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공님은 공녀님만 찾는다-126화 (126/163)

126화

문밖에서 기다리던 베르샤는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올곧게 서 있었다.

“에헴.”

푸링은 볼일을 보고 응접실 앞에 도착해 그에게 물었다.

“두 분은 아직 안에 계시지?”

“아직 안에 계십니다.”

“안 봐도 뭘 하고 계실지 눈에 훤히 보이는군.”

어릴 때부터 지켜본 메이아는 주위를 매우 신경 쓰며 살아왔다. 그게 습관이고 버릇이었다. 그렇지만 테오도르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주위 신경 쓰지 않고 그와 애정 행각을 벌인 일에 푸링은 상당히 많이 놀란 상태였다.

그래서 볼일이 있다면서 괜히 나와 마탑 주변을 두 바퀴나 돌고 오는 길이었다.

“좋을 때지.”

“예, 두 분이 너무 잘 어울리십니다. 가신들 또한 공녀님을 대공비로 많이 환영하고 있습니다.”

베르샤는 미소 지었다.

가신들은 대공비가 누가 될 것인지 궁금해했다. 그리고 모두가 찬성하는 분이 대공비로 들어왔다.

“앞으로 행보가 기대되는 분입니다.”

점점 바뀌는 메이아의 감정적인 모습에 푸링은 놀란 마음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두 사람이 진심으로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눈빛에서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파츠래리와의 파혼 이야기에 정말 안타까웠지만 지금은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사랑하는 이가 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일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하지만 이 한 가지 기적에는 많은 운명을 이겨 내야만 한다. 사랑 속에 깃든 많은 감정들을 받아들이며 서로를 이해하고 아껴 주며 또한 몸도 건강해야 한다. 앞으로 저 두 사람은 그 기적을 지키기 위해 많은 걸 희생할 수도 있고, 슬퍼할 일도 생길 수도 있지만 두 사람이 잘 이겨 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 확신이 들었다.

“데이빗 님과 바이올렛 님이 이 모습을 보셨어야 하는데…….”

모든 감정을 제어하며 사교계의 꽃으로 살아온 메이아와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모든 감정을 죽이고 살아온 테오도르는 서로 다르면서도 닮았다.

푸링은 베르샤에게 웃으며 말했다.

“이젠 노크를 해 볼까?”

베르샤는 살짝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응접실 문을 노크를 했다.

“공녀님, 대공 각하, 들어가겠습니다.”

하지만 푸링은 곧바로 문을 열지 않았다. 잠깐의 시간 차를 두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잠시 후, 테오도르와 메이아 그리고 그 뒤를 호위하는 베르샤는 푸링의 안내를 받으며 텔레포트 하는 곳으로 향했다.

“바로 공작저에 돌아가지 않으실 겁니까?”

“예, 스승님.”

“그러면 어디로 가실 생각입니까?”

메이아는 싱긋 웃으며 답했다.

“파스타 먹으러요.”

“파스타요?”

“네, 메이와 파스타를 먹고 갈 생각입니다.”

파스타를 먹으러 간다는 말에 테오도르의 얼굴과 귀가 새빨개졌다. 하지만 기대감에 부푼 테오도르는 곧 실망에 휩싸이게 되었다.

*

카르펜 제국의 황제 아르헨 폰 마브로는 오전 회의로 정신없었다.

갑작스러운 시리우스 제국이 성국에 전쟁 선포를 하면서 성국에서 구입했던 신성력이 담긴 아티팩트와 물약의 처분 때문이었다. 고가지만 그만큼 병이나 상처에 효율적이기 때문에 돈이 있는 사람일수록 많이 구비를 해 놓는다. 하지만 이젠 그 누구도 쓰려고 하지 않았다.

판매하던 성국으로부터 마물과 인체 실험과 흑마법을 사용했다는 증거들이 나오면서 이러한 고가품은 순식간에 그 가치를 잃어버렸다.

“도저히 찜찜해서 쓰지를 못하겠단 말이지…….”

“아픈 제국민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처리하는 게 가장 좋겠소?”

흑마법 실험을 했던 성국에서 물약과 아티팩트를 신성력이 아닌 흑마법의 기운을 담은 게 아닐까 하는 소문들이 퍼지면서 그야말로 쓰레기만도 못한 물건을 제국민에게 나누어 주었다간 어떤 말이 나올지 예상되었다.

“계속 교황이 검은 마물로 변해서 다른 마물들을 소환한다지?”

“그렇습니다. 정찰을 보낸 기사가 계속 땅속에서 마물이 튀어나와 교황에게 스며들며 몸집을 키우고 있다 합니다.”

“누가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성국이 흑마법과 관련 있을 줄.”

“다행히 땅에서 튀어나온 마물들이 다행히 사람들은 공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차피 그곳을 록벨리온 공작이 지키고 있다 하니 마물이 공격해도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전쟁 선포 단 이틀 만에 성국이 시리우스 제국에게 패배한 걸 알게 된 주위 제국들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더 놀라운 일은 교황이 마물을 땅속에서 불러들이면서 교황청이 초토화되었다는 이야기에 많은 이들이 또 한 번 경악했다. 급한 전쟁은 금방 끝났지만 계속 나오는 마물들로 모두 숨죽이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사태는 장기간 계속될 듯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신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의를 구현한 시리우스 제국의 인기 또한 치솟아 올랐으며, 시리우스 제국은 바로 함락된 성국을 속국으로 선포한다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록벨리온 공작은 무슨 전쟁을 이틀 만에 끝을 내는지…… 허허.”

“록벨리온 공작이 같은 소드 마스터인 용병왕 그리고 마탑의 마법사 80%를 고용한 다음, 플로렌스령의 텔레포트로 군사를 이동시킨 다음 바로 성국으로 이동해 단숨에 교황청을 함락시켰다 합니다. 거기에다 록벨리온 공작의 약혼녀인 중급 정령사 율리아나 영애까지 합세했다 합니다.”

“마법사들 고용은 대체 언제 한 거지?”

“영지전 때문에 고용했다 합니다.”

“뭐? 영지전?”

“전쟁할 일이 없으니 영지전을 벌였다 하더군요.”

“역시 싸움에 미친 자라는 소문이 진짜인가 보군.”

“피도 눈물도 없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게 없을 정도로 싸움을 좋아한다 합니다.”

“마법사들은 영지전을 끝내자마자 바로 전쟁에 투입되었고 보상이 마정석이니 마법사들이 너도나도 고용해 달라고 난리였다 합니다.”

“이걸 보고 누가 전쟁이라 생각하겠습니까!”

일방적으로 힘없는 제국을 점령한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시리우스 제국의 전쟁 선포는 명분이 분명하기에 어떠한 제국도 그걸 지적하지 않았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전쟁 방법이었다.

“무식한 방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만…….”

텔레포트를 이용하려면 많은 돈과 마정석, 마법사가 필요하다. 군사를 이동하는 데 사용했다면 천문학적인 비용은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시리우스 제국은 돈으로 전쟁에서 손쉽게 이겨 버렸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전쟁 방법이지만 그 누구도 엄두를 낼 수 없는 방법으로 말이다.

그 중심에 소드 마스터 록벨리온 공작이 있었다.

카르펜 제국 쪽은 괜히 시리우스 제국에 밉보였다가 성국과 같은 꼴이 될까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소드 마스터와 마법사들이 텔레포트를 이용해 쳐들어와 영토를 쑥대밭으로 만든다면?

“체스로 따지면 모든 규칙을 무시하고 바로 체크메이트를 하는 것이죠.”

“시리우스 제국이니 그렇게 할 수 있는 겁니다.”

시리우스 제국의 전쟁 방법은 따라 할 수 있는 제국은 없다.

무엇보다 소드 마스터가 두 사람이나 시리우스 제국에 있다. 용병왕이 록벨리온 공작에게 채용되었다면 한동안 시리우스 제국은 소드 마스터가 두 명이나 보유 중인 제국이 된다.

전 제국에 퍼진 소드 마스터는 다섯 명이다. 이 중의 두 명이 시리우스 제국에 있으니 소드 마스터를 데리고 있는 제국이더라도 시리우스 제국과의 전쟁을 피할 것이다.

소드 마스터 한 명으로 전쟁이 좌지우지되는데 시리우스 제국에는 두 명이나 존재하며 마탑의 많은 마법사들이 그곳에 고용되어 있다. 이미 결과가 뻔하지 않은가!

아르헨은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역시 시리우스 제국과는 척을 지면 안 돼. 요번 일로 시리우스 제국과 돈독한 동맹 관계를 유지하면 좋으련만……. 그대들은 물약이나 아티팩트 처리는 타 제국에서 어떻게 처리하는지 정보를 수집하도록.”

황제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똑똑.

회의실에 노크를 하고 시종장이 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폐하!”

“무슨 일인데 회의가 끝나길 기다리지 못하고 들어온 게냐?”

시종장의 새파란 안색에 아르헨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 급한 편지가 왔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회의 중에 실례인 줄 알면서 들어왔습니다.”

시종장은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노크를 하고 들어오지 않는다. 허락을 받고 들어온다. 예외적으로 비상 상태일 때는 허락을 구하지 않고 들어올 수 있다.

“급한 편지? 대체 누가 보냈길래.”

“시리우스 제국의 플로렌스 대공가에서 보낸 편지입니다.”

시종장 말에 아르헨과 그 자리에 있던 귀족들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시리우스 제국과 척을 지면 안 된다고 말한 지 1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시리우스 제국의 플로렌스 대공가에서 편지가 왔다는 건 할 이야기가 있다는 뜻이다.

플로렌스 대공가는 카르펜 제국에 원하는 것이 있는 걸까?

짧은 침묵이 흐르고 입을 먼저 연 사람은 아르헨이었다.

“왜 플로렌스 대공이 짐에게 편지를 보낸 거지? 편지를 다오.”

“여기 있습니다, 폐하.”

아르헨은 초조한 기분에 휩싸였다.

편지를 든 황제를 보며 사람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침을 꿀떡 삼켰다.

편지를 꺼내 읽어 보니 내용은 간단했지만 내용은 무겁지 않았다.

[데미안 폰 마브로 황자는 플로렌스 대공의 약혼녀에게 상해를 입혔다. 예비 플로렌스 대공비에게 상해를 입힌 죄로 내가 도착하기 전까지 데미안 황자를 감옥에 가둘 것을 명하겠다. 이를 거절할 시 제국 간 전쟁을 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

편지를 읽던 아르헨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윽고 손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읽었다.

“이게 정녕 플로렌스 대공가에서 보낸 편지가 맞느냐?”

누군가 보낸 장난 편지이기만을 바랬지만 아무리 살펴보아도 플로렌스 대공가에서 보낸 편지가 맞았다.

“이게 대체 무슨…… 시종장!”

“예, 폐하.”

“데미안이 현재 어디 있는지 아느냐.”

“황자궁에 계실 것 같습니다.”

황제는 씩씩거리며 편지를 거칠게 구기며 자리에서 일어서 앉아 있는 귀족들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오늘 회의는 여기서 파하겠다. 시종장, 데미안을 끌고 내 개인 응접실로 끌고 오너라!”

“알겠습니다, 폐하.”

데미안이 예비 플로렌스 대공비 시해라니!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플로렌스 대공의 약혼녀에게 무슨 짓을 했길래 다치게 했다는 말인가! 사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아르헨은 초조한 발걸음으로 회의실을 나왔다.

1