고 편지로 파혼을 하면 안 되는 거였어.’

    지난날 어리석은 선택에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렇지만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러가고 있다. 만약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어머니의 말만 듣고 메이아를 놓는 짓은 절대로 안 하리라. 수백 번 생각하고 달콤하게 상상했지만 돌아오는 건 차디찬 현실이었다.

    영애들의 메이아와 테오도르의 사랑 이야기를 듣던 시엘은 인상을 팍 찌푸렸다. 메이아가 오고 난 뒤부터 자신에 대한 관심들이 모두 사라졌다. 누가 누굴 만나도 항상 ‘메이아, 메이아’여서 듣기가 지긋지긋했다.

    엘르민의 티 파티에서 망신당한 걸 생각하면 부득부득 이가 갈린다. 메이아는 정말로 자신의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냈다. 덕분에 좋아하는 가정 교사들이 모두 바뀌게 되었다.

    <시엘! 대체 밖에서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아무 짓도 안 했어요.>

    <그런데 왜 이런 편지가 온 거냐! 내 딸이 밖에서 파혼당한 일을 영광이라고 말한 게 사실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메이아 공녀가 파혼당한 건 사실이고 황태자 전하의 약혼녀였던 건 영광이잖아요!>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다. 메이아 공녀님을 아니, 아니지……. 플로렌스 예비 대공비를 건들 생각은 하지 말거라. 플로렌스 대공에게 잘못 찍히면 우리는 끝이다. 알아들었니? 시엘?>

    플로렌스 대공비라는 건 엄청난 이름이구나. 아버지도…… 황태자도…… 심지어 황제까지도 꼼짝 못 만들게 할 사람. 테오도르 플로렌스.

    ‘그 남자…… 가질 수 없을까?’

    시엘은 입 안의 여린 살을 깨물었다. 그런 잘난 남자한테 관심이 없다는 건 거짓말일 거다. 어차피 약혼 사이라는 건 깨질 수 있는 얕은 관계 아닌가! 그렇다면 무엇을 먼저 해 볼까?

    *

    테베린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데미안과 계약을 맺었다. 철저한 계약으로 인해 흑마법은 데미안과 메이아 이 두 사람만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다만, 데미안이 그녀의 사랑만 원하지 않는다는 조건이다.

    <사랑을 원하지 않은 거지? 정말이지?>

    <그녀와 영원히 함께하면서 나를 사랑하게 만들 거니까…… 사랑을 이루어 달란 소원은 필요 없어.>

    <메이아 공녀의 사랑을 바란다면 흑마법의 계약은 깨질 거야. 내가 전에도 이야기했지? 흑마법은 기적이 아니라는 거. 그리고 계약 조건으로만 유지된다는 거 잊지 마.>

    데미안은 흡족한 미소를 띠며 메이아와 빨리 영원히 단둘이서 지내기만을 원한다 했다.

    한결같은 집착 그리고 질투 속에선 소용돌이치는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사랑이란 이름의 폭력이다. 사랑하니깐 감금하는 거야, 때리는 거야, 같은 사랑하는 이에게 수영을 가르쳐 준다면서 물속에 밀어 넣고 널 위한 거라고 말하는 식의 잘못된 사랑 표현.

    이거야말로 흑마법사가 가장 좋아하는 감정. 그리고 감각이다.

    ‘데미안 황자가 마력이 풍부했다면 훌륭한 흑마법사가 되었을 거야.’

    흑마법사는 되고 싶다 해서 되는 게 아니다. 그 이유는 잔인성 때문이다.

    사람을 고문하고 괴롭히는 걸 진심으로 즐겨야 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괴로움을 흑마법력으로 바꿔 흡수해야 한다. 상대방이 죽든 바보가 되든 신경 쓰지 않는다. 오로지 나를 위한 것만 생각하면 된다. 그렇기에 상대방에게 고문하는 것을 괴로워한다면 흑마법사는 될 수가 없다.

    흑마법사들은 선천적으로 부정적인 힘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이니까.

    데미안과 계약은 테베린에게 있어 마르지 않은 마정석을 얻은 것과 같다.

    “당분간 노예들 고문은 필요하지 않겠어, 클클클.”

    그래도 안전장치는 해 놔야 한다. 막말로 무슨 일이 생겨 메이아가 죽어 버리면 계약이 성사되지 않는다. 예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녀의 신체 부위로 대체하도록 해야겠어.”

    메이아가 죽어 버린다면 뭐…… 죽어 버린 시신이라도 같이 보내 버리면 되겠지? 어차피 데미안의 소망을 이루어 주는 흑마법 계약이 아니니 말이다.

    테베린은 짙어지는 욕망의 미소를 보이며 활짝 웃었다. 이젠 얼마 남지 않았다.

    *

    테오도르에게 황제 아르헨의 편지가 도착했다. 내용은 바로 성인식을 앞당기겠다는 내용이었다.

    “아무래도 테오를 빨리 카르펜 제국에서 내보내기 위한 거겠죠.”

    “카르펜 황제는 어지간히도 내가 이곳에 있는 게 싫었나 봅니다.”

    편지를 받아 읽은 테오도르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테오,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요.”

    “네.”

    당연했다. 성인식을 올리면 바로 결혼식도 올릴 수 있단 생각에 기분이 안 좋을 수가 없었다.

    “데미안 황자는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흑마법사와 계약한 자는 죽어야 합니다. 흑마법사의 힘이 되어 버리기 전에…….”

    “힘이 되어 버리다니 무슨 소리예요?”

    “흑마법사의 계약은 기적이 아닙니다. 저도 자세한 이야기는 모르겠으나…… 흑마법사와 계약한 자는 반드시 죽는다고 합니다. 계약자가 죽기 직전의 과정에서 부정적인 힘을 내뿜게 되는데 그게 바로 흑마법사의 힘이 된다 들었습니다.”

    메이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흑마법사와 계약하면서까지 얻어야 할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한 가지밖에 떠오르지 않아요.”

    그는 지독하게 메이아 자신을 원한다.

    “조만간 록벨리온 공작이 노예 매매와 마약과 도박장 운영을 해 벌어들인 돈으로 흑마법사와 손잡은 성국과 데미안 황자가 결탁했다는 증거를 가지고 올 겁니다.”

    별일 없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성인식의 날짜는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조용한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어느 날 공작저에 손님이 찾아왔다.

    “대공 각하, 파츠래리 황태자 전하께서 오셨습니다.”

    베르샤의 보고에 테오도르의 신경이 곤두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침부터 손님이 올지도 모른다고 들었지만 그게 파츠래리였다는 게 문제였다.

    “그는 왜 왔지?”

    “대공비 마마께 알현을 요청한 것으로 압니다.”

    “건방지군.”

    파츠래리는 과연 무슨 생각으로 공작저로 온 것일까? 사실 그가 무슨 생각인지 알고 싶지 않다. 너무 뻔한 생각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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