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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150화 (150/163)

150화

“플로렌스 대공비와 언짢은 일이 있다는 거 압니다. 그렇지만 국교를 단절하실 생각입니까?”

루루나는 흐르던 눈물 한 방울을 손수건으로 쓱 닦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플로렌스 대공이란 자는 잔인하고 인정머리 없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반면 대공비가 될 메이아 공녀에게는 엄청 정성을 쏟는다 합니다. 만에 하나 메이아 공녀와 사이가 다시 좋아진다면 파츠래리 황태자 전하가 황좌에 오를 때 도움이 될 겁니다.”

“지금 우리 황태자가 황좌에 오를 때를 입에 올리는 겁니까?”

데미안은 황태자 자리를 노리고 있다. 그걸 루루나가 지지해 주고 있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파츠래리가 황좌에 오를 때 도움이 된다는 말을 한다는 건 데미안이 황좌를 노리지 않겠다는 말과 똑같다.

“데미안은 황좌 욕심이 없습니다.”

루루나는 다시 한번 눈물을 쏟았다.

“플로렌스 대공은 잔인한 사람이고, 메이아 공녀를 깊이 사랑한다고 합니다. 황제 폐하께서는 데미안을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만 저는 너무 불안합니다. 플로렌스 대공이 아무리 생각해도 기분이 좋지 않다면서 데미안을 죽이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마음이 큽니다.”

“그래서요?”

“전 제 아들을 살리고 싶은 거지 황제로 만들고 싶은 게 아닙니다. 플로렌스 대공이 화가 나서 데미안을 죽이겠다 말한다면 살려 줄 사람은 메이아 공녀밖에 없습니다. 메이아 공녀가 데미안을 용서해 준다면 데미안이 살 가능성이 높아지니…… 전 꼭 공녀를 만나서 부탁해야 합니다.”

루루나는 엘르민 앞에 무릎을 꿇었다.

“도와줄 사람은 마마밖에 없습니다. 황제 폐하도…… 황태후 마마도…… 기다리라는 말만 할 뿐입니다.”

감옥에 갇힌 데미안을 생각하면 밥도 안 넘어가고 눈물만 나는 상황이다. 그런데 모두들 기다리라는 말만 할 뿐이다.

“아버지에게 말씀드려 파츠래리 황태자 전하를 지지하라 말하겠습니다. 제발…….”

“루루나, 그대의 청을 들어줄 수가 없으니 이만 돌아가게.”

루루나는 슬프게 울며불며 매달렸지만 결국, 시녀들 손에 이끌려 쫓겨났다.

엘르민에게는 찢긴 자존심이 더 중요했다. 데미안 따위가 죽든 말든 자신과 관계없었다. 오히려 죽는 게 더 낫다 생각했다. 그러니 루루나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아도 된다 판단했다.

갈 곳 없는 루루나가 향한 곳은 데미안이 갇힌 감옥이었다.

“대체 데미, 왜 메이아 공녀를 다치게 한 거야.”

“플로렌스 대공은 힘으로 메이아와 약혼을 억지로 진행한 것입니다. 그 사실을 말하면서 메이는 울면서 이별을 고했고, 떠나는 그녀를 잡다가 그만 손에 힘이 들어가…… 상처를 준 모양입니다.”

유람선 위에서 두 사람은 만났고, 첫눈에 메이아에게 반한 테오도르가 권력과 군사력 돈을 이용해 루만 공작에게서 억지로 약혼서에 인장을 찍게 만들었다고 말하며 데미안은 분노했다.

“그녀를 지켜 주고 싶습니다, 어머니…….”

“안 된다. 메이아 공녀에 대한 마음을 접어야 한다.”

“어머니.”

데미안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차갑게 자신을 부르는 데미안을 루루나는 슬프게 바라봤다.

“메이를 포기하라는 말을 할거라면 당장 여기서 나가 주시면 좋겠습니다.”

“데미…….”

“날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어머니에게 화를 내기 싫습니다.”

“이 어미가 메이아 공녀보다 아름다운 여자로 소개해 줄게요.”

루루나는 간절하게 말했다. 데미안은 감옥 안 침대에서 일어서 창살 앞까지 다가섰다.

그리고…….

쾅!

쾅!

콰쾅!

창살을 맨주먹으로 두들기며 크게 고함쳤다. 루루나는 깜짝 놀라 몸을 움찔했다.

“메이를 포기하라고요? 지금 어머니께서 무슨 개소리를 했는지 알고 계십니까? 내가 왜 그녀를 포기해야 되는 거죠? 난 그녀만 사랑하고 그녀밖에 모르는데! 플로렌스 대공이 아니었다면 내가…… 내가 그녀의 남자가 되었을 텐데!”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메이아에 대한 마음을 고백하는 데미안을 보며 루루나는 눈물만 흘렸다.

“이 시간 이후부터 찾아오지 마십시오. 제가 어머니께 해 줄 수 있는 작은 배려랍니다.”

“데미……, 흑흑 제발.”

“제가 어머니를 죽이게 만들지 말아 주십시오.”

루루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데미안에게 있어 메이아가 어떤 존재인지……. 차라리 메이아가 그때 황궁으로 오지 않았더라면…… 두 사람이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데미안이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입에 올리기가 두려웠다.

“이젠 절 찾아오지 마십시오, 어머니.”

다 필요 없어!

감옥의 딱딱하고 차가운 창살을 주먹으로 두들기며 데미안은 분노를 토해 냈다.

*

의자에 앉은 채 밧줄에 꽁꽁 묶인 토마스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하지만 풀리지 않았다. 눈앞에는 까만 어둠만 존재할 뿐이었다.

“어읍읍!”

묶인 몸과 말할 수 있는 자유까지 강제로 뺏긴 토마스는 그저 고개를 푹 숙였다. 몰래 텔레포트로 젠타스로 가려는 찰나에 등 뒤로 서늘함이 느껴졌고 눈을 떠 보니 지금의 상황이 된 것이다.

‘누구지? 누가 나를……!’

도박 빚을 진 곳도 한두 군데가 아니라 범인을 예상하기도 어려웠다. 코르티잔 외상값 때문에 포주들이 움직인 건가? 그게 아니라면? 대체 누구지! 누구냐고!

수십 번 수백 번 생각해도 누가 자신을 납치했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이대로 아무도 안 오면 누구에게 납치당하고 감금된 건지도 모른 채 굶어 죽게 되는 걸까?

의자에 묶인 채 앉아 있던 토마스는 시간이 지날수록 화가 났다. 아무리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사람을 이렇게 납치하고 감금한다는 건 엄연히 범죄다.

“으읍, 으읍! 으읍!”

토마스는 발버둥 쳤다. 그리고 쿵 소리와 함께 옆으로 쓰러졌다.

“윽!”

아픈 신음 소리를 내며 토마스는 바닥으로 머리를 찧게 되자 짜증을 표출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을 깨닫자 점점 두려움과 공포가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쥬안, 고생했어.”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쿠룬달스 영식이 죽으면 곤란하니까 적당히 음식과 물을 주도록 해.”

“알겠습니다.”

토마스가 도망가기 위해 가지고 있는 재산을 몰래 처분했다. 그리고 늦은 밤 토마스는 다른 사람들 눈을 피해 도망가다 감시 중이었던 쥬안에게 기절 당해 공작저 지하 독방에 옮겨졌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아가씨.”

쥬안의 질문에 메이아는 옅게 웃었다.

그 미소를 보고 쥬안은 테오도르와 메이아의 대화를 떠올렸다. 데미안 황자가 흑마법사와 계약한 사람이란 소리에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그리고 어린 시절, 부모님을 잃었던 순간이 생각나며 차갑게 식었던 분노가 다시 뜨거워짐이 느껴졌다.

<쥬안, 동생을 지켜 주렴.>

<같이 가요!>

<안 돼……. 아그니타를 살리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어.>

쥬안은 그림자 권능이 발현되어 그림자 속을 숨을 수 있었지만 아그니타는 그러지 못했다. 인간과 그림자 일족의 혼혈은 그림자 일족이 될 확률이 50%다.

<쥬안, 그리고 아그니타 절대 흑마법사들을 믿으면 안 된다. 그들은 우리와 본질이 같으면서도 다른 존재들이야.>

<엄마 아빠가 시간을 끌 거니까…… 멀리 도망가.>

따뜻하게 안아 주는 엄마의 얼굴.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은 아빠의 미소.

<쥬안 그리고 아그니타, 사랑한다. 네가 오빠로서 나중에 아그니타를 좋은 남자에게 시집도 보내 주어야 한다. 아빠 대신 좋은 남자인지 꼭 확인 잘하고.>

<사랑한다. 많이 사랑해.>

<쥬안, 네가 우리를 원망할 수 있지만…… 너희를 목숨보다 더 사랑하기 때문에 결정한 거야. 너희들을 살릴 수 있는 목숨이라면 엄마 아빠는 몇 번이라도 기쁘게 받아들일 거야. 그러니 원망하지 마. 너희들이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기쁨이자 희망이니까.>

<흑마법사는 절대 믿으면 안 된다. 그리고 만에 하나 계약자가 있는 흑마법사라면 더욱 조심해야 한다. 흑마법사는 계약자에 집착하지만 계약자는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일에 집착한단다.>

<어서 도망치렴. 흑마법사의 수하들이 오기 전에.>

싫다고 말할 수 없었다. 간절한 표정으로 눈물 흘리며 웃는 부모님과 작별 인사를 했다.

그렇게 아픈 아그니타를 데리고 도망쳤다.

그리고 사람을 죽이고 살다가 마지막엔 메이아를 만나 구원받았다.

그런데 흑마법사와 계약한 데미안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부모님의 간절한 마음이 떠올랐다. 목숨을 내놓고서라도 지켜야 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 버렸다. 그러니 메이아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는 일에 주저하지 않을 거다.

쥬안은 다시 한번 힘주어 주먹을 쥐었다.

*

메릴은 편지 한 통도 보내지 않고 소식 없는 토마스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기다리던 그의 소식이 없다. 어제도, 오늘도…… 그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설마 황태후에게 잡혀 버린 걸까? 잡혔다면 소문이 날 텐데……. 그게 아니라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너무 걱정이 된다. 쇠사슬이 심장을 옥죄는 기분. 아프고 초조하고 눈물 나고 짜증 나고…….

그는 이젠 날 떠난 걸까? 메릴은 다시 침대에 누워 베개를 눈물로 적셨다. 더는 나올 것 같지 않은 눈물은 토마스 생각에 금방 눈가에 차올랐다.

그래도 토마스는 뒤에서 몰래 자신의 정부가 되어 준다고 말해 줬다. 따뜻한 그의 말을 떠올리며 눈물을 닦았다. 지금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을 견디어야만 한다.

“난 그를 믿어.”

날 사랑한다는 말을 믿어.

그렇지 않으면 내가 견딜 수 없다.

똑똑.

“언니, 나야.”

똑똑.

“들어와.”

메이아는 눈이 퉁퉁 불어 터질 것 같은 눈가를 계속 비비며 닦는 메릴의 모습을 보고 마법 이공간에서 손수건을 꺼내 건네주었다.

“이걸로 닦아……. 왜 이렇게 우는 거야?”

“그냥…… 나는 파츠래리 황태자 전하와 결혼하기 싫은데 해야 하니까…….”

“하기 싫은 걸 하는 것이 우리 귀족의 의무야.”

“의무, 의무, 의무!”

메릴은 소리쳤다.

“우리 의무가 사랑도 없는 결혼을 해서 후계를 낳는 일이야? 그런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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