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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151화 (151/163)

151화

<메이, 난 황태자 전하를 보고 사랑에 빠진 것 같아. 난 그를 사랑해.>

<어차피 후계만 잘 낳아 주면 될 일 아니야?>

메이아는 예전 파혼하기 전 메릴이 했던 발언들이 생각났다.

“언니는 지금의 지위를 모두 내려놓더라도 사랑이 중요한 거야?”

“물론이야.”

“지금까지 먹고 누리던 귀족의 의무를 다 버리고…… 사랑을 찾아갈 거야?”

“응……, 그러고 싶어.”

“후회하지 않겠어?”

“후회라니……?”

토마스를 만나지 못하는 게 더 후회되는데…….

메릴은 흐느끼며 말했다.

“언니가 쿠룬달스 영식과 관계가 있다는 거 나 알아…….”

“메이……, 네가 어떻게…….”

“언니, 토마스 영식은 어쩔 수 없이 익명 경매장 사건의 범인이 되고, 국외로 추방될 가능성이 높아.”

“추방?”

“언니를 속여 내 물건을 익명 경매장에 팔았고, 그 물건들 중에 황가의 물건도 있었지. 황태후 마마가 마음만 먹으면 쿠룬달스 영식은 죽고도 남았을 거지만…… 언니가 사랑하는 남자잖아……. 그래서 국외 추방으로 마무리 지어질 거야.”

“그러면…… 그는 지금…… 추방당…… 한 거야? 흑.”

“도망 다니고 있어.”

“도망이라고?”

“응. 아직 안 잡혔지만 이젠 카르펜 제국에서 쿠룬달스 소백작으로는 살기 어려울 거야. 그런데도 언니는 그를 따라갈 거야? 지금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

메이아의 말에 메릴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를 따라간다면 말리지 않겠지만…… 삼촌을 평생 만나기는 어려울 거야. 우리 가문 또한 존속하기 힘들어질지도 몰라……. 하지만 그를 따라가면 언니는 무척 행복하겠지?”

메릴은 한편의 비극에 나온 여주인공처럼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계속 흐느끼며 울었다.

그리고 다음 날.

“언니, 쿠룬달스 영식이 잡혔어.”

“……흑, 도와줘. 메이……, 제발…… 난 그를 너무 사랑해.”

“사형보다는 국외 추방이 낫잖아.”

메릴은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모든 걸 포기할 만큼 그를 사랑하는 거야?”

“응……, 사랑해.”

“삼촌도 버릴 만큼?”

메릴은 대답하지 않았다.

“언니 마음은 딱 거기까지라는 거야.”

“너는? 너는 다 버리고 플로렌스 대공을 따를 거야?”

“응. 부모님이 살아 계시더라도 나는 그를 따를 거야.”

“말 한번 쉽게 한다.”

“그게 내 사랑일 뿐이야.”

테오도르의 주변을 둘러싼 따뜻하고 다정한 공기가 너무 좋아서. 날 내려다보는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둥실둥실 떠다니는 구름 같은 기분을 놓치기 싫다.

사랑한다는 말로 붙잡아두고 한없이 그를 원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국외로 추방하는 걸로 마무리 짓는 걸 다행이라 생각해.”

메이아는 메릴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이젠 황태자비가 될 몸이야. 언니는 더 이상 그를 생각하지 마.”

*

“쿠룬달스 영식…….”

메이아의 씁쓸한 목소리가 지하 감옥에 울렸다.

“메이아…… 공녀.”

감옥에 갇혀 손발이 묶인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던 토마스가 고개를 들고 메이아를 쳐다봤다. 그의 죽어 가는 눈빛에는 어떠한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메릴 언니가 선택했어요.”

메릴이라는 이름을 듣고 토마스의 눈동자는 흔들렸다.

“언니의 이름에 눈빛이 살아나네요.”

“그녀는 날 선택했겠지?”

그만큼 사랑해 줬으니 당연한 거 아닌가! 토마스는 메릴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다.

“날 풀어 줘. 메릴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 줘!”

이제까지 토마스는 움직일 수 있는 몸의 자유를 빼앗긴 채 퀴퀴한 냄새가 나는 어두운 곳에서 시간도 알지 못한 채 갇혀 있었다. 그리고 누가 자신을 납치했는지 궁금했던 찰나 메이아가 들어왔다.

<대체 나한테 뭘 원하는 거지! 메이아 하츠벨루아! 설마…… 나와 메릴을 헤어지게 만들 셈인 건가!>

<아니에요.>

<아니라고?>

<메릴 언니가 쿠룬달스 영식과 카르펜 제국을 떠난다면 전 두 사람이 몰래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울 거예요. 그리고 돈과 지낼 곳을 마련해 드릴 거예요.>

<그게 무슨……?>

머리가 복잡해졌다.

<여기 오래 못 있어요. 나가 봐야 해요. 많이 도와줄 순 없지만 여기서 잘 견뎌 주세요. 제가 영식을 납치한 게 아니라는 것만 알아주세요.>

<메이아 공녀!>

<언니가 쿠룬달스 영식과 떠나는 걸 선택한다면 전 무조건 두 사람 도울 거예요.>

메이아는 입꼬리를 올리며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언니와 함께 떠나게 된다면 언니를 행복하게 해 주세요.>

그런데 지금 토마스의 앞에 선 메이아는 뒤에 있는 쥬안에게 마법 이공간에서 꺼낸 서류 몇 장을 건네며 말했다.

“쥬안, 이걸 그에게 보여 줘.”

“예, 아가씨.”

쥬안은 메이아에게 건네받은 서류를 손발이 묶인 토마스에게 보여 주었다. 그 서류에는 메릴이 토마스에게 경매장 일을 믿고 맡겼고, 그게 익명 경매장일 줄은 몰랐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메릴 언니가 직접 작성한 거예요.”

“메릴이 직접…….”

“익명 경매장 일은 쿠룬달스 백작 영식의 단독 행동이었다고 언니는 말했어요…….”

토마스의 얼굴이 창백해져 갔다.

“언니는 토마스 영식과 떠나는 걸 거부했어요…….”

“말도 안 돼! 메릴이 나에게 그럴 리 없어!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몸과 마음을 전부! 나에게 받친 여자란 말이다!”

토마스는 메릴과 만나면서 다른 영애들과의 데이트 및 코르티잔과도 많은 밤을 보냈다. 본인도 역겨운 짓은 다 해 놓고 이제 와서 메릴에게 선택받지 못한 걸 탓하고 있다.

자신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일어난 불행을 내 탓이 아니라며 남 탓으로 돌리고 있다.

토마스의 비명은 지하 감옥을 쩌렁쩌렁하게 울리기 충분했다. 그 비명 속엔 오로지 분노와 복수심에 가득 찬 남자의 모습만 보였다.

“당신을 귀족이니 평민으로 강등한 다음, 사형시킨다고 황태후 마마께서 직접 말씀하셨어요.”

“우리 가문에서 날 버릴 리가 없어!”

“황태후 마마가 직접 내리신 명이기 때문에 쿠룬달스 백작가에서는 보호해 주지 못할 거예요. 아니……, 안 해 주는 것 같았어요.”

메이아는 한숨을 쉬었다.

“경매장 일은 언니와 쿠룬달스 영식이 함께한 일인데…….”

“왜 나만…….”

토마스는 망연자실했다.

“저는 죄를 지었으면 함께 받던지 그게 아니라면 사랑의 도피를 하라고 언니에게 말했지만…… 메릴 언니와 삼촌은 제 입을 막았죠……. 아시죠? 쿠룬달스 영식……. 전 이 집에서 힘이 없다는 걸…….”

메이아는 측은한 눈빛으로 토마스를 쳐다보았다.

“10년 동안 황태자의 약혼녀로 살았지만 바로 쫓겨난 거 잘 아시잖아요. 그만큼 저는 이 집에서 힘이 없어요. 입을 닫으라고 하면 닫아야 하죠.”

토마스는 어차피 감옥에 계속 갇혀 있어 테오도르와의 약혼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메릴은 나에게 메이아 공녀가 날 붙잡아 황궁에 넘길 거라고 했단 말입니다!”

“저는 언니에게 그런 말은 한 적이 없어요. 오히려 저에게 사랑하는 남자를 살릴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까지 말한 언니가 쿠룬달스 영식이 익명 경매장의 단독범으로 증언했다는 사실에 믿을 수 없을 뿐이에요. 아무래도 삼촌이 시킨 듯해요.”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토마스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억울하고 억울했다. 함께 저지른 일을 단독범으로 벌을 받아 죽어야 하다니!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건 여길 몰래 빠져나가게 해 드리고 약간의 돈을 드리는 게 전부예요.”

“메이아 공녀는 왜 저에게 이렇게까지 해 주시는 겁니까?”

“미안해서요.”

“미안?”

“메릴 언니와 함께 한 일을 혼자서 뒤집어쓰고…… 쫓겨나는 거니…… 그게 미안해서요. 정말 미안해요, 쿠룬달스 영식. 그런데 전 정말 메릴 언니가 쿠룬달스 영식과 도망갈 줄 알고 다 준비했었는데. 삼촌이 쿠룬달스 백작 영식을 이곳에 몰래 가두었단 이야기를 듣고 언니 마음이 바뀌었다는 걸 예상했었어야 했는데…… 제가 너무 바보 같네요.”

메이아의 이야기를 듣던 토마스는 자신을 가둔 사람이 루만이라고 단정 지어 생각했다.

“하하, 나를…… 사랑한다면서…… 이, 이! 이! 아아악!”

토마스는 콧김을 씩씩거리며 묶인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분노하고 소리쳤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일지라도 적을 만들어선 안 된다. 최대한의 감정을 털어 낼 수 있도록 만들어 내보내야 한다.

토마스는 탈출하는 동시에 또다시 쥬안의 감시를 받게 된다. 그리고 도망가려던 찰나에 황태후 마마가 보낸 기사들로 인해 체포가 될 것이다.

“완벽한 그림이야.”

메이아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토마스는 루만과 메릴을 원망하며 있는 소리, 없는 소리를 다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가 무슨 이야길 하더라도 믿을 사람 하나 없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토마스는 몰래 빠져나가 열심히 도망쳤고, 결국 기사들에게 잡혔다.

처참한 몰골로 황궁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에 메릴은 울음을 터뜨렸다.

사랑한다고 말해 놓고선 결국 사랑을 놓아 주었다. 아니 놓아 줄 수밖에 없는 현실을 탓하며 그렇게 방 밖을 나오지 않았다. 메이아는 메릴에게 찾아갔다.

“토마스를 도울 방법이 없을까? 메이아.”

“없어.”

“가족 간의 부탁이잖아.”

“나는 가족 간 부탁을 받고, 약혼녀 자리를 포기했어. 잊었어?”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아.”

메릴의 눈가에 눈물이 차오르며, 뺨에 흘러내렸다.

“토마스 영식은 언니가 했던 ‘실수’를 모두 뒤집어쓰고 벌을 받는 거야.”

“알아. 나도 알아…… 그가 나 때문에…….”

메이아는 손수건을 꺼내 메릴의 뺨을 닦아 주며 속삭였다.

“토마스 영식은 언니를 진심으로 사랑했어.”

“알아. 나도 진심으로 사랑해.”

“토마스 영식은 사랑하는 언니를 지킬 수 있어서…… 오히려…….”

메이아는 메릴의 꼭 끌어안으며 계속 귓가에 속삭였다.

“다행이라면서 행복해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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