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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144화 (144/163)
  • 144화

    테오도르는 데미안이 갇힌 감옥으로 내려갔다.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감옥에서 데미안은 계속 메이아의 이름을 찾았다. 화가 나고 열이 났지만 이럴수록 냉정함을 찾아야 한다.

    “보고 싶어, 메이아.”

    “하하하.”

    계속 메이아의 애칭을 부르는 데미안을 보니 테오도르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누구냐!”

    “라이트.”

    밝아지는 공간에서 데미안의 모습이 눈앞에 보였다. 드디어 만난 것이다.

    메이아를 끈질기게 쫓아다니고 파츠래리와 억지로 약혼까지 하게 만든 장본인을.

    “마법사?”

    “마법사는 아니야, 데미안 황자.”

    라이트는 1서클 정도의 마력만 있다면 누구든지 쓸 수 있는 흔한 마법이다. 고작 이런 마법을 썼다고 마법사라고 묻는 데미안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갑자기 밝아진 공간에 적응하지 못해 그런가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라이트가 너무 밝은가?”

    “정체를 밝혀라!”

    테오도르는 자신의 마법 이공간을 열고 마정석 몇 개를 꺼내 들며 말했다.

    “빛을 내는 마정석이야. 예쁘지?”

    라이트를 완전히 없애자 다시 어둠이 찾아왔지만 꺼내 놓은 마정석 덕분에 주변은 그렇게 어둡지 않게 되었다.

    “감옥에 있어 억울한가? 데미안 황자.”

    “플로렌스 대공 각하께서 누추한 곳을 다 찾아오셨습니다.”

    자신을 모를 텐데 정확히 누군지 알고 답하는 데미안이 흥미롭다는 듯 휘파람을 불었다.

    “인사하지, 데미안 폰 마브로 황자. 나는 시리우스 제국에서 온 플로렌스가의 테오도르라고 하네. 그리고…….”

    테오도르는 고개를 삐딱하게 들며 마지막 말을 했다.

    “메이의 약혼자이기도 하지.”

    테오도르는 은은하게 빛나는 마정석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뒤에 감옥 문을 열라고 기사들에게 시켰다. 감옥 문이 열리고 데미안은 기사들에게 끌려 나와 테오도르와 테이블을 마주 보고 앉았다.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도 알 거야.”

    “나는 메이에게 위해를 가한 적이 없습니다, 플로렌스 대공 각하.”

    데미안의 목소리가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것은 치솟아 오르는 분노를 잠재우며 말하는 떨리는 목소리라는 걸 테오도르는 모르지 않았다.

    “메이의 팔에 멍이 들었어. 난 그걸 보고 무척 화가 났지.”

    “일부러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닙니다.”

    “‘일부러’라는 건 변명에 지나지 않아.”

    테오도르는 고개를 저었다.

    “데미안 황자가 내 여자의 팔목을 잡았잖아.”

    메이아는 아름다운 꽃이다. 그것도 향기롭고 기품이 넘치는 백합 같은.

    아름다운 꽃에 나비와 벌이 모인다는 것쯤 안다. 당연한 이치다. 그걸 보고 질투에 눈이 멀어 호들갑 떨면서 난리 칠 필요 없다. 아름다운 꽃이 내 주위 있어 주는 걸 고맙게 생각하며 그 꽃의 주위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줘야 한다.

    자신은 그저 그런 아름다운 꽃이 건강하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거름을 주고, 물도 주고, 더욱 만개할 수 있도록 환경에 신경 쓰면 된다. 그러나 아무리 나비와 벌이 꽃에 많이 몰린다 하더라도 그 꽃을 만지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 한 명뿐이다.

    그렇지만 나비와 벌이 아닌 꽃에 붙은 진드기가 나타났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팔목을 잡고 아프게 만들었어. 멍이 들 만큼.”

    “그래서 어떤 벌을 주시려고 카르펜 제국까지 행차하신 겁니까?”

    데미안은 인상을 찌푸리며 테오도르를 적의를 가득 담아 노려보았다.

    테오도르가 떠나고 감옥에 다시 어둠이 내려왔다.

    테베린은 어두운 감옥에서 조용히 분노하는 데미안의 속을 긁기 위해 그림자 밖으로 나왔다.

    “데미안 황자, 꼴이 말이 아니네.”

    “죽여.”

    “뭐라고?”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야 해.”

    데미안은 죽이라는 말만 계속 중얼거리며 멍하게 앉아 있었다.

    “누굴 그렇게 죽이고 싶은 거야?”

    “전부 다…….”

    “제일 먼저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을 거 아니야.”

    “플로렌스 대공……. 그리고 아바마마……. 황제 자리고 다 필요 없어. 다 죽여야 해…….”

    테베린은 코를 킁킁거리며 저주에 가까운 그의 집착과 질투, 그리고 분노를 마셨다.

    마르지 않은 증오의 샘물이 있다면 그건 바로 데미안일 것이다.

    <메이아의 약혼자가 바로 나야. 그녀는 날 사랑하고, 나도 그녀를 많이 사랑해.>

    “우욱.”

    테오도르의 역겨운 말에 데미안은 토악질을 했다. 야비하게 웃으며 메이아를 자기 것이라고 말하는 테오도르 얼굴을 갈가리 찢고 싶은 심정이었다.

    “우욱.”

    플로렌스 대공가가 약혼하고 싶다 하면 카르펜 제국의 황제라 하더라도 거부할 수 없다. 그러니 테오도르의 말을 믿지 않을 거다. 메이아가 원한 약혼이 아니었을 거다. 그러니…….

    “그 새끼를 죽일 거야.”

    테오도르 플로렌스.

    *

    테오도르가 데미안을 만나고 있을 시각. 메이아는 황후 엘르민의 티 파티에 참석하고 있었다.

    티 파티는 말 그대로 차를 마시기 위한 모임이다. 하지만 무조건 차만 마시러 오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티 파티를 벌이는 목적을 정확히 밝혀야 한다. 예를 들어 시 낭송, 왈츠 연습을 위한 모임, 감사한 일을 함께 공유하는 것, 악기를 연주하고 그 음악을 감상하기 등등의 다양한 이유로 티 파티를 열어 사람들을 초대한다. 간혹, 연극배우들을 초대해 정원에 작은 무대를 꾸밀 때도 있다.

    하지만 엘르민의 티 파티에는 무조건 초대한다는 말만 있었지, 왜 티 파티를 여는지 이유가 적혀 있지 않았다. 일반 귀족 영애가 이런 초대장을 보냈다면 거절했겠지만 그래도 엘르민은 카르펜 제국의 황후이기에 초대를 받아들였다.

    티 파티가 열리는 장소로 안내를 받으면 지정석에 앉아 주위 사람들과 가볍게 인사한 뒤에 주최자가 오기를 기다린다.

    티 파티 장소로 열린 응접실에는 서너 명이 착석할 수 있는 동그란 테이블이 여러 개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진주 펄이 들어간 하얀색 테이블 천이 깔려 있었다. 게다가 테이블은 다양한 꽃으로 호화롭게 장식되어 있었다.

    메이아는 자리에 앉아 주위 사람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한 뒤, 시녀가 안내한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시종이 들어와 엘르민의 입장을 알렸다. 일제히 사람들은 자리에 일어서 허리를 살짝 숙이며 예를 갖추었다.

    그리고 그녀는 메이아가 안내받은 테이블로 다가와 그대로 상석에 앉았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이 앉을 테이블 배치가 상석 근처에 있고, 이곳이 여러 테이블 중 가장 호화롭게 장식되어 있는 걸 보아 엘르민이 앉을 거라 예상했었다.

    “가장 좋은 자리를 앉게 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황후 마마.”

    “메이아 공녀,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엘르민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메이아를 쳐다본 뒤 사람들에게 앉으라 말했다.

    땡.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 앉자 엘르민이 크리스털 잔을 들고 일어섰다. 티스푼으로 가볍게 잔을 톡톡 건드리자 맑은 소리가 울려 퍼지며 그녀를 향해 이목이 집중되었다.

    “오늘 티 파티를 열게 된 이유는 곧 성인식을 올리는 영애들을 미리 축하하고자 하는 의미로 만든 자리입니다.”

    그럴싸한 티 파티 모임 주제지만 참 의미 없는 이유를 파티의 이유로 가져다 붙인 게 티가 났다.

    호화로운 둥그런 테이블에 엘르민과 메이아만 자리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맞은편 자리가 비어 있었다. 누가 안 온 걸까? 대체 누굴까? 설마 파츠래리가 오는 건 아니겠지?

    “메이아 공녀.”

    “예, 마마.”

    “사실 공녀가 내 티 파티 초대를 거절할 줄 알았어요.”

    “황후 마마의 초대는 언제나 영광입니다.”

    “사실…… 메이아 공녀를 떠나보내고 후회를 많이 했습니다. 특히 파츠래리가 많이 불안해했죠.”

    “이미 지난 일입니다, 마마.”

    “지나간 일을 후회한다면…… 그 후회한 일을 바로잡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엘르민은 노골적으로 약혼 파기를 후회한다 말하고 있다. 메이아는 그 말이 듣기 불편했다.

    “마마.”

    “말하세요.”

    “후회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그걸 다시 바로잡기 위해 시간을 쓰시면 또 다른 후회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무것도 안 해서 크게 후회하는 것보다는 후회했던 일을 바로잡으면서 덜 후회하는 쪽이 낫지 않겠나요.”

    “후회를 자꾸 그리워하면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마마.”

    현재 카르펜 제국에서 자신의 약혼을 아는 사람은 올리비아밖에 없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할 시간조차 없었다. 도착하자마자 성력을 가진 아티팩트와 성수를 루만에게 비싼 값에 판매하고, 메릴을 상대하고, 토마스 영식의 뒷조사에…… 정말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만난 사람은 올리비아밖에 없었다.

    내가 약혼한 사실을 안다면 엘르민의 표정은 어떨까?

    “상처가 되더라도 간절하게 원한다면 후회 또한 받아들일 수 있는 거랍니다, 메이아 공녀.”

    “말씀 잘 알겠습니다.”

    엘르민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시녀들이 가져다주는 차와 쿠키를 먹으라 말했다.

    “메이아 공녀.”

    “예.”

    “이번 성인식과 황태자와 메릴의 국혼 뒤에 마탑으로 다시 돌아가는 건 아니겠죠?”

    “떠날 예정입니다.”

    메이아의 말이 끝나자 시종이 문을 열고 들어와 외쳤다.

    “파츠래리 폰 마브로 황태자 전하께서 입장하십니다.”

    티 파티 장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서 파츠래리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파츠래리는 들어오자마자 메이아와 엘르민이 있는 테이블에 남은 자리 하나에 앉았다.

    메이아는 처음에 비어 있는 맞은편을 보고 누가 늦게 오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 자리는 파츠래리의 자리였던 것이다. 뭔가 계략에 휘말린 기분이 들었다.

    자리에 앉은 파츠래리는 무척 그리워하는 눈빛으로 메이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두 사람이 자신을 굉장히 부담스럽게 만들고 있다. 불편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기분이다.

    말 잃고 마구간을 고치면 뭘 하랴……. 말이 고친 마구간 안으로 들어가기 싫다는데…….

    메이아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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