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132화 (132/163)

132화

파츠래리는 엘르민을 찾아가 데미안이 사고 친 일을 신나게 말했다. 하지만 황후 엘르민은 데미안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표정이 심각해졌다.

어떤 경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데미안이 대제국의 황위 계승권을 가지고 있는 플로렌스 대공의 약혼녀에게 손을 댔다는 사실에 웃어넘길 수 없는 국제적인 문제다.

“데미안이 감옥에 갔는데 기쁘지 않으십니까?”

“물론 그건 기쁘지만 플로렌스 대공이 온다는 게 기분이 좋지 않구나.”

그녀의 말에 파츠래리의 미소가 금세 사라졌다. 마탑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파츠래리는 마탑으로 메이아를 만나러 가서 응접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테오도르를 만나게 되었다 말했다. 마주 앉아 있는 동안 시종일관 무례하게 굴며 한 제국의 황태자로서 창피를 줬다 말했다.

“플로렌스 대공의 성미가 보통 고약한 게 아니구나.”

“사람들 앞에서 저를 또 망신 줄지도 모릅니다.”

엘르민은 초조함을 숨기고 오히려 턱을 도도하게 올리며 말했다.

“나만 믿거라.”

“무슨 좋은 방법이 있으십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뾰족한 방법은 없단다. 그는 강한 제국의 대공이니 안하무인 할 거라는 건 모두 예상하겠지. 지금은 플로렌스 대공이 방문하는 것쯤 그리 중하지 않다고 이 어미는 생각한단다.”

“그러면?”

“어차피 데미안이 잘못해서 온 대공이 우리한테 신경이나 쓸까? 이곳에 와서 어떠한 갑질을 하더라도 사람들 기억 속에서 금방 잊힐 거다. 지금은 오히려 카르펜 제국으로 돌아온 메이아 공녀를 잡아야 되지 않겠니?”

“어머니의 말씀이 옳습니다.”

엘르민은 시녀장을 불러 말했다.

“티 파티를 열어야 되겠어.”

티 파티를 연다는 엘르민에게 시녀장은 고개 숙이며 답했다.

“예, 마마. 메릴 공녀에게도…….”

“어차피 메릴 공녀는 경매장 일로 하츠벨루아 공작저 안에서 나올 수가 없어. 그나저나…… 메이아 공녀가 왔다는데…… 당연히 초대해야 되겠지.”

“물론입니다, 마마.”

메이아만 티 파티에 참여해 준다면 예전처럼 다들 티 파티에 참여하고 싶어 할 게 분명하다.

“먼저 메이아 공녀에게 티 파티 답장을 받아오도록 하거라.”

“예, 알겠습니다.”

시종의 손에 들린 엘르민의 티 파티 초대장은 금방 하츠벨루아 공작저에 도착했지만 바로 메이아의 답장을 받아 볼 수 없었다.

“메이아 공녀님께서는 저택 안에 계시지 않으십니다.”

“언제쯤 오시는 겁니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황후 마마의 명을 지켜야 합니다. 오실 때까지 여기를 지키겠습니다.”

“그러면 응접실로 안내하겠습니다.”

시종은 늦은 저녁때까지 응접실에서 기다렸지만 메이아를 만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티 파티 초대장을 유디에게 맡기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황궁으로 돌아가야 했다.

“황후 마마께서 꼭 메이아 공녀님의 답장을 받아야 된다 하셨습니다.”

“예, 오시면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메이아가 없다는 시종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엘르민은 바로 답장을 받아볼 수 없다는 거에 아쉬워했지만 그녀는 절대 황후인 자신의 티 파티 초대를 거절하지 않을 거란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행복한 상상을 했다. 메이아와 함께 귀부인과 영애들에게 둘러싸여 행복하게 담소를 나누었던 그 시절을 기억하며.

*

다음 날, 메이아는 베르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공작저로 돌아왔다.

유디는 밤새 잠을 자지도 먹지도 못한 채 퀭한 모습으로 메이아에게 달려가며 오열했다.

“아가씨,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시죠? 데미안 황자가 공작저로 찾아와서 한바탕 뒤집고 난리가 났었습니다.”

메이아는 유디를 진정시키며 되물었다.

“데미안 황자님이?”

데미안 이름이 유디와 메이아 입에서 나오자 베르샤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말도 마세요…….”

“응접실로 가지. 베르샤도 들어와.”

“알겠습니다, 대공비 마마.”

유디는 데미안이 찾아와 루만에게 협박을 하고 물건을 던졌다는 이야기와 메릴은 갑자기 파츠래리 황태자와 파혼하고 싶다고 울고불고한 일들을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유디의 이야기를 듣던 메이아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주위의 공기가 팽팽해지는 걸 느낀 유디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메이아의 어깨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하는 걸 발견했다.

“아가씨…….”

유디는 메이아를 살폈다. 얼마나 화가 났으면 몸이 부들부들 떨리겠는가!

하지만 그 생각과 다르게 메이아는 입술 꼬리를 활짝 올리며 웃기 시작했다.

이윽고 소리 내며 웃었다. 그리고 웃음을 멈춘 메이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어이가 없으니 웃음이 나오네, 유디.”

얼마나 하츠벨루아 공작가가 우습게 보였으면 일개 황자가 와서 뒤집고 갔을까?

그래, 데미안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미친 남자인 건 알고 있었으니 그의 이런 행동은 예상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더라면 이런 재미있는 상황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겠지. 뭐, 좋아. 데미안 황자님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 치지만 가문의 일원으로서 메릴 언니의 행동은 정말 무책임하네.”

메이아는 엷게 미소를 지었다. 모든 걸 한순간 얼려 버릴 것 같은 눈빛과 미소였다.

그리고…….

쾅!

메이아는 의자 손잡이를 강하게 내려쳤다.

귀족에게 있어 자존심을 다치는 건 견딜 수 없는 일 중의 하나다. 하나 이것보다 더 견딜 수 없는 일은 바로 무책임한 행동을 했을 때다. 자존심이 다치면 다친 만큼 이상으로 다시 회복할 수 있지만 무책임한 행동을 한 뒤에 뒤따르는 대가는 참혹하다.

“나의 자존심을 짓밟고 약혼녀 자리를 빼앗아놓고선 이제 와 파혼하고 싶다……. 아무리 깨진 거울이 더 반짝인다 하더라도 깨진 거울은 치워야 할 쓰레기일 뿐이야.”

“그 쓰레기를 조심히 버리셔야 할 겁니다, 아가씨.”

“깨진 거울에 손이 베이지 않도록 잘 버려야지.”

똑똑.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쥬안입니다.”

문 너머로 들린 목소리의 주인은 쥬안이었다.

“들어와.”

메이아의 허락이 떨어지자 문을 열고 들어온 쥬안은 허리를 숙이며 그녀에게 인사하며 뒤에 서 있는 베르샤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베르샤 기사단장님께서 여기에 왜 계시는 겁니까?”

“대공 각하가 호위로 붙여 주셨어, 쥬안.”

플로렌스 대공령에 있어야 할 플로렌스 제1 기사단장이 왔다는 건 그만큼 테오도르가 메이아의 호위를 신경 쓰고 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다. 사실 쥬안은 데미안이 공작저로 찾아와 한바탕 뒤집고 갔다는 소식에 가슴이 철렁했다.

“아가씨……, 걱정했습니다. 다음에 데미안 황자를 만나면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쥬안.”

“예, 아가씨.”

“꽤 속이 상했을 테지만 내가 맡긴 일을 성실히 수행해 줘서 기특하다고 생각하는 중이야.”

“무척 괴로웠습니다. 데미안 황자는 횡포를 부리고 아가씨는 안 보이시고…… 그림자 권능까지 차단하셨으니. 저는 너무…….”

“괜찮아. 네가 생각하는 일은 절대 생기지 않았어.”

“예.”

“그리고 날 찾아왔다는 건 중요한 보고가 있다는 뜻이겠지?”

“맞습니다.”

“보고해.”

쥬안은 토마스를 감시하는 도중인데 그 임무를 수행하지 않고 급하게 찾아왔다는 건 그만큼 중요한 일이 생겼다는 뜻이다.

“아가씨가 감시하라고 했던 쥐새끼가 도주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쥐새끼만도 못한 사내로군.”

쥐는 목숨이 위험하더라도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곡식 창고를 떠나지 않는다.

“토마스 영식은 왜 떠나려는 거지? 경매장 일로 아직 잡아들이기 전인데…….”

“그것이…… 토마스 영식이 메릴 공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메릴 공녀는 토마스 영식에게 요번 익명 경매장 일로 잡힐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급하게 떠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상하네. 메릴 언니는 방에 갇혀 있잖아. 나갈 수도 없는데 토마스 영식을 만나?”

메릴은 현재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토마스를 만났다니 말이 안 된다.

“내가 잠깐 없던 사이 메릴 언니가 외출했던 거야? 유디.”

“그렇지 않아도 갑자기 편지를 작성하시더니만 파츠래리 황태자 전하에게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편지 내용은?”

“저녁 식사를 못 한다는 내용과 메이아 아가씨가 공작저에 왔다는 이야기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황태자 전하께서 공작저로 오셔서 루만 공작님에게 허락을 받으시고 메릴 공녀를 데리고 외출하셨습니다.”

파츠래리와 저녁 식사를 한 거라면 자신과 약혼 기간에도 자주 갔었던 레스토랑에 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곳에서 토마스를 우연히 만나게 된 거라면…… 메릴 언니는 사랑하는 토마스에게 경매장 일에 관련되어 모든 걸 말해 주었을 게 것이고, 토마스는 겁을 먹고 도주 준비를 하는 것이겠지.

쥬안의 보고는 계속 이어졌다.

“황태자 전하와 메릴 공녀가 가신 곳은 아가씨와 약혼 관계일 때도 자주 가던 레스토랑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보통 3층 밀실에서 식사를 하지 않으시고, 2층으로 향했습니다.”

“2층에 토마스 영식이 있었겠네.”

“예, 맞습니다.”

파츠래리와 약혼 기간일 때 자주 가던 레스토랑은 귀족 전용 고급 레스토랑이다.

1층은 예술품 전시가 되어 있으며, 2층에는 다른 귀족들이 모두 식사를 즐기는 곳이다. 그리고 3층은 밀실로 되어 있는 룸이다.

파츠래리와는 주로 3층에 밀실에서 식사를 함께하는 편이었다. 아무래도 2층에서 밥을 먹게 되면 다른 귀족들이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파츠래리가 2층에서 식사를 했다는 건 귀족들에게 뭔가 보여 줄 것이 있다거나 알리고 싶은 소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과연 뭘 알리고 싶었던 걸까? 그게 아니면 뭘 보여 주고 싶었던 걸까? 메릴과의 견고한 약혼 사이인 걸까?

“황태자 전하가 2층에서 식사라…….”

“두 분이 식사를 마친 뒤에 파츠래리 황태자 전하가 먼저 자리를 떠나셨습니다. 그 뒤에 메릴 공녀는 3층으로 올라가시고, 그 뒤를 토마스 영식이 따라 들어갔습니다. 당연히 밀실로 된 룸에서 만나셨습니다만……. 아가씨, 질문이 있습니다.”

뭔가 생각났다는 듯한 얼굴의 쥬안은 메이아에게 물었다.

“혹시 파츠래리 황태자 전하와 플로렌스 대공 각하와 만나신 적이 있습니까?”

“마탑에서 만나신 적이 있어.”

메이아의 시선이 쥬안에게 다시 고정되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