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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145화 (145/163)
  • 145화

    지금의 티 파티는 지금까지 참석했던 것 중 제일 앉아 있기 불편했다. 마치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받는 기분으로 앉아 있어야만 했다.

    파츠래리는 왜 저런 표정과 눈빛으로 자신만을 쳐다보고 있는 것인가? 애절한 눈빛은 꼭 그물에 걸려 사망하기 직전의 생선 같아 보였다.

    메이아는 침착하게 앉아 미소만 짓고 그들의 말만 경청했다.

    의미 없는 말만 서로 주거니 받거니 했다. 메이아가 다시 와서 좋다는 등, 앞으로 자주 티 파티를 열자는 등등. 앞으로 예전처럼 잘 지내자는 말에 실소를 터뜨릴 뻔했다.

    10년의 세월을 무색하게 만들 만큼 일방적인 편지 통보로 파혼당한 자신에게 이제 와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잘 지내면 좋겠다는 뉘앙스를 풍기면 내가 좋다고 영광이라고 말할 줄 알았던 걸까? 나의 자존심을 얼마나 더 짓밟아야 속 시원할까?

    황후의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황태자.

    그리고 욕심 많은 황후.

    그렇기 때문에 나라는 사람을 순간에 버렸겠지.

    “황태자와 메이아 공녀가 내 양옆에 있으니 너무 든든합니다.”

    메이아는 그냥 미소만 지었다.

    엘르민은 웃기만 하는 그녀를 보고 답답해했지만 그래도 침착하게 계속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메이아 공녀, 웃지만 말고 이야기해 보세요. 예전 생각이 많이 나지 않나요? 우리 그때 참 좋았었는데, 후후.”

    “예.”

    “메이아 공녀가 열다섯 살 때였죠. 사교계 데뷔를 제가 도왔던 거 기억나나요?”

    “예.”

    “그때 아버지인 하츠벨루아 공작과 너무 닮아서 그런지 모든 사람들이 메이아 공녀만 바라보며 엄청 예뻐했잖아요.”

    “네.”

    “그때 메이아 공녀가 황태자 약혼녀라는 사실에 내심 자랑스러웠습니다.”

    “황후 마마, 과거 일은 그만 이야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과거 일이 많이 불편하신 겁니까?”

    정말 몰라서 묻는 걸까? 답답함에 목구멍이 막힌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과거의 일을 딛고 일어서야 합니다, 메이아 공녀. 예전에 나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 받아들이고 현재를 이겨 내야 합니다. 그렇죠? 황태자.”

    “맞습니다.”

    “어차피 이곳에 있는 귀족 영애들 중에서 후궁이 한두 명 나올 겁니다. 메이아 공녀 또한 나중에 후궁이 되실 수 있습니다.”

    “메이아 공녀가 제 후궁이 되어 준다면 엄청 든든할 겁니다.”

    “그렇죠? 호호. 제 생각도 같답니다, 황태자.”

    “사실 황태자가 황제가 된다면 후궁 또한 받아들여야죠. 제 기준에선 후궁은 아무래도 사교계의 꽃 출신이면 더 바랄 게 없답니다.”

    엘르민의 노골적인 말뜻을 모르진 않는다.

    “한 가문에서 나온 자매와 사촌이 나란히 황제의 황후와 후궁이 된 역사 사례들도 많았죠, 호호.”

    엘르민이 메이아를 욕심내고 있다는 말을 들은 영애들은 속으로 발끈했다.

    메이아는 용모도 단정하고 무척 아름다운 데다 사교계의 꽃으로 행동거지,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빠져들게 만드는 화법까지. 그녀를 원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그렇기에 메이아와 황태자의 파혼에 잘나가는 가문들의 가주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그리고 그녀를 집안의 안주인으로 만들기 위해 다들 노력했다.

    시작은 현 하츠벨루아 공작인 루만에게 약혼서와 결혼서 그리고 많은 선물과 편지 보내기부터 시작했다. 루만이 거부하면서 실패로 돌아갔지만 가주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메이아 공녀의 이상형을 알아보거라!>

    <공녀의 아버지께서 너무 아름다우셨으니 이상형이 딱히 없으실 것 같아요.>

    <귀여운 걸 좋아하실까? 아니면 아름다운 거? 남자다운 거? 그게 아니라면 연하?>

    <이상형을 알 수 없으니 다양한 매력의 영식들을 준비할 수밖에.>

    원래대로라면 장남이 가문의 뒤를 잇게 되었지만…… 메이아와 파츠래리의 파혼으로 달라졌다.

    차남이든, 삼남이든, 칠남이든 메이아를 유혹해서 결혼에 성공한 남자에게 가문의 뒤를 잇게 한다는 파격적인 조건이 달리게 되었다.

    <메이아 공녀의 성인식에서 모든 걸 걸어야 한다!>

    가주와 집안의 남자들뿐만 아니라 메이아를 좋아하는 귀부인과 영애들 또한 함께 노력했다.

    <페르젠 후작가는 소후작이 미모에 엄청 투자를 하고 있다 합니다.>

    <페르젠 소후작은 여자들까지 다 정리했다지 뭔가.>

    <그 바람둥이가?>

    <허허, 살아생전 바람둥이가 집안의 지원을 받으면서 여자를 유혹하는 걸 보게 될 줄은…….>

    <우리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않은가!>

    결혼하지 않은 남자들은 오로지 메이아만을 유혹하기 위해 노력의 노력을 했다.

    그렇기에 마탑에서 돌아온 메이아에게 다양한 매력을 키운 남자들을 내세워 소개해 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메이아에게 후궁 제의를 권하는 엘르민에게 발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일반 귀족 가문보다는 황가의 황자비나 후궁이 되는 것이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걸 모르는 이가 없다.

    만약 메이아가 황자비든, 후궁이든 황가와 다시 연을 맺는다면 자신들 집안의 이상적인 안주인은 저 멀리 떠나게 될 것이다. 물론 그녀가 어느 가문의 안주인이 된다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 가문이 자신의 가문이길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메이아가 후궁이 된다면 검을 쥐는 대신 팩을 바르며 미모를 가꾸는 데 총력을 기울였던 영식들의 노력들이 허사가 될 것이다.

    메이아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살짝 미소 지었다.

    “그렇죠. 사이좋은 자매가 황후와 후궁이 되는 일이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하츠벨루아 공작에게 말해야 하지만…….”

    엘르민은 가늘게 눈을 뜨고 주위 영애들에게 날카로운 눈빛을 쏟아 내며 말했다.

    “다른 데서 공녀를 안주인으로 채갈까 걱정되는 바람에 이렇게 먼저 제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티 파티를 연 계획은 이거였구나!

    사람들 앞에서 황후가 직접 미혼의 영애에게 후궁 제의를 한다는 건 큰 영광이다. 하지만 원래대로라면 자신이 황후가 되었어야 한다. 그렇지만 일방적인 파혼 통보를 받은 뒤에 후궁이 되라는 건 자신의 마음과 자존심을 무시하는 처사다. 자신에게는 절대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황후가 직접 후궁이 되라는 제의를 사람들 앞에서 거절한다면 사람들 앞에서 황후를 망신 주는 것이기 때문에 쉽사리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티 파티를 열고, 파츠래리를 부르고, 후궁이 되라는 제의라니……. 그것도 사람들 앞에서.’

    더 어이없는 건 파츠래리의 행동이다. 분명 마탑에서 거절했다. 그런데도 엘르민과 함께 이런 치사한 방법으로 후궁 제의를 할 줄은 가히 상상조차 못 했다.

    메이아는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설마 사람들 앞에서 제 제의를 거절할 생각이신가요? 메이아 공녀.”

    “황후 마마, 그리고 파츠래리 황태자 전하.”

    “말하세요.”

    “저는 후궁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황후의 제의를 당당하게 거절한 것이기에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아무런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왜 그러십니까? 황후 마마.”

    “호호, 황가에서 밀어붙이면 후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거 잘 알지 않나요, 메이아 공녀.”

    엘르민은 애써 웃음을 지었지만 손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는 후궁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잘도…….”

    엘르민은 사람들 앞에서 거절당하자 수치스러움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저는 후궁도, 황후도 될 수 없는 이유가 있어 황후 마마의 제의를 거절한 것뿐입니다.”

    메이아는 앞의 쿠키를 한 입 먹고, 찻잔을 들고 향을 맡은 뒤 한 모금을 마시며 맛있다며 시녀에게 칭찬을 건넸다.

    엘르민은 그 모습이 몹시 건방져 보였다.

    “내가 예쁘다, 좋다 하니 한도 끝도 없이 사람 좋게 보이는 겁니까?”

    “황후 마마.”

    “말하세요.”

    “전 이미 약혼을 올렸습니다.”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전 약혼자가 있으므로 황태자 전하께서 황좌에 올라가시더라도 후궁으로서 입궁할 수 없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내 후궁이 되기 싫어서 그런 거짓말을 하는 거라면…… 하지 마시오.”

    파츠래리는 비참한 마음을 표정으로 드러내며 말했다.

    “되기 싫어서가 아닙니다. 전 이미 약혼자가 있습니다. 그러니 거절하는 것뿐입니다.”

    “호호……, 메이아 공녀 농이 심하십니다. 마탑에서 쭉 계신 걸로 아는데 무슨 약혼을 했다는 겁니까?”

    “황후 마마, 하츠벨루아가의 사람은 황가의 충성심이 높다는 걸 아실 겁니다. 그런 가문의 일원인 제가 황후 마마 앞에서 거짓을 말하겠습니까?”

    메이아는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저는 마탑에서 지내다 카르펜 제국에 오기 전에 약혼자 저택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엘르민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아무리 약혼한 사이라 하더라도 같이 산다는 이야기를 꺼낸다는 건 구설수에 오를 수 있는 말이며 귀족 영애의 명예를 스스로 흠집 내는 것과 같다.

    메이아가 지금 약혼자와 파혼하게 되더라도 이미 다른 남자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황가의 여인이 될 수 없게 된 것이다.

    “약혼자와 같이 산다는 걸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공녀가 더 잘 알 텐데도 굳이 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약혼자가 있고 그와 함께 지내고 있으니 파츠래리와 이어 줄 생각은 하지 말라고 단칼에 거절한 말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엘르민의 모습에 메이아는 속에서 한숨이 터질 것 같았다.

    “대체 왜!”

    엘르민은 메이아에게 왜 치부를 드러내느냐며 원망하는 듯 말했다. 어떤 귀족 가문에서 메이아를 데려갔는지 모르겠지만 그 가문을 잘근잘근 밟아 내고 억지로 파혼시키면 그만인 일이다. 그런데 메이아는 사람들 앞에서 같이 산다고 선포해 버렸다.

    “말에 신중하세요, 메이아 공녀.”

    “양가 집안에서도 제 성인식이 끝난 다음 결혼식 준비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메이아는 약혼과 결혼은 집안에서 결정된 사안이니 참견하지 말라는 뜻으로 엘르민의 말에 선을 그었다. 그녀의 발언에 장내는 크게 소란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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